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시계가 없었던 옛날에는 밤 시간을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밤에는 물시계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물시계로 잰 시각이 정확한지 점검하려면 별자리를 관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작정 별자리를 관찰하기만 하면 바로 밤 시간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옛 사람들이 별자리를 보고 밤 시각을 알 수 있었던 것은 24절기일의 한밤중에 남중하는 별자리를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보를 기록한 표를 중성기(中星記)라고 불렀다.』 [2][3]
『중성기란 24절기일의 해질녘과 해뜰녘에 남중하는 별자리(중성)를 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전통 천문역법에서 해질녘은 혼(昏), 해뜰녘은 효(曉)에 해당한다. 혼각(昏刻)과 효각(曉刻)이라는 용어도 같은 말이다. 고대로부터 동양의 천문학자들은 혼과 효에 남중하는 별자리를 횬효 중성이라 불렀다. 조선 초의 천문역법에서는 하루를 1만 분으로 정하였다. 혼이란 해가 진 후 250분간 어스름이 남는 시간, 효란 해가 뜨기 전 250분간 어스름이 보이는 시간을 말한다. 250분은 현대 시간으로 36분에 해당하여 지구 자전각으로 9도에 해당한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중성기는 국보 제228호로 지정된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수록되었다. 천문도의 상단 중앙에 새겨진 원형 표가 바로 중성기이다. 이것과 똑같은 자료가 「국조역상고」[4]에도 수록되었다. 이 표는 조선초의 천문학자 류방택이 계산한 것으로 '을해년 중성기'라 불린다. 국가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천문도에 중성기가 포함되었음은 전통 천문학에서 중성 계산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연구에 의하면, 천문역법에서 말하는 중성이란 현대 천문학의 항성시와 동일한 개념으로 계산방법이 간단하지 않다. [5] 수시력의 계산법을 터득하여 한양에 맞는 중성 계산이 가능하게 된 것은 세종 때의 일이다[6]. 』[7]
[1] 제목이 상단(top)에 있는 면을 T면, 아래(bottom)에 있는 면을 B면이라 함.[2] 한영호 ,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실체 재조명', 2007, 고궁문화 제 1호, 11p[3] 한영호, 남문현, '조선의 경루법', 2007, 동방학지, 143호 167p[4] 서호수 등 (1975)[5] 김동빈 등 (2010)[6] 유경로 (1999)[7] 김은혜ᆞ박아영ᆞ이효정ᆞ윤효정, '천상열차분야지도에 표시된 중성기의 검증', 2010, 《WISE 주니어 과학논문집》제3권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