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19:02:15

크라이슬러 K 플랫폼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자동차 플랫폼
L 플랫폼 K 플랫폼 PL 플랫폼
JA 플랫폼
LH 플랫폼
NS 플랫폼
파일:plymouth_reliant.jpg
적용 차량 중 하나인 플리머스 릴라이언트
1. 개요2. 상세3. 적용 차량
3.1. 크라이슬러 K 플랫폼3.2. 크라이슬러 E 플랫폼3.3. 크라이슬러 S 플랫폼3.4. 크라이슬러 G 플랫폼3.5. 크라이슬러 H 플랫폼3.6. 크라이슬러 P 플랫폼3.7. 크라이슬러 J 플랫폼3.8. 크라이슬러 C 플랫폼3.9. 크라이슬러 AA 플랫폼3.10. 크라이슬러 Q 플랫폼3.11. 크라이슬러 Y 플랫폼3.12. 크라이슬러 AS 플랫폼


Chrysler K Platform

1. 개요

미국의 자동차 제조사인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자동차 플랫폼이다.

흔히 쓰이는 별칭은 K-바디(K-Body)로, K 플랫폼을 토대로 만들어진 차들은 당시 홍보매체에서도 쓰던 통칭인 K-카(K-Car)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2. 상세

{{{#ffffff 크라이슬러 K 플랫폼의 개발 다큐멘터리}}}
1970년대의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은 심각한 경영난을 마주하고 있었다. 1973년에 시작된 제 1차 석유파동으로 인해 당시 크라이슬러 그룹이 출시한 신형 대형차들이 직격탄을 맞아 판매부진에 시달렸고, 이 시기에 수요가 늘어나고 있었던 소형차급은 닷지 콜트플리머스 크리켓처럼 제휴업체인 미쓰비시 자동차나 해외 자회사 루츠 그룹같은 곳에서 조달해 수입판매하는 방향으로 대처를 시작하며 관세와 운송료가 붙어 안 그래도 수익성이 낮았던 소형차의 수익성이 좋지 못했다. 미국 시장 판매와 생산을 엄두하여 개발중인 소형차 플랫폼인 크라이슬러 L 플랫폼과 적용차종인 생카 호라이즌은 1978년 1월에 가서야 미국에 발매되었기 때문에 1970년대 후반까지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은 이 부문에서 수익을 내지 못했다. 그나마 당시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 신차들 중 잘 팔리고 있었던 준중형차인 플리머스 밸리언트닷지 다트의 후속차종으로 출시된 플리머스 볼라레와 닷지 아스펜도 성급한 개발과정으로 인해 품질불량과 각종 리콜에 시달리고 신차들의 전반적인 품질관리도 1976년부터 나빠지면서 경영난이 악화되었다. 1978년 1월에 출시된 L-바디 기반의 플리머스 호라이즌과 닷지 옴니는 세그먼트의 특성상 수익성이 낮은데다가 제 1차 석유파동의 여파가 진정된 시기에 출시되어 판매량을 뽑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여기에 제너럴 모터스(이하 GM)나 포드 모터 컴퍼니같은 경쟁사들과 달리 주문수요에 관계없이 차량을 생산하는 정책을 고수하여 재고차량이 급증했고, 이를 관리할 유지보수비용과 재고차들의 할인판매를 위한 리베이트 비용이 급증하며 수익성에 악영향을 끼쳤다.

제품개발도 1970년대에 들어서 정체되어가고 있었는데, 1975년까지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회장으로 재직한 린 타운센드(Lynn A. Townsend)는 유럽, 호주, 남아공 등지의 해외사업부를 키우며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는 반면 북미에서는 기존 차량이 잘 팔리는 한 기존의 구성을 유지하며 신차의 파워트레인이나 플랫폼에 최소투자 이상의 비용을 투자하지 않으려고 했다. 때문에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신차들은 1960년형 신차 라인업에서부터 도입한 모노코크 바디 플랫폼을 계속 사용하며 동 시기 GM이나 포드의 바디 온 프레임 플랫폼보다는 기술적으로 한 발 앞서있었으나 토크 중심의 엔진 세팅에 후륜구동 구동계, 전륜 토션 빔 서스펜션 + 후륜 솔리드 빔 액슬 조합같이 195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올라가는 설계구성을 유지하는 등, 1960년대까지만 해도 경쟁사들 대비 앞서 있었던 기술력상의 우위가 1970년대부터는 좁혀져가고 있었다. 또한 신차들의 플랫폼 체계가 복잡해져 F-바디, L-바디, J-바디, M-바디와 R-바디같은 여러 플랫폼을 두면서도 플랫폼 간에 호환되는 부속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또한 머스키법으로 대표되는 엄격한 환경규제와 안전규제, 연비규제가 속히 도입되자 5마일 범퍼를 장착하고 촉매변환장치와 전자식 린번 시스템을 더하는 등, 이에 대처하는 동안 생산단가도 덩달아 높아지며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수익성은 점점 악화되어가고 있었다.

크라이슬러 K 플랫폼은 1978년부터 개발이 이루어졌으나 재정난으로 인해 개발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었다. 당시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회장이자 린 타운센드의 후임인 존 리카르도(John J. Riccardo)는 1977년에 지미 카터 당시 미합중국 대통령에게 구제금융을 요청했으나 경영진 교체 없이는 구제금융이 없을 것이라는 답변만 받았다. 이때 존 리카르도는 포드 모터 컴퍼니 출신의 리 아이아코카를 회장으로 임명한 뒤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리 아이아코카는 유럽 지사를 매각하고 경영진과 노동자들을 설득해 임금을 삭감하는 각종 구조조정을 시행하는 한편 여러 청문회로 불려다니는 동안 철도산업이나 록히드 코퍼레이션을 비롯한 과거의 구제금융 사례와 당시 미국 빅3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던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신차평균연비를 근거로 플리머스 호라이즌/닷지 옴니같은 소형차를 계속 만든다면 미국의 수많은 일자리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이미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책을 취하고 있지만 정부의 과도한 규제와 석유파동같이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이 겹쳐 막대한 지출이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고, 이때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5개년 회생책과 함께 전륜구동 신차 기획을 상세하게 제시하자 미국 의회는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구제금융을 허가했다.
파일:dodge_aries_3.jpg
적용 차량 중 하나인 닷지 에어리즈의 구조도
이때 개발된 크라이슬러 K 플랫폼은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 유럽 지사인 생카루츠 그룹이 개발한 가로배치 전륜구동 플랫폼인 L-바디의 개발 노하우를 반영한 가로배치 전륜구동 플랫폼으로 기획되어, 3년 이상의 기간동안 1억 달러[1]의 개발비를 투자해 당대 첨단기술로 주목받던 가로배치 전륜구동 구동계 기술을 반영하는 동시에 그룹 내 라인업 사이의 철두철미한 자원 공용화를 목표하여 개발했다. 당시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CEO였던 리 아이아코카는 복잡한 플랫폼 체계와 소극적인 부품 공용화 수위를 크라이슬러가 재정난에 처한 이유 중 하나로 파악하고 일본, 독일 등의 자동차 개발 노하우를 모방해 눈에 보이지 않는 부속들을 최대한 공용하는 방향으로 플랫폼을 개발하도록 방향을 잡아 제조단가를 낮추고 수익성을 개선하고자 했다. 또한 각종 신기술을 반영하면서도 2.2L 4기통의 크라이슬러 K 엔진같은 각 부속들의 전반적인 설계를 단순하게 만들어 잔고장의 여지를 최소화하고자 했다.

1980년 8월 8일, K-바디 기반의 첫 신차인 플리머스 릴라이언트 K와 닷지 에어리즈 K의 생산이 미국 디트로이트의 제퍼슨 애버뉴 공장에서 시작되었다. 기존의 중형차 라인업이자 플리머스 밸리언트닷지 다트의 후속차종이었던 플리머스 볼라레와 닷지 아스펜을 대체했으며 4기통의 가로배치 전륜구동 구동계, 랙 앤 피니언 스티어링, 독립식의 전륜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같은 유럽의 전륜구동차 노하우를 받아들이되 토크 성능을 고려한 엔진 세팅, 승차감을 고려한 반독립식 솔리드 빔 후륜 서스펜션같은 북미 크라이슬러 차종들의 전통적인 특성들을 조합했다. 이들은 중형차이면서 체급이 사실상의 준중형차급으로 작아졌음에도 1열에 벤치시트가 적용되는 6인승 사양을 제공하고 3박스 세단 라인업을 출시하는 등, 넓은 실내공간에 가볍고 연비가 좋은 전륜구동 컴팩트카의 이점을 가져가면서도 당시 미국 시장의 기호에 맞는 제품개발 덕분에 시장의 호흥을 이끌어냈다. 단순한 제품설계를 통해 달성한 쉬운 유지보수와 저렴한 가격대, 크라이슬러 계열사 차종으로서는 납득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간 신뢰성[2]도 판매량에 보탬이 되었다.##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에서는 K 플랫폼을 토대로 다양한 파생차종을 개발했으며, 기존에 행하던 배지 엔지니어링 전술과 함께 각종 부속과 플랫폼 단위의 자원 공용화를 극대화해 품질을 항상시키면서 규모경제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생산비를 비롯한 제조단가를 최소화했다. 첫 신차였던 플리머스 릴라이언트와 닷지 에어리즈 직후에는 이들의 고급형 모델인 닷지 400크라이슬러 레 바론이 라인업에 합류했으며 1982년 초에는 400과 레 바론의 컨버터블 라인업, 1983년 말에는 미니밴 라인업인 플리머스 보이저닷지 캐러밴, 닷지 미니 램 밴을 출시하며 시장의 주목을 이끌어냈다. 컨버터블은 1976년에 단종된 캐딜락 엘도라도 컨버터블 이후 사라진 미국 메이커 순정 컨버터블 라인업을 되살리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고, 미니밴은 1970년대부터 레저용 차량으로 인기를 모으던 풀사이즈 밴의 기능성을 승하차가 쉽고 운전하기 편한 승용차의 특성과 결합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은 K-바디의 생산을 시작한 1980년 10월에 1천만 달러[3]의 수익을 기록, 2년만의 첫 흑자를 맞았으며 K-바디 라인업도 경제불황기로 높아진 컴팩트카 수요를 등에 업고 1982년에는 자사 자동차 판매량의 36%, 1983년형 신차 라인업에 다다라서는 7개 라인업으로 승용차 판매대수 55%를 달성하는 동시에 생산 2년만에 회사의 수익 절반 가량을 창출해냈다. 덕분에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은 구제금융을 통해 빌린 대출금을 시한보다 7년 일찍 갚을 수 있을 정도로 경영사정이 호전되었으며 이후에도 K-바디를 토대로 광범위한 세그먼트의 신차를 커버해 크라이슬러 뉴요커이그제큐티브같은 고급차, 닷지 데이토나같은 스포츠카까지 K-바디 기반의 변형 플랫폼으로 만들어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들 변형 플랫폼은 K-바디를 토대로 서스펜션 세팅이나 방음설계같은 세밀한 세팅과 휠베이스를 달리해 보다 본격 중형차급의 E 플랫폼과 H 플랫폼, 스포츠카 용도의 G 플랫폼, 미니밴의 S 플랫폼 등의 명칭을 부여받았다.#

크라이슬러 K 플랫폼은 발전형인 AA 플랫폼이나 AS 플랫폼 등의 형태로 1995년까지 라인업에 잔류했다. 하지만 경제불황이 해소되고 경쟁사들이 포드 토러스/머큐리 세이블처럼 신규 플랫폼에 한 층 발전한 디자인의 완전신차들을 속히 도입하는 1980년대 중후반에도 출시하는 모든 신차마다 K 플랫폼을 고집하고 스타일링도 주력 승용차는 각진 3박스 세단 스타일에 매달리는 등, 리 아이아코카가 보수적인 스타일링과 규모경제의 극대화에 집착하다가 시대를 따라잡는 데 필요한 혁신을 일구는 데 실패하는 바람에 크라이슬러 그룹 차종들의 이미지 하락에도 일조했다.[4] K 플랫폼은 1990년대를 거치면서 커버하는 세그먼트에 따라 닷지 네온의 PL 플랫폼, 닷지 스트라투스와 크라이슬러 시러스JA 플랫폼, 닷지 인트레피드크라이슬러 뉴요커 등의 LH 플랫폼, 미니밴 라인업의 NS 플랫폼, 이글 탈론닷지 어벤저 등의 D 플랫폼으로 서서히 대체되었다.

3. 적용 차량

3.1. 크라이슬러 K 플랫폼

3.2. 크라이슬러 E 플랫폼

3.3. 크라이슬러 S 플랫폼

3.4. 크라이슬러 G 플랫폼

3.5. 크라이슬러 H 플랫폼

3.6. 크라이슬러 P 플랫폼

3.7. 크라이슬러 J 플랫폼

3.8. 크라이슬러 C 플랫폼

3.9. 크라이슬러 AA 플랫폼

3.10. 크라이슬러 Q 플랫폼

3.11. 크라이슬러 Y 플랫폼

3.12. 크라이슬러 AS 플랫폼


[1] 2022년 환율로 3,551,696,284달러.[2] 특히 경쟁사였던 GM이 비슷한 시기에 출시한 쉐보레 사이테이션, 폰티악 피닉스 등의 GM X 플랫폼 기반 신차들은 똑같이 가로배치 전륜구동이면서 품질문제가 속출하고 대규모 리콜사태가 터져 상대적으로 신뢰성이 높고 리콜사항들도 일찍 수습한 크라이슬러 K 플랫폼 기반 신차들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다.[3] 2022년 환율로 35,516,963달러.[4] 특히 리 아이아코카는 유선형 디자인에 가로배치 전륜구동 플랫폼도 새로 개발한 포드 토러스와 머큐리 세이블을 얕잡아보며 보수적인 3박스 스타일에 K 플랫폼 기반의 중형차 라인업인 닷지 다이너스티크라이슬러 뉴요커가 흥행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최종적으로는 당시 미국에서 히트작으로 부상한 토러스와 세이블의 판매실적을 따라잡는 데 실패했다고 당시 크라이슬러 제품기획팀장이자 이후 크라이슬러의 부회장이 된 밥 루츠가 자서전에서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