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00000><colcolor=#fff,#dddddd> 카스파 하우저 Kaspar Hauser | |
본명 | 카스파 하우저 |
출생 | 1812년 4월 30일 |
바이에른 왕국 뉘른베르크 인근 지역 | |
사망 | 1833년 12월 17일 (향년 21세) |
독일 연방 바이에른 왕국 안스바흐 | |
국적 | [[틀:깃발| | ]][[틀:깃발| ]][[바이에른 왕국| ]]
신장 | 약 150cm 전후[1] |
직업 | 법률 사무소 직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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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와 일생
1828년 5월 26일 바이에른 왕국에 등장했던 정체불명의 인물.당시 독일은 여러 개의 작은 나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 중 하나였던 바이에른 왕국의 뉘른베르크 시에서 저녁 무렵에 발견되었다. 처음 그를 발견한 사람은 구두 수선공인 베크와 바이크만이란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 날은 바이에른 왕국의 경축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잔치를 즐겼고, 두 사람도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가는데 갑툭튀한 아이가 "몰라요", "기병이 되고 싶어요" 라는 단 두 마디밖에 하지 못하면서도 두 사람을 계속 따라다녔다.[2] 베크와 바이크만은 별 미친 녀석 다 보겠네 하고 무시하고 가려고 했으나 이 아이가 쫓아오면서 같은 말을 반복하자 짜증을 냈다. 그러자 아이는 편지를 내밀었다. 이 편지는 군 제6기병연대 4대대 소속 폰베스니히 대위에게 보낸다고 겉에 적혀 있었기에, 마침 군부대 근처에 사는 바이크만은 "부대로 데려다 주면 되겠네" 라면서 군부대로 아이를 데려 주고 가던 길을 갔다. 이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 아이의 성은 하우저. 이름은 마음대로 지어주시길. 카스파는 임시로 붙인 이름입니다. 그리고 1812년 4월 30일에 태어났습니다. 저는 가난한 하녀라서 아이를 돌볼 수 없습니다. 대위님, 아버지는 평범한 기병대원인데 이미 죽고 없습니다. 이 아이를 애비처럼 기병으로 길러주셨으면 합니다. 받아줄 수 없다면 죽든지 말든지 놔두시길. 아무데나 버려도 됩니다.
그 외에 어머니의 것으로 보이는 한 통의 편지가 더 있었는데, 조사 결과 이 둘은 같은 사람이 쓴 것이었다.[3] 카스파가 입은 옷은 근교의 허수아비의 옷을 벗겨서 입은 것이었다고 한다.
군부대의 초소에서는 이 편지를 보고 바이에른 왕국군 제6기병연대 4대대 소속 폰베스니히 대위에게 연락했다. 대위가 연락을 받고 올 동안(4대대는 가까이 있었기에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아이는 초소의 면회 대기실에 앉아있었는데 보초병이 어떤 말을 건네도, 마찬가지로 '아버지처럼 말 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몰라요' 라는 말 외에는 다른 어떤 말도 할 줄 몰랐으며, 모든 동물을 말(馬)이라고만 불렀다. 성별도 구분할 줄 몰라서 남자건 여자건 '사나이'라고 칭했다. 병사들은 기묘한 녀석이라고 서로 신기해했는데 막상 연락을 받고 온 대위는 이 아이를 몰랐고 편지도 처음 보는 사람의 글씨라면서 짜증내고 그냥 나가버렸다. 결국 경찰서에서 조사한 결과 본인의 이름 정도는 쓸 줄 알았다고 한다.
괴상한 것은 아이의 감각이 지극히 예민했다는 점이었다. 커피나 맥주는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을 했고 포도주는 냄새만 맡아도 취했으며, 물에 브랜디를 한 방울이라도 집어넣으면 기분 나빠했으며 어두컴컴한 방에서도 성경을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촛불이 어떤 것인지 몰라서 맨손으로 만졌다가 비명을 질렀고, 군인의 제복을 신기하게 바라봤으며 말을 타는 기병대원들을 보고 무서워하면서도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말이 안 떠오르는지 혼자 답답해 했다고 한다.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아서 결국 경찰서의 감옥에 갇혀 지냈는데, 고기와 맥주를 거부했으며 빵과 물만 먹었고 시계를 보면 두려워 했다. 감옥에서 이것저것을 배우며 일반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지식과 언어를 습득하는 데 성공했는데, 말을 배운 이후에 카스파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우저의 말에 따르면, 약 10~12년 전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2m x 1m x 1.5m 정도 되는 크기의 방에 갇혀 지냈으며, 식사는 빵과 물만 먹었고 아주 가끔씩 주스와 같은 것을 주었다고 한다. 음식을 주던 사람은 항상 모자와 복면을 착용하고 있었으며, 가끔은 음식에 약을 타서 자신의 의식을 잃게 했는데, 깨어나보면 머리카락이 이발되어 있거나 몸이 깨끗해져 있었다고 한다. 방에는 목마 2마리가 있어서 늘 그것만 타고 놀았고, 어떤 남자가 가끔 방에 들어와서 '아버지처럼 말 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말과 '카스파 하우저' 라는 이름만을 가르쳐줬는데, 얼굴은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 상태로 지내다가 어느날 뉘른베르크 거리에 버려지고 발견된 것.
그의 이 증언은 결정적 시기 가설에 따르면 16세까지 언어적으로 고립된 아이가 일반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에 하우저의 자작극설을 뒷받침해주는 부분으로 여겨진다. 제2언어를 익히는데 어른이 아이에 비해 뒤처지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이에 반박하는 사람이 있으나,# 언어를 습득해야 했을 시기에 습득하지 못하게 되어 언어 체계가 아예 형성되지 않은 사람이 차후에야 제1언어를 익히는 것과 정상적으로 모국어를 습득한 아이나 어른이 제2외국어를 습득하는 것은 전혀 다른 상황이므로 반박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으로는, 언어적으로 고립된 아이들로서 언어 습득이 불가능했던 경우는, 처음부터 언어의 습득이 불가능한 중증의 지적장애 아동이 버려진 경우였기 때문에 그렇다는 주장이 있다. 때문에 카스파 하우저가 후술할 죽음의 과정은 자작극이었을지언정, 살아온 과정은 절대로 주작이 아니라는 설도 유력하게 받아들여진다[4].
어쨌든 뉘른베르크 시장과 시의회는 불우한 일을 당한 것만은 분명했던 그의 보호자를 자처했고, 시의 예산으로 옷과 음식을 주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진짜 부모나 보호자를 찾는 전단도 뿌려졌다.
하우저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외모를 관리하자 의외로 귀족적인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대 전문가가 진행한 남아있는 하우저의 머리카락을 조사한 결과 바덴 대공국의 통치 가문인 체링겐 가문과 연관 짓기도 했다.
이후 1829년에 복면 괴한의 습격으로 머리에 도끼를 맞았지만 이마에 경상을 입는데 그쳤다. 그리고 1833년 12월 14일, 부모가 누군지 알려주겠다는 사람의 편지를 받고 외출했다가 칼에 찔리는 습격을 당한다. 하우저는 부상을 입은 채로 간신히 돌아왔고 그의 손에서 습격자가 남긴 것으로 추측되는 거꾸로 쓴 메모가 발견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Hauser wird es euch ganz genau erzählen können, wie ich aussehe, und wo her ich bin. Den Hauser die Mühe zu ersparen will ich es euch selber sagen, woher ich komme _ _ Ich komme von von _ _ _ der Baierischen Gränze _ _ Am Fluße _ _ _ _ _ Ich will euch sogar noch den Namen sagen: M. L. Ö.
하우저,
당신에게 제가 누구고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수고를 덜기 위해 직접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바이에른 국경 … 강변 … 에서 왔습니다.
당신에게 제 이름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M. L. Ö.
하우저,
당신에게 제가 누구고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수고를 덜기 위해 직접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바이에른 국경 … 강변 … 에서 왔습니다.
당신에게 제 이름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M. L. Ö.
하우저는 '내 잘못이 아니다'는 말을 남기고 혼수상태에 빠졌으며, 결국 사흘 후의 17일 밤 10시경에 사망했다.
2. 출생의 비밀?
그로부터 90년이 지난 1924년, 독일의 소설가 클라라 호퍼 (Klara Hofer, 1875년 ~ 1955년)가 필자흐 성 (Schloss Pilsach)이라는 뉘른베르크 근교의 낡은 대저택을 매입하고 이를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것이 발견됐다. 바로 90년전 하우저가 증언했던 그 방, 목마 2마리가 있던 좁은 방의 묘사와 꼭 들어맞는 방이 발견된 것이다. 다만 필자흐 성의 방이 정말로 하우저가 갇혔던 방이라는 증거는 정황증거조차 전혀 없으며, 현재 이 설은 별다른 주목을 받고 있지 않다.더욱 주목받은 루머는 하우저의 출생 당시 바덴 대공이었던 카를 프리드리히(1786 ~ 1818)의 1812년 9월에 태어나 10월에 죽은 아들에 관한 것이었다. 19세기부터 돌던 소문으로 카를 프리드리히의 아들이 괴이한 병으로 죽어 어머니에게도 시체를 보여주지 않고 서둘러 화장했으나 인부들이 아기 시체가 없다고 수근거렸던 기록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하우저는 바덴 대공의 아들이며 계승에 관한 문제로 죽었던 게 아닌가 하는 논란으로 다시 한번 화제가 되었다.[5] 이는 현재까지도 유명한 전설이라 1996년과 2002년에 유전자 감식까지 했으나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확실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고, 결국 그의 정체는 끝까지 미스테리로 남게 되었다. 다만 하우저의 성장과정이 상식적으로 들어맞지 않으며 사망도 자작극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신빙성이 높은 루머라고 보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2024년 8월, 영국 바스 대학 연구팀이 하우저의 혈액과 머리카락 샘플을 사용하여 최신 시퀀싱 기술을 사용하여 카스파 하우저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다시 분석한 결과 하우저의 mtDNA를 그의 왕족 자매와 그 후손들의 mtDNA와 비교했을 때, 일치하는 것은 없었으며 연구팀은 하우저의 유전자가 바덴 가문의 미토콘드리아 계통과 분명히 다른것으로 결과가 나와 약 200년간 지속되어온 카스파 하우저 왕족설은 거짓이었던 것으로 사실상 결론이 났다.
'잃어버린 유럽 왕자'의 DNA, 200년 된 음모를 해결하다
3. 조작설
항간에는 카스파가 당한 2차례의 습격이 정체불명의 괴한이 아니라 자작극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요약하면 카스파는 관심병 환자로 자신에게 쏠린 관심이 점점 식고 귀족 후원자들도 무관심해지자 더 자극적인 사건을 일으켜서 관심을 끌어보려고 노력했다는 것. 실제로 모든 후원자가 카스파 하우저를 나중에는 굉장히 싫어했는데, 이는 그가 그렇게 좋은 성격이 아니었고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서 거짓말을 통해서 관심을 받아보려고 한 게 지나쳤다는 뜻이라는 것이다.[6]즉 두 번의 습격 사건은 전부 카스파의 조작으로, 머리부상은 크게 번지지 않고 넘어갔지만 두 번째는 자신이 메모를 조작하고 어설프게 상처를 내려다가 진짜로 칼에 찔려 치명상을 입은 것이라는 추측이다. 마지막에 카스파가 살해당한 장소에는 마침 눈이 내리고 있었는데, 눈 위에 발자국이 한 사람의 발자국밖에 없었다는 게 그 근거라고 한다. 심지어 마지막 습격 전에 나온 편지에 나오는 오자는 카스파가 자주 틀리는 오자이고 편지가 접힌 방식도 카스파가 흔히 종이를 접는 방법과 같다는 것.
조작설의 다른 시나리오는 카스파 하우저가 어린 시절에 겪은 경험은 모두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덴 대공국의 귀족의 납치된 사람 또는 바꿔진 아이라면 그냥 출생의 비밀을 숨기고 평민의 아이로 자라나는 것이 편한 일이었다. 굳이 힘들게 감금하고 그걸 풀어주는 건 상식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 그리고 이 시나리오도 습격 사건은 모두 카스파 하우저 자신이 조작해서 벌인 촌극이라는 결론이다.
실제로 프리드리히 대공가의 먼 후손과 카스파가 남겼다는 옷과 머리카락에서 추출한 DNA 조사가 2000년대 이후에 있었는데 불합치 판정을 받았다.[7]
만일 정말로 어린 시절에 짐승과 같은 삶을 살았다면, 실제 자료에 의하면 어른이라도 이런 류의 감금 생활을 하면 올바른 정신을 가지기 힘들고 장애인이 되거나 백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있다. 실제로 197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야생소녀 지니'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 또한 지니의 경우는 카스파 하우저보다 훨씬 열악하여 의자에 묶여 움직일 수도 없었고 조금만 소리 내도 두들겨 패는 등 폭력도 많이 당했으며, 발달장애가 올 수도 있다는 의사의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카스파 하우저는 구조된 후에도 좋은 환경에서 보살핌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본인이 사망하고,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도 나오지 않아 끝내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었다.
4. 기타
카스파 하우저의 묘비에는 아무도 모르는 이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사람에 의해 살해당했다(Hic occultus occulto occisus est) 라고 쓰였다.훗날 베르너 헤어초크가 영화화했다. 하늘은 스스로 돌보는 자를 돌보지 않는다(Jeder für sich und Gott gegen alle)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는 카스파 하우저의 신비(The Enigma of Kaspar Hauser)로 수입되었다. 주연은 브루노 쉴라인스타인이다.(2010년 사망) 스트로첵의 그 배우다.
징기스칸의 노래 중에서 카스파 하우저를 다룬 노래가 있다.
5. 관련 문서
[1] 카스파 하우저가 갇혀지냈다고 주장하는 방의 높이가 1.5m라고 주장했는데 어린 시절에 겪은 경험은 모두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카스파 하우저의 키는 150cm 전후로 추정된다.[2] "기병이 되고 싶다", "몰라", "내 이름은 카스파", "말(馬)" 이 네 마디밖에 하지 못했다고도 한다.[3] 재미있는 건 카스파가 글을 알게 된 후 쓰던 필체와 이것이 대단히 비슷하다. 후술한 대로 자작극이거나, 카스파의 말대로 자신의 필체를 흉내낸 자가 썼거나.[4] 실제로 이후의 기록을 보면, 카스파 하우저는 언어를 익히는 것은 물론, 수학과 천문학에 꽤 비상한 재능을 보였다고 하므로, 지적장애가 있던 것은 확실히 아니다. 이는 야생아라도 충분한 교육을 실시한다면, 언어를 습득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는 증거로도 여겨진다.[5] 이후 바덴 대공위는 카를 프리드리히가 죽은 아들 말고는 딸들밖에 없어서 친숙부 루트비히 1세(1763 ~ 1830)에게 갔다가 이복동생이자 카를 프리드리히의 이복 숙부인 레오폴트(1790 ~ 1852)에게 갔다.[6] 물론, 야생아라도 지적장애가 없다면 인간의 언어를 습득하는 게 가능하다는 가설을 따르면, 카스파 하우저는 사회적 의사소통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안 좋은 성격의 소유자라고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현대에도 사회적 의사소통 장애인이 사회에서 갖은 오해를 사서 소외되는 일이 잦은데, 오늘날에 비해 인권의식이 바닥이었던 19세기라면 그에 대해 온갖 악평이 난무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갈 일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끔찍한 유년 시절의 생활에서 구출된 뒤에도 지속적으로 학대에 시달렸던 셈이다.[7] 다만 이 부분은 샘플 문제로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실제로 대공가의 후손들은 카스파의 아버지일지 모르는 사람의 유품 제출을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