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6-26 19:34:37

유리 보이코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언디스퓨티드 시리즈의 등장 인물에 대한 내용은 유리 보이카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제2대 아자로우 정부 부총리
유리 아나톨리요비치 보이코
Юрій Анатолійович Бойко
파일:유리 보이코.webp
<colbgcolor=#14497a><colcolor=#fee449> 국적
[[소련|]][[틀:국기|]][[틀:국기|]] →
[[우크라이나|]][[틀:국기|]][[틀:국기|]]
출생 1958년 10월 9일 ([age(1958-10-09)]세)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스탈리노주 고를롭카[1]
학력 동우크라이나 대학교 (2001)
멘델레예프 화학기술대학교(1981)
직업 기업인, 정치인
경력 나프토하즈 우크라이니 회장
2002년 1월 ~ 2005년 3월 2일
제6대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의원
2007년 11월 23일 ~ 2012년 12월 12일
우크라이나 연료에너지부 장관
2006년 8월 4일 ~ 2007년 12월 18일
2010년 3월 11일 ~ 2010년 12월 9일
우크라이나 에너지석탄산업부[2] 장관
2010년 12월 9일 ~ 2012년 12월 24일
우크라이나 부총리
2012년 12월 24일 ~ 2014년 2월 27일
현직 제8·9대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의원
2014년 11월 27일 ~ 현직
최고 라다 인생과 평화를 위한 연단 대표
2022년 4월 21일 ~ 현직
정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3]
배우자 베라 드미트리예브나 보이카
자녀 3남 3녀
SNS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텔레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유리 보이코우크라이나의 기업인(올리가르히)이자 정치인으로,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의 원내 교섭단체인 인생과 평화를 위한 연단의 대표이다.

2. 생애

1958년 10월 9일 스탈리노주 고를롭카에서 태어났다. 1981년 모스크바 멘델레예프 화학기술대학교를 졸업했고 2001년에 동우크라이나 대학교를 졸업했다.

2.1. 올리가르히 시절

1981년부터 1999년에 루베시노에 있는 자랴 화학 공장의 총괄자부터 시작해 이사로까지 승진했으며 올리가르히가 되었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리시찬스크 정유사 이사회 회장, 2001년부터는 국영 기업 이사회 회장, 2001년부터 2002년까지 크레멘추크 정유사 이사회 회장을 맡았다. 2002년부터 부총리 올렉 두비나의 추천으로 국영 가스회사 나프토하즈 우크라이니의 회장이 되었고 동시에 우크라이나 연료에너지부 제1차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2005년 오렌지 혁명으로 실각했다.

2005년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에 의해 구속되었으나 풀려났다.

2.2. 정치 활동

2.2.1. 친러 시절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노동 우크라이나의 당원이었고, 2005년 우크라이나 공화당을 창당해 당 대표가 되었다. 2006년 총선에 반 오렌지 혁명 정당 연합인 야권전선 "네 탁!" 비례대표 5번으로 출마했으나 257,106표로 1.01%를 얻는 데 그쳐 득표율이 봉쇄조항 3%에 미달해 낙선했다.[4] 출범 당시에는 7~10%의 지지율을 보여줬지만 지역당우크라이나 사회당, 우크라이나 공산당, 나탈리야 비트렌코 블록(우크라이나 진보사회당 + 러시아-우크라이나 연합당)과 표가 갈려 1%대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야누코비치 총리 내각에서 2006년 8월 4일부터 2007년 12월 18일까지 우크라이나 연료에너지부 장관 직을 역임했다.

2007년 지역당에 입당했고 2007년 총선에서 비례대표 49번으로 선출되었다. 총선 결과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최고 라다의 연료에너지 및 원자력 위원회의 부위원장이 되었다. 2008년부터 지역당 키이우시당 부위원장 직을 맡았다.

2010년 3월 11일부터 2012년 12월 24일까지 우크라이나 연료에너지부 장관, 에너지석탄산업부 장관[5]을 역임했고 2012년 12월 24일부터 2014년 2월 27일까지 우크라이나 부총리를 역임했다.

2010년 가즈프롬알렉세이 밀러 회장과의 협상을 통해 가스 가격을 360달러에서 245달러로 인하했다. #

2011년 장관 역임 당시 흑해 유전을 입찰하는 과정에서 카디프 외곽에 위치한 영국 기업에 입찰한 것으로 조작해 2억 4,800만 달러짜리 시추 기계를 4억 달러에 구매하는 등 4억 달러 규모의 횡령이 일어났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2012년 빅토르 유셴코 정부 당시 가스 가격을 지나치게 높이 책정했고 너무 많은 가스를 구매하는 걸로 계약했다며 가스 구매를 축소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는 나프토하즈와 가즈프롬을 합병하고 우크라이나의 가스 운송권을 러시아로 넘겨야 가스 가격을 줄이겠다고 선언하며 협상에 차질이 생겼다. #

2012년 스페인 에너지 기업 개스 내추럴 페노사의 유령 간부와 11억 달러 규모의 천연가스관 건설 계약을 맺러 논란이 되었다. # 러시아의 에너지 종속으로부터 벗어난다는 희망을 품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2013년 EU가 독립국가연합 국가들과의 협력 감소로 발생하는 손실을 보장하지 못한다며 EU와의 FTA 등 협력 협정 체결 준비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 이에 대한 반발로 친유럽 반러 시위가 일어나는 와중에 12월 4일 러시아를 방문해 통상 및 경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 그러나 하루 후 20억 달러 가량의 가스대금 체불 문제로 협상이 결렬되었다. ### 그런데 12월 18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가스 가격을 400달러에서 268.5달러로 인하했다.

지역당에서 제명되고 러시아어 공용어로 재지정, 유럽 연합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을 공약하며 201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35,927표로 0.19%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낙선했다.

2014년 총선에서 야권전선을 이끌었고 29석을 획득하며 당선돼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내 야권전선 교섭단체의 대표가 되었다.

유리 루셴코에 따르면 이 당시 러시아우크라이나에 유리 보이코를 친러시아 반군이 점령하고 있는 루한스크주지사로 임명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2016년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에서 급진당 대표 올레흐 라슈코 의원이 유리 보이코를 러시아의 간첩이라 칭하며 싸움이 발생했다. #

2018년 11월 9일, 인생을 위하여와 대선과 총선에서 협력하기 위해 인생을 위하여와 인생을 위한 야권연단을 창당하고 2019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후보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같은 날 인생을 위하여의 바딤 노빈스키 의원과 보리스 콜레스니코프 의원은 보이코의 독단적인 행동이라고 일축했다. 11월 17일, 선관위에 인생을 위한 야권연단 소속 대선 후보로 등록했지만 11월 20일 인생을 위하여 측에서 보이코를 제명했다. 2019년 1월 17일 2019년 대선에 무소속 후보로 등록했다.

2019년 3월 22일 같은 당의 빅토르 메드베드추크와 함께 러시아 총리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가즈프롬 회장인 알렉세이 밀러와 만나 양국 관계 정상화와 경제 교류에 대해 회담을 했다. 그러나 대선 9일 전 이러한 친러 행위를 보인 탓에 1차 투표에서 2,206,216표를 얻어 11.67%를 기록해 4위로 낙선했다.

2021년 1월 13일, 에너지 값 인하를 위해 가즈프롬과 직접 계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2.2.2.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4월 14일, 인생을 위한 야권연단이 해산되었다. 4월 21일, 야권연단 대표 유리 보이코와 24명의 야권연단 소속 의원들이 인생과 평화를 위한 연단이라는 새로운 교섭단체를 형성했다. 보이코는 해외로 도피한 빅토르 메드베드추크, 바딤 라비노비치, 바딤 스톨라르, 그리고 이들의 지지 세력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다른 정당과 협력할 수 있음을 시사해 사실상 친러 성향을 버리고 우크라이나 경제 회복을 위해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 #

5월 5일, 2022년 우크라이나 난민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난민을 담당하는 정부부서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6월 18일,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 회원 후보가 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모든 정치인들이 전쟁을 멈추고 평화와 회복을 위해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인생을 위한 야권연단까지 이어진 친러, 유럽회의주의 노선을 버리고 친유럽주의 노선을 걸어갈 것으로 보인다.

6월 28일, 제헌절 기념사에서 우크라이나군과 일가족, 난민과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지원을 강조했다. #

7월 11일, 기존의 좌익 자유주의와 다른 사회민주주의를 통해 경제 회복과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사회 경제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이 교섭단체의 목표라고 밝혔다. #


[1] 러시아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고를롭카[2] 연료에너지부에서 에너지석탄산업부로 개편되었다.[3] 인생과 평화를 위한 연단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내의 교섭단체이다.[4] 이 선거에서는 네 탁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한 우크라이나 사회민주당 소속 레오니드 크라우추크 전 대통령과 3번 사민당 대표 빅토르 메드베드추크도 낙선했다.[5] 2010년 12월 9일 연료에너지부가 에너지석탄산업부로 개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