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9 14:31:54

총통부

정체자: 總統府
간체자: 总统府
1. 개요2. 청사
2.1. 타이베이 총통부2.2. 총통관저2.3. 난징 총통부2.4. 베이징 대총통부

1. 개요

총통부는 대통령 관저를 일컫는 중국어이다.[1] 그러나 한국어의 맥락에서 총통부는 중화민국 총통(대만 총통)의 집무실과 총통을 보좌하는 행정기구들을 통틀어 말한다.

한국의 청와대와 같은 기능이지만, 대통령의 집무공간인 대통령부(大統領府)와 대통령의 거주공간인 관저가 합쳐진 청와대와 달리, 중화민국 총통부는 총통의 집무실로서만 기능한다. 총통 관저는 따로 있다.

2. 청사

2.1. 타이베이 총통부

臺北總統府(대북총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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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에 있다. 일본의 옛 대만총독부 청사였다. 제관양식(帝冠樣式)으로 지어졌는데, 이는 1920~30년대 일본 건축에서 유행하던 건축양식이다. 일본군이 홍콩을 점령했을 때 영국의 총독부이던 홍콩 예빈부도 이런 양식으로 개조했다.

1919년 완공되었으며 2차 대전 말기 미 공군의 폭격을 받아 일부 파괴되기도 했었다.

대만 섬중화민국으로 반환된 이후로는 타이완 성 정부 청사로 쓰려고 했으나 2차 대전 당시 폭격으로 너무 심한 피해를 받아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1948년에 수리가 완료된 이후에는 장제스장수를 바란다는 의미인 개수관(介壽館, 제서우관)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딸랑딸랑 국부천대 이후에는 총통부와 행정원이 이 건물을 썼다가 1957년에 행정원이 일제시대 타이베이 시청 건물로 이사가고 나서는 중화민국(대만) 총통의 집무처로만 사용되고 있다.

2006년에는 건물 이름이 현재 이름인 총통부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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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행사가 거행되는 3층의 대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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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견실.

200신 대만 달러 뒷면에 그려진 건물이 이거다.

김영삼의 지시로 철거된 조선총독부 청사와는 대조적으로 대만총독부 청사는 지금까지도 철거되지 않고 있다. 대만의 경우 한국과는 달리 일본의 식민지배를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대만총독부 건물은 지금도 잘 쓰이고 있으며 타이베이의 유명 관광지 중 하나로 일본인 관광객이 항상 들르는 코스 중 하나이다.

평일 오전 9시에서 12시까지 가이드 참관 하에 관람 가능하며, 외국인도 신분증을 제시하면 가능하다. 매달 1번씩 자유관람일이 있어 이 때는 가이드 참관 없이 자유관람이 가능하다. 마잉주 집권 이전에는 안보상의 이유로 대륙 중국인들의 관람이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가능하다.

총통부 사진에서 보이는 큰 도로는 '케타갈란 대로(凱達格蘭大道, 카이다거란 대로)'라는 이름의 도로로, 본래 이름은 '장제스장수를 바란다'는 의미의 '제서우로(介壽路)'였는데, 천수이볜타이베이 시장이 된 이후 이 지역에 살았던 원주민(케타갈란족)을 존중하고 장제스 독재의 잔재를 없앤다는 의미에서 개칭했다. 총통부 앞에 있는 큰 도로이기 때문에 대만에서 큰 정치적 이슈가 터졌다 하면 이 도로는 한국광화문 앞처럼 하루가 멀다하고 시위가 벌어진다.

타이베이 첩운 단수이신이선 타이완대학병원역에서 제일 가깝고 타이베이역에서도 멀지는 않다.

2019년 6월부터 외국 일반인 관광객한테 총통부를 개방하고, 1박 숙박이 가능하도록 조치하겠다고 한다.

2.2. 총통관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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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통관저 위키백과(중국어)

총통 관저. 총통부에서 일을 끝낸 총통이 실제로 거주하는 관저는 바로 이 총통 관저라고 해서 따로 있다. 총통부에서 1km 남짓 떨어져 있으며, 관용차로 출퇴근한다. 2019년 기준 구글 지도에서는 아주 잘 나온다. 대만에서는 기밀이지만 구글이 씹어서 그렇다.

타이베이시립대학의 맞은편에 있다. 총통관저 바로 뒤에는 중화민국중앙은행이 있다. 샤오난먼역에서 걸어서 6분 정도 걸려서 역세권 위치이다.

대만의 총통관저는 총통 임기가 시작할 때마다 이름이 바뀐다. 차이잉원 총통이 붙인 이름은 永和寓所(영화우소). 총통이 되기 이전 거주지였던 신베이시 융허(永和)구에서 따온 것이다.

해당 관저는 리덩후이 총통부터 사용하였다. 그 리덩후이도 초기 관저는 현재의 관저가 아닌 다른 곳(타이베이 시 다안 구)에 있었다. 2018년 현재 구 리덩후이 관저는 재개발로 철거되었고 현 총통관저는 1997년 입주했다. 리덩후이 이후 천수이볜이 총통관저 신축 계획을 접으면서 후임 총통인 마잉주, 차이잉원도 이 관저에 거주하게 되었다.

리덩후이 이전 총통들은 제각기 다른 관저를 사용했다. 이전 총통의 관저 중 유명한 것이 관광지로도 개방되어 있는 장제스의 스린 관저이다. 옌자간은 부총통 자격으로 대행했으므로 총통관저를 따로 쓰지 않고 사택[2]에서 출퇴근했다. 장징궈의 관저는 2018년 현재 아직 관광지로 개방되지 못하고 있다. 하필이면 장징궈 관저 옆이 군부대라서...

지금 총통관저가 좀 많이 낡아서 재건축 또는 신축이전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아무래도 이전 여론이 좀 더 높다. 총통관저를 신축하게 되면, 현재 총통관저는 관광지로 개조될 가능성이 높다.

차이잉원은 총통관저에 입주했지만 주소지는 신베이 시에 위치한 자택에 그대로 두고 있다. 그러니까 법적으로는 위장전입 상황이다. 2018년 중화민국 지방공직인원 선거타이베이 투표소가 아닌 신베이 투표소에서 투표하면서 이 사실이 알려졌다.

부총통은 관저를 따로 쓰는데, 천청 전 부총통의 자택을 개조했으며 뤼슈롄 부총통부터 이 관저를 쓰고 있다. 전임 부총통 우둔이는 특이하게 관저에 입주하지 않고 자택에서 출퇴근했다. 총통이 서거하고 부총통이 총통 권한대행이 되면, 부총통 관저에서 퇴거를 해야한다. 그러면 부총통은 총통관저에 입주해야 할 거 같지만, 권한대행이라는 명목 하에 총통관저에 입주할 수는 없다. 옌자간이 대표적으로 부총통관저를 쓰다가 장제스 사후 임시 권한대행이 되었을 때 총통관저에 입주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권한대행용 총통관저(...)를 신축하지도 않아서 부총통 관저에서는 나왔으나 사택에서 출퇴근을 했다. 리덩후이도 권한대행 시절에는 사택에서 출퇴근했다.

2.3. 난징 총통부

南京總統府(남경총통부)

본래 총통부는 난징에 있었으며, 1927년부터 1949년 국부천대 때까지 사용되었다. 이 자리는 명나라 초기의 황궁 자리이기도 했으며, 명청대를 거치며 양강(兩江)[3]총독의 집무실로 이용되었다. 태평천국의 난 때는 홍수전(洪秀全)의 궁전이 있었으며, 태평천국의 옥좌가 지금도 내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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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신해혁명 당시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인 쑨원(孫文)의 집무실(임시대총통부, 臨時大總統府)로 사용되었으나, 이후 중화민국 북양정부가 들어서면서 수도는 북경에 있게 되었다. 1927년 장제스(蔣介石)가 북벌을 시작하면서 이 곳을 국민정부의 본부로 삼았다.

중일전쟁 발발로 국민정부는 충칭(重慶)으로 피난하면서 이 곳을 왕징웨이(汪精衛)의 괴뢰정부가 차지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료와 함께 국민정부가 이 곳으로 돌아왔고, 1947년에 건물 이름도 (중화민국) 총통부로 바꿔 "國民政府"라는 현판을 지금 보듯이 "總統府"로 바꾸었으나, 불과 2년 만인 1949년 4월에 중공군에 함락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이후 이 건물을 장쑤성 정부청사로 쓰다가, 지금은 중국 근현대사 박물관으로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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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에는 대만대학생들이 난징 총통부에서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들고 인증샷을 찍어 대만 방송사 메인뉴스를 장식하기도 했다(...).

타이베이 총통부와 마찬가지로 난징 국민정부시기 역시 집무실과 관저는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특히 장제스의 관저 미령궁(美齡宮)은 현재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2.4. 베이징 대총통부

현재 중국 권력의 중심인 중난하이중화민국 건국 초기 북양정부 대총통(大總統)의 집무공간이자 관저였다.

구체적인 내용은 중난하이 문서를 참조.


[1] 가령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청와대를 青瓦臺是大韓民國的總統府(청와대는 대한민국의 총통부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2] 이 사택도 총통부 부근에 있었으며, 지금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남아 있다.[3] 장쑤성 + 안후이성 + 장시성의 3개 성을 일괄적으로 가리키는 명칭. 3개 성인데 왜 2를 뜻하는 양(兩)을 썼냐면 이 당시 장쑤성과 안후이성은 남직예(南直隸: 명)/강남성(江南省: 청)이라는 이름의 하나의 성이었기 때문이다. 장쑤성과 안후이성으로 나뉘게 된 것은 1666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