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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웨식스의 체울린 (Ceawlin of Wessex) |
생몰년도 | ? ~ 593년 |
재위기간 | 560년 ~ 592년 |
종교 | 앵글로색슨 이교 |
라틴어: Ceaulinus (체아울리누스)[2]
1. 개요
웨식스 왕국의 제3대 국왕이다. 초대 국왕인 체르디치의 손자이며 제2대 국왕인 킨리치의 아들이다. 웨식스 국왕 중에는 첫번째로 브레트왈다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기도 하다.[3] <앵글로색슨 연대기>에 따르면 고대 웨식스 왕 중에서 재위기간이 세번째로 길다.[4] 하지만 후대 연구에 따르면 재위기간이 많이 부풀려졌다고 한다.2. 상세
《앵글로색슨 연대기》에서 계보를 읊는 것을 제외하면 556년 브리튼인들과의 싸움인 베란부르흐(Beranburh) 전투에서 아버지 킨리치와 함께 참전한 것이 첫 기록이다.568년 위반둔(Wibbandun)에서 체울린과 그의 형제 쿠다(Cutha)가 애설버트와 싸워 그를 켄트로 몰아내고, 두 앨도르만[5]인 오슬라프(Oslaf)와 크네바(Cnebba)를 죽였다.
577년 데오르함(Deorham/Dyrham) 전투에서 브리튼인들과 싸워 콘마일(Conmail), 콘디단(Condidan), 그리고 파린마일(Farinmail) 세 왕을 죽이고, 글로스터(글레붐), 사이런세스터(코리니움), 바스(아쿠아 술리스)의 세 도시를 차지했다. 이 전투는 그 이전까지는 육지로 이어져 있었던 브리튼인의 영토인 웨일스와 콘월 반도의 지역적인 분리를 불러왔다.
584년 페단 레아그(Fethan leag)에서 체울린과 쿠다가 브리튼인들과 싸웠고, 쿠다가 전사했다. 격노한 체울린은 여러 마을들과 수많은 전리품을 빼앗은 후, 자신의 영토로 돌아갔다.
592년(기록에 따라 591년) 워드네스베오르게(Wodnesbeorge) 전투[6]에서 브리튼인에게 대패했다.[7] 그 후 체울린은 쫓겨나고 593년에 죽었다. 그 후 (체울린에게는 조카가 되는) 쿠다의 아들인 체올이 6년을 다스렸던 것으로 여겨진다.
수도사 성 베다(Bēda)가 브리튼 땅의 패자, 즉 브레트왈다의 목록에 두 번째로 기록할 만큼[8] 체울린의 세력은 대단했으나 오딘의 무덤 전투에서 패배하고 쫓겨나 죽음을 맞게 되는 꽤나 극적인 인생을 살았다.
여담으로 체울린이 오딘의 무덤 전투에서 브리튼인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597년에 캔터베리의 어거스틴이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명령을 받고 잉글랜드로 건너왔다. 그 후 그는 초대 캔터베리 대주교[9]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7세기부터 켄트 왕국을 시작으로 앵글로색슨족은 점차 고유의 게르만 신앙을 버리고, 기독교(가톨릭)로 개종하게 된다. 따라서 오딘의 무덤 전투는 여러모로 상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1] 고대 영어에서는 전설모음과 이중모음 앞의 c는 k보다 tʃ로 발음되는 경우가 잦으며, c 다음의 ea는 æ로 발음.자세한 발음법은 여기를 참고.[2] 로마 공화정 말기-제정 초기 때와 달리 이 시기 라틴어의 발음은 고대 영어와 비슷했다.[3] 그 다음으로 브레트왈다 칭호를 받은 웨식스 왕은 에그버트로, 약 200년 후의 인물이다.[4] 첫번째는 이네, 두번째는 에그버트.[5] ealdormann. 영주라는 뜻이다. 그런데 기록상 앨도르만은 8세기에나 등장한 것으로 여겨지므로 명백히 시대착오적인 묘사이다.[6] 원래 '워덴의 무덤', 즉 '오딘의 무덤'이라는 뜻이나 지금은 Adam's grave로 불린다.[7] 베다의 저서, 《색슨 연대기》, 전설들에 따르면 웨식스 왕가를 비롯해 잉글랜드로 넘어온 앵글로색슨 지도자들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공통적으로 오딘이 나온다. 그러니 오딘의 무덤 전투에서 오딘의 후손이 패배했다는 것은 꽤나 의미심장하다.[8] 첫 번째는 서식스의 엘라이다.[9] 현재는 세계성공회의 최고 성직자로, 로마 가톨릭의 교황이나 동방 정교회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와 비슷한 위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