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09 02:10:21

카를로스 레더

라틴 민족운동당 초대 당수
카를로스 레더
파일:Carlos_Lehder.png
본명 Carlos Enrique Lehder Rivas
국적 콜롬비아[1]
출생 1949년 9월 7일([age(1949-09-07)]세)
직업 마약 밀매업자
지위 메데인 카르텔 간부, 라틴 민족운동당 초대 당수
1. 개요2. 생애
2.1. 유년기2.2. 청년기2.3. 메데인 카르텔2.4. 체포
3. 여담4. 창작물에서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메데인 카르텔의 간부. 마약 중개업자.

본명은 카를로스 엔리케 레더 리바스(Carlos Enrique Lehder Rivas), 흔히 카를로스 레더로 불린다[2]

콜롬비아에서 바하마를 거쳐 미국으로 코카인을 운송하는 밀수 루트를 개척하여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함께 메데인 카르텔의 형성에 많은 기여를 했다. 마약 밀매를 통해 축적한 부로 민족주의 정당을 만들어 정계 진출에 성공했으나, 각종 범죄 사실이 들통나 군경에 쫓기는 신세로 전락했다. 결국 1987년에 체포되어 미국으로 인도되었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2020년에 전립선암을 이유로 병보석이 허가되었고 현재는 독일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2. 생애

2.1. 유년기

카를로스 레더는 아버지 기예르모 레더(Guillermo Lehder)와 어머니 헬레나 리바스(Helena Rivas)사이에서 셋째로 태어났다.

레더의 아버지 클라우스 빌헬름 레더는 전간기에 콜롬비아로 이민을 온 독일인 건축가였다. 콜롬비아에서는 숙박업소를 운영하면서 현지인 보석상의 딸인 헬레나 리바스와 결혼해 이름을 기예르모 레더로 바꾸고 4명의 아들을 낳았다. 기예르모 레더는 그 당시 대다수의 독일 국민들처럼 열렬한 나치의 추종자였고 이것은 카를로스 레더가 나중에 네오 나치가 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의 전력으로 인해 레더의 가족은 제 2차 세계대전 중 콜롬비아 내 미국 대사관에게 요주의 대상으로 취급받았다. 어린 시절의 이 일은 레더에게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느끼게 했고, 훗날 전미에 대량의 마약을 유통시키면서도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2.2. 청년기

레더의 부모님은 레더가 15살이 되는 해에 이혼했고, 레더와 어머니는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다.

뉴욕에서 가난한 삶을 살던 레더는 훔친 자동차마리화나를 밀매하는 일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범죄의 길에 뛰어들었다. 1973년, 레더는 자동차 트렁크에 90kg의 마리화나를 싣고 밀반입한 혐의로 코네티컷의 연방 교도소에 2년간 수감되었다. 이것이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감옥에 갇힌 경험이다.

감옥에서 레더는 평생의 사업 파트너가 될 마약상 조지 제이콥 영[3]은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만난다. 마약 밀매업자라는 공통점을 가진 둘은 쉽게 친해졌고, 곧이어 함께 마약 밀매 사업을 구상하기 시장했다. 영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레더에게 경비행기로 마약을 운반하는 사업 아이템을 제시했다. 처음에 영은 마리화나를 미국으로 수출하려고 했으나, 레더는 코카인을 운반하는 것이 훨씬 더 수익이 클 것이라며 그를 설득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 레더와 영은 수감자들에게 마약 밀매업에 대한 노하우를 캐내고 돈세탁 방법이나 항해술 등 각종 잡기술을 배우는 데 열중했다.

레더와 영은 1976년에 함께 가석방되었다. 콜롬비아에 도착한 카를로스는 곧바로 메사추세츠의 본가에 있던 정에게 연락했고, 둘은 전화 통화를 하며 함께 마약을 밀매하는 음모를 꾸민다. 그 당시에는 세관의 검사가 빡빡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방 앞부분의 플라스틱 유리섬유 안쪽에 마약을 숨기면 검사관을 쉽게 속일 수 있었다. 이걸 잘 알고 있던 레더는 휴양지에 놀러 온 젊은 미국 여성 두 명을 속여 마약이 든 여행 가방을 운반하도록 했다. 둘은 다음 날도 동일한 수법으로 마약 밀수에 성공했다. 이런 방식으로 사업 자금을 모은 레더와 영은 본격적으로 비행기를 통한 마약 밀매업을 시작한다.

2.3. 메데인 카르텔

이 즈음에 레더와 영은 그들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을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바로 70, 80년대 콜롬비아 마약 업계의 대모였던 그리셀다 블랑코. 두 사람은 그리셀다 블랑코의 밑에서 훗날 콜롬비아의 마약왕이 되는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함께 일했는데, 레더와 영은 훔친 경비행기를 이용해 콜롬비아 - 파나마 - 미국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루트를 개척함으로써 코카인 밀수업계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첫 비행기에 실린 코카인 250kg은 조직에 1,000만 달러라는 거금을 안겨 주었고, 레더와 정도 각각 50만 달러씩을 받아 한몫 두둑히 챙기게 되었다.

그리셀다 블랑코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마약 밀수 사업을 체계화하고 확장하길 원했다. 블랑코의 조직은 빠르게 형태를 갖추어 나갔고, 몇 년 후 콜롬비아 최대의 마약 카르텔이라 불리는 메데인 카르텔이 된다.

레더와 영은 메데인 카르텔에서 '중개 담당'을 맡아 계속해서 코카인을 미국으로 보냈다. 둘이 1978년까지 미국에 실어 날은 코카인의 값어치는 매주 약 500만 달러에 달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그 과정에서 콜롬비아의 공급자로부터 미국의 운반책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정보망을 구축하고, 정부 관리들과 경찰들에게 뇌물을 뿌려 혹시나 모를 위험 요소를 제거했다.

레더가 눈독을 들인 바하마의 노맨스 섬(Norman's Cay)는 마약 밀매를 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합법과 불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거주민들을 모조리 쫓아내 섬을 독차지한 레더는 노맨스 섬에 보급, 주유, 유통을 담당하는 작전 본부를 설치하고 전문 조종사들과 경호원을 고용해 사실상 섬의 영주처럼 행동했다.

1981년에는 라틴 민족운동당(Movimiento Latino Nacional) 이라는 민족주의, 국가주의 정당을 만들었다.

2.4. 체포

1983년, 미국으로의 범죄인 인도법이 통과되고, 체포를 피해 도망나디던 레더는 정글에서 열병에 걸려 거의 목숨을 잃을 뻔 했지만, 에스코바르가 헬기를 보내 구조해 준 덕택에 간신히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에 의해 노맨스 섬에 있던 재산과 소유물은 모두 압수되었고 은행 계좌는 동결 처리되어 백만장자 마약상은 하루아침에 알거지로 전락하게 된다.

에스코바르의 경호원 노릇을 하던 레더는 새롭게 마약 밀수 루트를 개척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고 했으나, 부하에게 배신당해 경찰에게 신분이 노출되어 자신의 농장에서 체포당한다. 1987년에 레더는 미국으로 인도되어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 추가로 135년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92년, 레더가 파나마의 독재자였던 마누엘 노리에가에 대한 증언을 하는 대가로 형량을 줄이는 사법거래에 동의하여, 추가로 받았던 135년의 징역형은 55년으로 줄어들게 된다. 1995년에는 자신을 독일 감옥으로 이송시켜 달라며 판사를 협박하기도 했다.

2020년 6월 16일, 전립선암이 발병하여 보석 신청을 허가받았고 프랑크푸르트의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치료비는 독일의 한 자선 단체가 부담한다고. 기사

3. 여담

4. 창작물에서

5. 관련 문서



[1] 독일계 콜롬비아인이다.[2] 레더(Lehder)라는 성에서 알 수 있듯이 독일인 이민자 아버지를 둔 독일계 콜롬비아인이다.[3] George Jacob Jung (1942 ~ 2021); 카를로스 레더의 친구이자 미국의 악명높은 마약상 중 한명으로, 94년 징역 70년형을 선고받았었다. 그 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직접 출연하여 파블로 에스코바르, 그리셀다 블랑코, 카를로스 레더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기도 했다. 2021년에 간부전과 신부전으로 사망.[4] 나머지 하나는 파블로 에스코바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