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13:33:02

최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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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인
Choi Seung-in
<colbgcolor=#e31818> 출생 1991년 3월 5일 ([age(1991-03-05)]세)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신체 조건 179cm / 체중 75kg
포지션 스트라이커
학력 신라중 - 개성고
소속팀 쇼난 벨마레 (2010~2011)
츠에겐 가나자와 (2011 / 임대)
청주 직지 FC (2012)
강원 FC (2013~2015)
부산 아이파크 (2016~2019)
FC 로트바이스 에어푸르트 (2022)
뤼네부르거 SK 한자 (2022~2023)

1. 개요2. 경력3. 플레이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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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선수로, 포지션은 공격수

2. 경력

2.1. 클럽팀

2.1.1. J리그

유스 시절부터 부산 아이파크의 산하 유스팀인 신라중학교와 동래고등학교에서 활약하며 중학생 신분으로 K리그 2군 리그인 R리그에 출전하여 득점을 올리는 등 기대를 받았던 선수였다. 그러나 당시 1년 유급으로 한 학년을 더 해야하지만 규정상 국내 고교 대회 출전이 불가해 부산으로 가야만 하는 상황에서 당시 황선홍 감독이 콜업을 반대하며 부산 허락하에 해외 입단을 타진했고 2011년 쇼난 벨마레에 3년 계약으로 입단하였고, 부산 아이파크는 최승인을 육성한 댓가로 12만 5천달러를 받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입단과 동시에 장기 부상을 입었고, 다른 자잘한 부상은 물론 십자인대까지 끊어지며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실업 리그인 일본 풋볼 리그의 츠에겐 가나자와로 임대 이적하였다.[1]

2.1.2. 청주 직지 FC

2011년 쇼난 벨마레는 부산 아이파크에 약속한 12만 5천달러를 미지급한채 최승인을 방출시켜버렸고, 이에 따라 최승인은 2012년 드래프트를 신청하게 된다. 하지만 12만 5천달러를 받지못한 부산측의 반응은 냉담했고, 일본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최승인 선수에 대해 다른 K리그 구단들도 메리트를 느끼지못했다. 결국 아무도 최승인 선수를 지명하지 않으면서 챌린저스리그 청주 직지 FC에 입단했고 당시 감독인 김종현 감독의 지도하에 자신감과 경기력을 끌어올리게 됐다. 전반에만 5골을 득점한 경기도 있을 정도로 괜찮은 활약을 했었다.

2.1.3. 강원 FC

2013년 드래프트에서 입단 테스트 끝에 강원 FC에 입단하였다. 2013 시즌 별로 출전기회를 잡지 못했으나 시즌 막바지에 출전기회를 잡고, 상주 상무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2골을 기록하며 분전하였으나 팀의 강등을 막지는 못하였다.

챌린지에서 맞이한 2014 시즌은 부상이 따라오며 별로 좋지 못하였다. 그러나 2015 시즌 11골 3도움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2.1.4. 부산 아이파크

2016년 자신의 고향팀인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이다.

이적 당시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2015시즌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고 좋은 골감각을 보여준 최승인은 전북과 부산에서 오퍼가 있었다고 한다. 최승인은 자신의 재능에 자신감이 있고 야심이 강한 편이고, 당연히 급료도 전북이 더 높았기 때문에 전북행을 택하고 싶어했으나, K리그 로컬 룰에 따라서 부산에 가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전술되었듯이 본래 일본에서 돌아올 때 최승인은 부산에 복귀를 읍소했으나 앞서 12만 5000달러 건 때문에 부산이 내친 상황이었다. 이것 때문에 부산에 대한 감정이 그렇게 좋지 않았을 뿐더러 부산이 2부리그인 상황이라 이런저런 생각들이 겹친 최승인은 잠적까지 불사하였으나 로컬 룰을 당해내지 못하고 부산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물론 부산으로의 이적 이후 선수와 구단 양측에서 이 얘기를 부인하지만 별로 신빙성이 없다. 일단 실제로 잠적한 것도 그렇고[2] 양측에서 하는 이야기의 아귀도 잘 맞지 않는다.

2017년 4월 포항 스틸러스와 FA컵 4라운드에서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1:0 승리에 기여, 4라운드 MOR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2019시즌은 총 3경기 출장했다. 시즌 종료 후 연맹의 데이터센터를 통해 팀에서의 탈퇴가 공시되었으며, 행선지가 나오지 않아 아웃 오피셜만 미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부산에서의 3년간은 8득점밖에 남기지 못하여서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래도 이적 첫해 FA컵에서는 3골을 넣으며 최고 득점자로 부산을 결승까지 올리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단 한국 FA컵에서는 4골부터 득점왕이 되기 때문에 3득점이던 최승인은 득점왕은 차지하지 못했다.

이미 사이가 틀어진 팀에 억지로 이적을 당한 이후, 부산팬들은 그 전부터 얽혔던 일도 그렇고 잠적까지 더해서 최승인을 크게 고깝게 봤다. 최승인 역시 팀에 애정이 없는 상태에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뛰지 않는다는 평이었고 경기장 밖의 태도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고질적인 잔부상도 안 좋게 작용했다. 이런 과정에서 팬들은 더욱 최승인을 고깝게 보기 시작했고 가진 잠재력에 비해 부산 생활은 매우 안 좋게 끝나게 되었다. 이적 후 최승인의 태도도 좋을 것은 없었지만 선수가 매우 싫어하는 이적을 감행하게 만든 로컬룰 역시 좋지 않았다.

3. 플레이스타일

유망주 시절 떠들썩했던 선수다. 중학생 시절 프로 2군리그에 참가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 재능이 크게 기대되었고 최소 50억짜리 선수라는 부산의 언플도 있었다. 그런 만큼 뚜렷한 재능은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슈팅과 득점이다. 2015시즌 기록한 11골을 보면 중거리, 헤더, 왼발, 오른발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으며 쉬운 득점, 원더골, 드리블 돌파 이후 넣은 득점도 있는 등 슈팅과 득점에 있어서는 다재다능한 면이 있다. 슈팅 테크닉도 꽤 있으며 상당히 침착하게 슈팅을 구사해서 결정력도 있는 편이다.[3]

속력, 힘, 제공권도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 컨디션이 좋을 때는 상당히 파괴력이 있다. 그러나 유소년 시절 이후 꾸준한 출장을 이어가지 못한 일이 많았고 몸상태가 오락가락할 뿐만 아니라 득점에 치중된 스타일이라 기복이 있고 안 될 때는 경기력에 있어서 큰 의미를 남기지 못했다.

상당히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와 프로팀의 갈등, 2000년대 후반부터 유행했던 유망주의 성급한 J리그 이적 이후 몸관리 실패, 이후 따라오게 된 잔부상, K3로의 이적, K리그 로컬 룰로 인한 원치 않는 이적 등 가진 재능에 비해서는 선수생활이 많이 꼬이면서 풀리지 않은 케이스이다.

[1] 2000년대 후반에 진행되었던 J리그의 한국인 유망주 사냥으로 인해 외국에 용병 신분으로 홀로 있으며 몸관리에 실패해 성장이 정체된 전형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쇼난에서는 소리마치 당시 감독에게 항명? 했다가 완전 눈밖에 나버렸단다.[2] 잠적이 아니라지만.[3] 당시 국가대표 공격수가 애매했었는데, 중계진이었던 이상윤이 최승인을 국가대표로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폼 좋았을 때의 최승인의 재능은 월드컵 출전자가 보기에도 괜찮았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