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7 21:42:32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클럽 경력



1. 개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클럽 경력을 서술하는 문서다.

2. 스포르팅 CP

호날두는 매우 지독한 연습벌레였다. 특히 호날두는 브라질 선수들의 기술을 보면서 따라 하려고 노력했고, 화려한 드리블 기술을 갖추게 됐다. 이에 호날두가 16세가 되자 당시 스포르팅의 1군 감독이었던 라슬로 뵐뢰니 감독이 호날두의 드리블 능력을 높이사 1군으로 승격시켰다. 그는 스포르팅의 U-16, U-17, U-18, 리저브, 그리고 1군 경기를 단일 시즌에 뛴 최초의 선수가 됐다. 참고로 이 시기에 훗날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서 본인을 지도하기도 하는 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파울루 벤투와 함께 뛰기도 했다.[1]

폭발적인 스피드와 드리블 능력을 갖춘 호날두는 많은 빅 클럽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특히 호날두는 본인의 1군 데뷔전인 2002년 10월 7일 모레이렌스 FC와의 프리메이라리가[2] 경기에서 2골을 넣어 팀의 3-0 완승을 이끌었는데 이후 구단 관계자는 리버풀 FCFC 바르셀로나에 호날두를 추천하기도 했다.
파일:Ronaldo Sporting CP.jpg
그러나 호날두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 본 인물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명장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었다. 호날두는 2003년 8월 맨유를 상대로 맹활약을 펼치며 승리를 이끌었는데 이때 퍼거슨 감독과 맨유 선수들의 찬사를 얻어냈다.[3] 결국 퍼거슨 감독은 2003-04시즌을 앞두고 호날두를 영입했다. 당시 이적료는 1224만 파운드(약 175억 원)였는데 이는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청소년 선수 최고 이적료였고, 맨유가 영입한 최초의 포르투갈 선수였다. 호날두는 스포르팅에서 사용하던 등번호 28번을 원했지만 맨유는 조지 베스트, 브라이언 롭슨, 에릭 칸토나, 데이비드 베컴 등 전설적인 선수들이 사용했던 7번을 부여했다.

사실 A급 유망주임은 분명했지만, 당시 포르투갈 리그에서 뛰던 호날두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아르센 벵거도 맨유랑 비슷한 시기에 호날두를 영입하려고 노력했지만 스포르팅 리스본이 제시한 이적료 1224만 파운드(맨유가 지불한 이적료)는 비싸다고 생각했다. 반면 웨인 루니의 에버턴→맨유 이적에서 발생한 이적료는 2560만 파운드.

유벤투스 FC도 이때 마르셀로 살라스를 내주는 조건으로 호날두를 데려오기로 했고, 실제로 메디컬 테스트까지 받았다. 그러나 살라스가 갑자기 스포르팅으로 가는 것을 거절하였고, 그 사이 이적료 1224만 파운드를 제시한 맨유가 호날두를 데려갔다. 그리고 2020년 9월 23일 구단은 호날두를 구단 레전드로 인정하면서 팀유스팀 이름을 호날두 아카데미로 변경하였다. [4]
통산 기록 31경기 5골 6도움

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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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 역대 베스트 XI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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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날두의 활약은 엄청났다. 맨유 데뷔 시즌에서 40경기에 출전해 6골을 기록한 호날두의 성장 속도는 엄청났고, 이후 9골, 12골, 23골, 42골을 기록하며 점점 득점력이 좋아졌다. 첫 시즌 FA컵 우승을 따낸 호날두는 이후 3번의 프리미어 리그 우승, EFL컵 2회 우승 등을 차지하며 프리미어 리그를 정복했으며, 2007-08시즌에는 무려 42골을 기록하며 프리미어 리그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득점왕을 동시에 석권하며 우승을 이끌었다. 호날두가 기록한 42골은 조지 베스트가 세웠던 윙어 최다골 32골을 경신한 대기록이다.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2번이나 받은 호날두는 2008년에는 발롱도르FIFA 올해의 선수상을 휩쓸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올라섰다. 이때의 맨유는 구단가치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위세를 자랑했으며, 알렉스 퍼거슨 감독 또한 호날두와 함께한 이 당시의 맨유가 최고의 전성기였다고 자서전에서 인정하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축구 전성기가 시작된 시기.
호날두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의 만남을 회상하며 “스포르팅에서 활약할 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는 나를 원한다고 했고,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니 전율이었다. 내게 전화를 한 사람은 퍼거슨 감독이었다. 나는 곧바로 어머니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 퍼거슨 감독은 내게 아버지와도 같은 인물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역대 잉글랜드 프로 축구를 통틀어도 호날두와 비교되는 공격수는 티에리 앙리, 라이언 긱스, 앨런 시어러 정도 뿐이다.[5] 다만 차이가 있다면, 앙리와 시어러 둘은 전방 스트라이커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호날두는 윙어였다는 점, 그리고 앙리와 시어러, 긱스는 커리어의 하이라이트를 잉글랜드에서 보낸 선수들이지만 호날두에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커리어 1기는 결코 메인이 아닌 선수 초반의 어린 시절을 보낸 팀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호날두는 저 세 명이 타지 못한 발롱도르까지 수상하는데, 세명에 비해 훨씬 짧은 기간을 활약하였음에도 최소한 세명과 동등, 오히려 그 이상으로 랭크되는 역대 EPL 레전드 평가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그만큼 맨유에 있는 동안 폭발적이고 임팩트 있는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호날두는 이미 여러 차례 현지 조사에서 EPL 역대 최고의 선수, 맨유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2010년도 이후 현지조사에서는 매체 불문하고 EPL 올타임 1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호날두가 맨유, 더 나아가서 EPL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선수라고 한칼에 단언하기는 조심스럽지만[6], 그렇다면 호날두보다 더 뛰어났던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딱히 대답할 선수도 없다는 것. 실제로 현시점의 호날두와 비교되는 역대 최상급 반열의 선수들[7]은 대다수가 잉글랜드가 아닌 타 리그를 주 무대로 뛰었기 때문에 호날두가 잉글랜드 리그에서는 역대 최고라는 반응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8]

'호날두라는 선수 자체'가 현재까지 잉글랜드에서 커리어를 보낸 적 있는 선수 중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는 평가는 이미 크게 이론의 여지가 없는 단계에 도달했으나, 이는 '호날두가 영국에서 보낸 커리어'가 잉글랜드 1부리그에 있어 왔던 여러 선수들의 커리어 중 가장 위대하다고 평가하는 것과는 엄밀히 말해 별개이다. 여러 매체의 평가는 이 부분이 미묘하게 섞여 있고, 1992년에 출범한 'EPL'과 130년 역사의 잉글랜드 프로축구리그라는 상이한 개념 역시 팬들과 언론 사이에서 미묘하게 혼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맨유 1기의 호날두 역시 세계 최고의 선수로서 자리매김한 바 있으며, 그 시절 남긴 족적만으로 1992년 출범한 'EPL'의 역대 베스트11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도 남을 만 하다는 점만큼은 호날두를 아무리 낮게 평하는 이라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 CF의 공식적인 관심을 받던 호날두는 2009년 여름, 당시 역대 최고 이적료인 8000만 파운드(약 1145억 원)를 받고 레알의 유니폼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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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기록 292경기 118골 53도움

4. 레알 마드리드 CF


어렸을 때부터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는 게 본인은 물론 어머니의 소원이었다고 공공연하게 밝혀 이후에는 언제나 레알 마드리드 이적설에 시달렸었고, 결국 2008-09 시즌이 끝나고 갈락티코스 2기를 표방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 자신의 소원을 달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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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입단식 공식 영상 (유튜브-레알 마드리드)

https://www.facebook.com/transfermarket12/posts/3241217549300705/역대 선수 입단식 관중 톱11, 1위 호날두-6위 아자르-11위 베일

호날두는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역대 입단식 관중수 최다 동원 기록인 7만 5천여명의 팬들의 환호 속에 입단하며 자신의 위상을 알렸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이적료가 당시까지 역대 최고 금액인 무려 1650억으로, 어지간한 구단 하나와 맞먹는 금액이다.[9] 그를 영입한 페레즈 회장이 말해왔던 '가장 비싼 선수가 실제로는 가장 싼 선수이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매번 올랭피크 리옹에 덜미를 잡혀 16강 마드리드로 불리던 레알에게 4번의 빅 이어와 UEFA 챔피언스 리그 개편 이후 최초의 3연패 기록을 가져다주었으며, 팀을 1992-93시즌 이후 첫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끌고 2013-14 시즌에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그 외에 리그도 2차례 우승을 거머쥐었으며, 또한 득점 기록에서도 레알 마드리드 CF의 살아있는 전설로서 기록을 썼다. 지금까지 만들어낸 그의 가치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정한 바이아웃 기준으로 1조 원을 넘었을 정도가 되었다.

호날두는 2017-18 시즌을 끝으로 레알 마드리드와 작별했다.
통산 기록 438경기 450골 125도움[10]
레알 마드리드 CF 역대 최다 득점 1위
레알 마드리드 CF 역대 최다 도움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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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날두의 레알은 눈부셨다. 그는 복귀한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의 레알 마드리드 재건을 위한 갈락티코스 2기의 단연 에이스이자 핵심이였다. 호날두의 엄청난 활약에 힘입어 갈락티코스 2기는 성공하였고, 레알 마드리드가 왜 최고의 명문 구단인지 다시 한번 증명하는데 성공하였다. 특히, UEFA 챔피언스 리그 5년간 4회 우승 및 최초의 3연패 우승을 달성할 당시 레알 마드리드는 당대 최강은 물론 역대를 통틀어도 손꼽힐만큼의 업적과 임팩트를 보여주며 세계를 호령하던 클럽의 위상[11]을 되찾았고, 호날두도 이 시기에 미친듯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챔스의 신으로 등극하며 발롱도르를 4회 수상하였다. 그야말로 호날두의 축구 경력 중 최전성기이자 황금기 시절인 동시에 호날두가 대중에게 본인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던 시기이다.

실제로 장기간 한 클럽에서 뛴 역대 모든 축구선수 중에서 경기당 골 비율이 1이 넘어가는 선수는 호날두가 유일하다. 그것도 다른 어지간한 클럽도 아닌 레알 마드리드에서 이룬 기록이다. 그야말로 신들린 득점력. 이적 전까지는 일부 안티들에게 미드진의 킬패스나 주워먹니, 팀빨이니 하는 말이 있었지만 이적 후에야, 천하의 레알에서조차 호날두야말로 대체 불가능 자원이었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호날두가 레알에서 뛰는 9년간 앙헬 디마리아, 메수트 외질, 샤비 알론소, 히카르두 카르발류, 곤살로 이과인, 페페, 치차리토, 하메스 로드리게스, 카카, 가레스 베일, 마르셀루, 카림 벤제마, 마르코 아센시오등부터 지금 뛰고 있는 루카 모드리치, 토니 크로스까지 정말 수없이 많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오가며 호날두의 파트너가 바뀌었지만 호날두는 여전히 수십 골을 퍼부었고, 레알 마드리드는 언제나 라리가 우승 순위권이자 챔피언스 리그 최고의 우승후보 팀이었다. 하지만, 호날두가 이적하자마자 새로 온 훌렌 로페테기 감독은 레알은 50골을 잃었다고 하소연하다 부진으로 15경기만에 경질되고, 플로렌티노 페레즈 회장 또한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하루가 멀다 싶게 현지팬들은 호날두를 그리워하고 있다. 호날두가 떠나자 귀신같이 이스코도 최정상 스트라이커의 부재로 어시스트 성적이 형편없어지고, 오히려 그동안 호날두가 팀동료들에게 어시스트를 떠먹여 줬다는 말이 나온적도 있다.[12] 실제로 호날두는 팀 동료가 누구든 수십 골씩 넣어온 만큼 여러모로 그의 영향력이 증명된 셈이다. 그의 공백은 팀 동료인 카림 벤제마와 후배 비니시우스 주니오르의 각성이 이뤄지고 나서야 겨우 메워졌다.

4.1. 2009-10 시즌 ~ 201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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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2011-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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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2012-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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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2013-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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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2014-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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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2015-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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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2016-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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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2017-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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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유벤투스 FC

호날두라 불리는 선수가 유벤투스의 선수가 됐다.
- 유벤투스 FC 홈페이지, 2018년 7월 11일 호날두의 이적 성사를 알리며.

2017-18 시즌 종료 이후 2018년 7월 10일(현지시각)에 유벤투스 FC로 이적 완료가 발표되었다. 이적료는 1억 500만 유로[13]를 2년간 레알 마드리드에 내고 1200만 유로의 옵션이 추가된 금액을 FIFA 규정에 따라 호날두의 이전 소속팀이었던 스포르팅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연대 기여금으로 지불할 계획이다. 몸값은 연봉 3000만 유로로, 4년 총액 1억 2000만 유로이다. 계약기간은 2022년 6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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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날두가 축구계에서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지닌 슈퍼스타인지 증명해준 사건이기도 하다. 월드컵 시즌임에도 호날두의 이적이 엄청난 대형 화제로 언론 1면을 장식하였고, 수많은 축구 관계자들, 레전드 및 유명인사들이 호날두의 세리에 A 입성을 통해 세리에라는 리그 자체가 부활할 것이다는 식의 발언을 쏟아내었다. 심지어 라니에리 감독은 디에고 마라도나SSC 나폴리로 이적함으로써 세리에 A가 부흥한 것과 맞먹는다고까지 평가하였는데, 실제로 이 정도까지 한 선수의 이적만으로 구단의 주가가 폭등하고, 트워터 팔로워가 수백만 명이 늘고 시즌권이 순식간에 완판되고, 선수 유니폼 수백만 벌이 순식간에 전 세계적으로 품절되고, 세리에 리그 중계권 가격이 오르고, 한 리그 전체에 대한 온 세계의 관심이 급상승한 경우는 축구사 전체를 통틀어도 찾기 힘든 편이다.[14] 한준희 해설위원은 원투펀치에서 호날두의 이적의 패자(敗者)는 라리가라는 말을 했는데, 실제로 호날두의 이적 이후 라리가의 재미가 떨어졌다는 반응은 국내, 해외 안 가리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호날두와 유벤투스의 여정이 마무리된 현 시점에서 그의 유벤투스 커리어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탈리아 정복은 성공했지만 유럽 제패는 실패했다고 평가할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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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에 A 올해의 선수상과 올해의 팀상을 수상하는 호날두

호날두가 이탈리아에서 달성한 업적은
  • 유럽 4대리그[15]의 서로 다른 3개 리그[16]에서
    • 모든 국내 트로피[17]를 획득한 최초이자 유일한 선수
    • 리그 MVP를 모두 수상해본 최초이자 유일한 선수
    • 리그 득점왕을 모두 달성한 최초이자 유일한 선수
    • 리그 베스트에 모두 선정된 최초이자 유일한 선수
  •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2회 연속 수상
  • 세리에 A MVP 1회 수상
  • 세리에 A 최우수 공격수 1회 수상
  • 세리에 A 득점왕 1회 수상
  • 세리에 A 올해의 팀 3회 연속 수상
  • 세리에 A 역사상 최다 연속경기 골 (11경기)[18]
  • 세리에 A 역사상 최단 기간 50득점: 61경기
  • 3개 클럽 통산 득점 100골을 달성한 축구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선수

등 업적들을 이탈리아에서 달성하면서 3대 리그 정복이란 위업을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그를 데려온 궁극적인 목적이었던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챔스에서의 아쉬웠던 성적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구단의 행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건 감독의 역할이다.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노린다던 유벤투스는 사리와 피를로를 선임하였고, 그 둘의 감독으로써 역량 부족과 함께 사리와 피를로는 막장 운영으로 팀을 위태롭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면서 두 감독 모두 1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나게 된다. 특히 피를로 감독은 감독 경험이 전무한 초짜 감독이기도 했고, 그를 선임한 결정은 곧 리그 성적까지 안좋은 영향을 주게 된다. 아무리 위대한 한명의 선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감독의 역량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면 선수 또한 해줄 수 있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다.

주제 무리뉴 감독은 호날두에 대해 유벤투스는 핵무기를 사왔지만 사용하는 법을 모른다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사실 이탈리아 강호 유벤투스와 위대한 선수인 호날두의 동행은 겉으로 보기엔 아름다워 보이게 시작했지만 그 속은 문제가 있었다. 유벤투스는 16-17 시즌 이후 점점 기존 선수들의 노쇠화, 이탈 등 문제로 인하여 팀의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기존 다른 포지션을 보강 했어야 할 상황이지만 호날두라는 초대형 거물 공격수가 매물로 나옴으로 인해 호날두의 영입을 실행하게 되었다. 호날두 영입까진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노린다는 구단의 야망을 볼수 있어서 좋았지만 정작 호날두가 있던 3년내내 보강이 되었어야 할 포지션의 보강은 챔스 우승을 노리는 팀치고 기대에 못미치는 영입들만 있었고 결국 전반적으로 노쇠화가 진행된 팀 상황에서 호날두와 동행을 하게 된것이다.

다만 유벤투스는 호날두가 오기 전부터 세리에 A 7연패, 코파 이탈리아 4연패를 달성하면서 이탈리아를 정복해오던 구단이었고 호날두가 3시즌 간 유벤투스 소속으로 거둔 팀의 성적과 들어올린 트로피는 호날두를 데려오지 않았더라도 유벤투스가 충분히 달성 가능했던 성과라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아쉬운 부분은 챔스에서의 성적인데, 물론 아무리 세계적인 메가 클럽이라 하더라도 챔스 우승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구단이 보여왔던 행보를 감안하면 챔스 우승을 원하는 구단과는 거리가 먼 막장행보를 보였기에 챔스 우승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호날두의 유벤투스 커리어를 실패라고 평가하는 것은 매우 가혹하다. 하지만 호날두가 유벤투스로 오고난 후의 유벤투스의 챔스 성적은 8강 탈락(아약스), 16강 탈락(리옹), 16강 탈락(포르투)으로 시즌을 거듭할수록 내리막을 걸었다. 특히 16강에서 탈락한 두 시즌의 경우 아무리 감독의 팀 운영 능력이 폐급 수준이었고 보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유럽대항전에서 확실한 언더독 위치에 있는 리옹과 포르투를 상대로도 졸전 끝에 탈락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으며 유벤투스 선수단의 이름값을 생각한다면 개인 기량만으로도 승리를 가져와야 했었다. 또한 호날두가 몸 담은 3시즌 간의 챔스 성적은 14/15 시즌 이후로 유벤투스가 챔스에서 보여준 최악의 행보이기에 호날두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호날두가 유벤투스로 왔을 때의 나이는 33세로, 일반적인 선수의 경우라면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임에도 그가 보여준 리그와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해트트릭과 같은 '신'적인 활약 등 퍼포먼스를 생각하면 호날두의 이름값을 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결국은 유럽 제패는 고사하고 챔스 성적 유지에도 실패하게 되면서 아쉬움을 삼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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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 팬들의 반응 또한 호날두의 애매했던 유벤투스 커리어를 대변하듯 호날두의 이적에 대해 의견이 많이 엇갈렸다. 비록 바라던 챔스 우승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호날두같은 슈퍼 스타가 보여줬던 헌신과 노력, 뛰어난 활약에 고마움을 표하며 맨유에서의 말년을 축하해주는 팬들도 있었던 반면 팀 성적과 같은 축구적인 부분은 고사하고 호날두가 유벤투스 소속일 때 일으킨 총 5번의 경기 무단 이탈과 세리에 A를 무시했던 발언, 코로나 안전 수칙 위반 등 여러 잡음을 일으키면서 축구 외적인 부분에서 유벤투스 팬들에게 많은 실망을 안긴 채 팀을 떠나게 된 그에게 씁쓸함을 표하는 팬들도 있었다. 그렇게 8월 31일 유벤투스가 공식 홈페이지로 호날두의 맨유이적을 발표하면서 호날두와 유벤투스와의 3년간의 동행은 끝나게 되었다.

'13경기 9골' 호날두, 또 역사 썼다...50년 만에 대기록
14경기 10골' 호날두, 60년 만에 유벤투스 클럽 레코드
'세리에 50G 40골' 호날두, 브라질 호나우두 제쳤다…'최다골 달성'
호날두, 세리에A 10경기 연속골…유벤투스 신기록
통산 기록 134경기 101골 20도움

5.1. 2018-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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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2019-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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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20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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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기


2021년 8월 27일 오후 16시 52분(현지시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공식 사이트 및 SNS를 통해 호날두의 12년 만의 복귀가 공식 발표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로 인해 재정이 빈약해진 유벤투스가 호날두의 고연봉에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이 때문에 호날두를 매각할 것이라는 기사가 전해졌다. 그러나 파벨 네드베드 구단 부회장은 강하게 부인하며 호날두와의 계약 연장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 상황에서 맨체스터 시티 FC해리 케인 영입에 최종적으로 실패한 이후 호날두와 강한 링크가 발생하였다. 실제로 펩 과르디올라 감독과 대화가 진행되었으며 이를 통해 맨시티가 호날두 영입에 근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또한 BBC에서는 유벤투스가 최종적으로 호날두의 이적을 승인했으며 행선지는 맨시티, 이적료는 3000만 파운드(약 480억원)로 예측된다는 기사를 전달하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맨유팬들은 극대노하며 맨시티로 가는 날 유니폼을 불태우는 등 격한 반응을 보였다.지금 그 사람 땅을치고 후회하고 있을듯[19]

이후 맨시티가 이적료를 내기를 꺼리면서 협상을 질질 끌었으나 유벤투스는 최소 2,500만 유로(약 340억원)이상의 이적료를 원했다. 21-22 시즌이 끝난 시점에서 호날두 사가의 이적 비화가 밝혀졌는데, 호날두의 에이전트인 멘데스가 맨시티에 호날두를 역오퍼하면서 맨시티 수뇌부가 호날두 영입에 고심했던 것은 사실이고, 맨시티와 유벤투스의 협상이 길어지자 맨유가 하이재킹에 나선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이렇게 두 구단이 이적료를 두고 협상이 지지부진한 사이, 맨유가 하이재킹에 성공하여 퍼거슨이 호날두와 통화 했으며 이를 기점으로 맨유와의 협상이 진전되고 있다는 소식이 나왔다. 이후 호날두가 유베 훈련장에서 자신의 짐을 모두 빼고 전용기편으로 고국인 포르투갈로 간다는 것이 알려졌다. 일부 언론에서는 맨유가 포르투갈에서 호날두에 대한 메디컬 테스트를 진행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기본 이적료 1,500만 유로(약 206억원)에, 800만 유로(약 110억원)의 옵션 조항을 포함시키기로 합의하면서 호날두는 올드 트래포드를 떠난 지 12년 만에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세부사항은 계약기간 2년에 연봉 약 200억원으로 알려졌다.
파일: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맨유2기 오피셜.jpg
파일:호날두/OT복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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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 목요일에는 계약 관련 서류에 서명하는 모습이 전해졌고, 다음날인 10일 금요일에는 맨유 유니폼을 입고 OT를 밟은 모습이 전해졌다.
통산 기록 54경기 27골 5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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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2021-2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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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2022-2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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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알 나스르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계약을 상호 해지한 후 무소속으로 있다가 결국 2022년 12월 30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나스르로 이적했다.
파일:호날두알나스르입단.jpg
세계적인 선수가 전성기 이후 선수 생활도 이어나가고 돈도 벌 겸 아시아로 이적하는 사례는 종종 있었고, 아무리 세계적인 선수여도 노쇠화는 막을 수 없기에 호날두의 중동 이적 자체는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호날두는 시즌 도중 에릭 텐하흐 감독과 기용 문제로 마찰이 있었고 언론인 피어스 모건과의 인터뷰에서 맨유의 문제점에 대해 대중에게 공개했고 그로 인해 소속팀과 상호 계약 해지를 하게 된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이 생각보다 빠르게 탈락하게 되면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해 빅클럽 이적이 더 힘들어졌고 미국, 호주, 유럽, 사우디에서 러브콜을 받은 후 최종적으로 알 나스르를 선택하게 되었다. 호날두 본인은 과거 인터뷰에서 "나는 중동 같은 곳으로 가지 않고 유럽에서 품격 있게 은퇴하고 싶다"라고 발언 했었는데 아마 그동안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듯 하다.

7.1. 2022-2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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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2023-2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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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당시 호날두는 만 18세도 되지 않은 어린 유망주였고 벤투는 은퇴를 고려해야 하는 30대 중반의 노장에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포르투갈 대표팀의 중심 멤버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두 선수간의 위상의 차이는 상당했다. 실제로 벤투는 호날두가 이적한 바로 다음 시즌이 끝난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2] PRIMEIRA LIGA; 포르투갈의 1부 프로리그.[3] 당시 맨유 주전 우측 풀백이었던 게리 네빌은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지켜봤는데, 존 오셔를 탈탈 터는 호날두의 모습을 보고 당시 팀 동료이기도 했던 동생 필 네빌에게 '저 친구 당장 영입해야 한다'는 문자를 보냈다는 일화가 있다.#[4] 관련뉴스[5] 그마저도 잉글랜드에서의 커리어 한정이며, 전체 커리어를 대상으로 한 역대 축구선수 순위에서 세 명은 호날두와 비교 시 순위가 몇십 위나 뒤처진다.[6] 기본적으로 EPL과 맨유에서 뛴 시기 자체가 그리 길지 않았기에 타 EPL 레전드들보다 짬이 부족해 보이는 이유도 있다.[7] 펠레,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디에고 마라도나, 요한 크루이프, 프란츠 베켄바워뿐 아니라 유사 포지션에서 역대급으로 꼽히는 미셸 플라티니, 에우제비우, 게르트 뮐러, 호나우두, 마르코 반 바스텐 등까지 포함해도 잉글랜드를 주력으로 뛴 선수는 의외로 적으며 만약까지 가정해 이들을 포함한다 해도 호날두의 순위는 한 손에 꼽힐 가능성이 높다(원투펀치의 한준희 해설위원은 2016년 방송에서 호날두를 베켄바워를 넘어선 역대 5위에 선정하였으며, 현역 버프가 어느 정도 있다고 해도 축구 유명 인사들이나 레전드들에게 이미 역대 손꼽히는 선수, 심지어 역대 최고의 선수라는 언사도 상당히 많이 나왔다. 호날두의 역대 위치에 관한 평가는 매년 꾸준히 상승해왔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활약상을 추가하는 현재진행형 선수이기도 하다.). 이미 앨런 시어러, 바비 찰튼, 조지 베스트, 에릭 칸토나, 데니스 로, 데니스 베르캄프 등은 호날두가 맨유 혹은 잉글랜드 리그 역대 순위에 관한 거의 모든 평가에서 넘어선지 오래이다.[8] 그러나 2012년에 FA에서 선정한 EPL 20주년 역대 최고의 선수로는 라이언 긱스가 선정되었으며 티에리 앙리 역시 조사기관에 따라 EPL 역대 외국인 선수 랭킹에서 호날두를 제치고 1위로 선정되는 일도 있다. 개별 조사들을 다 고려하면 지네딘 지단디에고 마라도나를 넘는 적도 있는 만큼 재미 삼아 보는 것이 좋다.[9] K리그 클래식 구단들의 평균 연 지출이 100억~300억 원 정도로 추정되며, 한준희 위원의 말에 따르면 그중 자금 동원력이 가장 높은 수준의 팀인 수원이나 전북이 1년에 쓰는 금액은 프랑스 1부 리그 중위-중하위권 팀의 금액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런 팀들이 몇 년간 쓸 돈으로 이적한 셈.[10]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 6회와 라리가 득점왕 3회를 석권했다.[11] 이미 2연패 당시에만 해도 한준희 해설 위원은 레알 마드리드는 역사에 기록될 업적을 남긴거라 평했는데, 아예 3연패를 달성함으로서 이 당시의 레알 마드리드는 역대 최강의 클럽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12] 실제로 메수트 외질, 이스코, 루카 모드리치 등은 호날두에게 공만 주면 알아서 어시스트가 된다며 이를 인정하는 말을 종종 하였다.[13] 사실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치다. 이적료는 앞으로 얼마나 오래 써먹을 수 있느냐가 절대적 요소이기 때문에, 계약 당시 이미 33세였던 호날두 정도 나이의 선수는 아무리 훌륭한 선수라도 천만 달러 이적료를 넘기기 쉽지 않다.[14] 이와 비견되는 사례는 리오넬 메시인터 마이애미 CF 이적펠레뉴욕 코스모스 이적말고는 사실상 없다.[15] 프리미어리그, 라리가, 세리에A, 분데스리가.[16] 프리미어리그, 라리가, 세리에 A에서 달성.[17] 리그, 리그컵, 리그 슈퍼컵.[18]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파비오 콸리아렐라와 함께 보유한 기록이다.[19] 문제의 원본 영상# 그러나 이 영상은 3년 전 유명 유튜버의 유튜브 영상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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