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0-15 20:53:51

충담


1. 소개2. 일생
2.1. 소신공양

1. 소개

파일:충담 스님.png

冲湛. 1913~1998. 대한민국승려.

속명은 이길수(李吉秀), 법명은 충담(冲湛)이다. 소속 종단은 한국불교태고종이었다.

2. 일생

1913년 경기도 가평군에서 태어났다.

17세가 되던 해인 1929년에 출가하여 삼각산 승가사에 들어갔으며, 이듬해에 심월 스님을 은사로 하여 사미계를 수지했고, 1932년에 서울 봉담사에서 사미·사미니계를 받았다.

1943년부터 중국 연변, 장춘, 하얼빈 등지에서 유행하였으며, 한반도가 해방된 후 돌아와 그 후로는 일평생을 수행에 정진하면서 사찰 및 불교 관련 시설들을 여럿 세우는 등 불교 진흥에 힘썼다. 1990년에 한국불교태고종 원로로 위촉되었고, 1998년에는 승정으로 추대되었다.

1970년에 창종에 따른 공로패, 1982년에 불교정신문화원 및 포교사전문대학(現 동방불교대학) 설립에 따른 공로패, 1992년에 종단중흥과 종권수호 공로에 따른 공덕패를 받았다.

2.1. 소신공양

태고종 승정으로 추대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98년 6월 27일 이른 새벽에, 당시 IMF 구제금융 위기 세태에 따른 국민들의 괴로움과 헐벗음을 짊어지며, 남북의 통일, 한국 사회의 안녕, 전 불교 종단의 통합을 기원한다는 뜻에서 호명산 감로사 근처에서 소신공양을 하여 입적하였다. 충담 스님이 손수 좌대를 만들고, 거기에서 가부좌를 틀고 스스로 몸을 불 살라 공양하였다고 한다. 항년 86세. 법랍으로는 69세.

그의 소신공양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로 불교계에서 일어난 최초의 소신공양이었다. 당시 불교계에서는 종파들끼리의 갈등, 속세에서는 IMF 사태로 인한 국가적 혼란으로 위기를 맞고 있었으며, 이러한 상황들이 종식되고 중생들과 불교계가 중흥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몸소 공양을 감행함으로써 열반에 들었다고 해석되었다.

이미 그는 1996년 자신이 펴낸 책 『염불』에서 "희견(喜見)보살은 육신으로 공양함을 서원하고 몸을 태워 불은에 보답했다. … 나도 그 원을 세운지 3년이 지났다"라고 쓴 바 있고, 1997년 경에 낸 『정토삼부경』 역해본 서두에서도 소신공양에 대해 언급하는 등, 일찍이 소신공양을 하려는 기미를 보여 제자들이 질겁을 하고 그가 소신에 쓰려고 준비해둔 장작 더미와 석유를 숨기곤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충담 스님은 끝내 소신공양을 감행하여 입적하게 되었으며, 이 사실이 알려지자 그를 따랐던 많은 불자들이 오열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후 불교계에서는 그를 추모하고 그의 뜻을 기리고자 하는 불사를 매년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