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1-13 01:51:12

임철준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증약(曾若) / 순초(筍樵)
본관 풍천 임씨[1]
출생 1851년 11월 13일
충청도 청풍도호부 원남면 괴곡리
(現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
사망 1907년 7월 7일[2] (향년 55세)
경상북도 풍기군 죽령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0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851년 11월 13일 충청도 청풍도호부 원남면 괴곡리(現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서 아버지 임백간(任百幹, 1811 ~ 1868. 1. 25)과 어머니 평창 이씨 사이의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896년 을미의병 당시 유인석의 제천의진(堤川義陣)에 입대한 뒤 참모장(參謀將)에 선임되었다. 이후 충주부 충주군·단양군·원주군, 강원도 영월군, 안동부 안동군·문경군 등지에서 크게 활약했다. 같은 해 제천의진이 해산되고 의병장 유인석과 그 부대원들이 청나라로 망명하자, 1907년 제천군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킨 이강년 의진에 입대해 좌종사(坐從事)에 선임되었다. 이후 충청북도 충주군·단양군·제천군·연풍군·청풍군, 강원도 원주군·영월군·횡성군·강릉군, 경상북도 문경군·안동군·예천군·영주군·봉화군 등 3도 14군을 휩쓸며 적과 대적했다.

특히 1907년 7월 5일의 제천군 전투에서 500여 명의 적을 토벌해 사기가 하늘을 찔렀고, 같은 해 9월 16일 제천군 추치에서 대전하여 적 200여 명을 사로잡았다. 같은 해 9월 27일 죽령에서 다시 적 200명을 생포하는 등 전과를 올렸으나, 불행히도 죽령전투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에 전사, 순국하였다.

2001년 8월 15일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그의 유해는 2012년 9월 8일 제천시 수산면 수산리 야산에 이장됐다.

[1] 목사공파(牧使公派) 25세 준(準) 항렬.[2] 풍천임씨세보 제2권 447쪽에는 10월 8일 순국한 것으로 등재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