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22 14:44:26

일본진보당(1945년)

※ 아래 정보는 해산 당시를 기준으로 함
[ruby(日本進保黨, ruby=にほんしんぽとう)] | 일본진보당
영어 명칭 Japan Progressive Party
창당일 1945년 11월 16일
해산일 1947년 3월 31일
전신 대정익찬회(실질적)
후신 일본민주당
이념 보수주의
반공주의
초기
국체 수호
제국헌법 수호
통제경제 유지

후기
의회민주주의
보수자유주의
스펙트럼 우익~극우(초기)
중도우파(후기)
총재 시데하라 기주로(幣原喜重郞)
부총재 이시구로 타케시게(石黑武重)


중의원 94석 / 468석 (18.67%)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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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45년 11월 결성된 일본진보당은 전직 대정익찬회 출신 관료나 사업가, 정치인들이 모여 결성한 정당이다.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입헌민정당 출신이 가장 많다고 서술했는데, 실제로는 입헌정우회 출신의 혁신파(친군파)와 중립파(통일파) 인사들[1]도 많이 참가해서, 당 간부 중에 입헌민정당 출신이 많기는 하지만 수적으로 입헌민정당 출신이 가장 많다고 보기는 힘들다.[2] 전후 주요 정당들 중 가장 오른쪽에 있어서, 전시 통제경제와 제국헌법, 국체를 적극 수호하려는 정당이었다. 동시에 GHQ의 전범용의자 공직추방령으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정당이기도 하다. 당 창립 당시 소속 의원이 총 273명이었는데 이중 무려 259명이 공직추방을 당했다.

다만 모든 당 간부들이 전범 출신은 아니라, 대정익찬회 출신이 아님에도 초대 당 총재이며 입헌민정당의 마지막 총재였던 마치다 추지와의 인연으로 당에 가입한 가와사키 카츠[3]나 사이토 타카오[4] 같은 경우도 있었다.

공직추방령으로 당 간부와 의원 대부분이 추방당한 이후로는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극우에서 벗어나 급격한 온건화[5]를 추진하기 시작했고, 젊은 인사들을 대거 영입해 이미지 쇄신을 노리게 되었다. 당장 마치다 추지가 추방당한 이후 취임한 두번째 총재인 시데하라 기주로만 해도 전전에 온건한 평화 지향 외교정책을 펼쳐 우익들로부터 욕이란 욕은 바가지로 얻어먹었고, 전후에는 총리로서 인간선언과 신헌법 초안을 작성한 인물이다.

그 결과 1946년 선거 직전에는 당 간부 대부분을 대정익찬회와 무관한 인사로 채우는 데 성공했고, 선거 결과 94석을 얻으며 제2당이 되었다. 실질적으로 창당 시와 해산 시의 인적 구성이 매우 불연속적이라 다른 당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1947년 일본민주당으로 통합된다.

여담으로 아베 신조의 친조부인 아베 간도 이 당 소속이었다. 당원들이 대거 공직추방령을 당해 성향이 급격하게 온건화되기 시작될 무렵 영입되었고, 총선을 준비하던 도중 급사하였다고 한다.


[1] 하토야마 이치로를 중심으로 한 입헌정우회 출신 정통파(의회파) 인사들은 동교회(東交會)를 거쳐 일본자유당 창당에 참가했다.[2] 반대로 일본진보당과 경쟁하던 일본자유당은 당 간부는 물론 수적으로 봐도 입헌정우회 정통파 출신이 가장 많았으며, 사실상 입헌정우회의 명맥을 이은 정당이었다.[3] 다만 이사람도 무소속이긴 하지만 1942년 익찬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는 이유로 공직추방을 당했다.[4] 이사람은 아예 1940년에 군부를 정면으로 비판한 반군연설 사건의 주동자였다.[5] 자유당보다도 온건한 정당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고 하며, 실제로 그 목표를 거의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