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15 17:24:42

이스마일 사브리 야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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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말레이시아 제9대 총리
이스마일 사브리 야콥
إسماعيل صبري بن يعقوب |Ismail Sabri Yaakob
파일:이스마일 총리.jpg
이름 <colbgcolor=#ffffff,#191919>이스마일 사브리 야콥
Ismail Sabri Yaakob
إسماعيل صبري بن يعقوب
출생 1960년 1월 18일 ([age(1960-01-18)]세)
말라야 연방 파항 주 테메로
현직 UMNO 부대표
학력 말라야 대학교
약력 말레이시아 부총리
말레이시아 국방장관
UMNO 당대표 대행
말레이시아 총리
정당 UMNO

1. 개요2. 생애3. 정치 활동4. 평가
4.1. 긍정적 평가4.2. 부정적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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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말레이시아의 정치인. 말레이시아의 제9대 총리.

2. 생애

파항 주 테메로 출신으로, 1972년 방아우 초등학교(Sekolah Kebangsaan Bangau)를 졸업했으며, 곧바로 쿠안탄의 아이르푸티 중학교(SMK Air Putih)[1]에 입학해 3학년까지 수학했다가, 1976년 쿠안탄 기술중학교(Sekolah Menengah Teknik Kuantan)로 전학을 갔다. 이후 말라야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3. 정치 활동

본업은 법조인이었으나, 1987년부터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에 입당해 지역에서 조직을 다져 나갔으며, 2004년 제11대 총선에 신설된 베라 선거구에 출마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08년 재선 이후 압둘라 아마드 바다위 내각의 청년체육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으나, 당시 총선 패배의 여파로 압둘라 총리는 사임 압박을 받고 있었으며,[2] 결국 이듬해 나집 라작 부총리에게 직을 물려주고 사임했다. 나집 1기 내각에서 국내무역협동조합소비자부 장관을 지냈으며, 2013년 재선 이후 농림농산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2015년 개각 때 지방지역개발부 장관으로 이동했다.[3]

이후 2018년 제14대 총선에서 집권 국민전선(BN)이 희망동맹(PH)에게 패하자 내각에서 물러났으며, 당 지도부도 총사퇴했다. 6월에 치러진 조기 전당대회에 부대표(Vice President) 중 한 명으로 출마해 1위로 당선되었다.[4] 대표로 당선된 아흐마드 자히드 하미디 전 부총리가 나집과 마찬가지로 재판 절차를 밟게 되면서 대표직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자 12월 휴가를 냈으며, 2019년 6월에 복귀했다. 당연히 야권대표직도 수행하지 못 하면서, 2019년 3월 사브리에게 직을 양도했다.[5]

2020년 2월 PH 정권의 붕괴와 일련의 정치 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야권 및 PPBM 등이 범보수연합을 결성하게 되었고, 무히딘 야신 PPBM 대표가 제8대 총리에 취임하게 되자, 사브리는 국방장관 겸 선임장관 4인 중 한 명으로 임명되었다.[6] 시기가 시기였던지라 코로나-19 대응을 총괄하는 데 앞장서면서 존재감을 얻었다.[7]

하지만, UMNO와 PPBM 간의 골이 깊어지면서 내각 붕괴설까지 나돌았고, 이를 막기 위해 무히딘은 2021년 7월 7일 사브리를 부총리에 임명하면서 갈등 봉합을 시도했으나, 당일 UMNO가 무히딘 지지 철회를 선언하면서 별 효과를 보지 못 했다. 다만 자당 소속 각료들이 잔류하고, 별 후속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일종의 립서비스에 그치면서 해프닝으로 끝나는 줄 알았으나, 8월 3일 11명의 당권파 의원들이 공식 지지를 철회하면서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자히드 대표는 공식적으로 지지를 철회했으나, 사브리는 지지 철회에 반대했으며, 제15대 총선까지 무히딘 지지를 철회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당이 내분을 겪게 되었으나, 결과적으로 사브리 측 의원 수가 조금 더 많았고, MCA, MIC, PBRS 등 BN 내 기타 구성원들은 무히딘을 계속 지지하면서, 오히려 자히드만 되레 고립되는 모양새를 보였다.

그러나 무히딘은 이미 원내 과반 의석을 잃었고, 국왕마저 등을 돌리자 16일 전격 총리직을 사퇴한다. 이에 차기 총리 후보군이 거론되기 시작했으나, UMNO 당권파가 보여주었던 행동이 일각에서부터 총리직을 차지하기 위한 꼼수라는 얘기가 나왔고, 실제로 UMNO는 차기 총리 후보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자히드 대표, 모하마드 부대표, 사브리 3인이 후보군에 올랐으나, 재판 문제가 걸렸고 비토가 상당한 자히드가 먼저 자진 사의를 표명했고, 모하마드는 원외 인사라 총리직에 오를 수가 없어, 최종적으로 사브리로 확정 되었다. 이후 범보수연합이 전격 사브리를 지지했으며, 현재까지 222석 중 115석을 확보하면서, 105석을 확보한 안와르 이브라힘을 누르고 차기 총리에 오를 듯.[8]

2021년 8월 19일, 말레이시아 하원이 이스마일을 총리로 지명하고 다음날 20일에 국왕이 이스마일을 임명하게 되면서 21일날 말레이시아 총리직에 취임하게 되었다.

4. 평가

당 내 온건파로 분류되며, 이 점은 보수 진영 내 다른 정당(PAS, PPBM)들로부터도 크게 호평을 받는 이유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긍정평보다 부정평이 훨씬 더 많으며, 후술하겠지만 온건 성향과는 별개로 잦은 논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4.1. 긍정적 평가

코로나 1차 대유행(2020년 3월 ~ 6월) 시기 무히딘과 함께 코로나 극복에 앞장섰으며, TV 공식 발표에 자주 얼굴을 비추면서 범국민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덕에 국민 삼촌(Pak Long)[9]으로 등극했다. 이 때 말레이시아는 강력한 봉쇄령으로 1차 대유행을 극복했으며, 인구수 대비 매우 낮은 확진자를 기록하면서 방역 모범국으로 떠올랐다.[10]

4.2. 부정적 평가

사브리는 온건파로 분류되지만, 이 말도 정확히는 당 내 중립파에 가깝지, 민족·종교 문제에서 온건파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특히 사브리도 대표적인 말레이인 민족주의자 중 한 명이며, 말레이인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발언들을 꾸준히 하는 과정에서 되레 중국계들과 잦은 마찰을 빚었다. 2015년에는 말레이인들에게 중국계 회사 제품 불매 운동을 벌일 것을 촉구했으며, 이때문에 중국계들의 상당한 반발을 샀다. 같은 말레이인 정치학자인 완 사이풀 완 잔도 그를 비판했다.[11]

2018년 총선을 앞두고는 "PH에 투표하는 것은 민주행동당(DAP)에 투표하는 것과 같으며, 이는 말레이·이슬람 정체성을 크게 훼손할 것"[12]이라는 발언을 했는데, 이에 DAP는 사브리의 발언을 두고 "말레이인과 중국인을 갈라치려 한다"고 비판했으며, "DAP도 말레이인을 존중한다"고 반박했다. 사브리는 이후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았고, 당시 BN 정권을 향한 흉흉한 민심까지 겹친 와중에 이런 발언은 중국계들의 분노를 자아냈으며, 결국 총선에서 BN이 대패하는 원인이 된다. 당시 중국계의 무려 95%가 PH를 찍었는데, 실제로 중국계 선거구들은 죄다 PH가 가져갔으며, BN 내 중국계를 대변하는 MCA는 말레이인 선거구인 아예르히탐을 겨우 사수했을 정도였다. 이 정도면 이 발언이 상당한 파장을 남겼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후자의 발언은 훗날 재평가를 받게 되었는데, 사브리의 말대로 PH가 집권한 이후 ICERD 등 말레이인의 권리를 지우려는 시도 등으로 의도치않게 예언이 되었으며, 결국 말레이인들은 이에 대한 분노로 2019년 탄중피아이 보궐선거에서 PH를 심판했다.


[1] 1973년에 입학했으며, 당시에는 중국계 하급중학교(SMRJK)였다. 1974년에 지금과 같이 말레이계 공립학교가 되었다.[2] 오죽했으면 당시 같은 당 소속인 마하티르 빈 모하맛 전 총리가 사임을 압박했을 정도였으며, 여기에는 그간 마하티르계로 분류되었던 무히딘 야신 전 총리도 있었다.[3] 당시 개각의 원인은 나집을 둘러싼 1MDB 게이트 논란 때문에 발생했는데, 무히딘 등 UMNO 내 비당권파들이 나집에게 의혹을 제기했다가 전격 경질되었다. 사브리의 바로 전임자인 샤피 압달도 그 중 하나였으며, 이들은 이듬해 UMNO에서 제명된 후 통일원주민당(PPBM)을 창당했다. 단, 샤피 압달은 사바유산당(WARISAN)을 창당.[4] 한국어로는 "부대표"로 분류되지만, 직책이 Deputy President와 Vice President 둘로 나뉜다. 전자는 1명을 뽑지만, 후자는 상위 3명을 뽑는다.[5] 당 대표 대행인 모하마드 하산 부대표(Deputy President)는 원외 인사라, 야권대표 직을 수행할 수 없었다. 따라서 사브리가 대신 맡게 된 것이다.[6] 정파들 간의 갈등을 막고자 부총리직을 일부러 비워 놓았다. 대신에 4명의 선임장관이 부총리에 준하는 역할을 맡았다.[7] 일대일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대한민국으로 치면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보여주었던 역할을 떠올리면 되겠다.[8] 둘을 합치면 2석이 비는데, 이유는 UMNO 의원 1명과 WARISAN 의원 1명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본디 보궐선거를 바로 치러서 공석이 없어야 하나, 코로나-19로 무히딘이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모든 선거가 전격 연기되었고, 이에 따라 해당 두 의석도 공석으로 남아있는 중. 8월 1일부로 비상사태는 종료되었으나, 현재 상황을 감안하면 조기 총선에 더 무게가 가는 것으로 보아, 보궐선거가 끝내 치러지지는 않을 듯.[9] 정확히는 첫째 자녀를 long이라고 하며, 둘째는 ngah라고 하나,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다 삼촌/숙모/이모/고모 등으로 번역된다.[10] 당장 인접한 싱가포르만 해도 외노자 기숙사발 집단 감염으로 심각한 대유행을 겪었으며, 인도네시아 또한 확진자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 반해, 말레이시아는 이를 재빠르게 극복했다. 심지어 방역 모범국 중 하나로 손꼽히던 호주마저 2차 대유행(빅토리아주발 집단 감염) 앞에서 무너지면서, 말레이시아는 더욱 더 고평가를 받게 되었다.[11] 이후 PPBM에 입당해 픈당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하지만 이후 PPBM이 UMNO와 손을 잡으면서 정작 본인도 같은 민족주의자가 되었다.[12] 정확히는 "DAP에 투표하는 것은 PH에 투표하는 것과 같다"이지만, 맥락을 감안해 반대로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