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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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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카카오
KAKAO
파일:카카오(구) 로고.png
사명 변경 이후 로고
(2010년~2014년)
파일:아이위랩 로고.jpg
아이위랩 시절 로고
(2006년~2010년)
<colbgcolor=#3B170B> 법인명 정식: 카카오 주식회사
영문: Kakao Inc.
이전명 아이위랩 (IweLab)
대표 김범수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설립일 2006년 11월 29일
해체일 2014년 10월 1일[1]
업종명 포털 및 기타 인터넷 정보매개 서비스업
응용소프트웨어 개발 및 공급업
상장여부 비상장기업
후신 다음카카오
(2015년 9월 1일 카카오로 사명 변경)

1. 개요2. 역사
2.1. 아이위랩 설립2.2. 카카오로 사명 변경2.3. 카카오톡의 성장2.4. 해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존재했던 IT관련 기업. 2014년에 다음커뮤니케이션에 흡수 합병되어 사라졌으며,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카카오의 합병과 함께 사명을 '다음카카오'로 변경한 후 2015년 9월 다시 '카카오'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따라서 현재의 카카오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을 모태로 하는 기업이며, 여기서 설명하는 구 카카오와는 법적으로 다른 회사다. 본 문서에서는 2014년 다음과의 합병 이전에 존재했던 기업을 다룬다.

2. 역사

2.1. 아이위랩 설립

NHN (현재의 네이버다.) 대표였던 김범수가 이제범과 함께 2006년 11월 29일 카카오의 모태가 되는 아이위랩을 설립한다. 2007~2008년 미국에 블로그 서비스인 부루, 한국에는 소셜 추천 서비스 위지아를 내놓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글로벌의 꿈을 안고 설립한 아이위랩 미국 법인은 2008년 조용히 정리했다.

2.2. 카카오로 사명 변경

창업자 김범수는 미국에서 아이폰이 선풍적 인기를 끄는 것을 보고 2009년 2월 스마트폰 위젯 개발사를 인수하고 모바일 서비스 개발자를 영입하는 등, ‘모바일 퍼스트' 전략을 선택했다.관련기사 이는 카카오를 기사회생 시키고 지금껏 성장하게 한 핵심적인 의사결정이다. 2012~13년도까지 모바일 앱/웹 서비스의 사업성을 의심하던ICT기업들이 많았으니, 촉이 진짜 끝판왕이다. 이후 2010년 부터 카카오 브랜드를 가진 서비스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각각 카카오아지트(마이크로 카페), 카카오톡(모바일 메신저), 카카오수다(마이크로 블로그) 3가지 시리즈를 선보였으며 이중 카카오톡이 대박을 터뜨려 국민 메신저로 자리매김했다. 세 서비스는 2010년 2월부터 3월 사이에 출시됐는데, 카카오톡보다 12일 늦게 출시된 아이폰 전용 마이크로블로그 서비스 ‘카카오수다'가 반응이 더 좋았다. 카카오수다는 출시 하루만에 한국앱스토어에서 1위에 랭크됐지만, 먼저 출시된 카카오톡은 2위였다.관련기사 당시만해도 인적, 물적 리소스가 적었던 아이위랩은 네트워크 효과를 빠르게 일으키는 카카오톡에 모든 자원을 집중하는 의사결정을 했다. 그리고 카카오톡의 인기에 힘입어 2010년 9월 1일 사명을 ‘카카오’로 변경한다.

2.3. 카카오톡의 성장

한편, 당시에만 해도 '와츠앱'이라는 카카오톡과 유사한 애플리케이션이 이미 존재하였고, 미국과 국내에 출시되어있는 상황이었으나, 해당 앱은 유료인 반면에 카카오톡은 무료 서비스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고, 카카오톡은 모바일에서 단체 채팅을 최초로 지원하면서 차별화 포인트를 가졌다. 이러한 점이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국민 메신저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무료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카카오톡의 초기 창업 자본금은 100억[2]이었으나 2011년까지 2년간 210억원의 누적적자를 보게 되었다.[3] 또한 이때만 하더라도 카카오톡은 뚜렷한 수익 모델이 없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하였다. 그러나 2012년 7월, 당시로서는 누구도 듣도 보도 못한 스마트폰 게임에 소셜네트워킹을 결합한 형태의 ‘카카오 게임하기'라는 UX를 통해 창업후 처음으로 흑자전환의 계기를 마련관련기사한다.

2012년 당시 메이저 게임업체들은 ‘그게 뭔데?’라며 카카오에 입점하지 않았고, 중소-중견 게임업체인 애니팡 및 몇몇 중계서비스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며 90억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이후 텐센트, 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국내 온라인 게임사)로부터 각각 720억원(360만 주, 지분율 12.38%), 200억원(100만 주, 3.44%)을 제3자 유상증자 형태로 투자 받으며 간신히 기사회생하였다. 기사 이후 카카오톡은 앱 개발에 전념하며, 광고비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하여[4] 2013년에는 550억의 수익을 달성하게 된다.
파일:kakao123.png
이후에도 선물하기, 플러스친구[5], 이모티콘, 카카오스토리, 카카오게임, 카카오프렌즈, 카카오페이지 등을 내놓으며 빠르게 성장했다.

이들 서비스들은 각기 크고 작은 차별화 요소와 최초의 시도들을 바탕에 두고 있다. 플러스친구(현 톡 채널)는 모바일에서 광고 메시지를 구독한다는 개념을, 사이즈를 키운 그림 이모티콘과 gif 형태의 움직이는 이모티콘 역시 유니코드 형식의 이모지, 혹은 텍스트와 특수기호를 조합해 그림 형태로 만든 피쳐폰 시대의 문자 이모티콘만이 존재하던 시절 카카오가 처음으로 내놓은 솔루션이다. 게임이나 생산성 도구 등에 한정되었던 인 앱 구매 제품군을 확장한 최초의 시도였기에, 앱 심사를 하는 애플에서도 2011년 11월 19일 등록을 거절했다는 일화관련콘텐츠가 있다. 하긴, 앱스토어 심사 담당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유니코드기반 이모지나 Giphy의 움짤이 아닌, 돈 주고 사서 쓰는 이모티콘이란 개념이 희한하긴 했겠다.

카카오프렌즈는 캐릭터 비즈니스를 염두에 두고 탄생한 결과물이 아니다. 처음에는 그저 카카오톡의 채팅 UX를 더 좋게 할 의도였는데, 웹툰 이모티콘 시장을 회사가 스스로 잠식하는 것 아니냐는 내부 비판도 받았다. 그래서 카카오톡 일본 버전에서 데뷔했고, 몇달 뒤 한국 무대서도 조용히 데뷔관련기사했다. 이후 시험삼아 판매한 봉제인형이 순식간에 동이나면서 엉겁결에 캐릭터 비즈니스 영역으로 진출,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가치로 평가받는 IP가 되었다. 캐릭터 IP 비즈니스의 전형적인 방식은 만화나 애니매이션 등으로 서사와 존재를 인식시킨뒤 각종 상품으로 수익화를 하는 것인데, 카카오프렌즈는 성공의 서사가 완전히 달랐다.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없을 만큼 전국민이 사용하는 미디어에 빈도 높게 노출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용자 상당수는 캐릭터들의 세계관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매일 매일 대화창에서 감정을 전달하는데 사용하며 나름의 이야기를 부여해 상상을 거듭했고, 여타 캐릭터 IP들과 달리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초창기에는 프로도를 ‘카톡 개', 튜브를 ‘카톡 오리' 등으로 대충 불러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국민적인 meme이 되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코미디언들이 패러디를 하게 되면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자리잡았다고 해석할 수 있는데, tvN 코미디빅리그에서는 2013년 12월 <까똑 친구들>이라는 카카오프렌즈를 패러디한 코너를 편성하기도 했다.

2014년 3월 방영된 코미디빅리그 까똑친구들 영상

2.4. 해체

2014년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하면서 기존 카카오는 폐업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기사 자세한 내용은 존속법인인 카카오의 출범 배경 문단 참고.


[1] 다음커뮤니케이션에 흡수합병, 다음카카오(현 카카오) 출범.[2] 각각 김범수 30%, 아이위서비스 24%, Maximo Pte 14%, 위메이드 6% 지분의 합작형태. 출처: 2011년 금감원 감사보고서[3] 자본잠식수준이다. 한편 이때 발생한 적자는 대부분은 앱 개발자들의 인건비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4] 2013년 이때 투자된 광고비는 약 580억원 수준이며, 당해 사업비용의 무려 43% 수준이다. 출처 2013년 감사보고서[5]톡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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