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 고향으로 돌아오다 (1951) [ruby(カルメン故郷に帰る, ruby=カルメンこきょうにかえる)] Carmen Comes Home | |
장르 | 드라마, 코미디 |
감독 | 기노시타 케이스케 |
각본 | 기노시타 케이스케 |
제작 | 다카무라 요시 |
출연 | 다카미네 히데코 고바야시 토시코 모치즈키 유코 류 치슈 |
촬영 | 구스다 히로유키 |
음악 | 기노시타 타다시[1] |
주제곡 | "카르멘 고향으로 돌아오다" by 다카미네 히데코 |
제작사 | 쇼치쿠 오후나촬영소 |
배급사 | 쇼치쿠 |
개봉일 | 1951년 3월 21일 컬러 프린트 단독 특별상영개봉 1951년 8월 24일 흑백 프린트 본 포함 일반상영 |
상영 시간 | 86분 |
화면비 | 표준(1:1.37) |
색상/사이즈 | 컬러/스탠다드 |
박스오피스 | 약 6800만엔 (최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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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노시타 케이스케의 1951년 영화.이 영화는 일본 영화 역사에 “일본 최초 장편 국산 컬러 필름 영화”[2]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주연배우는 다카미네 히데코. 영화의 기본 주제는 태평양 전쟁 직후 일본 사회에 급격하게 밀어닥친 신문물과 외국 문화를 접하는 일본인들의 충격,동경,혐오같은 반응들을 가벼운 코미디극으로 풍자한 영화이다.
각본도 기노시타 감독이 직접 집필했으며, 이 영화는 쇼치쿠의 “일본 최초 장편 국산 컬러 필름 영화”라는 타이틀을 위한 프로젝트성 영화제작이여서 딱히 작품성이 크게 돋보이는 영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기노시타 감독은 이 영화에 그의 특유의 “휴머니즘”을 포함시킬려고 애썼으며 패전 이후로 물밀듯이 일본사회에 밀려드는 서구 풍조에 대한 일본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풍자한 코미디를 담았다는 호평도 얻었다.
2. 예고편
예고편 |
3. 시놉시스
기타가루이자와의 시골에서 가출해서 도쿄로 상경, 스트립 댄서로 일하고 있는 '긴(きん)'은 "릴리 카르멘(Lily Carmen)"이라는 영어 이름을 스스로 자신에게 짓고 자신의 스트립 댄스를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예술가라고 여긴다. |
4. 제작비화
이 영화는 1950년대 들어 쇼치쿠가 본격적으로 컬러 영화를 제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기획되었다. 당시 일본에서 제작/개봉한 컬러영화들은 대부분 프랑스의 테크니컬러(TechniColor) 필름으로 촬영되고 있었지만 테크니컬러는 촬영/현상 및 후반기 작업이 매우 복잡하고 번거로웠으며 가격도 흑백필름에 비하면 고가에 속해 일본의 스튜디오들이 선뜻 제작에 나서기 어려워했다. 이에 쇼치쿠는 아예 일본의 독자적인 컬러 필름으로 영화를 촬영을 결심하고 기획을 시작한다. 원래 대본이 있었던 게 아니라 일본 최초 국산 컬러 영화라는 기획을 시작하면서 대본작업도 시작되었다는 소리다. “일본 최초 국산 컬러필름 영화”라는, 당시로는 무모해보이기까지 한 이 영화를 기획하면서 쇼치쿠는 당시에 소속 감독중에서는 감각이 절정에 이른 기노시타 감독 말고는 다른 이를 생각하기 어려울 터였다.4.1. 후지필름의 컬러 포지티브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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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필름 로고 변천사 |
또한 영화는 촬영을 컬러로 하고나서 다시 흑백으로 촬영하는 이중프로세스로 만들어졌다. 가령 언덕위 장면을 촬영한다고 하면 첫번째 촬영을 컬러필름이 장전된 카메라로 한번찍고 같은 자리 같은배경에서 똑같은 장면을 다시 흑백필름이 장전된 카메라로 촬영하는 식이다. 자세히 보면 주인공인 다카미네 히데코를 비롯 출연진들의 연기가 컬러본, 흑백본이 조금씩 다르다. 컬러프린트,흑백프린트 둘다 감상한 평론가들은 2번째 촬영본인 흑백프린트에서의 배우들의 연기가 조금은 힘이 빠져 보인다는 평가가 있다. 흑백판은 컬러판 리마스터링 블루레이 부록으로 함께 공개된 바가 있다.왜 이같은 번거로운 작업을 거쳐야 했다면 후지필름 사의 강력한 요구때문이었다. 당시 후지필름측은 자사의 영화촬영용 컬러필름을 개발완료는 했지만 본격적인 대량생산은 주저했다. 상용화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쇼치쿠에서 국산 후지필름으로 컬러영화를 찍겠다고 제안했을때 실제 현업에서 테스트 할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에 수락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사의 필름으로 영화를 촬영했을때 실패할 경우 책임은 후지필름이 모두 뒤집어쓰는 꼴이 날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아래 항목에서 서술한 이유로 인해 실제 촬영 현장에서 후지필름의 컬러필름이 이런저런 문제점을 드러내자 후지필름 측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후지필름 측에서 전문가들을 촬영 현장에 파견해서 문제점을 해결하려 안간힘을 썼지만 맨땅에 헤딩 식으로 독자 개발한 영화촬영용 컬러필름과 기존 컬러필름 촬영은 테크니컬러(TechniColor)만 해봤던 영화업계는 후지필름이 새로 개발한 국산컬러필름을 사용한 컬러영화 제작에 노하우가 전혀 없었다.
결국 후지필름 측은 영화 촬영이 실패할 경우 모든 손해비용을 전부 후지필름 측에서 댈테니 개봉을 연기하고 성공할 때까지 촬영하자는 억지주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쇼치쿠는 이 생떼같은 주장때문에 골머리를 앓았고, 결국 후지필름의 체면을 살려주는 타협점을 제시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위 내용대로 컬러로 한번, 흑백으로 한번 하나의 영화를 2번 촬영하는, 웃지못할 해결책이 나오게 된다.
* 카르멘, 고향으로 돌아오다 영화는 흑백 후지필름으로 한번, 컬러 후지필름으로 한번 찍는다.
* 컬러필름이 현상 및 후처리 결과 만족할만한 품질의 프린트본으로 나오지 못할 경우 찍은 모든 컬러필름은 후지필름에게 반환하거나 모두 파기처리한다.
*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올 경우 컬러,흑백 2가지 모두 개봉한다.
* 컬러필름 촬영이 실패할 경우 후지필름의 컬러필름때문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주장하지 않고 그냥 흑백판만 개봉한다.
* 컬러필름이 현상 및 후처리 결과 만족할만한 품질의 프린트본으로 나오지 못할 경우 찍은 모든 컬러필름은 후지필름에게 반환하거나 모두 파기처리한다.
*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올 경우 컬러,흑백 2가지 모두 개봉한다.
* 컬러필름 촬영이 실패할 경우 후지필름의 컬러필름때문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주장하지 않고 그냥 흑백판만 개봉한다.
위의 조건을 후지필름에 제시하고서야 후지필름은 필름공급에 동의했으며 결국 개봉일까지 컬러 상영프린트본 11벌을 겨우 맞추었다. 쇼치쿠가 보유하고 있는 일본 전역의 극장들은 대부분 흑백판으로 개봉할 수 밖에 없었다. [clearfix]
4.2. 예상외로 난관에 부딪친 후지필름 컬러영화 촬영
위 항목에서 소개한 대로 후지필름의 컬러필름에 대한 데이터가 전혀 전무했던 탓에 촬영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원래 영화촬영용 필름은 생산 배치별로 필름의 특성이 미세하게 다르긴 하겠지만 당시에는 생산 배치별로 필름의 데이터가 매번 틀려서 현상에 애로사항이 항상 꽃피웠다고.또한 당시 유성흑백 영화 촬영에 사용되는 흑백필름은 촬영감도가 보통 ISO 25가 기본이었는데, 후지필름의 컬러필름은 감도가 무려 ISO-ASA 6이 최소 노출 조건이었다. 흑백필름에 비해 빛이 자그마치 4배가 더 필요한 상황인 것이었다. 따라서 스튜디오 세트 촬영은 아예 꿈도 꿀수 없었다.
덕분에 촬영조건은 무조건 야외 로케이션 촬영에 날씨는 구름 한점 없는 강한 햇빛이 드는 맑은 날에만 촬영이 가능했다. 때문에 로케 장소도 나가노에서 기타카루이자와로 변경했으며 그나마 옮긴 기타카루이자와에선 오전 8시부터 오후 1시까지가 필요한 노출이 나오는 햇빛이 가능한 촬영시간대였다. 거기다가 조그만 노출부족이 나오면 필름 현상 데이터가 어그러져 항상 노출 오버로 찍어야 했기에 반사판을 여러장 비춰가며 촬영을 해야 했고, 다카미네 히데코, 류 치슈 등을 포함한 출연진 전부는 반사판 덕분에 눈이 부셔 시력이 일시적으로 나빠지는 것은 고사하고 연기를 제대로 할 수 없겠다고 투덜대며 개선을 호소하기까지 했다.
악조건을 넘어 촬영을 마치고 시사용 프린트를 현상하고서는 더 큰 난관에 봉착했다. 후지필름의 컬러필름이 적색(RED)은 발색이 너무 강한 반면, 녹색(GREEN)은 색이 바래져보이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후지필름의 전문가들과 쇼치쿠의 필름 현상 직원들이 필사적으로 원인을 규명하려 노력했지만, 필름 현상 프로세스를 아무리 조정해 보아도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다. 결국 후지필름의 포지티브 필름 자체의 문제임을 인정하고 촬영과정에서 이를 조절하고자 했지만 촬영장에서는 더 큰 혼란이 생겨났다. 기존의 흑백필름 영화 촬영에서 행했던 배우들의 메이크업 노하우만 알았지 컬러필름 촬영때에는 메이크업 노하우가 아예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 쇼치쿠에서는 미국 헐리우드의 메이크업 전문 회사와 협력하기로 하고 수소문하던 중 "맥스 팩터"사에게 기술료를 지불하고 노하우를 전수받기로 했다. 기존의 흑백필름촬영의 메이크업에 익숙해져 있던 배우들과 코디네이터들은 한동안 적응에 힘들었다고 한다. 후지필름의 컬러필름발색에 알맞는 메이크업 색조를 찾기위해 출현 배우 피부톤의 명조,색조,채도를 정밀 계측해서 색깔들을 모두 테스트촬영해서 적합한 색조를 찾아내야 했고 이 작업은 촬영장소가 달라질때마다 매번 다시 해서 메이크업을 다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주연배우였던 다카미네 히네코에게는 핑크색 계열의 색조인 23M 컬러톤을 주로 사용했고 류 치슈는 테스트했던 모든 색조 메이크업이 실제로 필름상에서는 이상하게 나와서 스태프들의 애를 태웠다고. 최종 완성본에서는 컬러들이 그닥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쇼치쿠는 컬러필름에 대한 데이터를 축척했고 노하우를 완성해 나갔다는 의미부여가 되었다.
[1] 기노시타 감독의 남동생[2] '일본 최초 컬러 필름 영화'라는 기록을 쓰기엔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일본엔 1914년에 설립된 "천연컬러활동사진 주식회사/天然色活動写真" - 줄여서 '텐카츠' 라는 영화제작회사가 있었는데 이 회사는 컬러영화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였다. 이 회사가 1937년도에 제작한 "천인침" 이라고 하는 단편영화가 컬러필름으로 만들었고 실제로 개봉도 했었다. 문제는 필름이 모두 소실되어 진위여부를 확실하게 증명할 수 없었던 것. 이후 1945년에 "봄의 노래"라는 단편영화도 컬러필름으로 촬영해서 개봉했지만 이 역시 원본촬영본은 물론이고 프린트마저 남아있지 않아 증명이 어려웠고, 이 두 영화는 외국에서 수입한 테크니컬러 필름과 후지필름에서 시험적으로 소량생산한 프로토타입 필름으로 촬영했기에 순수 일본 국산 컬러영화라고 우기기에도 일본 영화산업의 체면이 서지 못했다. 결국 1951년 쇼치쿠에서 제작한 "카르멘, 고향으로 돌아오다" 를 "일본 최초의 컬러 필름 영화"라고 기록에 등재시켰지만 2003년에 모스크바의 러시아 국립 필름 보관소에서 "천인침"의 상영프린트 본이 발견된다. 이 때문에 다시 "일본 최초 컬러 영화" 타이틀을 바꾸기엔 뭐했던지 "일본 국산 컬러 필름" 문구를 끼워넣어 '일본 최초 장편 국산 컬러 필름 영화' 인 "카르멘, 고향으로 돌아오다"로 정리되었다.[3] 일본 최초 컬러 네거티브 필름을 사용한 장편영화 역시도 기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이 1958년도에 제작한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이다. 일본 최초 컬러 포지티브,네거티브 필름 영화 기록 두개를 한 감독이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