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농구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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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최고봉 | ||
출생 | 1983년 5월 10일 ([age(1983-05-10)]세) | |
광주광역시 광산구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6cm|체중 88kg | |
직업 | 농구선수(파워 포워드 / 은퇴) | |
학력 | 비아남초등학교 (졸업) 광주중앙중학교 (졸업) 광주고등학교 (졸업) 조선대학교 (졸업) | |
프로 입단 | 2007년 드래프트 (3라운드 10순위, 울산 모비스) | |
소속 | 울산 모비스 피버스 (2007~2008) 대구 오리온스 (2008~2009) 서울 SK 나이츠 (2009~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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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농구선수였다. 큰 키는 아니었지만 골밑 득점력으로 궂은 일을 도맡아 오는 역할을 해내며 조선대학교 출신 사상 처음으로 프로에 입단한 선수로 알려졌으나 그다지 활약을 거두지 못하고 은퇴했다.2. 아마추어 시절
광주중앙중학교 3학년 때부터 농구를 시작했다. 이후 광주고등학교에 진학해 2학년 때 협회장기에서 김태술이 이끈 동아고등학교를 상대로 40득점을 기록하며 1년 선배 전정규 등과 함께 우승을 했다. 하지만 심하게 다친 발목 때문에 명지대학교 등 명문 대학교 진학이 사실상 어려워지자 당시 약체 팀이었던 조선대학교로 진학했다.조선대학교에서 임달식 감독의 훈련을 받고 4, 5번 역할을 맡았으며 2006년 10월 31일에 있었던 제43회 전국대학농구2차연맹전에서 남정수 듀오와 함께 성균관대학교를 꺾고 창단 이후 처음으로 결선리그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지만 키의 영향 때문에 2007년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가장 마지막 순위로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 입단하면서 조선대 출신 최초의 프로농구 선수가 되었다.
3. 프로 시절
그러나 모비스에서는 평균 득점이 낮았던 데다 대부분 2분에서 4분이라는 짧은 시간에만 뛰었던 가비지 타임용 선수에 불과했고, 결국 모비스와 재계약이 결렬되어 팀을 떠났다.[1] 이후 상무 입대 지원에도 실패했다가 농구를 계속 하고 싶어 모교인 조선대학교에서 개인 훈련을 한 끝에 2군 드래프트에서 대구 오리온스에 지명되었지만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고, 2009년 2군 드래프트에서 서울 SK 나이츠에 지명되었지만 1군에서 거의 기회가 없었고 결국 은퇴했다.은퇴 후, 현재 분당에 자신의 이름을 건 농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4. 여담
- 롤 모델은 조상현이었다.
[1] 사실 그의 데뷔시즌에는 실력에 비해 기회를 많이 받은 편이다. 당시 모비스가 양동근의 군입대와 외국인 선수 개편 등의 이후로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어 유재학 감독이 여럿을 시험삼아 기용했던 시즌인지라(예를 들어 이후 두 시즌을 1경기도 나오지 못했던 강우형이 이 시즌에 42경기나 나왔다. ) 그나마 자주 나올 수 있었으며 팀 뎁스가 매우 약하던 시즌이라서 20분 가까이 뛴 경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