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1-27 14:46:37

제17강습비행단

제17강습비행단
17º Stormo Incursori
파일:17 SI.jpg
<colbgcolor=#07176C><colcolor=gold> 기간 1942년 ~ 1944년
1968년 ~ 1971년
2003년 ~ 현재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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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파일:이탈리아 공군 엠블럼.png 이탈리아 공군
상급부대 이탈리아 합동특수작전사령부
유형 특수부대
역할 특수작전[1]
본부 체르베테리 푸르바라 공군기지
표어 충분한 정신
Sufficit Animus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3. 편제4. 선발5. 장비6. 관련문서

1. 개요

파일:17º Stormo incursori.jpg
17º Stormo Incursori
이탈리아 공군의 특수부대로 대테러, 인질구출, HVT 사살 및 정밀 공습, 전투통제(CCT), 수색 및 구조(PJ) 등을 담당한다.

2. 역사

이탈리아 공군 특수부대의 기원은 이탈리아 왕립 공군이 설립한 공수학교에서 시작한다. 1937년 2월 이탈리아 왕립 공군이 공수학교 설립을 담당하게 되어 다음해 3월 20일 리비아의 카스텔 베니토 공군기지[2]에서 스테파노 카냐 대령의 협력으로 공수학교가 창설됐으며 아스칼리 데첼로(Ascari del cielo)가 첫 학생이 되었다. 당시 프로스페로 프레리 대령이 교관으로서 훈련을 담당했는데 1938년 3월 22일 리비아 주지사 이탈로 발보가 항공보병학생대대를 창설하여 고프레드 토니니 중령이 지휘를 맡게 되었고 3월 24일 선포된 법령에 따라 공수학교는 식민지 부대가 되었다.

이듬해인 1939년 타르퀴니아에도 공수학교가 창설되었고 리비아에선 2개대대로 구성된 판티 델라리아 공수연대가 창설되었다. 1940년 7월, 타르퀴니아 에서 공수부대가 훈련했지만, 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해 중단되면서 후보생중 60%가 탈락할 정도로 더욱 엄격한 선발을 치루게 되었다. 당시 평균적으로 훈련생 12명 중 1명이 공수부대원이 될 정도였다.

한편 리비아에서는 자원자들을 모집하여 아르투로 칼라시베타 소령의 지휘 아래 5개 중대로 구성된 나뉜 국립 항공 보병 대대가 창설되기 시작했다. 지원자 중에는 훗날 타르퀴니아, 비테르보, 트라다테에서 교관이 된 카를로 마리아 밀라니도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 리비아에는 식민지 부대 소속 공수부대원 500명과 이탈리아군 300명이 있었다.

이들은 1941년 1월 토니니 기동부대에 배속되어 공항 근처 엘 프테아 평원에 출격했는데 영국군의 기갑사단을 방어했지만 호주제6보병사단의 맹렬한 공격에 결국 진지를 빼앗기고 장교, 부사관, 식민지 부대원들을 포함해 148명이 생존했다. 생존자들은 벵가지에 도착한 후 베다 폼 전투에 참가했고 몇 달 후 식민지 부대가 해산되었다.

1942년 봄, 이탈리아 군 사령부는 몰타 점령에 몰두했다. 몰타 섬은 해상 수송에 심각한 장애물이었기에 참모분부는 몰타 섬을 점령하기 위해 공수 후 강습작전을 펼쳐야한다 판단했고 이에 1942년, 이탈리아 왕립 공군에 제1아메데오 다오스타 돌격연대가 창설되었다.

이들은 이탈리아 및 독일의 공수부대와 함께 섬의 비행장을 점령 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여러 작전에 참가했는데 이들의 활약에 힘입어 제1공수강습대대, 로레토 수리대대, 무동력비행대대, 공수대대등 여러 정예부대가 창설되었다.

이후 부대는 더욱 강화되어 장교 49명, 베르살리에리 소속 부사관 85명, 병사 1,545명으로 구성되었고 이탈리아가 연합군에 항복하기 전까지 진지를 포기하지 않고 싸웠다. 연합군은 알제리 근처 필리프빌에서 강하 후 강행군을 거쳐, 다리를 통과할 예정이었는데 조반니 드 토토 중위가 지휘하는 제10아르디티 연대의 다른 공수부대원들이 다리를 파괴했고 그들은 근처 비행장에 침투하여 이탈리아와 독일군이 준비한 폭발물을 기폭시켰다. 이들은 엘 카루바 근처로 갈 예정이었지만, 현장에 도착하지 못했다.
파일:Italian Air Force Special Units Italy 1942.jpg
당시 ADRA 대대 대원들의 군복

또한 왕립공군은 1942년 타르퀴니아에 공군 아르디티 사보타주 부대(Arditi Distruttori della Regia Aeronautica, ADRA)라는 세 번째 대대를 창설했는데, 이 대대의 지휘는 아랄도 데 안젤리스 대령이 맡게 되었다. ADRA 대대는 적측 공항의 사보타주 임무를 수행했는데 처음에는 행정적으로 아메데오 다오스타 돌격 연대에 배속되었으나 나중에 독립하여 특수 임무를 위해 공군 참모본부 직속부대가 되었다. 부대는 총 300명이 조금 넘었는데 장교 14명, 부사관 24명, 병사 270명이었다. 대대 절반은 1943년 9월 8일 이후 이탈리아 해방 전쟁에서 안젤리스 대령을 따랐습니다.

병사들은 1대대 및 로레토 부대와 같은 회청색 제복을 착용했고, 공수휘장과 아르디티 휘장은 창기병 브레베 휘장을 장착했다. 전투복은 육군의 제10아르디티 연대와 유사했다. 이런 부대가 창설된 이유는 고도로 전문화된 정예부대가 필요했기 때문으로 ADRA는 그런 조건에 부합하는 부대였다.

그렇게 1943년 6월 13일 12개의 ADRA 9개 제10연대 3개로 구성된 아르디티 12개 정찰대가 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으로 출격했다. 당시 불리한 상황 때문에 출격 직후 거의 모든 대원이 포로가 되었으나. 남은 대원들이 벵가지 공항을 목표로 B-24를 포함한 적 항공기를 파괴하는데 성공했다.

그 후 같은해 7월 21일부터 26일까지, 20명으로 구성된 ADRA 부대가 영미 연합군이 점령한 시칠리아에 강하하여 적군이 점령 비행장에 사보타주 작전을 수행했다. 세바스티아노 우르소 상사가 지휘한 부대는 임무를 마치고 귀환했다. 이후 이탈리아가 연합군에 항복하자 대대장이었던 에드비노 달마스 중령은 독일군이 이탈리아를 침략해오자 즉시 무장을 해제하고 독일군과 싸우지 말라고 명령했으나 해럴드 앤잴리스 대위가 왕립 공군의 공수부대를 모아 로마-센토첼레 공항 방어에 나서며 부대는 둘로 분열되었다. 9월 9일 이들은 공항 근처 요새를 방어하기 위해 사르데냐 척탄병 제3대대와 협력하여 정찰을 수행하며 집결한 독일군과 여러 차례 충돌했다. 에드비노 달마스 중령은 RSI에 가입해 공수부대를 결성했고 다른 대원들은 이탈리아 해방군에 소속되었다. 해럴드 안젤리스 대위는 훗날 각지에서 수많은 무장 게릴라 작전을 이끌었다.

한편 몬테로톤도에서 벌어진 치열한 충돌에서 첫 사망자들이 나왔다. 피에트로 올란디니 상사, 안젤로 칼라브레시, 다리오 루피니, 피에트로 사카, 이그나치오 트레비사니가 사망하고 엔리코 친퀘팔미 중위와 콜롬보 칼베타가 독일군에게 붙잡혔는데 파올로 루틸리아노 상사, 알도 로메로 상병이 고문 끝에 처형되었다.

1944년 2월 18일,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아르디티 돌격대를 창설한 조반니 메세 원수는 이탈리아 공동 교전군 참모본부에 사르데냐에 있던 해산된 로레토 대대의 두 중대로 구성된 초기 핵심 부대로, 이탈리아 해방을 위한 새로운 아르디티 대대를 창설할 것이라는 서한을 보냈다. 대대는 자원자 1000명이 배치되어 1개 사령부와 5개 중대, 1개 훈련부대로 구성되었다.

1944년 6월 8일 시에나와 엠폴리 사이 철도 및 도로를 파괴하기 위해 약 50개의 이탈리아 파괴공작집단이 아펜니노 지역으로 침투하여 사보타주를 준비했다. 목표는 육군 및 공군의 정보부가 협의 끝에 결정했으며, 목표 지역에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이동을 개시했다. 당시 부대는 "수프", "사과", "감자"라는 이름의 암호를 사용했다. 이들의 주된 목표는 교차로, 작은 다리, 참거, 제방, 건널목 등 중요 지점에서 철도 노선을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이들은 이 외에도 주요 도로와 보조 도로는 물론 적의 수송 수단을 파괴하라는 임무를 받았고 임무가 끝난 후, 합류하여 귀환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1943년 6월 4일까지 독일군이 점령했던 로마의 SIA(항공 정보 서비스)는 풀리아에서와 마찬가지로 ADRA와 긴밀히 협력했으며, 이후 다오스타 아르디티 대대와도 협력하여 통신 방해 공작을 펼쳤다.다오스타 대대 약 50명이 전투에 투입되어 SIM의 칼데리니 섹션, 영국 8군의 정보 연락 부대 또는 미국 전략 정보국 에 배치되었고 이는 공수작전에서 전체적으로 행동할 기회가 많지 않은 부대 전체에 큰 불만을 불러왔더. 코체(몰라 디 바리) 에서 6개월간 훈련을 받은 뒤 부대는 1944년 7월 안코나 전투 에서 보병으로 전선에 배치되어 큰 피해를 입었고 같은해 9월에 해체되어 수백 명의 돌격대원이 제183넴보 공수연대 "넴보" 로 이동했다.

한편 SIM과 미국 OSS는 1944년 7월 왕립 해군 장성인 라파엘레 쿠르텐 제독이 고안한 특수작전에 동의했다. 이 작전은 트리에스테 근처에서 진행되어 유고슬라비아가 트리에스테와 이손조 까지의 영토를 점령하는 위협과 독일이 점령한 지역에 있는 이탈리아계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1944년 어느 날, 당시 아오스타 공작대대 사령관이었던 마스트라고스티노 중령은 바리에서 아드리아티치 연합 총재인 디 데메트리오 교수와 영국, 미국 육군 장교와 마주했다. 이들은 이탈리아의 선박을 이용해 트리에스테와 폴라 사이로 이탈리아군을 상륙시키는 방안을 논의했고 전투기 조종사였던 마스트라고스티노는 왜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연합군 장교들은 이 작전을 위해선 이탈리아인 뿐만 아니라 반공주의자까지 포함된 비밀 군사조직이 필요하다고 대답했고 OSS에서 제공한 집단을 토대로 선발이 이루어져 마스트라고스티노도 그에 포함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 작전은 취소되었고 아르디티 대대는 해산되었다.

그렇게 2차대전 이후 1968년 공군 참모총장이었던 세르지오 두일리오 파날리는 영국에서 왕립공군연대를 방문한 후 공군의 소수 공수부대 훈련을 위해 SMA 대표단을 지휘했던 아랄도 데 안젤리스 대령을 불러 부대창설을 지시했다. 세르지오는 부대를 연대 구모로 확대할 계획으로 스페인 내전 때부터 친구였으며 ADRA의 지휘관이었던 안젤리스 대령에게 이 일을 맡겼다.

사령관이 된 안토니오 마리아니 대위는 이탈리아 공군 연대 훈련단이라는 명치응로 부대 선발, 편성, 훈련을 담당했다. 이 부대는 기이도니아 공군기지의 바니 디 티볼리 항공 분견대에 주둔하여 육군 폴고레 공수여단에서 임시로 장비를 대여하고 보병학교, 공수학교, 산악학교 등에 참가하여 훈련을 수행하고 육군의 산악대대와 해군 소부대와 함께 대테러 활동에 참여했다.

파날리 장군이 임기를 마친 뒤 부대는 해체되어 당시 인원들은 여러 공군부대로 흩어졌는데 소수의 부대원들이 공군공수부대를 구성하고 기이도니아에 남아 시범 공수훈련을 계속 수행했다.

이후 1967년 생존항공구조센터가 창설되었다. 이들은 오늘날 이탈리아 공군 및 다른 군종의 조종사, 승무원 생존 관련 절차 및 장비를 마련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 부대는 해상, 산악등의 험난한 지형 및 생존 기술을 승무원들에게 훈련시켰으며 항공사고로 사망한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대원들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해상 생존, 산악 생존, 적대 지역에서의 회피 및 탈출, 항공 구조 교관, 군 사격, 개인 방어, 암벽 등반,, 경찰 심문관 등 군에서 요구하는 모든 분야의 교관이 되었으며 일부 CSA 대원들은 제9콜 모스킨 공수강습대대의 훈련부대에서 44주간 공수공병 교육을 이수하기도 했다.

그렇게 1999년, 공수부대를 포함한 특수작전지원단(SSOS)이 창설되어 제15비행단에 편입되었다. 4년 후인 2003년, 공군은 3월 1일 SMA가 표명한 작전 필요성을 바탕으로 2월 공군 참모총장의 명령에 따라 푸르바라 공군기지에 공군강습부대를을 창설했다. 부대는 제15비행단 소속 SSOS와 생존항공구조센터 인원들로 구성되었다. 이후 2008년 4월 2일부로 부대명은 제17강습비행단으로 변경되어 2007년에 해체된 제17전투단의 전통을 계승했다.

제17강습비행단은 2006년 1월 5일부터 이라크 전쟁의 전투 파병은 물론 차드, 말리의 치안 유지, 소말리아의 해적퇴치 작전,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등 다양한 국가에 파병되어 임무를 수행했으며 아시아 국가의 특수부대를 훈련시키는 군사 훈련 임무도 수행했다. 그 기술과 전문성 덕분에 이탈리아에서도 공군의 티어1 특수부대로 평가하고 있으며 NATO 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제17강습비행단은 2007년부터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스크포스 45에 배속되어 이탈리아군의 여러 특수부대, ISAF와 연계해 2012년까지 최소 10회의 특수작전에 참여했고, 국제 안보 유지에 기여한 작전에 참여한 공로로 기념 십자훈장 및 NATO 훈장을 받았다. 이들은 아프간 군인들을 훈련하는 동시에 평화 유지 작전에도 지원을 제공했다.

2011년, 이탈리아의 특수부대들이 리비아에서 NATO가 주도하는 보호작전에 합류했다. 이 부대는 리비아 내전과 관련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970호와 1973호를 집행하는 것을 목표로 움직였으며 제17강습비행단은 레이저 표적 지정 및 JTAC를 수행했다.

또한 이라크에서 이들은 태스크포스 44에 배속되었는데 태스크포스 44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구성된 태스크포스 45를 모델로 조직했며 이탈리아 특수부대가 해외 작전 지역에 배치된 최대 규모의 사례였다. 태스크포스 44는 이라크 내 다에시 부대에 대응하기 위해 임무를 수행했다. 작전 활동을 위해 태스크포스 44는 특수 작전 지원을 위한 정보 셀을 통해 정보 수집을 보장하며, 현장 부대의 일반 지원 및 기술적/작전적 정보 활동을 담당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대IS개입에 참가한 제17강습비행단은 제16방호비행단과 함께 이라크 특수부대의 군사훈련 및 드론 정찰 활동에 투입되었다.

또한 2019년부터 육군 제9공수연대 해군 GOI, 공군 제17강습비행단, 총기병대 GIS로 구성된 태스크포스가 모리타니, 차드, 카보베르데 특수부대의 훈련을 담당했는데 당시 이탈리아 특수부대는 미국 및 스페인의 특수부대들과 함께 차드 대테러 특수부대와 모리타니의 제2공수코만도대대를 훈련시키기도 했다.

2021년부턴 제17강습비행단이 다른 이탈리아 특수부대들과 말리에 배치되어 훈련 일환으로 태스크포스 타쿠바에 배속되었다. 이들은 2021년 3월에 첫 배속을 시작으로 9월이 되기 전에 초기 작전능력을 완성했다. 제17강습비행단은 가오와 메나카에 주둔하며 정찰 및 의료 후송 임무를 수행으며 이는 타쿠바가 바르칸 작전으로부터 독립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당시 이탈리아군과 함께 8대의 헬리콥터가 배치되었고 그중 4대는 수송 헬리콥터 나머지는 전투헬기였다. 2022년까지 정규군 병사들이 배치되면서 인원 한도는 200명에서 250명으로, 차량은 20대에서 44대로 증가했다.

3. 편제

파일:Organigramma 17º Stormo Incursori.png
  • 제17강습비행단(17º Stormo Incursori)
    • 지휘부(Ufficio Comando)
      • 부지휘부(Vice Comandante)
      • 암호과(Cifra)
      • 지역예방경호부(Servizio Locale Prevenzione e Protezione)
      • 인사관리과(Sezione Promozione Umana Sociale e Sport)
    • 작전부(Ufficio Operazioni)
    • 행정팀(Servizio Amministrativo)
    • 의무팀(Infermeria di Corpo)
    • 작전단(Gruppo Operativo)
    • 훈련단(Gruppo Addestramento)
    • 군수지원단(Gruppo Servizi di Supporto)
    • 군사보호중대(Compagnia Protezione delle Forze.)

제17강습비행단의 편제는 다음과 같다. 전투팀인 작전단은 150~200명의 병력이 4개 중대로 나뉘며, 각 중대는 8~12명의 대원으로 구성된 작전 분견대로 나뉜다. 이중 강습대원들이 대테러 등의 작전에 특화되었다면 S.T.O.S 및 공수구조대원팀은 수색 및 구출 임무에 특화되있다.

작전단은 소령 혹은 중령이 지휘하며 레이더 중대는 대위가 팀장이 된다. 지휘부와 작전부는 훈련 활동, 임무 등을 계획한다. 이들은 CCT, PJ, SOWT, SAR 등 각종 임무에 특화되어 육군의 제9공수연대, 해군 콤수빈, 총기병대 GIS 등의 이탈리아 티어 1 특수부대는 물론 육군의 제185정찰표적흭득연대, 제4산악공수연대에도 지원을 제공한다.

훈련단은 부대 훈련 공수, 생존술, 폭발물 처리(EOR/EOD)등을 지도하는 4개 반으로 나뉘는데 마지막 반에서 무기 유지 및 관리 등의 전문화 과정을 담당한다.

군수지원단은 작전에 필요한 무기 체계, 장비, 차량, 기반 시설, 물자, 군수 지원 등을 담당한다.

4. 선발

선발 및 훈련과정은 주로 제17강습비행단 내 훈련단에서 진행된다. 지원자들은 신체 및 심리 검사를 거쳐 2주간의 선발 인턴쉽을 치루게 되며 이후 약 9~10개월간 이탈리아 공군 특수작전부대 과정에 돌입한다. 이 초기단계를 통과한 지원자는 공수구조대원(STOS) 자격을 취득하며 이후 추가적으로 강습부대원 과정에 지원하여 강습부대원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공수구조대원의 경우 갈색 베레모를, 강습대원의 경우 모래색 베레모를 수여받는다. 공수구조대원을 훈련시키는데는 약 9개월, 강습대원은 저기서 약 4개월이 추가로 소요된다.

공군 강습대원이 되려면 공군강습자격과정(BI-AM)을 수료하게 되는데 여기서 육상 방위 및 독도법, 전투 훈련, 생존술(SERE), 폭발물 훈련, CQB, 항공 작전 지원 6가지 교육을 수료한 뒤 강습대원 자격을 취득하게 된다. 이후 자유낙하 및 고공강하(HALO.HAHO)를 수료한뒤 JTAC, 저격수, 전투 의무병, 브리쳐, 영어 등 고급 교육을 수료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전투 의무병, 브리쳐, 폭발물처리, SFJTAC, 저격수 등의 주특기 교육을 수료할 수 있으며 육군의 제9콜 모스킨 공수강습연대, 해군의 COMSUBIN, 총기병대의 GIS 등에게 고급 산악전 교육 및 스키 훈련, 고공강하, 컴뱃 스쿠버 다이빙, 요인경호 등의 추가 훈련을 이수받을 수 있다.

이 외에도 미국의 제24특수작전비행단내 제23, 24특수전술대대와 주기적으로 합동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5. 장비

6. 관련문서


[1] 대테러, 인질구출, 요인경호, 비정규전, 특수정찰, 직접타격, 군사훈련, 전투통제, HVT 사살 및 정밀공습 등[2] 현 트리폴리 공항[3] 17, 19X[4] G36K, G36C[5] 22, 42[6] AW, AXMC, AW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