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성군 순종대왕 일대기의 등장인물. 원 역사의 흥선대원군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조선의 방계 왕족으로[1] 이형의 친아버지이자 주인공 강백산의 친할아버지다.[2]
2. 작중 행적
작중에서는 노욕에 찌든 늙은이로 묘사되는데, 음험하고 카리스마 있지만 어딘가 허당기가 있는 인물로 나온다. 원 역사에서도 흥선대원군과 고종 모두 발밑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자빠지는 허당기가 있다는 평을 듣는다. 이척이 명성황후를 입궐시키기 위한 계획을 말하자 한숨을 쉬며 "네 애미다."를 내뱉기도 한다. 이후 이런 티키타카는 김옥균의 처우에 그런 유배를 가는 놈이 어디 있느냐라고 묻자 이척이 저기 시흥행궁에 한 분이라고 발언하자 "느그 애미다. 이놈아."라고 반복된다.9살 세자가 상상 이상으로 교활한 모습을 보이자 복잡한 심정을 품는다. 이후 정말로 세자의 말대로 청과 일본이 쳐들어오자 자기가 물러나는 것으로 청을 일단 물리기로 하고 씁쓸해하면서 조선을 번영시키기는커녕 망하지 않게 만들라는 숙제를 새로운 세대에 떠넘긴 죄악감에 자신의 섭정에 대한 야망을 포기한다. 이후 수원화성에 은거하며 손자가 개혁안을 보란 듯이 성공시키는 모습을 보고 과거 사람들이 자신에게 바랐던 이상적인 모습은 이것이었을 거라 생각하고, 손자에게 뒤를 맡기고자 자신이 모은 광맥 지도와 보부상 네트워크를 비롯한 모든 정보자산을 넘겨준다.
1884년 고종이 이하응과 민비를 불러들여 세자의 견제를 시키려고 하자, 손자와 짜고 치는 대립구도를 만든다. 위정척사파와 온건개화파를 끌어들여 의열단이라는 당을 최익현이 창당하자 임시 동맹을 맺는데, 손자에게 뒤를 맡기는 것과 별개로 권력욕이 다 사라진 건 아니며 차후 세자가 황제이자 이자(李子)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포부. 최익현이 자신처럼 권력을 노리고 있다고 의심 중이다. 최익현은 반대로 이 양반이 또 섭정직 탐하는 거 아니냐고 의심 중이다.
이후 의열단의 실질적인 당수로 활동하며 역시 공민당의 실질적 당수인 강백산과 WWE 판을 짜는 등 세자와 죽이 잘 맞는 모습을 보인다.
만주에서 날뛰는 마적단을 배후에서 움직이면서 조선이 만주로 진출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는데, 사실 의열단이 북벌을 부르짖고 있는 것과 별개로 의열단의 당수인 본인은 북벌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치도 않고 있었다. 그런데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만주팔기가 일개 마적단에게 속절 없이 무너지고 그 자리를 북양군이 채우고 있는 광경을 보면서 드디어 조선에 천명이 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이에 호응해 강백산이 압록강 건너 황성평에 있는 커다란 비석을 조사해보라는 암시를 주자 한번 조사해봤다가 광개토대왕릉비를 발견한다.
고종이 세자에게 어보를 던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조씨에게 왕호를 받고 백두산에 행궁이나 세워달라 하고 그곳으로 가겠다며 사실상 은퇴를 택한다. 본래라면 세자와 짜고서는 고종에게 양위를 종용하고 실세로서 군림할 작정이었지만 아들과 손자가 피를 보며 싸우는 걸 보고는 피붙이들이 싸우는 것에 질려버렸다는 이유였다. 이는 효(孝)라는 조선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명분을 이형에게서 강백산에게 넘기기 위한 수였고, 강백산의 찬탈에 간접적으로 기여하였다.
백두산으로 떠난 뒤에도 권력욕이 사라진 건 또 아니라서 만주에서 마적들을 부리며 왕 노릇을 하고 있는데 한국에 노동법이 제정된 이후 미국에서 철광과 석탄을 보고 들어온 미국 기업가들이 만주의 사람들을 착취하고 이하응에게 하소연을 하자 조선의 말과 역사는 없지만 섬길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다며 고구려의 상징인 빨간 천을 머리에 매면 한국인이라는 선언과 함께 기업가들을 조지면서 월급을 받아가게 해준다. 이것이 미국의 기업가들도 조선에 찍소리 못하게 만들고 청에는 홍건적이 신민들을 구호한다는 소문으로 떨게 만드는 스노우볼을 만든다.
이후 융희제가 군수 산업을 키우기 위해 북방에 총기들을 수거해 부품화시키고 새로운 총기 소비처로 만들면서 송경화를 비롯한 북방에서 일하던 장인들을 불러다가 완구 개발을 하고 싶다며 이야기 하는데 이하응은 그것이 본래 조선이 사용하던 완구가 아닌 새로운 것임을 알아보고는 네가 완구라 부르고 싶으면 부르라며 모른 척해준다. 그리고 융희제가 지금껏 해온 개혁이 과거 조선에 있던 흔적일 수도 있지만 결국 융희제가 만들어낸 것을 눈치챘고[3] 드디어 조선이 일어나 자부심을 가졌으니 그게 조선의 가능성이자 잠재력이었던 것이라는 결론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해준다. 융희제와는 세자 시절처럼 편히 부르고 융희제도 세자 시절처럼 존댓말을 하는 등 가장 통하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융희제와 만났다는 소식에 달려온 이형과도 만나는데 그가 자신도 이하응처럼 권력을 쥘 것이라는 선전포고를 하자 자신도 한 일이 있으니 인의니 뭐니하는 이야기는 안 할지라도 최소한 국인들이 혹할 이야기는 준비해오라고 한 뒤 나서고는 최익현을 만나서 친러파를 의열단에서 흡수해달라는 요구를 한다. 이형이 사고를 쳐도 러시아와 힘을 합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는데 최익현이 그러려면 최소한 차리즘이라는 러시아식 구조에 대해 알아야 한다 하자 사화를 일상적으로 일으키고 문체반정과 연산군 시절의 연회를 궁중문화로 포장하면 그게 차리즘이라는 설명을 해줘 아연실색하게 만들고는 웃는다.
육전과 해전 모두 러시아를 상대로 대승을 거둔 뒤 융희제가 백두산에서 봉선의식을 올리는 것에 동행하며 자신이 이 나라를 구할 존재가 아니었다는 사실과 자신 또한 그렇게 혐오하던 조선을 망가트리는 존재였으며 동시에 손자가 나라를 구해 봉선의식을 치르는 것을 바라보며 회한과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이하응의 거동을 돕는 자들이 있고 이하응은 마지막으로 봉선의식을 보고 죽어야 한다고 말하며 말리지 말라고 하며 가능하다면 아범과 보고 싶다는 말을 하는데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본래 수명은 1898년이고 그의 마지막 유언이 고종을 보고 싶다는 말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퇴장이 가까운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이후 쓰러진 것으로 나온다.
이후 1903년 승하한 것으로 나온다. 본래의 수명보다 5년 더 살았는데 이것을 통해 융희제는 산신령에 빙의까지 있으니 수명첩 하나 없겠냐는 걱정으로 쫓기듯 일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 조금 더 마음을 편히 먹고 다음 대를 이을 이은과 딸을 위해 조금 더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는 계기가 된다.
3. 기타
독자들에게 잘 만들어진 캐릭터라는 평을 듣는 인물로, 기존의 흥선대원군과 유사하면서도 변주된 캐릭터성을 보여준다. 아들과 화해하지는 못했지만 손자를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이루고자 했던 것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초심을 잃고 타락한 끝에 자신 또한 나라를 망치는 적폐임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조국이 승천하는 것을 바라보며 회한을 풀고 사망하는 것이 인상적이라는 평. 아들과도 마지막에는 화해했는지 이하응의 사후 이형은 자신의 변화된 처지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1] 흥선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인평대군의 6대손)이 사도세자의 아들 은신군의 아들이 되어 영조의 법적인 고손자(영조-사도세자-은신군-남연군-흥선군)가 되었다. 이형의 즉위 당시에는 사도세자가 추존되지 않은 상태였다.[2] 이형이 법적으로 9촌 아저씨인(영조-진종(효장세자)-정조-순조-효명세자 / 영조-사도세자-은신군-남연군-흥선군-이형) 효명세자의 양자로 즉위했기 때문에 이하응은 방계 출신 왕의 생부인 대원군(大院君)일 뿐, 법적인 관계는 끊어진 상태다. 법적으로는 이형의 양모인 신정왕후 조씨가 더 가깝다.[3] 이하응 본인도 개혁을 했고 그걸 말아먹어도 봤으니 융희제가 세자 시절부터 해온 것이 과거를 참고한 게 아닌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걸 알고 있던 것이다. 이미 나이 좀 있는 노신들은 다들 눈치챘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