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캠퍼스인가 컴퍼니인가
우리는 '시민'이 아니라 기업이 원하는 '완전체'를 만든다 - 뒤표지 문구
2015년에 내놓은 사회학 연구원 오찬호[1]의 저서로서, 정확한 제목은 <진격의 대학교-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 대학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로 큰 화제가 된 후 이 책으로 또 다른 사회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었다. '취업 잘 되는 대학이 좋은 대학'이라는 논리 때문에 기업에게 휘둘려 사실상 취업 학원으로 전락한 한국 대학을 비판한다. 대학 캠퍼스에 가면 으레 찾아볼 수 있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2] 같은 말은 현재의 타락한 한국 대학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우리는 '시민'이 아니라 기업이 원하는 '완전체'를 만든다 - 뒤표지 문구
특정한 대학의 이름을 들면서 '이 대학은 이게 문제다'라고 말하려 하지 않고, '진격대'라는 가상의 대학과 '해준'이라는 가상의 대학생을 등장시켜서 한국 대학들의 문제점을 고발한다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오찬호는 이 책에 나오는 설명을 보고 '이거 그 대학 얘기 아니었나' 하기보다는, 문제의 본질을 확실히 인지하고 해결하자는 마인드를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이 책에서는 대학교만을 비판하지 않는다. 비단 대학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학교를 다니는 대학생들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2. 주요 주장
이 책에 나오는 오찬호의 주요 주장을 정리.2.1. 학과 통폐합
요즘 한국 대학들은 취업에 도움이 안 되는 학과는 없애버리거나, 경영학과 같이 취업에 유리한 학과와 절묘하게 섞는 꼼수를 시전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다 보니 기형적인 이름의 학과가 등장하는 것은 물론, 사학과, 철학과, 독문과같이 취업이 잘 안 되는, 주로 인문학 계열 학생들에게 경영학과 복수 전공을 하도록 회유한다는 것이다.특히 철학과는 통폐합 1순위로 생각된다. 취업률만으로 학문의 가치를 판단하여 철학을 쓸데없는 학문이라고 일축해버리는 것이다. 비단 철학과뿐만 아니라 많은 학과들이 이러한 위기에 처해 있으며, '왜 그런 쓸데없는 거 배우냐' 하는 조롱에도 시달린다. 이 점은 비단 대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며, 대학생들의 사고방식에도 큰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있다.
2.2. 불합리한 제도
2.2.1. 학점 관리로 인한 불합리한 강의 선택
일단 학점이 좋아야 취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거할 수 있으므로 취업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학점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해외에서 살다 온 학생들이 영어 초급반을 신청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영어의 달인들에겐 영어 초급반에 들어가면 A+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일부 교수들은 '너는 이미 그 나라의 언어를 잘하므로 이 강의 들어오지 마라'라고 저지한다고 하지만, 이는 효과가 없고 학교 측에서는 이런 현상을 묵인한다.2.2.2. 토익 시험 의무화
대학 졸업장을 받으려면 토익 시험을 의무적으로 치러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서는 '해준이가 대학 커뮤니티에 왜 토익이 의무인지 모르겠다는 글을 올렸다가 그럼 토익이 왜 불필요한지 설명해보라는 말에 직면했다'는 상황을 설정하여 이 문제에 대해 요즘 대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그렇다면 토익이 왜 불필요한지 설명해보라라는 반박은 합리적일까? 일견 괜찮은 반박으로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해준이는 '토익이 불필요하다'는 말을 결코 하지 않았으므로 이는 당치도 않은 이야기다. 이것은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가장 낮은 수준의 반박이랄 수밖에 없다.
2.3. 강박에 가까운 영어 집착
예를 들어, '저 연극 동아리 해요'라고 하면 '왜 그런 쓸데없는 거 하냐'라는 반응이 돌아오지만, '저 영어 연극 동아리 해요'라고 하면 반응이 180도 달라진다는 것이다.[3] 동아리뿐만 아니라 강의도 죄다 영어로 진행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심지어는 훈민정음 해례본과 공자의 철학을 영어로 강의한다!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지행합일(知行合一)'을 'unity of knowledge and action'으로 꾸역꾸역 번역해가면서 강의하기 때문이다. '지행합일'을 알기 이전부터 그런 것들을 죄다 영어로 배운다는 건 당치도 않다.영어 강의만 '절대평가'로 이루어진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그러다 보니 수준이 하향 평준화가 되어버리고, 강의의 분위기도 산만할 수밖에 없다. 한국어로 개념만 달랑 몇 줄 끄적여서 제출하면 점수를 주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이 강의는 소위 '꿀강의'로 소문이 나고, 학생들이 순전히 학점만을 보고 강의실에서 시간만 때우다 간다는 것이다.
3. 비판
3.1. 친기업적 교육은 잘못인가
이 문제는 대학에서 어떤 교육을 제공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점 문제에 해당한다. 저자는 대학 교육의 목적을 '학문 탐구, 지성의 요람, 기본적으로 '시민'을 배출하는 곳'으로 정의한 뒤 그 목적을 방해하는 친 기업적 행보에 대해 비판한다. 저자가 정의한 목적이 모든 고등교육기관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합당한지 저자의 주장을 비판할 수 있다.대학은 의무교육 기관이 아니다.[4] 부모가 자식을 초등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벌금을 내지만 대학에 보내지 않는다고 벌금을 내지는 않는 것이다. 지원자는 대학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저자는 부실한 대학이라는 평가를 면하기 위한 대학의 평가를 비판하고 토익 의무화를 하는 것을 비판하지만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의 일부 학과에는 그런 토익 기준이 없으며 부실 대학도 아니고, 경쟁률이 1:1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원하기만 한다면 거의 누구나 갈 수 있다.
물론, 위 대안은 대부분의 수험생이 원하는 방법은 아니다. 따라서 지원자가 특정 대학에 가기를 원하는 상황으로 제한해 가정해보자. 지원자가 특정 대학에 가기를 원한다면 그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이 지원자 자신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지원자는 그런 대학에 가는 것이 가장 이득이 될 것이고, 반대로 대학은 지원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것이 지원자들에게 선호받기에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대학에 가는 것이 지원자에게 가장 이득이 될까?
지원자가 특정 학문을 깊이 익혀 학자가 되고자 한다면 그 학문을 잘 가르치는 곳에 가는 것이 가장 이득이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부터 사회학, 철학 등을 전공하기를 깊이 원한 학생이 있다면 입시 점수가 조금 남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학과에 갈 가능성이 다른 수험생들보다 높다. 이런 학생들에게 해당 학문을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교육을 방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00대학교에서는 채플을 강제 이수하여야 하는데 이는 신자가 아닌 학생들에게는 교육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그런데 대개의 학생은 해당 학문을 깊이 익혀 학자가 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는 데에서 저자의 주장과 현실 사이에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가는 비율은 15%를 넘지 않는다.
취업을 위해서는 특정 대학교가 기업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좋으며, 이를 위해서는 해당 대학생들 대부분이 기업에서 원하는 특정 능력을 가지고 있는 쪽이 유리하다. 따라서 저자의 주장은 15%의 권익을 늘리기 위해 85%의 권익을 줄이자는 방안으로 볼 수 있으며, 별로 민주적이지 않다.
학문 연구를 원하는 15%와 취업을 원하는 85%를 모두 만족시키려면 저자의 주장처럼 대학에서 취업 관련 제도들을 줄이기보다는 유럽의 university와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 그랑제꼴과 위니베흐씨테를 분리하듯 대학의 운영 목적을 다양하게 하여 양쪽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지원자 자신이 지망하는 대학이 지나친 취업교육으로 인해 학문 연구에 방해를 주고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그런 대학에 가지 말고 포항공과대학교, KAIST, 서울대학교 등 학문 연구를 중심으로 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유리하고, 사회적으로는 국가에 학문 연구 중심 대학을 15%까지 늘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는 저자가 원하는 방향과 맞지 않다. 대개의 한국 기업들은 자신들이 어떤 지원자를 원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똑똑한 사람'을 찾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면 똑똑한 사람이 많이 가는 대학교 출신을 뽑게 되고 그러면 학문 연구 중심 대학이 학벌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므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서 밝힌 저자의 학벌 반대 주장과 배치되게 된다.
3.2. 학문 연구에서도 정량평가는 중요하다
'진격대'에 가상의 교수 '준해' 씨가 있다고 하자. 준해 교수는 학문 연구에는 아무 관심이 없고, 대학원생들은 지도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맨땅에 헤딩하듯 연구를 하고 있다. 오히려 준해 교수가 이상한 방향으로 연구를 강요하여서 연구에 방해만 안 받으면 다행이다. 그래서 준해 교수가 출장이나 안식년 등으로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않을수록 대학원생들이 연구에 방해를 덜 받아서 좋아한다. 진격대에도 학내 부조리 상담 센터는 있지만, 대학원생이 자기 이름 걸고 준해 교수를 찔렀다가는 졸업 자체가 힘들어지고 학계에서 매장당할 가능성이 높기에 모두 쉬쉬하고 있다. 그리고 준해 교수가 딱히 증거가 남을 만한 불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고, 병적인 증상도 없고, '무능하다'는 정성적인 평가만으로 교수를 해고하기 위한 증거는 부족하기 때문에 찔러봤자 해고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에 모두 쉬쉬하고 있다. 이런 교수들은 현실 속에서도 충분히 많다.학문 연구, 취업, 시민의식 함양 등 대학의 그 어떤 목표에도 맞지 않는 '준해 교수'를 정상적인 교수들과 구분지어서 대학에서 퇴출시킬 수 있는 방법이 정량평가 외에 존재할까?
또 진격대 사회학과에서는 5년에 1명 정도씩 사회학 교수를 모집하고 있다. 자리는 1개인데 갑, 을을 포함해 30명이 지원했다. 6명의 사회학과 교수 전원이 회의를 열어 고민한 끝에 갑을 신임 교수로 임용하기로 하였다. 을은 화가 나서 '내가 교수직에 떨어진 이유'를 물었다. 교수진은 '교수 전원이 오랜 회의 끝에 갑이 더 훌륭하다고 판단해서 임용하였다'고 응답했다. 을은 '내가 갑보다 못할 것이 없다. 학벌, 나이 제한, 성차별,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에 의해 차별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현실에서는 을이 떼쓰는 것일 가능성도 있고, 반대로 교수진이 갑에게 뇌물을 받고 임용시켜 준 것이 발각되어 여러 명이 구속되는 일도 종종 있다.
이런 모든 상황을 고려한다면 진격대 사회학과에서 취할 수 있는 수단은 세 가지다. 매년 30명씩 교수를 뽑아서 사회학과 교수직을 7명에서 총원 700명으로 100배 확대시켜서 다들 큰 불만 없이 교수직에 도전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정량평가를 도입해서 떨어진 지원자들이 납득할 수 있게 하고 이유없는 차별이 있었을 경우 시정할 근거를 제공하는 것, 마지막으로 탈락한 지원자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힘으로 찍어누르고 소송을 제기할 때 법률을 동원해서 이기는 것이다. 셋 중 가장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은 정량평가를 도입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