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 정영수(鄭榮秀) |
본관 | 경주 정씨[1]# |
출생 | 1896년 12월 24일 |
경상북도 칠곡군 파미면 상포리 (현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3리 상포마을) | |
사망 | 1921년 11월 11일 |
경상북도 칠곡군 | |
종교 | 기독교 (가톨릭 | 세례명: 빈첸시오) |
묘소 |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물동 가톨릭 범물묘원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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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독립유공자 정행돈은 그의 셋째 남동생이다.
2. 생애
정행국은 1896년 12월 24일 경상북도 칠곡군 파미면 상포리(현 칠곡군 왜관읍 왜관3리 상포마을)에서 정미업에 종사하던 아버지 정재문(鄭在文, 1876. 10. 2 ~ 1954. 6. 10)과 어머니 태원 최씨(太原 崔氏) 최질라(崔秩羅, 1872. 4. 21 ~ 1959. 10. 2)[2] 사이의 6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1914년 8월 경기도 경성부에서 숭실전문학교 학생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려다가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추적을 받게 되자, 만주로 건너가 지린성 지린, 창춘 등지에서 항일독립운동을 계속했다.
1919년 5월에 귀국한 그는 고향에서 왜관청년회(倭館靑年會)를 조직하고 회장에 선임되어 청년회 활동을 주도했으며 왜관에 동창학원(同昌學院)을 설립하여 청소년들에게 반일사상 및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는데 힘썼다.
1921년 10월 왜관청년회 주최로 '나의 조국은 죽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시국강연을 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잔혹한 고문을 당한 끝에 1921년 11월 10일 병보석으로 출옥했으나 다음날 순국했다.
198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이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