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3명 중에 맨 오른쪽 사람. 맨 왼쪽은 세작, 가운데는 이동형 작가다.)
李鍾羽 / Lee Jong-woo
상지대학교 교양과 조교수(2015년 기준).
1976년 강원도(현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에서 태어나 횡성군에서 중학교까지 다녔다.[1] 원주고등학교, 숭실대학교 사학과,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종교학과(99학번)를 졸업했다. 모두 졸업했으니 학사만 2개.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2010년 8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종교학 전공에서 '조선 전기 종교정책 연구 - 불교정책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중심으로 -'라는 학위 논문으로 철학 박사(Ph.D)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직업상 서울특별시와 고향이 있는 강원도를 오가며 살고 있다.
2. 상세
일명 이박사. 실제 박사라서 붙은 별명이다. 팟캐스트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에 출연하여 이름을 알렸으며 이이제이를 통해 줘도 못먹는 캐릭터를 확립하였다. 그 외 몇 가지 팟캐스트를 기획 및 진행하기도 했다.팟캐스트에서의 기믹은 전형적인 고학력 저임금 노동자로, 이이제이 방송 초기에는 언론사 등에도 들이 밀어봤다가 실패하고 겨우 시간강사로 들어간 상황이었다. 포지션상으로는 친노[2].
방송 초창기에는 항상 시작하기 전에 "이박사의 연애도전기"(?) 같은 코너가 있는데, 항상 여자가 적극적으로 대쉬해도 실패하는 사례를 이야기하면, 세작과 이작가에게 신나게 까이는게 패턴이었다. 이게 하도 한심하기도 하고 징징거림도 심해서 "사연을 듣고 있으면 진짜 패버리고 싶다"라는 리뷰가 많이 올라왔었다고 한다. 이 패턴은 시간이 좀 지나고서는 누군가와 교제를 시작했다고 하여 어느샌가 사라졌....었으나 2014년 방송분에서는 본인이 솔로임을 천명한다.
그 외에도 몇몇 거물 정치인의 성대모사를 하며 세작과 상황극을 펼치기도 하는데 주로 악역(이를테면 친일파)을 맡는 듯. 그리고 무슨 얘기만 나오면 관련된 노래나 CM송을 불러제낀다. 그 많은 노래나 CM송을 기억하는 것을 보면 노래실력과는 별개로 그것도 나름 엄청난 재능이라 할 수 있겠다. 어린 시절 TV를 보며 지낸 시간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라디오를 많이 들어서 그렇다고 언급한 적도 있다.
이이제이 SK그룹 특집을 통해 인천광역시에서 살았고, SK 와이번스를 안 좋아한다고 말하여 현대 유니콘스 팬임을 인정했다. 이이제이 268회에서 키움 히어로즈 팬임을 인증했다. 또한 2015년 3월 28일 방송된 투돼지쇼에서의 발언으로 개신교에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드러냈다.
상지대학교 관련으로는 상당히 몸을 사리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상지대에 출강하고 있는
2015년 1월 기준 이이제이와 국민TV(국민라디오)의 '투돼지쇼'에 출연하고 있다. 2014년까지는 국민라디오에서는 아브라카다브라라는 제목으로 방송하였으나 개편을 통해 제목을 통일하였다. '투돼지쇼'는 다시 우희종 교수, 김근수 편집장과 함께 종교에 관한 담론을 나누는 '쇼! 개불릭' 으로 확대개편하여 2015년 9월 24일부터 방송을 이어나가고 있다. 개편한 쇼! 개불릭에서는 진행자 기믹을 맡고 있다. 투돼지쇼를 함께 진행했던 김용민은 개신교 파트 패널로 자리를 옮겼다.
지상파 방송에도 출연하는데 KBS춘천방송총국 자체제작 프로그램인 시사토크쇼 강냉이의 패널로 출연하고 있었다. 지금은 개편 후 짤린 상태...
서울특별시 신촌에 있는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이이제이' 이박사의 If (만약에) : 팟캐스트보다 재미있고 진지한 우리 역사 강의의 강사를 맡기도 했다.
그리고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 189회에서, 상지대학교에서 해고될 예정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2016년 12월 11일, 박근혜 탄핵 다음날에 복직하였다.
2017년 3월 1일자로 상지대학교 교수로 복직했다. 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19139 이상하게도 이이제이가 끝난 다음날 이런 결정이 내려졌다고.
2022년 2월 23일 이이제이에 이동형 작가[3]와 김태현 기자가 출현하지 못하면서 세작과 함께 대타로 출연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재학 시절이던 2005년부터 대순진리회와 관련을 맺기 시작해 기사를 통해 대순진리회에 대한 세간의 오해에 대한 변호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