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 ~ 제2차 세계 대전의 국민혁명군 군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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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함 자오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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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나라 해군, 중화민국 해군 그리고 그리스 왕국 해군에서 운용되었던 방호순양함. 총 3척이 건조되으나 신해혁명 이후 자금이 부족해진 신생 중화민국 정부는 2척만 도입했고 남은 1척은 그리스 해군으로 인도되었다.2. 제원[1]
자오허급 방호순양함 肇和級防護巡洋艦 | ||
이전급 | 하이치급 | |
다음급 | 닝하이급 | |
기준배수량[2] | 2,460톤 | |
만재배수량 | 2,750톤 | |
전장 | 105.5m | |
전폭 | 13m | |
흘수 | 4.5m | |
최고 속력 | 20노트 (약 37km/h) | |
항속거리 | 10노트 (약 19km/h) 순항 시 8,300km | |
출력 | 6,000 HP | |
동력 | 기관 | 보일러 8기 |
증기 터빈 3기 | ||
승조원 | 283명 | |
무장 | 주포 | 152mm 함포 2기 |
부포 | 100mm 부포 4문 | |
76mm 부포 4문 | ||
47mm 부포 6문 | ||
37mm 대공포 2문 | ||
어뢰 | 450mm 어뢰 발사관 2문 | |
장갑 | 아일랜드 | 76mm |
갑판 | 19 ~ 26mm |
3. 동형함 목록
함명 | 건조 | 비고 | |
자오허 (肇和) | 기공 | <colbgcolor=white,#808080> 1910-10-07 | <colbgcolor=white,#808080>
|
진수 | 1911-10-23 | ||
취역 | 1912-02-21 | ||
잉루이 (應瑞) | 기공 | 1910-12-12 |
|
진수 | 1911-07-13 | ||
취역 | 1911-12-02 | ||
페이훙 (飛鴻) → 엘리 (Έλλη) | 기공 | 1911-06-14 |
|
진수 | 1912-05-09 | ||
취역 | 1913-11-?? |
4. 운용
4.1. 호국전쟁
1915년 12월, 호국전쟁 도중 자오허가 호국군에 나포되는 사건이 있었다.4.2. 제1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대전 초반엔 그리스는 중립을 유지했으나, 그리스가 협상국 편으로 참전하기를 희망했던 프랑스는 엘리를 압류해 에게해에서 호송선 호위와 정찰을 수행했다. 그리스가 협상국 편으로 참전한 이후엔 그리스 해군으로 반환되었다.4.3. 터키 독립전쟁
터키 독립전쟁에 엘리가 참여했다.4.4. 제2차 직봉전쟁
제2차 직봉전쟁에서 봉천군벌이 승리하자 직예군벌 소속이었던 자오허는 북양정부의 북양군 소속이 되었다.4.5. 국민당의 1차 북벌
북양군 소속이었던 자오허는 국민당의 영토였던 우쑹, 상하이, 진먼에 포격하거나 점령하는 작전에 투입되었다. 이후 북양정부가 패배하며 중화민국 해군에 편입되었다.4.6. 중일전쟁
중일전쟁 발발 후인 1937년 9월 14일, 광저우와 주강을 방어하던 자오허는 슬루프하이저우와 함께 일본 제국 해군의 경순양함 유바리, 구축함 하야테, 오이테와 전투를 치렀다. 일본 군함을 저지하는데는 성공했지만 큰 피해를 입은 자오허는 침몰을 피하기 위해 좌초했으나, 류호와 호쇼에서 발진한 함제기의 공격을 받고 최종적으로 9월 30일에 침몰했다.중화민국의 주력함이 전부 격침된 장인 전투에서 살아남은 잉루이는 난징 전투에서 해안포로 쓰기 위해 포를 제거하던 중, 1937년 10월 24일, 일본군의 폭격기의 공격을 받고 다음날 침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