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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이름 | 한국어 | 명과 청 시대의 황릉 | |
중국어 | 明清皇家陵寝 | ||
영어 | Imperial Tombs of the Ming and Qing Dynasties | ||
프랑스어 | Tombes impériales des dynasties Ming et Qing | ||
국가·위치 | [[중국| ]][[틀:국기| ]][[틀:국기| ]] 베이징시 창핑구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지정번호 | 1004 | ||
등재연도 | 2000년 | ||
등재기준 | (ⅰ)[1], (ⅱ)[2], (ⅲ)[3], (ⅳ)[4], (ⅵ)[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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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淸西陵[6]청나라의 황제들 중 네 황제가 안장된 무덤군을 일컫는 말이다. 중국 허베이성 바오딩시에 위치하며, 베이징의 서쪽에 있다 하여 '청서릉'이라 불린다.
2. 역사
청나라의 베이징 입관 이후 순치제와 강희제는 청동릉에 묻혔으나 그 다음 황제인 옹정제는 청동릉에 있던 자신의 무덤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자 풍수지리가를 동원하여 베이징 서쪽 이현(易縣)[7]을 새로운 무덤 장소로 정했는데 그곳이 바로 청서릉이 되었다.[8]옹정제 다음에 즉위한 건륭제는 균형을 위해 소목제도를 적용해서 다음 황제들부터 청동릉과 청서릉에 번갈아 안장되도록 지시하였으나 그렇게 엄격하게 준수되지는 않았다.# 옹정제 이전 황제인 순치제와 강희제는 청서릉 조성 전에 붕어했기 때문에 청동릉에 나란히 안장되었고, 도광제는 본래 청동릉에 안장되어야 했으나 청동릉에 건설하던 황릉에서 물이 새는 하자가 발생하자 청서릉에 새로 황릉을 건설하였기 때문에 도광제 때 한 번 순서가 틀어졌다.
2000년 중국 정부는 청동릉, 청서릉과 명나라 가정제의 아버지의 무덤 현릉(顯陵)을 묶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3. 목록
태조 천명제(누르하치)와 태종 숭덕제(홍타이지)는 베이징 입관 전에 사망하여 당시 청나라의 수도였던 선양에 묻혔고, 순치제, 강희제, 건륭제, 함풍제, 동치제는 청동릉에 묻혔으며,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는 사후 28년 뒤에 청서릉 부지에 안장되었으나 일반적으로 청서릉으로 인정받지는 않는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ecd21, #f9d83e 20%, #f9d83e 80%, #fecd21); color: #00386a;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00386a>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천명제 | 숭덕제 | 순치제 | 강희제 | |
<rowcolor=#00386a> 제5대 | 제6대 | 제7대 | 제8대 | |
옹정제 | 건륭제 | 가경제 | 도광제 | |
<rowcolor=#00386a> 제9대 | 제10대 | 제11대 | 제12대 | |
함풍제 | 동치제 | 광서제 | 선통제 | |
}}}}}}}}} |
3.1. 태릉(옹정제)
제5대 황제 세종 옹정제의 능.3.2. 창릉(가경제)
제7대 황제 인종 가경제의 능.3.3. 모릉(도광제)
제8대 황제 선종 도광제의 능.3.4. 숭릉(광서제)
제11대 황제 덕종 광서제의 능.3.5. 헌릉(선통제)
제12대 황제 선통제의 능. 일반적으로 청서릉으로 인정받지는 않는다.4. 관련문서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할 것[3]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4]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5]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다른 기준과 함께 적용 권장)[6] 간체자로는 清西陵.[7] 간체자로는 易县.[8] 야사에서는 옹정제가 아버지 강희제의 유서를 조작하여 황제가 되면서 사후 부친을 차마 뵐 낯이 없어 무덤자리를 바꾸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