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8 11:42:12

장흠

오서(吳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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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삼사주전(三嗣主傳)」 4권 「유요태사자사섭전(劉繇太史慈士燮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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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권 「오주오자전(吳主五子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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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십이호신
정보 황개 한당 장흠 주태 진무
동습 감녕 능통 서성 반장 정봉
파일:장흠.jpg
작위 선성후(宣城侯)[1]
최종직위 탕구장군(盪寇將軍) 겸 유수독(濡須督)
성씨(蔣)
(欽)
공혁(公奕)
생몰기간 ?년 ~ 219년
고향 양주(揚州) 구강군(九江郡) 수춘현(壽春縣)

[clearfix]

1. 개요

삼국시대 오나라의 장수이며 는 공혁(公奕)으로 양주 구강군 수춘현 사람.

2. 정사 삼국지

<주태전>에 따르면 주태는 장흠과 함께 손책을 섬겼다. 현대의 유명세와는 달리 장흠이 동료 주태보다 출세는 빠른 듯하다.

손책이 원술에게 의지할 때부터 손책의 측근이 되었다. 손책이 강동으로 진출하자 병사가 주어졌고 손책이 3군과 예장을 정벌할 때 종군했다.

3현의 현장을 역임하고 도적떼를 토벌하고 승진했다. 회계의 도적 여합진랑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장흠이 병사를 거느리고 그들을 토벌하여 사로잡았다. 하제가 이현(黟縣)의 도적떼를 토벌하자, 장흠도 병사 1만 명을 감독하여 하제와 협력하여 도적떼를 토벌했다. 이렇게 대부분의 기록이 도적 토벌에 대한 것으로 이로 인해 꾸준히 승진했다.

<여몽전>에 주석으로 달린 《강표전》에 따르면 손권의 권유로 여몽과 함께 학식을 쌓는데 주력했다. 손권은 학업에 힘쓴 여몽과 장흠을 칭찬했다. 하지만 장흠은 괄목상대로 워낙 임팩트가 큰 여몽에게 묻히고 말았다.

2차 합비 공방전에 종군했는데, 위나라의 장수 장료가 나룻가 북쪽에서 손권을 습격하자 장흠은 있는 힘을 다해 싸웠다. 이 공으로 탕구장군에 임명되어 유수독이 되었다. 이후 도읍으로 소환되어 소송의 사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어느 날, 손권이 장흠의 집에 들렀는데 장흠의 모친은 장막으로 이불을 하고 처첩들은 베로 치마를 해입고 있었다. 장흠의 검약에 놀란 손권은 장흠의 모친을 위해 비단으로 이불을 해드리고 장막을 바꾸게 했으며, 처첩들의 의복은 모두 다 수를 놓은 비단으로 하게 하였다.

장흠이 선성(宣城)에 주둔하면서 예장의 도적을 토벌한 적이 있었다. 장흠의 부재 중에 무호(蕪瑚)의 현령인 서성이 장흠이 주둔한 군의 관리를 붙잡아와 관리의 죄를 물어 참수하자고 표를 올렸으나 손권은 장흠이 멀리 나가 있다 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이 사건 때문에 서성과 장흠은 사이가 나빠졌다.

조조군과 싸우는 유수구 전투에서 장흠은 여몽과 함께 여러 군대를 가지고서 지휘하였다. 서성은 항상 장흠을 두려워했지만 장흠은 매번 서성의 좋은 점을 칭찬하였다. 서성은 장흠에게 감사해했고 사람들도 장흠을 찬양했다. 《강표전》에 따르면 손권은 장흠에게 그 이유를 듣고 그의 사적인 원한에 사로잡히지 않는 태도에 감탄했다.

번성 공방전에서 손권이 관우를 공격할 때 장흠은 수군을 감독하여 면수로 들어갔다가 귀환하는 길에서 병이 나서 죽었다. 손권은 소복을 입고 슬퍼했고 장흠의 처자에게 주민과 땅을 주었다.

3.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원래 주태와 장흠은 수적이었지만 손책이 거병하자 장영의 진채를 습격할 때 불을 지르며 손책군에 합류한다. 처음엔 세트 메뉴의 등장인가 싶었다. 그런데 주태가 손권을 구해내어 인지도를 확 높여갈 때 장흠은 진횡을 참한게 다다.

적벽대전에도 참가하였고 남군 공방전에서도 선봉을 섰다가 조인에게 발리자 주유에게 죽을 뻔했다. 유비손부인과의 혼례로 동오에 왔을 때 주태와 장흠은 돌아가는 유비와 손부인을 추격하고 그들 부부가 따르지 않을 경우 부부를 베어도 좋다고 명령을 받는다.

후에 번성 공방전에도 참가하였다가 관우에게 순식간에 일기토로 털리고 퇴각한다. (요시카와 에이지 본에선 이때 털린게 반장주연으로 변경) 이릉대전 때는 갑자기 장흠은 이미 죽어있다는 말이 나온다. 세트 메뉴 주태랑 다르게 딱히 존재감은 없이 고만고만하게 나오는 수준.

4. 미디어 믹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장흠/기타 창작물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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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 아들인 장일이 받은 것이지만, 장흠 생전에 선성에서 일한 것을 보면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