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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니어 시절
늦둥이 외동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예체능을 배웠는데, 8살 때 취미로 스케이트를 배웠다고 한다.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자 초등학교 2학년 때 선수 권유를 받고 목동 빙상장에서 본격적인 훈련을 받게 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평생의 은사인 모지수 코치를 만나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2. 2001-02 시즌
목일중학교 2학년 때 주니어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2002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개인종합 3위를 기록했다. 이후 동갑내기 라이벌 고기현, 1살 어린 변천사와 같이 국내 무대를 평정했다. 이 당시 베테랑 선수였던 안상미 SBS 쇼트트랙 해설위원은 "당시 고기현, 변천사, 조해리가 내 자리를 위협하는 무서운 후배들이었다."고 회고했다.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 김윤미가 무려 만 13세 3개월에 출전해 쇼트트랙 여자 계주 금메달을 따낸 후 ISU는 나이제한 규정을 신설하여 시즌 시작일(7월 1일)을 기준으로 만 15세 이상 선수들에게만 출전 자격을 제한하였다. 조해리의 생일은 1986년 7월 29일로 겨우 4주 차이로 자격 조건이 되지 않아 국가대표 선발전에도 출전하지 못했고,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학교 동창 고기현이 금메달을 따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3. 2002-03 시즌
나이제한 규정을 충족시킨 후 만 15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선발되었고 월드컵에서 준수한 활약을 하였으며 세계선수권 개인전에도 출전한다. 그러나 세계선수권에서 양양(A)의 7연패를 막기 위해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의 에이스이자 한국체육대학교 파벌의 최은경을 위해 팀플레이에 희생당했다는 의견도 존재했다.[1]4. 2003-04 시즌
국가대표에 선발되었으나 이 때부터 선수 생활 내내 그녀를 괴롭힌 부상의 악령에 시달렸으며 부상으로 인해 1-2차 월드컵에 결장했다.5. 2004-05 시즌
이후에도 부상으로 이전과 같은 폼을 찾지 못했고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떨어졌다.6. 2005-06 시즌
부상 회복에 전념하고 국가대표 1차 선발전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이며 진선유에 이어 2위를 했고, 누구나 조해리가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가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이 당시 극심했던 파벌 싸움과 관련되어 여러가지 사건이 일어났는데 빙상연맹의 중추를 잡고 있던 한체대파에서 2005 세계선수권에서 한체대파인 최은경과 강윤미가 2-3위를 하자 "전 시즌 세계선수권 1-3위까지 1차 선발전을 면제한다."고 규정을 바꿔버렸다.[2] 선발전 직전 바꿔 버린 규정에 반발하여 비한체대파인 진선유는 스스로 면제권을 포기하고 1차 선발전에 출전하였다.1차 선발전에서 예비 8명에 뽑힌 이후 조해리는 여름에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였는데, 2차 선발전을 앞두고 훈련 도중 발등에 금이 가는 큰 부상을 입으면서 퇴촌했다. 그런데 조해리는 몇 년 후 인터뷰에서 "당시 파벌 싸움이 너무 심했고, 퇴촌하는데도 어렵게 나와서 매우 힘들었다."고 말하였다. 한체대파가 여자부를 장악했던 시절 비한체대파인 조해리와 진선유가 불이익을 받았을 거라는 것은 정론이다. 이후 자살 사이트에 가입했을 정도로 우울증을 앓았다고 하며 선수 생활을 포기하려고 생각했으나, 모지수 코치의 보살핌으로 다음 올림픽에 다시 도전하게 된다.
7. 2006-07 시즌
부상 후유증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떨어졌다.8. 2007-08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6위를 하며 월드컵 멤버로 세번째 태극마크를 달게 된다. 1-2차 월드컵에 참가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다시 큰 부상을 입으며 국가대표를 반납하고 퇴촌했다.9. 2008-09 시즌
또 다시 재활을 하며 한 시즌을 보낸다. 2번의 큰 부상을 입으며 몸이 거의 일반인 수준으로 돌아갔다고 하며, 스케이트를 타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고 한다.10. 2009-10 시즌
10.1. 국가대표 선발전
1000m과 1500m에서 모두 우승하며 국가대표 선발전 1위로 생애 첫 올림픽 출전을 확정지었다. 1위가 확정된 후 통곡을 하면서 인터뷰를 했는데 그동안의 마음 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었다.10.2. 월드컵 시리즈
하지만 선발전 1위라는 부담감이 심했는지 생각만큼 월드컵에서 큰 활약은 하지 못했다. 언론에서는 역대 최약체 국가대표팀이라는 기사를 쏟아내었으며 쇼트트랙 팬들은 부상이었던 진선유와 정은주를 찾았다. 특히 왕멍과 저우양이 맹활약을 펼치던 시기였고 3000m 계주에서 단 한 번도 중국을 이기지 못해 기대보다 우려가 더 컸다.10.3.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첫 경기인 500m는 준준결승 밖에 못 갔으나 주종목도 아니고 원래 한국 여자선수들이 취약했던 종목이기에 큰 상관은 없었다. 2번째인 1500m에선 무난히 결승에 진출했고 결승전에 한국선수들이 3명이었기에 메달 획득이 유력해보였지만 저우양의 활약으로 인해 결과는 5위. 후배인 이은별과 박승희가 은메달과 동메달을 받았을 때 그녀는 이를 바라보기만 해야했다. 남은 경기는 당시 3000m 계주와 1000m였다.당시 중국의 왕멍과 저우양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점이라서 실질적으로 개인전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금메달을 노리기는 것은 어려웠다. 반면 계주는 팀워크가 중요하기에 금메달의 가능성이 있고 4연패의 기록도 있어 당시 여자선수들은 주말외박도 반납하고 자청해서 훈련을 했다. 그녀는 팀의 에이스가 맡는 2번 주자로 출전해 월드컵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중국을 이기고 세계 신기록을 세우면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3]
실격 판정 후 여자대표팀의 모습 왼쪽부터 김민정, 박승희, 이은별, 조해리 |
이 날 동료들과 새벽까지 숙소에서 손잡고 울었다고 하며 그녀는 4년 뒤 "(밴쿠버 올림픽 때) 땀과 눈물이 배신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라고 인터뷰했다. 계주 경기의 여파가 컸는지 1000m 준결승 경기를 끝으로 그녀의 첫 올림픽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10.4. 2010 세계선수권
1500m와 3000m 슈퍼파이널에서 은메달, 1000m에서 동메달을 따며 개인종합 3위를 하며 생애 첫 세계선수권 포디움에 올랐다. 2010년 당시 조해리의 나이는 24살로 이미 쇼트트랙 선수로는 노장이었고, 더 이상의 올림픽은 힘들다고 생각되었지만, 2014 소치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또다시 도전하기로 결심했다.11. 2010-11 시즌
타임레이스로 바뀐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해 2003년 이후 7년 만에 2시즌 연속 국가대표에 선발되고, 26살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1500m 금메달과 1000m, 3000m 계주 은메달을 받았고 월드컵에서도 한국팀의 에이스로 활약을 했다. 아쉽게도 계주에서는 일본 선수의 무리한 추월로 다른 선수가 넘어져 은메달을 받았다.2011 세계선수권에선 1000m와 3000m 슈퍼파이널 금메달, 1500m 동메달을 따면서 생애 첫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우승을 했다. 이는 대한민국 선수 역대 최고령 우승 기록으로 그녀의 철저한 자기관리와 노력을 보여준다.
12. 2011-12 시즌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의 역대 최악의 시즌으로, 박승희가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하차했고 오직 본인 혼자서 고군분투했다. 그래도 혼자 결승에 올라가 대한민국 선수들의 도움없이 외국선수들의 견제 속에서 메달을 땄고, 월드컵 시리즈에서 얻은 금메달 3개 중 2개가 조해리의 것이었다. 2012 세계선수권에선 1000m 금메달을 땄지만 다른 종목에서 결승 진출에 실패해 개인종합 포디움에는 들지 못했다. 이 시즌을 "정말 힘들고 포기하고 싶었던 시즌"이라고 말할 정도였는데 이런 시즌을 맏언니이자 에이스로 이끌어 나갔다는 것으로 그녀의 대단함을 느끼게 한다.13. 2012-13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 3위로 4시즌 연속이자 통산 7번째로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1-4차 월드컵에서 무난한 활약을 보여줬으나 소속팀의 요청으로 퇴촌하여 국내 대회에 출전했다.14. 2013-14 시즌
14.1. 국가대표 선발전
대표팀에서 하차하여 국가대표 1차 선발전 타임레이스에 출전했고 무난히 2차 선발전에 진출했다. 이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은 박승희-심석희가 개인전을 사실상 예약해놓은 상황이었고, 남은 개인전 1자리와 계주 멤버 2자리를 놓고 다른 선수들이 경쟁하는 구도였다. 조해리의 시간이 지나도 쇠퇴하지 않는 기량과 노련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남은 개인전 한 자리를 그녀가 차지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김아랑이 깜짝 등장하여 선발전 4위로 계주에만 출전하게 되었다.14.2. 월드컵 시리즈
계주에만 출전했고 3번/4번[5] 주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 경기 외적으로도 맏언니로서 대표팀의 어린 선수들을 보듬어주며 팀분위기를 이끌었다.[6] 2013-14 시즌 여자 국가대표팀은 역대로 봐도 유래 없을만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랑했고, 이런 팀 분위기는 역대 최강의 드림팀이라는 성적으로 나타났다.14.3. 2014 소치 동계올림픽
1500m 출전의 계기가 된 박승희의 500m 결승전 경기 경기 직후 조해리가 박승희를 다독거려주는 모습 |
그리고 대망의 여자 3000m 계주, 밴쿠버 올림픽을 설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결승전에서 3번째 주자로 나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결과 드디어 꿈에 그리던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서 2002년 국가대표에 데뷔한 이래 12년 만에 올림픽 메달을 손에 넣었다. 올림픽만 되면 야속할 정도로 그녀를 외면했던 행운의 여신은 마침내 올림픽 금메달을 허락했다.
덤으로 4년 전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대표팀을 울리고 정상에 섰던 중국 국가대표팀은 박승희가 마지막 2바퀴를 남기고 심석희로 주자를 넘길 때 앞서있었던 3번째 주자가 마지막 주자를 밀어주고 난 후 옆으로 빠지지 않고 심석희의 진로 방해를 해서 실격당했고 특히 반칙을 당했음에도 심석희가 마지막 바퀴에서 추월까지 성공하는 맹활약을 펼쳤으니 4년 전의 복수에 완벽히 성공한 셈이 되었다.[7]
이로써 그녀는 만 27세 7개월로 최고령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라는 기록도 세웠고, 그녀의 긴 역경을 알고있는 동료선수들, 쇼트트랙 관계자들과 팬들 모두 진심으로 그녀를 축하했다.
15. 2014-15 시즌
몇년 전부터 본인이 소치 동계올림픽이 마지막이라 될거라고 말해왔고, 29살의 나이로 국가대표로 선발되고 올림픽에 출전한 것은 국내 쇼트트랙에서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졌기에 팬들은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국가대표 은퇴를 했기에 선발전에는 불참했다.16. 2015-16 시즌
국내대회를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했다.17. 은퇴
2016년 4월 3일 국가대표 2차 선발전 마지막 날에 은퇴식을 가지며 현역 은퇴를 했다.2014-15 시즌 4차 월드컵 때부터 SBS에서 쇼트트랙 해설위원으로 변신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특이하게도 현장 상황과 선수들 상황을 체크하는 등 야구 중계에서 볼법한 필드 리포터의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SBS는 야구 중계 때 자사 해설위원을 필드 리포터 식으로 파견하는 중계를 선보인 적이 있는데 그게 쇼트트랙 중계에서 적용되었다. 이 모습이 워낙 자연스럽다 보니 조해리 + 리포터를 합친 해리포터라는 별명이 생겼다. 중계 중에 배기완에게 해리포터 나와주세요. 라고 불리며 인증을 당했다.[9] 차분한 말투에 막힘 없는 멘트, 더불어 단아한 외모까지 겹쳐 상당한 인기[10]를 얻었다. 여자 계주팀의 시상식 이후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이자리에서 김아랑이 조해리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1] 모지수 코치는 단국대학교 출신으로 에이스(김기훈) 밀어주기에 희생당했던 비한체대파 1세대 선수였고, 제자인 조해리 역시 비한체대인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다.[2] 당시 선발전 방식은 4월에 1차 선발전에서 8명을 선발하여 태릉에서 훈련하고 9월에 2차 선발전을 열어 최종 5명을 뽑는 것이었다.[3] 나중에 이 세계 신기록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파이널 B에서 네덜란드 팀이 깨뜨렸으며 참고로 캐나다와 중국이 실격당하면서 동메달을 받았다.[4] 아이러니한게 반대로 남자 5000m 계주에선 중국이 이 문제 때문에 메달이 날아갔다. 마지막 45번째 바퀴에서 4위로 달리고 있던 한국의 마지막 주자 곽윤기가 인코스로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를 추월해 3위로 올라갔는데 그 때 오노가 곽윤기를 붙잡고 끄는 바람에 곽윤기의 스케이트 앞날이 2위로 달리던 중국의 한지아량의 뒷날에 걸리는 바람에 한지아량이 결승선 코앞에서 미끄러지면서 순식간에 4위가 되었다.[5] 1번 박승희-2번 심석희는 고정이고 김아랑이 출전하면 3번 주자를, 공상정이 출전하면 4번 주자를 맡았다.[6] 2013-14 소치 여자 국가대표팀의 포지션은 자상한 맏언니, 활발한 둘째, 아직은 어린 막내들이었다.[7] 그 바람에 4위로 들어왔던 이탈리아 대표팀이 동메달을 받게 되었다.[8] 이 때도 중국에게 수혜를 준 심판이 있었으며 심석희의 신체 접촉 자체는 반칙으로 볼 여지가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논란은 없었다.[9] 또한, 2월 17일에는 싱가포르 팀 코치를 겸임중인 중계석 해설자 전이경이 싱가포르 선수가 출전하는 여자 1500m 예선에 참석하기 위해 트랙으로 내려갔기 때문에 이를 대신하여 조해리가 중계석에서 해설을 맡았다. 이 때에도 차분하고 깔끔한 해설로 호평을 받았으며, 해당 경기가 끝난 뒤에는 다시 필드 리포팅으로 복귀했다.[10] 경기 사이 사이에 잠깐씩 얼굴을 비추는 것만으로 실검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