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Mpemba effect'비교적 뜨거운 액체'가 '비교적 차가운 액체'보다 더 빨리 고체로 상전이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고 그만큼 드물지만 엄연히 관측되는 현상이며, 동시에 현재까지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물리학의 난제 중 하나이다.
당연히 모든 상황과 조건에서 뜨거운 액체가 더 빨리 어는 것은 아니며 대부분의 경우는 차가운 액체가 빠르게 언다. 그릇 모양이나 불순물의 유무 등 각종 변수에 따라서 이 효과가 명백히 관측될 수도, 또는 미미하여 관측되지 않을 수도 있다. 덕분에 실험을 하더라도 효과를 재현하기가 일단 쉽지 않은 것도 하나의 난점인데, 일단 《뉴 사이언티스트》에 따르면 섭씨 35도와 5도의 물을 각각 비교할 때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모양. 또한 음펨바 효과를 엄밀하게 정의하려면 "언다"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짚는 것부터 선행되어야 한다("언다"에 대한 학설 제시). 이를테면 섭씨 0도에 도달한 순간인지(어는점 도달설), 얼음 결정이 만들어지는 순간인지(결정 생성 시작설), 아니면 액체인 물이 완전히 고체가 되는 순간인지(결정 생성 완료설) 등 "언다"라는 단어로 일컬을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학설)를 모조리 짚어낸 다음 각 경우의 수별로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짚어나갈 필요가 있다(=법률적 사고방식). 재현이 쉽지않다는 점 때문에 음펨바 효과를 부정하는 학자도 많다. 뜨거운 물이 빨리 어는 경우는 차가운 물쪽에 과냉각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혹한기에 지붕 등에 쌓인 눈이나 얼음을 빠르게 처리하려고 뜨겁게 데운 물을 썼다가 금방 얼어 버리는 현상을 음펨바 효과와 혼동할 수 있으나, 단순히 뜨거운 물이 빨리 얼어붙는 것은 음펨바 효과와는 거리가 멀다. 같은 상황에서 찬물보다 뜨거운 물이 빨리 어는 효과가 음펨바 효과인데 이를 단순히 뜨거운 물이 매우 추운 기온에서 빨리 어는 것과 혼동하지 말자. 오이먀콘 같은 영하 48도 이하의 매우 추운 지역에서 컵에 담긴 뜨거운 물을 공중에 뿌리면 순식간에 눈보라처럼 얼어버리는 것도 마찬가지.#[1]
2. 역사와 발견
음펨바 효과라는 현상 자체는 상당히 옛날부터 알려져 왔던 것으로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현상을 "어떤 극단적인 성질일수록 그 상반되는 성질을 더욱 강하게 하는" 안티페리스타시스(antiperistasis)라는 법칙의 예로 보았다. 예를 들어 불같이 화를 내던 사람이 더 빨리 차분해지는 것. 근대에 들어서는 프랜시스 베이컨이나 르네 데카르트 등이 이 현상을 기록한 바 있지만, 역시 적절한 설명은 내놓지 못했다.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의 과학 이론들이 으레 그렇듯이 이 역시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는 말도 안되는 설명이지만, 발견했다는 것 자체에 초점을 두자. 문헌을 접근할 때에는 항상 시대적 환경 또는 제약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에서 후대에 그의 설명이 절대화된 적이 있어서,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과도하게 까이는 사례가 정말 많다.
이렇게 잠깐잠깐 언급되다가 잊히기를 반복하던 현상을 현대 물리학의 난제로 되살려 놓은 사람이 탄자니아의 에라스토 음펨바(Erasto Mpemba)[2]라는 학생이었다. 음펨바는 1963년 중학교 가정과 조리실습 시간에 아이스크림을 만들다가 덜 식은 채로 냉장고에 집어넣은 아이스크림이 식혀서 집어넣은 것보다 더 빨리 어는 것을 보고 의문을 품었다. 이후 고등학교에 진학한 음펨바는 학교에 강연을 온 물리학자 데니스 오스본(Dr. Denis G. Osborne)[3]에게 이 현상에 대해 질문했는데, 교사와 친구들은 이에 대해 '뜨거운 물이 찬 물보다 빨리 어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냐' 라면서 비웃었지만 오스본은 음펨바의 질문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직접 실험을 해 봤으며, 그 결과 실제로 뜨거운 물이 찬 물보다 빨리 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후 오스본은 1969년에 이 현상을 다룬 논문을 발표하며 이 현상을 '음펨바 효과' 라 명명하고, 논문의 공동 저자로 음펨바의 이름을 올렸다. 한편 음펨바는 졸업 이후 유엔식량농업기구의 아프리카 삼림 및 야생동물위원회에서 근무했다.
3. 원인에 대한 추측
음펨바의 발견 이후 음펨바 효과를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이론들이 등장했지만, 오래도록 명확한 설명은 없었다. 어린이용 과학책 등에는 으레 뜨거운 물이 증발하면서 열을 빼앗아가기 때문[4]이라는 식으로 쉽게 설명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현상이었다면 난제라고 불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외에도 아래와 같은 설명들이 제시되었지만, 현재까지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뜨거운 물은 대류현상이 더욱 활발해, 물 안쪽까지 고르게 냉각이 시작되게 만든다.
- 차가운 물 표면에는 서리가 끼어 단열 효과를 일으킨다.
- 차가운 물은 과냉각[5] 현상을 더욱 쉽게 일으킨다.
- 녹아 있는 이온의 영향.
- 차가운 물에는 기체가 더욱 잘 녹는데, 이 때문에 대류의 경향이 바뀐다.
- 물 분자의 수소결합과 공유결합에 관련된 설명.
2012년 영국 왕립학회에서는 이 음펨바 효과를 설명하는 논문 경연대회를 열고 상금 1000파운드를 걸었다. 이 대회에서 과냉각과 대류현상을 원인으로 지목한 니콜라 브레고비치(Nikola Bregović)가 우승했지만 정확한 입증이 된 것은 아니었다.
# 싱가포르 난양이공대학의 순장칭 교수와 장시 박사팀은 2013년 11월 발표한 논문에서 물에서 발생하는 음펨바 현상의 원인을 수소결합과 공유결합의 상관관계에서 찾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우선 하나의 물분자는 산소 원자 하나와 수소 원자 두 개가 공유 결합으로 연결되어 이루어진다. 그런데 각 물 분자들은 수소 결합이 제공하는 약한 힘에 의해 또 다시 연결되는데, 이 힘은 한 물 분자의 수소가 다른 물 분자의 산소에 근접할 때 발생한다.
논문에 따르면, 저온에서는 물 분자들 사이의 수소 결합이 물 분자들을 끌어들이면서 물 분자 내부에 자연적인 척력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각각의 물 분자 내에 존재하는 산소 원자-수소 원자간 공유 결합의 길이가 길어지는데, 이를 위해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길어진 공유 결합을 유지하기 위해 그만큼 더 많은 에너지를 가져야하는 것. 하지만 고온에서는 물 분자들의 간격이 넓어지면서 수소 결합이 길어진다. 수소 결합의 방해가 사라졌으니 척력도 없어져 물 분자 내부의 산소 원자와 수소 원자 사이의 공유 결합 길이가 짧아지면서 결합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를 제외하고 남는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요점은 공유 결합이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냉각 과정과 동일하다는 것[6]. 물은 가열하면 특이하게도 공유 결합 길이를 줄이는 것으로 에너지를 내놓는다. 따라서 이러한 상태에서 뜨거운 물과 찬 물을 동시에 냉각하면 뜨거운 물은 남아도는 에너지 양이 많아 냉각 시 더 빠른 속도로 에너지를 방출하게 되는 것이다.
연구팀은 각각의 물 초기 온도를 다르게 한 뒤 냉각 시 에너지 방출량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음펨바 효과를 입증했다. 순장칭 교수는 "물이 에너지를 방출하는 속도는 물이 지닌 초기 에너지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라고 설명했다.
이로써 드디어 음펨바 효과의 원인이 밝혀지나 했으나, 2020년 8월 네이처지에 'Exponentially faster cooling in a colloidal system'이라는 논문이 실리면서 다시금 오리무중에 빠졌다. 이 연구에 따르면 음펨바 효과는 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위의 공유 결합 관련 특징은 물에 한정된 현상이기 때문에 이전의 가설로는 모든 액체에서 음펨바 효과가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
[1] 자세히 보면 물은 얼지 않아 물인 상태 그대로 날아가고, 찬 공기에 의해 눈보라처럼 생긴 김이 나는 것일 뿐이다.[2] 1949년 생, 2020년 사망.[3] 1932년 생, 2014년 사망.[4] 때로는 여기에 물이 증발하며 양이 줄어들어서 더 쉽게 어는 것이라는 설명이 곁들여지기도 한다.[5] 어는점 아래에서도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것. 이 상태에서 충격을 받으면 즉시 냉각이 시작된다.[6] 물체가 액체에서 고체가 되면 응고열을 방출한다. 물은 가열되면 공유 결합을 유지하는 데 에너지가 적게 들어서, 남는 에너지를 밖으로 내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