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성군 순종대왕 일대기의 등장인물. 원 역사의 대한제국 고종황제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주인공 강백산의 빙의체인 원 역사 순종황제의 아버지이다.
2. 작중 행적
임오군란이 일어났을 때 강백산이 3번이나 고종을 대피시키려 했지만 대책 없이 앉아만 있다가 결국 붙잡히거나 여흥 민씨가 자신을 버리고 세자의 편을 들자 히스테리만 부리며 아들이 자신처럼 한심하면 내가 못나다는 소리는 안 들었을 거라는 생각이나 하는 한심한 모습만 보인다. 민영환이 성균관 대사성을 사직하자 받아주면서 세자의 혼수품으로 산 일본 비단을 내수사를 시켜 한성 쌀값 방어용으로 팔아치워 민심을 얻으려고 했지만, 이는 강백산의 예상대로였고, 강백산이 비단에다 성균관 관원들의 이름을 적은 뒤 '이름 없는 비단'을 보내 경화사족들이 세자의 편을 들게 된다.이후 옥좌에 박제된 옥쇄 찍는 토템이 되어버리나, 강백산이 자신이 아직 보검을 다룰 수 없다고 판단, 고종에게 내각제로의 전환을 요청한다. 내각제를 붕당이나 마찬가지로 안 좋게 본 고종이었으나, 강백산이 오히려 혼란스럽다는 건 의견이 전부 다르다는 거니까 그 중에 어심과 맞는 의견에 힘 실어주면 균형을 쉽게 바꿀 수 있다라고 조언하자 바로 자신이 권력을 다시 잡는거나 다름없다는 걸 캐치하고는 눈에 생기가 돌아오며, 제물포 사건에 대해 청과 일본의 요구를 받자마자 그걸 핑계로 하루 만에 내각제를 개각한다.
강백산이 고종에게 겉으로는 순종하다 보니 고종도 아직 강백산을 몰아낼 생각까지는 안 하고 있고,[1] 자신의 세력을 쌓아서 견제만 하자는 정도라 강백산도 자신이 클 때까지는 너무 위험한 게 아니면 그냥 본인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고 있다.[2] 강백산이 노비 관련과 서원 관련 정책을 내놓자 이 놈이 드디어 실책을 하는구나라며 흐뭇해했다고. 다만 이 두 정책이 기묘하게 시너지를 낸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김옥균이 1884년 신년사에서 대형사고를 쳤을 때는 지금 김옥균을 유림의 뜻대로 죽였다가는 백성들은 오히려 자신을 욕할 거라 판단해서 유보하고, 결국 세자를 찾아가서 총선에 대한 조언을 듣는다. 이때 언급된 바에 따르면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봐온 성리학자라는 놈들이 입만 살았지 정작 남을 찍어누를 때만 성리학을 인용하고 본인들이 제대로 지키는 모습을 보지 못해서 '이러면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지'라는 회의감을 느꼈고, 이 때문에 개항하자마자 경연을 때려치운 것이라고 한다.[3]
신하와 강백산이 살살 달래가며 교묘하게 정부를 운영해서 큰 사고는 안치고 있지만 내심 아들과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지 아들과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과녁에 활을 쏘는 쪼잔함을 보이고 있다. 그러다 세자가 효도 들어간다면서 고종을 찬양하기 위한 전국적인 법회를 계획하는데, 이유가 대규모 법회를 열게 해서 버블을 안착시켜야 함에도, 향청에서 과도한 사치다라며 태클을 거는 바람에 이게 불가능해지자 강백산이 너희가 주상 찬양하는 법회까지 반대하나 보자라며 고종을 핑계 삼아 대규모 법회를 준비하고 있는 것. 물론 조선이 사치와 향락을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어서 온갖 어깃장이 터져 나왔으나, 세자가 날 불효자로 만들 셈이냐라고 버럭하는 걸 보면서 진짜로 아들이 효도를 하는구나라고 직감해서 아주 행복하게 세자를 지지하는 논리를 즉석에서 창조해낸다. 그 후 자기가 봐도 도를 넘는 수준의 사치를 준비하는 세자를 보며 이 녀석이 내 복덩이 아닌가라고 고찰을 한다.[4]
북양함대와 경기수영 간의 강화해전이 터지자 청나라와의 전쟁 준비를 이유로 비변사를 모델로 한 원수부를 설치하고 각종 군제개혁을 실시하고 군비를 증강하는 등 간만에 일을 열심히 한다. 정작 고종의 의도는 국난을 핑계로 자기가 좋아하는 밀덕질 겸 자기 권력을 강화하려는 의도였으나 세자로부터 지금 전쟁 준비는 단순 놀이가 아니라 진짜 전쟁 준비이며 자기가 청군의 목표라는 사실을 깨닫고 확 세자한테 양위해버릴까 생각한다. 게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조선과의 전쟁 시 직접 한성을 공략하는 참수작전을 담당하게 된 원세개가 조선에서 무사히 살아남아 빠져나오기 위해 세자와 WWE에 합의하면서 개전과 거의 동시에 원세개의 포로로 잡힐 운명에 처해 있다. 대신 원세개 입장에서 현 상황에서 줄을 타기 위해서는 이형이 살아있어서 세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목숨 역시 보장받았다.
청나라와의 전쟁이 임박하자 이쪽에서 먼저 선전포고를 하자는 강백산의 제안에 반발하는데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전쟁이니 차라리 미리 소식을 전하고 백성들에게 먼저 피난할 시간을 주자는 강백산의 논리에 수긍하고 세자에게 대리청정과 분조를 맡긴 후 파천 준비를 한다. 개전 당일이 되자 열차에 올라 파천길에 올랐으나 세자가 원세개와의 WWE로 고종의 신병을 원세개에게 넘겨주기도 전에 하필이면 고종이 탄 열차가 지나가는 길에 북양함대의 포격이 떨어진다. 결국 포격에 휩쓸린 열차는 그대로 전복, 고종은 중상을 입은 채 청군에게 생포되어 원세개가 고종의 신병을 맡는다. 정여창은 원세개에게 당장 고종을 청나라로 압송할 것을 요구했지만 세자와 미리 WWE에 합의했던 원세개는 고종은 중상이라 잘못하면 죽을 수 있다는 핑계[5]로 그대로 무시한다.[6] 북양군이 조선군에게 박살나고 쫓겨난 후 원세개와 조선간의 포로 교환을 통해 다시 조선으로 송환되는데, 그 짧은 포로 생활 동안에도 원세개가 잘 대접해줬는지 그 사이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청군에게 생포되자마자 마치 우연처럼 원세개가 데려가 자신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을 보고 세자와 원세개 사이에 모종의 합의가 있었다고 의심하는데, 그리고 세자가 포로교환을 지렛대로 삼아 자신이 미처 경복궁에 돌아오기도 전에 재빠르게 종전 협상까지 마무리지으면서 자기가 활약할 자리를 남겨두지 않는 것을 보고 불효자 세자가 실권을 차지하고 나아가 왕위 세습을 노리는 거라 확신한다. 그래서 실권을 되찾기 위해 돌아오자마자 정식으로 칭제건원을 하자고 주장하면서 종전협상이 체결되는 대로 자신이 대리청정을 거두고 자신이 다시 친정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전쟁 기간 동안 세자의 활약을 옆에서 봐온 신하들은 이에 부정적이었지만 고종의 정론에 딱히 반론하지는 못했는데, 청나라에서 귀국해 성균관 총장이 된 김옥균이 고종의 적극적으로 동조해 종실의 봉호를 황제국의 예에 맞게 올리자고 제안하자 흡족해 했으나 그 직후 김옥균이 영국처럼 세자에게 새 왕호를 내려서 실권은 세자에게 넘기고 너는 트로피 노릇이나 하라고 폭탄발언을 하자 다시 분위기가 싸해진다.
중간에 세자가 나서서 일단 막기는 하지만 결국 기싸움으로 번지게 되고 분노로 어보를 세자의 이마에 던진다. 이후 급히 정보 통제를 하며 원구단을 세워 칭제건원을 하려 하지만 본인을 제외한 모든 인원들이 물밑 작업을 해 고종이 세자에게 어보를 던져 다치게 했다는 소문이 민간에 퍼질대로 퍼졌고 세자가 의식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소식으로 폭탄이 터진다.
결국 이강을 세자로 대신 올릴 작정으로 원구단으로 향하는데 백성들은 이미 머리에 붉게 물들인 천을 감아 사실상 파업을 선언한 상태. 거기에 원구단에는 세자가 멀쩡히 기다린 채로 조대비의 인정까지 받아들어 사실상 대의 명분이 거의 상실된 상태에서 세자가 칭제건원을 할 것이 아닌 대한민국이 되어야 할 것이라며 고종이 의식의 화려함을 위해 가져다 둔 전함에 장전한 고폭탄을 터트리는 퍼포먼스와 함께 못을 박아 버린다. 성리학을 내세워 조상께 제사를 드리고 칭제건원을 해야 한다 주장하려 했지만 이미 주자를 파묘하자던 김옥균의 활약으로 백성 사이에 성리학은 이미 사망했고 관료들마저 청나라에 선전포고를 하며 성리학을 포기했기에 의미도 없을 뿐더러 억지로 칭제건원을 한들 세자는 이미 백성들의 지지를 업고 입헌군주가 되건 대통령이 되건 힘을 쓸 수 있지만 고종은 아무것도 한 게 없어서 황제가 되어도 사실상 장식품이 되는 게 확정되는 상태다. 게다가 세자를 견제하고 세자를 바꾸기 위해 빌드업을 하겠다고 불러들인 이강은 저잣거리에 살면서 이미 민심의 흐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본인조차 붉은 천을 준비하고 고종에 반발한 상태였다.
그 결과, 어떻게든 이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조대비를 핑계삼아 주도권을 잡으려고 시도했으나, 이강이 태자 전하 만세라며 고종과 강백산의 예상을 어그러트렸고, 이를 급히 김옥균이 대한민국 만세, 태왕 폐하 만세를 외치며 커버한 것을 계기로 원구단에 모인 조선 백성들이 전부 태자 전하 만세, 태왕 폐하 만세를 외치며 환호하는 탓에 고종의 권력 장악 발악은 30분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결국 조선 태왕이 되고 30분만에 강백산이 조선 태왕인 대한 융희제로 즉위하며 사실상 트로피 역할도 못 하게 된 모양.
현재는 상황으로 지내고 있으나, 당연히 대한민국의 전원이 고종을 놔두면 뭘 할지 모른다고 감시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문제는 고종이 아직 젊다보니(38세) 러시아가 무언가 꾸미고 있는 중이라고.
그 와중에 유인석은 "패륜을 저지른 융희제도 잘못하기는 했지만,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인 상황이야말로 더 문제 아니냐?" 라고 논설로 돌려 깠을 정도로 남아있는 유림에서조차 이미지는 나락으로 가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형이 전쟁 당일날 인질로 잡혀버려 세자가 혼자 하드캐리한 끝에 아버지를 간신히 구출했더니, 돌아오자마자 세자를 패싱하고 궁 밖에 살 정도로 아오안이었던 '궁녀의 아들'을 대신 세자로 내세운다는 건 한국사는 물론이고 중국사 전체를 뒤져봐도 전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행동이다. 이는 중전 민씨를 비롯한 외척인 여흥 민씨 전체에 대한 숙청과 직결되고, 이형이 이척 대신 내세우려 한 이강의 어머니는 쫓겨난 궁녀라서 왕비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민씨를 폐위시키면 새 왕비를 들여야 해서 상황에 따라서는 연산군-중종, 인종-명종, 경종-영조의 일을 더 심하게 되풀이할 수도 있다. 왕비의 유일한 아들이자 전쟁영웅조차 주저 없이 날리는 인간이니만큼 왕이 자기 이익을 위해 아들을 마구 죽이고 세자를 바꾸는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되며, 이는 최악의 경우 조선 왕조의 멸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이다.
거기다 유교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을 해치는 것도 엄연히 패륜으로 간주되는데 왕이 세자의 머리에 어보를 내던져 피투성이로 만드는 등 유학자 기준으로도 문제 되는 행동을 저질렀고, 이형 또한 세자가 쓰러진 뒤 대비와 대원군을 상대로 불효로 간주될 만한 행동을 하면서 불효라는 명분조차 본인이 스스로 날려버린 격이 되었다. 이러니 유림의 입장에서 이척이 왕위를 계승하는 중입니다라는 패륜을 저질러도 이척의 인과응보라고 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1890년 말, 손자인 이은이 태어나자 퉁명스러워하면서도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이면서 강백산에게 양위한 것을 인정했다.[7]
이후 이하응이 강백산의 부름으로 서울로 온 것에 기분 나빠하면서 그럼에도 만남을 진행해 이하응에게 자신도 과거 자신의 왕위 초기시절 이하응처럼 한국의 실권을 쥘 것을 선언한다. 전략은 무조건 아들과 반대되는 노선을 취하는 것으로 이홍장이 하는 일마다 어깃장을 놓던 서태후와 같은 전략이다. 아들이 개혁을 원하면 자신은 수구노선을 취하고, 반상의 구분을 철폐하려는 아들에 맞서 반상의 구분을 강력히 지지할 것이라고.[8] 이후 러시아와 무슨 일을 꾸미는지 러시아 공사관에서 이형이 머무는 수강궁에 러시아풍 건물들과 함께 도로를 닦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어진건 한량행세였다. 러시아 공사관에 놀러가 돌아가지 않아 강백산이 직접 나서서 데려오게 하는 등 본인이 잘날 수단이 없으니 한량행세를 하며 자기 아들인 황제의 권위까지 깎아먹으려는 것. 더구나 여차하면 아관파천까지 해서 한량인 아비는 그럴수야 있는데 아비가 아관파천 할때까지 아들은 뭐했느냐는 평판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동시에 제3의 당파를 만들어 친러파를 업고 황권파를 만들어 힘을 써보려고 한다. 하지만 강백산은 이미 전부 파악한 상태로 창당식에 선물을 보내고 의열단을 통해 친러파를 흡수, 이형에게 돌아갈 힘을 빼앗으며 아예 대한민국의 국제인 공민통치를 부정하는 이들을 강상죄로 처벌하는 것을 진행하고 있어 이형에게 있어서는 미래가 암담한 상태다.
그리고 강상죄가 개정되자 강백산이 자길 죽이려 한다고 확신해 새벽에 러시아 공사관을 찾으나, 알렉산드르 3세의 사망으로 인해 러시아가 극동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데다가, 러시아 황실 기준으로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일은 흔하다보니 왜 자기들을 찾냐며 내쫓겨서 아관파천도 실패한 고종이 되어버리고 만다.
결국 고종을 가둬두기 위해 군민공치에 대한 동양판 국제 박람회를 열자며 동양의 이름 난 명사들을 모아 신 세대의 백가쟁명을 열기로 하고, 직하학궁에서 이름을 따온 혜화학궁에 유폐된다. 공식적으로는 벌이 아니지만, 동양 천지에서 불러온 대학자들의 경연에 강제 참가해야 하기 때문에 고종에게는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인 셈. 설상가상으로 민자영이 대놓고 옆에서 감시하고 있어서 도주도 불가능하다.[9]
그렇게 수년이 지나면서 부친 흥선대원군이 먼저 졸하고, 사망하기 전에 아들을 보고 싶고 걱정된다는 유언을 남기자 그 장례식 중에 아들과 만나 화해하게 된다. 아들에게 손자인 이은을 좀 더 챙겨주라고 당부하면서 권력에 대한 야심을 버리고 그저 할아버지가 되었다. 후일 손자 이은 입장에서 다시 언급되는데 잘 따르고 좋아하긴 하지만 할아버지가 무능해서 아버지한테 밀려난 건 손자 입장에서도 딱히 실드칠 거리가 없다고. 이은의 말하는 걸 보면 손자 붙들고 자긴 황위를 찬탈당했다고 투덜거린 모양.
3. 기타
강백산은 '수염난 호빵맨'이라 부르며 강백산 평에 따르면 기가영조 반, 기가인조 반이라고 한다. 무능하고 찌질한 암군의 모습만 보여서 독자들에게 까였고 작중 조선인들조차 이형에게는 티끌만큼도 기대하지 않는 걸 보면 답이 없는 수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버지 이하응 문제와 특유의 소시민적인 성격 때문에 강백산이 적당히 비위만 맞춰주면 큰 트롤링은 안 한다는 것이다.신하들과 양반들은 이미 고종에 대해 거의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강백산은 속내야 어쨌든 아버지를 목숨 걸고 구하고 아버지에게 군말 없이 충성하는 "효자"이며, 그것이 진심으로 아버지를 사랑해서든 아버지가 건재해야 자신히 무탈히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어서이든 세자는 겉으로는 고종에게 반심 한번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러다 보니 신하들과 양반들의 입장에서 이미 실책만 반복한 고종보다 어리지만 유능하고 아버지를 딱히 해치려 들지도 않는 세자 쪽에 더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것. 백성들도 20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고종에 대한 기대감은 전혀 없고 세자에 대해 기대하고 있다. 작중에서 양반부터 서민까지 이형이 유능하다는 생각은 일체 하지 않으며 그저 성군의 자질을 가진 세자가 아버지를 효자로서 잘 봉양해서 하늘이 조선에 흥복을 내려주었다고만 생각하는 시점에서 얼마나 평판이 나쁜지 알 수 있다.
원 역사에서도 심미안만은 알아주었던 고종답게 예술과 심미안에는 능하다고 묘사된다. 특유의 소시민적이고 유흥 좋아하는 성격도 그렇고 왕보다는 풍류 좋아하는 방계 왕족으로 사는 게 더 어울렸을 인간.
역사적 인물 고종이 아니라 인간 이명복으로 본다면 이해가 안 가는 인물은 아니다. 평생 친부 흥선대원군에게 왕위를 빼앗기면 죽는 인생을 살아왔는데 부인 민자영과는 임오년 이래 갈라섰으며 효자를 자칭(?)하던 세자마저 전쟁통에 아비를 두고 청적과 거래를 하였다. 거기에 조대비마저 자신을 버리니 남은 것은 진정 왕위뿐이니 집착할 수밖에 없다. 본인이 능력을 못 보여주고 왕위에 집착해서 나라를 망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애초에 세도정치를 끌어내리기 위해 교육도 못 받고 왕이 된 것이니 본인 딴엔 억울할 수는 있는 것. 거기다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잘못된 양육 때문에 부자관계에 대한 가치관이 심각하게 뒤틀려 있어 아버지도 자신에게 그랬는데 내가 왜 아들에게 그러면 안 되냐는 보상심리까지 있어 더욱 꼬인 것이다.
이 꼬인 것이 점차 치졸한 방식으로 발전해나가면서 원래도 없던 평판이 작중에서나 독자에게서나 모두 나락으로 떨어지는 중이다. 그나마 이하응도 승하한 뒤로는 융희제와 화해한 뒤 권력에 대한 욕심은 버린 것으로 보인다.
[1] 고종은 권력과 자기보신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언제나 후자를 선택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원 역사에서 도망쳐야 할 때마다 제때 도망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2] 미국에서 개인 계좌 개설하는 걸 알면서도 그냥 놔뒀는데, 문제는 당대 미국 자산의 신용 수준이 수준인지라(21세기의 중국 수준이었다) 독자들은 안목이 없다고 깠다.[3] 이 때문에 독자들은 고종은 왕이 되기에는 너무 소시민적인 인간이라고 평했다.[4] 당연하게도 작가는 너무 늦은 고찰이라고 깠다.[5] 나중에 밝혀지길 다리가 부러지고 목에 무리가 갔긴 했지만 목숨에 지장이 갈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한다.[6] 논리적으로는 맞는 소리인게, 이미 고종은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긴 상태이므로 만약 고종이 압송 도중 사망이라도 하는 순간 조선은 독립선언도 해서 상국의 허가는 필요도 없으니 바로 세자를 차기 국왕으로 옹립하면 되는데다가 조선군 전원이 (못나기는 했어도) 주상전하를 시해한 되놈들을 죽이겠다며 들고 일어설 것이 불 보듯 뻔하기는 했다. 당장 작가의 데뷔작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에서도 비슷한 전례가 있었다.[7] 함흥차사 일화에서도 있듯이, 양위당한 선왕이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나는 이걸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의미가 된다. 이형이 손자의 탄생에 조대비의 상을 핑계로 은거하다가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인 것으로 나는 아들에게 양위한 것을 인정한다라는 암묵적인 약속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8] 물론 이하응은 자신이 한 일이 있으니 설득할 생각은 없지만 최소한 백성들이 혹할 이야기 정도는 준비하라는 한마디를 해준다.[9] 해당 편 화자인 후쿠자와 유키치는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는 단번에 그 역할이 경연의 진행자나 주최자가 아닌 거기에서 추임새나 넣어줄 광대라는 것을 알아챌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