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遇翊
1925년 ~ 2004년 12월 19일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사람은 살면서 세 가지만 있으면 돼. 하나는 평생할 공부, 다음은 신나게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평생 함께 할 여자. 난 신영복 선생이 글 쓰고 강의하는 건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손수 빨래하고 일하는 게 대단해 보이는 거지... 다들 입만 있지 귀가 없어... 난 젊은 나이에 학생 운동하는 거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새는 세상만 바꾸려고 난리지 좀처럼 자신은 변화하지 않으려고 해. 자신을 먼저 깨고 바꿔야지. 바꾸려면 뿌리를 바꿔야지, 제도나 이데올로기가 아니여."
1. 개요
대한민국의 농민, 작가.본관은 옥천(沃川)[1], 아호는 '언눔(무명씨)' 또는 '피정(皮丁)[2]'. 농사를 지으면서 평소에 자신이 생각하던 바를 틈틈이 글로 써내어 자연 친화적이고 자아 성찰적인 철학을 펼쳤다.
2. 생애
전우익은 1925년 경상북도 봉화군 상운면 구천리[4]에서 대지주였던 아버지 전영기(全永夔, 1905 ~ ?)[5]와 어머니 선성 김씨(宣城 金氏, 1902 ~ 1937. 5. 1) 김뢰진(金瀨鎭)의 딸 사이의 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좋은 집안에서 자라서 일제강점기 시절 중동중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에까지 입학했지만 오래 다니지 않고 중퇴하였다.
8.15 광복 이후 좌익 성향의 청년단체인 조선민주청년동맹(약칭 민청[6])에서 활동하다가 6.25 전쟁 이후 아버지 전영기를 비롯한 일가 친척들이 월북하였고, 그 또한 사회안전법 위반으로 6년 간의 투옥 생활을 하였다.[7] 감옥에 갔다 온 전우익은 바로 고향으로 내려가서 농사에 전념하는 농부가 되었다. 40여 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그는 따로 정치적, 사회적 활동을 하지 않고 정말 재야에 묻혀 살았다. 다만 이오덕, 신경림, 권정생 등의 재야 인사나 문인들과 어느 정도의 친분을 가지고 있었다.
1993년 시인 신경림의 도움으로 그는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를 처음으로 펴내고,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 《사람이 뭔데》 등도 펴내었다. 그의 책은 자연 속에서의 인간의 삶과 거기서 사색하는 전우익 자신의 생각이 들어가 있어서 곧 유명해졌다.[8] 이후 2003년 뇌졸중으로 인해 투병을 하다 2004년 12월 9일 자택에서 향년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3. 저서
-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1993) - 느낌표(MBC)에 소개되어 유명해진 책이자 전우익의 대표작이다.
-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1995)
- 《사람이 뭔데》(2002)
- 《해인사를 거닐다》(2003)
[1] 구천파(龜川派) 27세 우(遇) 항렬.[2]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일꾼'이라는 뜻이다.[3] 실제 생애를 보면 알겠지만 그의 생애도 그 우익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한자부터가 다르지만.[4] 옥천 전씨 집성촌이다.[5] 족보명 전영탁(全永卓).[6] 우익세력으로 백색테러활동을 하였던 대한민주청년동맹과는 다른 조직이다.[7] 이 전력으로 인해 그는 수십 년에 걸쳐서 보호관찰 대상자가 되어 감시를 받아야 했다. 그가 그 감시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나이 65세가 되어서였다.[8] 당시 그의 책이 느낌표(MBC)에 소개되어 유명해지자 수십만 권이 팔려나갔는데, 언젠가 판화가 이철수가 "책이 너무 많이 팔린 건 재앙이다"라고 말하자 전우익은 "그 말이 맞다"고 동의를 표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