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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반 아센 3세 (영어: Ivan Asen III, 불가리아어: Иван Асен III) |
출생 | 1259년 또는 1260년 |
사망 | 1303년 |
직위 | 불가리아 제2제국 차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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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불가리아 제2제국 12대 차르.2. 생애
1256년 9대 차르로 즉위한 미초 아센의 아들로, 1277년 이바일로의 반란이 불가리아 전역을 뒤덮는 걸 두려워한 동로마 제국 황제 미하일 8세에 의해 불가리아 차르로 옹립되었다. 미하일 8세는 딸 이리니 팔레올로기나와 결혼시킨 뒤 군대를 맡겨 트라키아를 공략하게 하였다. 그러자 미하일 8세의 조카이자 미하일 아센 2세의 어머니인 마리아 팔레올로기나 칸타쿠지니는 자기를 도와주진 못할 망정 새 차르를 세운 삼촌에게 분노하여 남편 콘스탄틴 아센 1세를 죽인 이바일로와 결혼하고 자기 아들과 함께 차르를 칭하게 하였다.1278년 이바일로가 드러스터르 요새에서 3개월간 킵차크 칸국 군대에게 포위되어 있을 때, 귀족들이 타르노보에서 반란을 일으켜 마리아 황후와 미하일 아센 3세를 폐위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추방하고, 이반 아센 3세를 새로운 차르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바일로가 포위망을 돌파하고 킵차크 칸국 군대를 본국으로 돌아가게 한 뒤, 타르노보를 포위했다. 1279년 미하일 8세가 급파한 동로마군 10,000명이 타르노보로 접근했지만, 이바일로는 데비나에서 이들을 괴멸시켰다. 다시 5,000명의 동로마군이 추가로 파견되었지만, 발칸 산맥을 지나가던 중 매복에 걸려 패배했다.
이반 아센 3세는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고 판단하고, 타르노보에서 도망치면서 왕실의 보물을 모조리 가지고 갔다. 그는 메셈브리아로 간 뒤 배를 타고 콘스탄티노폴리스로 피신하였다. 하지만 귀족들은 게오르기 테르테르 1세를 새 차르로 추대하고 이바일로에 계속 맞섰고, 거듭된 전쟁에 지칠대로 지친 지지 세력이 등을 돌리면서 세력이 급격히 약화된 이바일로는 1280년 킵차크 칸국으로 망명하였다.
얼마 후, 이반 아센 3세는 미하일 8세의 지시에 따라 킵차크 칸국으로 갔고, 이바일로가 거기에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도움을 요청했다. 킵차크 칸국의 노가이 칸은 두 차르를 놓고 저울질하다가 미하일 8세에게서 막대한 뇌물을 건네받고 이바일로를 처형했다. 그러나 불가리아 차르로 복귀하려는 계획은 끝내 실패했고, 동로마 제국으로 돌아와서 소아시아 트로드의 영지에서 여생을 보내다 1303년경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