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 일렉트릭의 항공기용 제트엔진 | ||
{{{#!wiki style="margin: 0 -10px;" {{{#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1D1D1D | <colbgcolor=#545454> 터보제트 엔진 | J33 | J79 | J85 |
터보팬 엔진 | CF6 | CF34 | TF34 | TF39 | GE90 | GEnx | GE9X | F101 | F110 | F118 | F404 | F414 | YF120 | XA100 | |
터보 샤프트 엔진 | T58 | T64 | T408 | T700 | T901 | |
CFM 인터내셔널 제조 | CFM56 | LEAP | |
엔진 얼라이언스 제조 | GP7200 |
1. 제원
명칭 | 길이 (m) | 지름 (m) | 자체중량 (kg) | 최대추력 (lbf) | 압축기 (LPC-HPC) | 터빈 (HPT-LPT) | 압축비 | 바이패스비 | 적용기종 |
TF39-GE-1 | 4.79 | 2.60 | 3,190 | 40,800 | 0-16 | 3-6 | 26.0 | 8.0 | C-5A |
TF39-GE-1C | 43,000 | C-5A/B/C[1][2] |
2. 개요
General Electric TF39
제너럴 일렉트릭에서 개발한 터보팬 제트엔진이다. C-5 갤럭시 수송기의 동력으로 사용하기 위해 개발됐으며 지금까지 실용화된 터보팬 엔진 가운데 최초의 고바이패스 엔진이다.
1961년 미 공군은 기존의 수송기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인 전략수송기 (Strategic Airlifter)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연구를 시작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당시 개발중인 C-141에 대해서 미 육군이 많은 불만을 나타냈기 때문인데, 전차를 수송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고사하고 C-141 자체의 최대 탑재중량에 도달하기도 전에 기내가 이미 꽉 차버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기껏해야 M113 같은 장갑차나 병력의 수송 외에는 써먹을 구석이 없다고 봤는데, 이것에 대한 해결책으로 동체를 횡으로 확장하거나 심지어 엔진을 6개까지 장착하는 방안도 고려해봤지만 아예 새로 개발하자는 의견이 압도적이었고, 1963년 후반부터 C-5 개발의 계기가 되는 CX-X (Cargo Experimental)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엔진 4개와 80톤 가량의 최대적재중량, 동체 앞/뒤로 개폐되는 화물전용 도어가 필요하다는 좀 구체적인 컨셉이 나오자 CX-X 계획의 명칭은 CX-HLS (Cargo Experimental-Heavy Logistics System)로 변경된다. 1965년 무렵 P&W는 이 거대한 수송기의 동력으로서 JTF14[3]라는 기술실증용 터보팬을 들고 나왔고 GE 역시 GE 1/6[4]이라는 모델을 내밀었는데 결국 GE가 이 경합에서 승리한 후 미 공군과 무려 4억 6천만 달러의 초대형 계약을 체결했고 GE 1/6은 TF39라는 명칭을 지닌 제품으로 개량된다. 1967년에는 B-52E의 우측 날개에 장착되어 최초로 하늘에 올라가는 경험을 했고 이듬해 C-5A의 첫번째 비행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어 기체가 미 공군에 차례차례 납품되기 시작했다. TF39는 추후 민수용 CF6로 개량되어 여객기 엔진 시장에서도 JT9D와 경쟁했는데, 월등한 추력과 진보된 기술력으로 꼬박꼬박 물을 먹이며 JT9D를 퇴물로 만들어버렸는데 항공기 엔진 시장에서 가장 잘 나가던 P&W가 스텝이 꼬이기 시작한 시점이 대략 이 무렵이었고 롤스로이스에게도 2위를 내주는 등 그 후유증은 현재까지도 남아있다. 참고로 기체의 설계는 맥도넬 더글러스와 보잉, 제너럴 다이내믹스 등의 여러 쟁쟁한 회사들이 입찰했는데, 마치 죄다 짜고 담합을 한 것처럼 조종실이 화물칸 위에 위치하거나[5] 후퇴익의 채용, T자 모양으로 수직미익을 설계하는 등 대부분 올망졸망 비슷했는데, 최종적으로는 록히드의 설계안이 채택됐다. 당시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조지아 주에 위치한 록히드의 공장이 C-141의 생산을 끝마치고 빈둥빈둥 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쟤들 손가락 빨고 있으니 좀 밀어주세"라고 지시하는 바람에 록히드가 선택됐다고 전해지고 있다[6]
TF39는 바이패스비 8.0을 지닌 진정한 고바이패스 엔진으로 개발됐으며 운항중 터빈의 강제 냉각이 가능했다. 기존의 주력 상품인 J79가 지닌 압축기의 날개 (Stator) 각도를 변화시키는 기능은 그대로 유지시키는 한편 2축 구조 (Double Spool)를 채택했으며 현대적인 역추력장치 덕분에 착륙거리를 단축시켜서 C-5의 작전능력을 향상시켰다. 팬 블레이드가 추력 생성과 저압 압축기의 역할을 동시에 하며 흡기와 나란히 위치하는 독특한 형상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런 디자인은 CF6에서 저압 압축기(LPC: Low Pressure Compressor)를 구동하는 저압 터빈 (LPT: Low Pressure Turbine)이 신설됨으로서 크게 변하게 됐고 타사의 제품들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최종 모델인 TF39-GE-1C는 1988년을 마지막으로 생산이 종료됐는데 1,000 시간당 수리 비율 (SVR : Shop Visit Rate)이 꼴랑 0.37회에 불과할 수준으로 신뢰성은 높았으나 유지보수의 어려움과 추력의 부족으로 2000년 8월 엔진 교환을 골자로 하는 C-5M 개량사업이 결정된다. TF39 자체로서는 C-5 외에 다른 항공기에 채택된 실적은 전혀 없지만 파생형이나 다름없는 CF6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GE의 위상까지 완전히 바꿔놓는 큰 업적을 만들어냈다.
3. 관련 링크
(영문 위키백과) General Electric TF39[1] NASA에서 로켓 부품이나 인공위성 등을 수송하기 위해 특별히 개조 (SCM : Space Container Modification)된 형식으로 딱 2대만 보유하고 있었는데 NASA에서의 운용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미 공군으로 반납된 후에는 그냥 통상적인 임무에 사용됐는데 무려 1970년에 제작된 [age(1970-01-15)]년 묵은 기체이긴 하나 별로 빡세게 굴리지 않아 상태가 괜찮다고 판단했는지 2대 모두 2017년 C-5M으로 개조가 완료됐다. 1968~1973년까지는 C-5A를 생산했다가 다시 1985~1989년 사이에 C-5B로 재개됐는데 C-5B 가운데 일부 띨띨한 기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C-5M으로 개조됐거나 개조될 예정이다. 한편 2017년 9월 7일을 마지막으로 C-5A는 미 공군에서 완전히 퇴역했다.[2] 록히드는 1973년 C-5A의 생산이 종료된 후 이란에 수출할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으나 1979년 호메이니의 이란 혁명 때문에 모든 것이 나가리가 되자 공장과 기체 생산에 필요한 기계와 연장 등을 그대로 대충 방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 미 공군이 군수물자 공수능력의 부족을 지적하며 스스로를 비판하자 록히드가 기골과 전자장비 등이 개량된 기체를 저렴하게 공급하겠다고 열심히 꼬시기 시작했고 결국 미국 정부가 이 꾀임에 넘어가게 된다(...) 이에 1982년 12월 약 50대를 새로 계약하게 됐고 정확히 3년 후 C-5B의 첫번째 기체가 미 공군에 전달됐는데 록히드는 계약된 물량의 납품이 끝난 후 더 필요하지 않으시냐고 했으나 미 공군은 C-17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C-5의 생산은 완전히 종료된다.[3] 훗날 JT9D로 발전한다.[4] 이걸 10,000 lbf 정도로 축소해서 나온 물건이 TF34로서 1960년대 후반 미 해군의 터보팬 초계기인 S-3A에 채택된다.[5] 기체가 화물을 적재한 상태에서 불시착하거나 큰 충격을 받았을 때 조종실이 화물에 깔아뭉개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6] 그런데 여기서 물을 먹은 보잉은 여객기로 또 한번 설계변경을 했는데, 이게 훗날 B747로 발전해서 회사에 엄청난 대박을 가져다 준다. B747-200F에서 시작된 특유의 기수부 화물전용 도어는 이 전략수송기 설계안에서 나온 유물이라고 볼 수 있으며 쌍발기로 세대교체가 거의 완료된 현재까지도 화물기 시장에서는 아직 먹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