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陳) 국군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ece5b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81818,#e5e5e5 | 초대 호공 | ||||
2대 신공 | 3대 상공 | 4대 효공 | 5대 신공 | 6대 유공 | |
7대 희공 | 8대 무공 | 9대 이공 | 10대 평공 | 11대 문공 | |
12대 환공 | 13대 폐공 | 14대 여공 | 15대 장공 | 16대 선공 | |
17대 목공 | 18대 공공 | 19대 영공 | 20대 하징서 | 21대 성공 | |
22대 애공 | 23대 진군 유 | 24대 혜공 | 25대 회공 | 26대 민공 | |
삼황오제 · 하 · 상 · 주 · 춘추시대 · 전국시대 · 진(秦) · 한 삼국시대 · 진(晉) · 오호십육국 · 북조 · 남조 · 수 · 당 오대십국 · 송 · 서하 · 요 · 금 · 원 · 명 · 청 중화민국 국가원수 · 중화민국 총통 · 중화인민공화국 | }}}}}}}}}}}}}}} |
진(陳)나라 19대 국군 영공 靈公 | ||
성 | 규(嬀) | |
씨 | 진(陳) | |
휘 | 평국(平國) | |
아버지 | 진공공(陳共公) 규삭(嬀朔)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599년 |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613년 ~ 기원전 599년 (15년) |
[clearfix]
1. 개요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陳)나라의 제19대 군주. 진공공(陳共公)의 아들. 진성공(陳成公)의 아버지. 하희(夏姬)와 놀아난 것으로 유명하다.2. 생애
2.1. 다소 평범했던 초, 중기
진 영공 원년(기원전 613년), 노문공, 송소공, 위성공, 정목공과 진(晉)나라의 대신 조돈(趙盾)은 신성에서 회맹했다. 다시 회맹할 때는 초나라에게 순복하고 또한 주(邾)나라를 칠 것을 획책하였다.진 영공 4년(기원전 610년), 진 영공은 공손 녕, 진(晉)나라의 순림보, 위(衛)나라의 공달, 정나라의 석초가 군사를 거느리고 송(宋)나라를 쳤다. 송문공이 송 소공을 시해한 죄를 묻기 위해서였다.
진 영공 6년(기원전 608년), 초(楚)나라의 왕 초장왕(楚莊王)이 정나라와 함께 진(陳)나라를 쳤다. 덤으로 송나라도 쳤다. 진(晉)나라의 조돈은 진(陳)나라와 송나라를 구했다. 진 영공, 송 문공, 위 성공, 조문공과 진(晉)나라가 비림에서 회합해 정나라를 치고자 했다.
진 영공 7년(기원전 607년), 진 영공은 진(晉)나라, 송나라, 위나라 삼국과 정나라를 쳤다.
진 영공 10년(기원전 604년), 초 장왕이 진(晉)나라를 따르는 정나라를 치자 진 영공은 초 장왕에게 강화를 청했다. 이때 진(晉)나라의 순림보가 정나라를 구하고자 진(陳)나라를 쳤다.
진 영공 11년(기원전 603년), 진(晉)나라, 위나라 양국은 진(陳)나라가 초나라를 섬겨 진(陳)나라를 쳤다.
2.2. 하희와 놀아나다.
진 영공 14년(기원전 600년), 진(晉)나라의 순림보가 병사를 거느리고 진(陳)나라를 쳤다. 이때 진 영공과 대부 공영, 의행보와 진(陳)나라의 왕족 출신인 하어숙의 마누라이자 사마 하징서의 어머니 하희(夏姬)와 정을 통했다. 그리고 하희의 겉옷과 속옷을 가지고 섹드립을 치자 대부 설야가 횡음무도한 짓을 하지 말라고 목숨을 걸고 간했으나 공영과 의행보가 진 영공의 묵인하에 설야를 살해했다.[1][2]2.3. 최후
진 영공 15년(기원전 599년), 진 영공은 공영, 의행보 3사람과 하징서와 술을 마시는데, 그 내용이 실로 가관이었다."하징서는 과인과 닮았으니 하징서는 과인의 아들이 아니겠는가?"
공영과 의행보 또한 옳다고 하면서 각기 자신과도 닮았다는 패드립을 치니 하징서가 아무리 인내심이 강해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징서는 큰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매복시킨 궁노수로 진영공을 살해했다고 한다. 이에 공영과 의행보는 초나라로 달아났고, 진(陳)나라의 태자 규오는 진(晉)나라로 달아났다.
다음 해 초 장왕은 하징서를 죽이고 진(陳)나라를 멸했으나 신숙시의 말을 듣고 태자를 세우니 그가 바로 진 성공이다. 그는 내란 평정 뒤 진 영공의 장례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