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4 19:24:52

Crown J

크라운 제이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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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Crown J
크라운제이
파일:크라운제이 빅오션.jpg
영문명 케빈 킴 (Kevin Kim)
본명 김계훈
출생 1979년 11월 12일 ([age(1979-11-12)]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1cm, 78kg, O형
가족 부모님
학력 캘리포니아 대학교 (경제학 / 중퇴)[1]
종교 개신교
소속사 빅오션ENM
T.F.M.G (The Flyest Music Group)
데뷔 2006년 정규 1집 One & Only
(데뷔일로부터 [dday(2006-03-28)]일, [age(2006-03-28)]주년)
SNS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파일:X Corp 아이콘(화이트).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활동
3.1. 피처링
4. 사건 사고
4.1. 대마초 흡연 혐의로 인한 불구속 입건4.2. 전 매니저 폭행 사건
5. 이모저모
5.1. FLY BOY 이후의 음악적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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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래퍼.

2. 생애

한국에서 태어났고 14살 때부터 홀로 미국 캘리포니아로 유학을 떠나면서 자연스레 흑인 음악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유학 생활 중에 함께 살았던 흑인 대가족 덕분에 흑인 음악에 심취하게 되었다. 초기에 R&B의 특성을 그의 음악적 요소에 고스란히 반영할 정도로 특히 R&B에 대한 애착을 보이는 성격이다. 한국에서 가수 활동을 하면서 미국 애틀랜타로 잠시 떠난 적이 있었는데 원래 더티 사우스 힙합을 좋아하고 지향했지만 그 때부터 애틀랜타의 매력에 빠져 본격적으로 음악적 스타일을 더티 사우스 힙합으로 완전히 전향했다. 그리고 애틀랜타 불개미가 되었다. MC몽 정규 2집 <HIS STORY>에 'Crown Jewel'이라는 이름으로[2] 피처링하면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었다.

힙합플레이야 인터뷰 영상에 따르면 1집 시절부터 애틀란타 힙합 사운드를 선보이려 했지만 회사에서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트러블이 많았고, 제작도 제일 마지막에 했다고 한다. 당시 타이틀곡 및 활동곡으로 내세웠던 'V.I.P'나 '케빈은 바람둥이', '그녀를 뺐겠습니다'는 그가 추구하려던 사운드를 가진 곡들은 아니었다고 한다. 1집 수록곡인 '상관없어', 2집 수록곡인 '혼(魂)', '결벽증' 등에서 당시 크라운 제이의 더리 사우스 사랑을 잘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일리네어 등장 이전에 머니스웩을 한국에 뿌린 래퍼라고 볼 수 있다.


정규 1, 2집이 대중들에게 그닥 큰 호응을 못 이끌어낸 상황에서[3] 2008년에 설 특집이었던 우리 결혼했어요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서인영과 함께 가상 커플로 호흡을 맞추었는데 워낙 현실성 있게 진행되기도 했고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서로의 성격이 잘 맞아떨어져서 대한민국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으며 유튜브에서 꽤 많은 해외 팬들도 생길 정도로 큰 인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때 서인영이 피처링한 'Too Much'라는 곡이 히트를 쳐서 재조명을 받았다. 이 당시가 우리 결혼했어요의 전성기였다. 그리고 이 둘은 후에 님과 함께에 출연했으나 서인영의 최고의 사랑 욕설 논란으로 인해 2개월 만에 하차했다.

한국에서 더티 사우스 힙합을 최초로 도입한 인물이지만 활동 초기에는 MC몽[4]과 어울려다닌데다 라임이 부족한 랩[5], 대중적인 타이틀곡 등으로 인해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힙합 리스너들 사이에서 H-유진[6]과 함께 Wack MC로 취급 받는 래퍼였다. 이 때까지만 해도 힙합 리스너들은 이 랩퍼가 얼마나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는지 몰랐다. 물론 MC메타가 피쳐링한 정규 2집 <Miss Me?>에 있는 수록곡인 '혼(魂)'을 듣고 크라운제이에 대한 편견이 깨진 사람들도 존재하긴 했지만 워낙 가볍고 대중적인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강렬했기 때문에 대중들의 시선에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른 랩퍼들처럼 시들해질 래퍼로 각인되었고 취급되었다.

2008년EP <Fly Boy>를 발표하여 더티 사우스 힙합곡인 'Fly Boy'를 타이틀곡으로 활동했다. 이 곡을 기점으로 서인영과 함께 한 'Too Much'라는 곡에 이어 한국에서 더티 사우스 힙합을 대중들에게 확실히 전파하려는 시동을 걸었다.[7] 이 'Fly Boy'라는 곡이 힙합 리스너들에게도 화제가 되면서[8] 평가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2009년 말, 본격적으로 크라운제이에 대한 편견을 깨뜨린 싱글곡인 'I'm Good (English Ver.)'에 T.I가 수장인 Grand Hustle에 소속된 랩퍼 Young Dro가 피처링으로 참여하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9] 눈을 감고 곡을 들으면 흑인의 발성과 플로우가 들리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굉장히 타이트하게 영어 랩을 구사해서 일부 힙합 리스너들에게는 호평을 받았지만 일각에서는 너무 미국 힙합의 느낌을 내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참고로 T.I와 Big Kuntry King과 함께 리믹스 버전도 준비하려 했으나 T.I의 감옥행으로 계획이 무산돼버렸다. T.I와 식사를 하면서 느낀 인상이 T.I가 보기보다 선하고 순하다고 한다. 미국에서 오래 자란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미국 메인스트림 힙합의 흐름 및 방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고 이러한 문화를 한국에서 한국어로 가감없이 보여주려 노력하는 몇 안되는 랩퍼들 중 한 명이다. 그래서 그런지 크라운제이의 음악에는 더티 사우스 힙합이란 명목으로 한국 힙합 특유의 색깔이 없다며 거부감을 가지는 힙합 리스너들도 존재하는 편이다. 여담으로 미국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힙합 사이트인 월드 스타 힙합 닷컴에서 아시아계 랩퍼로서 최초로 메인을 두 번이나 장식한 적이 있으며[10] 미국 R&B 싱어인 Mario의 러브 콜과 에이셉 라키, 앨리샤 키스, 브리트니 스피어스, 찰리 윌슨, 크리스 브라운 등이 소속된 미국 최대의 음반 레이블인 RCA Records의 러브 콜이 있었다. 이쯤 되면 확실히 MC몽보다 잘 나간다.



2015년에 드디어 여러 불미스러운 사건들에 연루되어 생긴 기나긴 공백을 깨고 싱글 <LIFE OF LUXURY ONLY>을 발표하여 컴백했다. 강렬한 더티 사우스 힙합곡인데 마스터링이 매우 정교하게 이루어져서 이어폰으로 수록곡을 들으면 808 베이스가 웅장하게 들린다. 근데 정작 힙합 커뮤니티에서는 반응이 안 좋은 편이다. 수록곡 자체는 예전에 단독 공연에서 공개한 지 꽤 된 곡이다.[11] 하지만 힙합 리스너들 사이에서는 심혈을 기운 비트에 비해 랩이 제대로 매꾸지 않았다는 점을 주된 비난으로 제기했다. 랩의 스타일이 요즘 래퍼들에 비해 올드해서 비트가 매우 아깝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라 결국 그저 그런 더티 사우스 힙합곡으로 대중들에게 묻히게 되었다. 시간이 흐른 만큼 한국에서 더티 사우스 힙합은 더 이상 대중들에게 참신함으로 다가올 수 있는 세부 장르가 아니라는 사실도 한 몫을 했다.[12]



2016년에 싱글 <LIFE OF LUXURY ONLY>에 이어 싱글 <진짜매일해>를 발표하여 2016년에 첫 신호탄을 날렸다. 의외인 점은 이번 수록곡은 더티 사우스 힙합이 아닌 팝의 요소가 강한 웨스트 코스트 힙합을 토대로 제작된 곡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저번 싱글에 이어 힙합 커뮤니티에서는 반응이 안 좋은 편이고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편이다. 주된 비난으로는 이도저도 아닌 올드한 느낌이라는 비난과 함께 정체성이 무엇이냐라는 비난이 강하다. 결과적으로 세련된 팝 랩을 보여준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웨스트 코스트 힙합곡임은 분명하나 한국에서는 생소한 느낌과 더불어 올드한 느낌과 루즈한 느낌을 보여주었고 무엇보다도 요즘 미국 힙합의 트렌드에 맞는 곡과 별 반 다르지 않은 힙합곡이라는 평이 중론이다.[13] 여담으로 이번 싱글곡의 뮤비에 출연하는 카메오가 King Los라는 점이 흥미롭다.



2017년 10월 10일 싱글 <TRUST NOBODY>를 발매하였다. 매니저와의 사이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 풀어낸 동부힙합 스타일의 힙합곡이며, JAY Z의 'Dead Presidents'처럼 Lonnie Liston Smith의 <A Garden Of Peace>를 샘플링하였다. 크라운제이가 처음으로 원테이크로 녹음한 곡이기도 하다.



크라운제이를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현재는 미국 영주권[14]을 가진 엄연한 한국인이다.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한국에서 1년 동안 무역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카투사로 군복무한 적이 있다. 어떻게든 병역기피를 하려고 온갖 힘을 쏟는 몇몇 연예인들과는 대조되는 편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이유로 들어 아래에 서술될 크라운제이의 과오를 정당화하자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교육에 깊이 영향을 받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잘 나서 튀는 것은 괜찮지만 남들 다 하는 것을 혼자 하지 않아서 튀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다고 한다.


2020년 11월 19일에 빅오션ENM과 계약하면서 컴백을 예고하였으며, 2021년 08베이식 리믹스 버전에 피처링으로 참여[15] 하며 오랜만에 힙합씬에서 모습을 드러냈으며, 2022년 8월 19일에 언에듀케이티드 키드창모가 참여한 더블 싱글 BUST IT을 발매하며 싱글 Trust Nobody 이후로 5년만에 컴백하였다.


2023년 9월에 신생 레이블 T.F.M.G를 설립했고, 2024년 3월 24일에 컴필레이션 앨범 발매에 앞서 'TESTIFY'라는 곡을 싱글로 선공개했다.

3. 활동

3.1. 피처링

4. 사건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4.1. 대마초 흡연 혐의로 인한 불구속 입건

크라운제이가 미국 진출로 인해 미국에 체류하고 있던 2010년 12월 5일대마초 흡연 혐의로 인해 불구속 입건되었다는 기사가 떴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크라운제이가 대마초를 한 두번 피웠다고 시인했으며 조사를 받고 귀가처리 되었다고 하였다.

이 때문에 비슷한 시기에 몰락한 동료이자 친구와 같이 영구제명을 먹게 된다.[16] 그리고 2010년 12월 7일 자로 KBS·EBS·MBC 출연정지 연예인 명단에 올랐다.

크라운제이의 어머니 김 씨는 이에 대해 "아들이 미국에서 음반 작업하는 도중에 관련 파티가 열렸는데 파티에 온 사람들이 대마초를 권했고 이를 거절하기 힘들어 했을 것이다."라며 그를 변호했다.

힙합플레이야 인터뷰에서 적발과정에 대한 자세한 비화가 밝혀졌는데, 크라운 제이가 아틀란타로 갈 때 크라운제이의 매니저가 돈을 빌리면서 크라운 제이에게 보증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 뒤 매니저가 I'M GOOD 한국어 버전을 유통시켜주겠다고 하면서 한국으로 돌아갔는데[17], 필리핀에서 빌린 돈을 도박으로 다 잃고 못 갚는 형편이 되자 기자들에게 크라운 제이의 대마 흡연 사실을 폭로했다고 한다. 기사

4.2. 전 매니저 폭행 사건

2011년 6월 22일 대마초 흡연 혐의에 이어 전 매니저 폭행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전 매니저를 폭행한다음 그에게 1억원 짜리 요트를 강제로 양도하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2011년 12월 7일에 공동상해 혐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공동강요혐의는 유죄판결이 인정 되어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다.

이 사건도 힙합플레이야 인터뷰에서 전말이 밝혀졌는데, 대마초 흡연 폭로에도 크라운 제이에게 별 타격이 없자 전 매니저가 자기 자신을 폭행하여 무고했다고 한다.

5. 이모저모

5.1. FLY BOY 이후의 음악적 변화

우선 음악적으로 2006년 데뷔 앨범, 그리고 2집과 2008년 FLY BOY 앨범이 가지고있는 간극의 차이는 엄청난데 사실 1, 2집 때는 크라운제이의 아티스트적 가치가 대중들 및 특히 힙합 리스너들에게는 크게 알려지지 못했다. 과거 정규 두 앨범의 음악을 들어보면 괜찮은 노래가 있지만 어쨋든 거기에서 FLY BOY로 넘어가는 사운드의 변화는 가히 대격변. 이렇게 리스너들에게는 비교적 이야깃거리가 없던 크라운제이의 당시 상황은 1집, 2집의 음악적 색깔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늦게 나마 이 래퍼를 다시보게 된 혹자들은 IM GOOD을 YOUNG DRO랑 작업을 한게 다시보게 된 계기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 이전에 지금의 크라운제이가 매니아층이 있게 됨과 동시에 음악적으로 리스너들에게 충격을 준 앨범이 FLY BOY고 더 나아가 당시에 힙합을 음악뿐만이 아니라 패션까지도 친숙하게 대중들한테 가지고 갔다.

당시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하면서 보여준 라이프스타일 자체에서 힙합이 강하게 묻어나고 그것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DIRTY SOUTH 컨셉의 앨범을 들고 나온 것이 자연스럽게 시너지가 나면서 성공을 한 케이스다. 특히 A!! 라는 애틀란타 핸드싸인을 유행시켯는데, 2008년도 당시에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모자를 써보고 사진찍을때 A!! 하고 찍은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2008년도 당시에 어떻게 보면 사소하지만, 한국 힙합만 듣는 사람에게는 낯선 문화를 보여준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이 있다. 당시 우결에서 크라운제이의 액션이나 행동을 보며 패널들은 단순히 웃기는 상황이라고 웃고 마는 순간들이 많지만, 미국 힙합 음악을 좋아하고 즐겼던 이들에게는 이런 모습조차도 재미있고 흥미로운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당시 2008년도의 사우스힙합이라 하면 비슷한 시기에 아래의 곡들이 있었다.

MC한새 - 따라라


MHIS - 난 잘 몰라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위에 상기한 사우스 힙합들이 당시에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현재에 와서는 회자되지도 않는 화석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반면, 크라운제이의 FLY BOY는 그 이후 최고의 포스를 보여주는 시절과는 많이 떨어져있는 모습이지만, 여전히 힙합 커뮤니티 등지에서도 간간히 게시판에는 글이 올라와 그 당시 모습을 그리워하며 영상들과 FLY BOY 무대를 회상하기도 한다. 음악도 음악대로 앞서갔지만 퍼포먼스도 쇼킹했는데 당시에 지상파 무대에서 미국 스트립 클럽에서나 볼 수 있는 돈을 뿌리는 퍼포먼스를 시도한 사람이다.

여러모로 잘 나가던 당시에 우결에서 마무리를 짓게 되고 여러 가지를 뒤로 한 채, 음악적 욕심으로 미국행을 택하게 되는데 단순히 이메일이나 트위터로 컨텍해서 음원하나 내는 수준이 아닌 그 바닥에서 씬에 자리를 잡기 위한 과정들을 CROWN TV라고 해서 올리고, GRAND HUSTLE과 이어지고 이런 과정들을 다 관심있게 본 이들 또는 뒤늦게라도 그의 발자취를 다시 따라서 보게 된 사람들은 힙합 하나만을 위해 꿈을 향해 쫓아가는 아티스트로써, 음악의 호불호를 떠나 그의 무브먼트 자체를 인정을 하는 이들도 커뮤니티에서는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2008년 FLY BOY 앨범으로 가장 최고주가를 올리던 그는 이후 미국에서 활동을 하기 위해 누가 봐도 경제적으로, 엔터테이너적으로 그리고 음악적으로 밝은 미래가 보이던 상황에서 그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큰 결심을 하여 건너갔다. 당시에 그의 갑작스런 미국행은 기사로 써질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던 것이 사실이었고, 한국 활동을 접는다는 등 여러 가지 억측이 있었으나, 곧 본인이 직접 해명영상을 올려서 논란은 일단락되었다. #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그렇게 미국에 가서 그가 원했던 음악을 할 줄 알았고 멋있는 모습을 기대하던 사람들은 크라운제이가 최소한 아직까지도 화려한 부활을 못하고 이렇게 까지 정체기를 겪을 것이라고 그 누가 예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데뷔 이후 한국 연예계 활동 시절부터 친형동생처럼 지내고 많은 것을 오픈하고 지냈다는 매니저를 대동하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는데 이것이 그의 불행의 시작이자 왜 그의 전성기가 과거에 머물러 있는지 현재 크라운제이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전 매니저와 관련된 일[18]로 크라운제이가 또 어떤 힙합 컨텐츠를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관심있게 지켜보던 팬들 그리고 본인에게는 긴 시간 발목 잡힌 일이 되어버렸었고 2012년 신곡 쇼케이스까지 열었으나 이마저도 원래 계획과는 달리 지체되었으며 결국 쇼케이스에서 공개했던 노래 3곡 중 1곡만 LOLO앨범에 수록되게 된다.[19]

오랜 시간이 지나 2015년 LOLO 앨범을 계획하며 동시에 미국 힙합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과 접촉하는데 LOLO의 뮤직비디오 같은 경우에는 MV 감독으로 GABRIEL HART AKA VIDEO GOD이라는 사람과 작업을 했다. 이사람은 미국 힙합씬을 수시로 체크하고 여러 뮤직비디오를 봐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 그가 찍은 영상을 보았을 것이다. VIDEO GOD은 2017년 현재까지도 미국 힙합씬의 유명 아티스트들의 MV를 찍어주고 있다.

LOLO 트레일러영상이 또 재미있는데 한국 힙합 뮤직비디오에서는 처음 보는, 그러나 미국 힙합 뮤직비디오에서나 볼 수 있는 신발이 전기줄에 걸려있기도 하고, 다이스게임 씬이 나온다.

2017년 10월 10일 신곡 Trust Nobody가 발매되었으며, Lonnie Liston-Smith - A garden of Peace라는 노래를 부분 샘플링하였다. Jay-Z, Young jeezy, Mary J., Blige 등 수없이 많은 아티스트들이 써왔고 국내에서도 X-clan 등 아티스트들이 썼다는 보고가 있다. 커뮤니티에서의 반응은 그 이전에 Single, The best, 하지마, Pull up 등과 비교했을 때 다 좋은 평가가 많다. 진작에 이런 음악을 냈어야 됐다며 아쉬워하는 이들이 있기도 하고 신선하지 않은 샘플을 사용했음에도 노래는 일단 좋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녹음을 1take로 한 번에 하였다고 한다.


[1] 1997년 외환 위기의 영향으로 중퇴했다고 한다.[2] 나중에는 Crown Jeezy라는 이름으로 불린다.[3] 정규 2집 타이틀곡 '그녀를 뺏겠습니다'가 중독성 있는 후렴구와 파격적인 가사 덕에 나름대로 인기를 얻기는 했다.[4] 그 당시 MC몽은 부족한 실력과 발라드 랩에 가까운 음악으로 인해 근데 최초의 히트곡 '180도'나 정규 2집 타이틀곡 '천하무적'은 발라드 랩이 아닌데? 힙합 리스너들 사이에서 Wack MC로 통했다. 결국 병역면탈시도로 영원히 Wack MC취급받게되었다. 게다가 자기 노래 가사의 대부분을 대필받는다는 루머도 돌았다. 사실 정규 1, 2집 때 한 앨범당 3곡 정도를 대필 받은 것이 부풀려진 것이다.[5] 당시 힙합 리스너들은 랩에서 라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현재는 그루브나 플로우 위주로 랩을 평가하는 경향이 짙다.[6] H-유진 쪽은 지금까지도 취급이 안 좋다. 인생의 진리 문서 참고.[7] Dok2도 비슷한 시기에 크라운제이처럼 같은 행보를 걸었다.[8] 정확히는 가사가 유치하고 라임이 부족하며 플로우가 단순하다는 불호 반응과 미국 사운드를 잘 재현했다는 호의적 반응으로 반응이 갈렸다.[9] 2010년 초, 유튜브 채널에서 50 센트의 곡인 'Baby By Me'를 믹스 테잎 형식으로 리믹스해서 Grand Hustle에 소속된 랩퍼 Big Kuntry King이 피쳐링한 곡도 내놓았으며 Crown TV에서 미국 R&B 싱어이자 'Bed'라는 곡으로 유명한 J. Holiday와의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10] 그 전에 월드 스타 힙합 닷컴의 CEO와 친분이 있는 관계인데 NBA 농구 선수이자 언더그라운드 랩퍼인 메타 샌디포드아테스트를 통해 CEO를 알게 되었다.[11] 해당 곡은 2012년 즈음에 이미 만들어진 곡이었는데 그 당시를 기준으로 이 곡의 사운드를 생각해보면 확실히 한국에서 들을 수 없는 사운드이긴 하다.[12] 크라운제이가 오랜 자숙 기간을 갖는 동안 오히려 Dok2가 한국에서 더티 사우스 힙합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을 방증한다.[13] 물론 트렌드에 안 따라가는 음악이 어디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비난은 어폐가 있지만 이 비난은 차라리 본토 음악을 듣고 말지라는 뉘앙스가 강한 비난으로 해석될 소지가 크다고 볼 수 있다.[14] 영주권과 시민권은 다르다. 영주권은 국적이 아니고 해당국에서 영구 체류할 수 있는 비자다.[15] 지인으로부터 크라운 제이의 번호를 얻은 염따가 크라운 제이에게 연락을 했다고 한다. 염따가 크라운 제이가 08베이식 리믹스 버전에 참여해도 되는지 수락을 얻기 위해 더 콰이엇에게 얘기하자, 더 콰이엇이 "08년도에는 크라운 제이 해야지"라고 답했다고 한다.[16] 다만 이 쪽은 병역기피로 인해서 구속된 상태였다. 게다가 MC몽은 모 음악방송에서도 동성애자를 상대로 대놓고 막말을 한 데다가 방송중에(1박2일) 흡연하는 만행을 저지른 전력이 있었다.[17] 이 때 비행기 티켓을 크라운 제이가 사줬다고 한다.[18] 모르는 사람도 많겠지만 당시에 IM GOOD의 음원은 크라운제이와의 계획과는 다른 풀리지 말았어야 했던 시점에 풀려버리게 되는 일이 발생하는데 뮤직비디오 없이 음원만 덩그러니 풀려버려 음원이 풀린 그 시점으로부터 한참 뒤에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일어났다. 보증관련 사건 말고도 이것도 전 매니저와 관련이 있다고. 그러고도 월드스타 힙합 1400만이 넘은게 신기한 지경.[19] B.R.B Feat. 태완 AKA C-Lu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