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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튼 커쇼/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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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국적의 좌완 투수 클레이튼 커쇼의 선수 경력을 모아놓은 문서.

2. 드래프트

파일:0_FDtBXOPGW0_aRVlC_.jpg
좌: 캘빈 존스 (다저스 스카우트), 중: 커쇼(당시 18세), 우: 마리안 로빈슨 (커쇼의 어머니)
커쇼는 드래프트에서 고졸 최고 거물로 주목받았지만 텍사스 A&M 대학교의 야구 장학금 제안을 받아놨기 때문에 사이너빌리티에는 의혹이 있었다. 그러나 다저스는 전체 7픽으로 커쇼를 지명한 후 230만 달러의 계약금[1]을 안겨주며 사인에 성공했다.

사실 커쇼가 7픽까지 내려온 것은 다저스 입장에서는 행운이었는데, 커쇼는 워낙 고등학교 때에 급성장한 유망주여서 많은 스카우터들이 놀라워하면서도 그 재능의 순도에 약간의 의문을 품고 있었다. 물론 아주 큰 문제는 아니고 약간의 불안 정도였지만, 드래프트 바로 전 날 펼쳐진 경기의 부진으로 '1라운드 상위 픽을 쓰는 것은 조금 아깝지 않나'라는 의견이 나올 정도의 불안이었다. 반면 로건 화이트 다저스 스카우팅 디렉터는 한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커쇼가 가진 재능 자체에 대한 믿음을 깨지 않았고 팀 린스컴을 거르며 커쇼를 데려왔다.[2][3] 본래 훗날 아내가 되는 엘렌 멜슨이 입학한 A&M 대학에 들어갈 생각이었으나 230만불의 계약금에 커쇼는 마음을 굳혔다. 대학에 들어가서 또 몇 년의 시간을 보내느니 이 돈으로 빠르게 어머니를 부양하고 싶었던 것.

여담으로 이 드래프트 당시에 230만 달러를 받은 커쇼에게 무슨 차를 사고 싶냐고 팀 관계자가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이 고가의 차가 아닌 일반적인 차(포드의 F-150 픽업트럭)였다고 한다.[4] 고생하는 어머니에 대한 효심과 근검절약이 몸에 스며서였으며, 이때부터 관계자들이 100% 성공한다 라고 생각했다고.

3.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파일:XmAeS8.jpg
왼쪽부터 차례대로 오렐 허샤이저,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클레이튼 커쇼, 샌디 코팩스, 돈 드라이스데일이다.

3.1. 마이너 리그 시절

파일:kershaw-loons.jpg
마이너리그에서 웬만한 대졸 투수 같은 페이스를 보여준 커쇼는 2006년 드래프트[5]에서 지명되자마자 고졸로서는 굉장히 흠좀무한 베이스볼 아메리카 유망주 54위에 등극하더니, 이듬해인 2008년에는 7위에 등극하며 향후 최고의 투수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참고로 2008년 MLB.com Top100 유망주 순위는 4위.

커쇼가 한참 촉망받는 유망주일 시절 플로리다 말린스(現 마이애미 말린스)와 다저스가 트레이드를 논의하던 때 말린스가 맷 켐프, 채드 빌링슬리, 아담 라로쉬 등의 선수들과 미겔 카브레라의 트레이드 이야기가 나왔는데, 말린스가 커쇼까지 달라고 요구하자 트레이드에 언급되는 선수들도 선수들이지만 커쇼까지 달라는 건 사실상 대놓고 도둑질 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 다저스가 거부해 말린스가 없던 일로 하기로 하며 무산됐다. 또한 텍사스 레인저스마크 테세이라를 줄테니 텍사스 출신인 커쇼와 바꾸자고 요구했는데, 이때는 단장 네드 콜레티가 테세이라에게 혹해서 정말로 커쇼와 바꿀 생각까지 하였지만 로건 화이트가 격렬히 반대하였다.[6] 결국 테세이라는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 트레이드에 합의가 되면서 애틀랜타 팜의 유망주들이던 엘비스 앤드루스, 맷 해리슨, 네프탈리 펠리즈, 재로드 살탈라마키아가 텍사스와 바뀌었다.

그만큼 커쇼가 루키리그부터 더블A까지 마이너리그를 빠르게 씹어먹고 있었고, 마침내 2008시즌 중 트리플A를 생략한 채 빠르게 메이저리그에 부름을 받게 된다. 메이저리그 콜업 직후 얼마 안 되어 발표된 그 해 베이스볼 아메리카 미드시즌 유망주 Top25 에서 1위를 찍은 건 덤.

2008 베이스볼 아메리카 유망주 순위 7위였다. 비슷한 수준의 (역대) 톱급 유망주들의 성적은 메이저 리그 유망주 순위를 참조.

3.2. 2008 시즌

파일:Clayton-Kershaw-15.jpg
그렇게 5월 25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홈 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하며 20살 갓넘긴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였다. 드래프트된 지 2년도 안된 고졸 루키가 이렇게 빅리그에 빠르게 데뷔하는 것도 이례적인 케이스.[7] 데뷔 경기에서 6이닝 5피안타 2실점 7K로 무난한 데뷔전을 치렀지만 첫해에는 빅리그의 벽을 실감하며 5승5패 4.26의 ERA로 데뷔 첫해를 보냈다.(그러나 이것도 루키 치고는 굉장한 성공이다.). 게다가 시즌 중반 로스터에 올랐던지라 22경기 21선발에 그쳤음에도 100K를 잡는 등 쏠쏠한 삼진율을 보여줬다. 다만 볼질은 있어서 9이닝당 4개의 볼넷을 내준다는 아쉬운 커맨드를 보여줘서 K/BB 비율이 2에 머물렀다.

이때 화려하게 재기한 박찬호와 5선발 경쟁을 한 것이 국내 팬들에게 이름이 친숙해진 계기였는데, 박찬호를 밀어내고 선발 자리를 차지하자 국내 한정으로 욕을 먹기도 했다. 엠엘비파크 엠엘비게시판에서는 검증된 베테랑 선발인 박찬호를 기용하지 않는 조 토레와 다저스 프런트를 성토하는 몇몇 국빠 박찬호 팬과 이같은 비난을 달가워하지 않는 기존 다저스 팬들의 충돌이 있었고, 결국 충돌 끝에 마음이 상한 몇몇 다저스 팬들이 엠엘비게시판을 떠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오랫동안 사실처럼 퍼졌는데 소위 '커X놈' 글은 엠엘비파크는 고사하고 인터넷 어디에서도 제대로 적힌 내용조차도 검색이 되지 않는 괴담에 가깝다.오히려 LA타임즈 등 현지에서 조 토레를 질타하는 기사들이 나왔을 따름이다. 박찬호 팬과 다저스 팬 사이에서는 충돌이 없었고, 조 토레와 프런트를 성토하는 분위기에 오히려 박찬호 안티들이 이간질을 시도했다. 박찬호와 커쇼 모두 따지고 보면 피해자.

3.3. 2009 시즌

파일:kershaw2009.jpg
2009년에는 평균자책점을 2점대로 낮추며 8승을 따내고 9이닝당 9.7K를 잡는 등 선전했지만, 피안타율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대신 볼질이 여전해서 이닝을 많이 먹지 못했다.[8]

3.4. 2010 시즌

파일:kershaw2010.jpg
그렇게 커맨드가 영 좋지 않다는 평을 받자 우타자들에게 그간 주로 던지던 커브볼[9]을 줄이고 슬라이더를 주로 던지면서 패스트볼과 함께 아웃피치로 쓰기 시작했다.[10] 그 결과 좌타자들을 학살했지만 우타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성적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2010년 후반기에는 이전의 평가를 엿먹이듯이 볼질을 조금 줄이고 13승과 200이닝을 채우고 2.91, 212K를 잡아내며 드디어 실마리를 잡았고, 시즌 후 동년배 동부지구 괴물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처럼 7년간 사귄 여자친구와 2010년에 결혼했다. 그리고 가정적으로 안정을 찾은 2011년부터 포텐셜이 터졌고 전설의 전성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3.5.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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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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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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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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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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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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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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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20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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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20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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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 20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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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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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 202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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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 202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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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 202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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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연도별 기록

파일:MLB 로고.svg 클레이튼 커쇼의 역대 MLB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2008 LAD 22 5 5 0 1 107⅔ 4.26 109 11 52 1 100 1.495 98 1.3 1.5
2009 31 8 8 0 0 171 2.79 119 7 91 1 185 1.228 143 4.1 4.7
2010 32 13 10 0 0 204⅓ 2.91 160 13 81 7 212 1.179 133 4.6 5.6
2011 33 21 5 0 0 233⅓ 2.28 174 15 54 3 248 0.977 161 7.3 6.8
2012 33 14 9 0 0 227⅔ 2.53 170 16 63 5 229 1.023 150 6.1 6.4
2013 33 16 9 0 0 236 1.83 164 11 52 3 232 0.915 194 7.2 8.1
2014 27 21 3 0 0 198⅓ 1.77 139 9 31 2 239 0.857 197 7.9 7.7
2015 33 16 7 0 0 232⅔ 2.13 163 15 42 5 301 0.881 173 8.6 7.3
2016 21 12 4 0 0 149 1.69 97 8 11 2 172 0.725 237 6.3 5.8
2017 27 18 4 0 0 175 2.31 136 23 30 0 202 0.949 179 4.3 4.9
2018 26 9 6 0 0 161⅓ 2.73 139 17 29 2 155 1.041 142 3.4 3.3
2019 29 16 5 0 0 178⅓ 3.03 145 28 41 2 189 1.043 137 3.6 3.3
2020 10 6 2 0 0 58⅓ 2.16 41 8 8 1 62 0.840 202 1.4 1.8
2021 22 10 8 0 0 121⅔ 3.55 103 15 21 3 144 1.019 119 3.4 2.4
2022 22 12 3 0 0 126⅓ 2.28 96 10 23 2 137 0.942 177 3.9 3.5
2023 24 13 5 0 0 131⅔ 2.46 100 19 40 3 137 1.063 175 2.4 3.8
2024 7 2 2 0 0 30 4.50 36 2 9 2 24 1.500 87 0.6 -0.3
MLB 통산
(17시즌)
432 212 94 0 1 2742⅔ 2.50 2091 227 678 44 2968 1.010 156 76.4 76.5


[1] 2010 드래프트에서 잭 리(Zach Lee)가 525만 달러를 받기 전까지 다저스 유망주가 받은 최고액이었다.[2] 사실 어떻게 보면 체구 작은 투수는 선호하지 않는 '올드 스쿨' 하기로 유명한 다저스의 유망주 기준을 다시 한 번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린스컴이 샌프란시스코에서 호투하고 월드 시리즈 우승을 이끌 때에야 커쇼도, 스카우트들도 욕을 먹었지만, 린스컴이 쇠퇴하고 커쇼가 리그 에이스가 된 2014 시즌 기준에서는 딱히 욕을 먹고 있지는 않다. 물론 샌프란시스코 팬들도 이 드래프트에 불만은 없다. 린스컴을 뽑음으로써 월드시리즈 우승을 할 수 있었으니까.[3] 그래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조금 위험하긴 했다. 드래프트 전날에 부진했고 고등학교 와서 갑자기 기량이 상승한 투수를 오로지 체격과 지닌 포텐셜만 보고 지명했으니. 커쇼가 잘 자라서 크게 문제되거나 하진 않았지만, 이것이 실패하면 빌 버베이시가 되는 것. 그리고, 최악의 케이스는 커쇼는 안 터지는 1라운더, 린스컴은 부상 없이 롱런.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사례는 벌어지지 않았고, 커쇼는 역대급 좌완투수로 성장했으며, 린스컴은 단기간 본인의 클래스를 보여주며 우승을 돕긴 했으나 롱런은 못한, 딱 적정한 윈윈이 되었다.[4] 이 계약금만 해도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한화 40억이 넘어가는 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일해도 벌기 힘든 돈을 입단 계약금으로 받았는데 저런 말을 한 것.[5] 라이벌 팀의 팀 린스컴과 같은 드래프트 출신이다. 린스컴은 당초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지명 예정이었고 합의까지 봤지만, 콜로라도 로키스에반 롱고리아를 지명하지 않자 탬파베이 측에서 롱고리아를 지명하였고, 이대로 쭉쭉 10픽 샌프란시스코 측까지 밀려왔다.[6] 오죽하면 이 둘이 크게 다퉜다는 카더라성 이야기까지 언급됐을 정도.[7] 당시 단장이었던 폴 디포데스타가 연이은 삽질을 만회해 보려고 깜짝 콜업시켰다.[8] 2010년 중반까지 이 문제는 계속되었다. #[9] 빈 스컬리 옹은 2008년 스프링캠프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의 션 케이시를 잡아낸 커브볼을 일컬어 공공의 적(Public Enemy)이라 칭할 정도로 뛰어난 각을 자랑했다.[10] 그러나 2011 시즌 슬라이더의 비중이 20% 초반까지 올라가면서 몇몇 전문가들은 커쇼의 팔꿈치에 대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실 커쇼의 슬라이더 투구 비율은 지금 와서는 20%대 후반으로 더 올라가 버린 상태다. 커브 비율이 다시 높아졌지만, 패스트볼의 비율도 낮췄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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