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8-31 20:25:07

정대호

성명 정대호(鄭大鎬)
생몰 1884년 1월 2일 ~ 1940년 8월 6일
출생지 평안남도 진남포
사망지 싱가포르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정대호는 1884년 1월 2일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났다. 그는 안중근의 이웃집에 살면서 의형제를 맺고 뜻을같이하다가 만주로 망명하여 하얼빈세관 수분하지서(綏芬河支署)에 근무하였다. 1909년 9월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에게 암살되었다. 정대호는 거사 전에 안중근으로부터 가족을 부탁받았다. 이에 따라 그는 안중근의 가족을 진남포로부터 수분하(綏芬河)까지 안전하게 호송하였다. 이 일로 안중근과 관련되었다는 혐의를 받고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1912년, 정대호는 한인회 하얼빈 지방총회 부회장으로 근무하다가 고국에 돌아왔으며, 1916년 다시 천진(天津)으로 망명하였다가, 상해로 이주하여 1919년에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신석우·이기룡(李起龍)과 함께 임시의정원 경기도 의원에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동년 11월에는 대한적십자 회원 모집을 위한 3·1대에 윤보선, 신두식, 이영근(李永根),윤현진 등과 함께 참여했다.

1921년에는 임시정부 학무총장 김규식을 중심으로 여운형, 여운홍, 조동호, 민병덕(閔丙德), 서병호 등과 함께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에 가입하여 신한청년보(新韓靑年報)를 발행하는 등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이후에도 독립운동에 관여하다가 중일전쟁 후 싱가포르로 피신했고, 1940년 8월 6일 그곳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정대호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0년 그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여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