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09 19:38:34

윌리엄 라티머(초대 라티머 남작)

성명 윌리엄 라티머
William Latimer
생몰년도 미상 ~ 1304년 12월 5일
출생지 잉글랜드 왕국
사망지 잉글랜드 왕국 러틀랜드 엠핑엄
아버지 윌리엄 라티머
어머니 미상
배우자 앨리스 레데트
자녀 윌리엄
직위 초대 코르비의 라티머 남작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에 참여했다.

2. 생애

12세기 후반에 요크셔에 정착한 기사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 윌리엄 라티머는 요크셔의 보안관을 역임했다. 1271년 기사에 선임되었고, 1276년과 1282년 에드워드 1세의 웨일스 원정에 참여했다. 한 연대기에 따르면, 1282년 웨일스 원정 도중 한 전투에서 패배한 뒤 적군에게 쫓기다가 말을 탄 채 강에 뛰어들어 거센 물살을 헤치고 탈출했다고 한다. 1290년 의회에 처음으로 소집되었고, 1299년 소집된 의회에서 '라티머 경'으로 칭해졌다. 1292년부터 1297년까지 가스코뉴에 머물면서 에드워드 1세가 프랑스에 대적할 때 협력했다.

1297년 스코틀랜드로 파견되어 스털링 다리 전투에서 윌리엄 월레스와 앤드류 모레이가 이끄는 스코틀랜드 반군과 맞서 싸웠으나 패배를 면치 못했다. 1298년 에드워드 1세의 스코틀랜드 원정에 가담하여 7월 22일 폴커크 전투에서 윌리엄 월레스를 격파하는 데 일조했다. 같은 해 8월 베릭의 사령관이 되었고, 1299년 포로 교환 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 나중에 스코틀랜드 상황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요크 의회에 소환되었다. 같은 해에 갤러웨이 습격전에 참여했으며, 1300년 케어라버록 공방전에 참여했으며, 1302년에는 록스버러의 방어를 맡았다.

1301년 2월 링컨에서 열린 의회에 참석한 뒤 여러 영주와 함께 교황 보니파시오 8세에게 스코틀랜드 문제에 개입하지 말 것을 청원하는 공동 서한에 서명했다. 1303년 2월 24일 로슬린 전투에 참여했으며, 1304년 2월 20일 해프루 전투에서 제2대 시그레이브 남작 존 시그레이브와 캐릭 백작 로버트 브루스와 함께 윌리엄 월레스와 사이먼 프레이저가 이끄는 스코틀랜드 반군을 섬멸했다. 1304년 12월 5일 사망했고, 러틀랜드의 엠핑엄에 안장되었다. 기사 월터 레데트의 딸인 앨리스 레데트와 1268년경 결혼하여 지참금으로 코르비 영지를 받았다. 이 결혼으로 외아들 윌리엄 라티머를 낳았고, 그는 제2대 코르비의 라티머 남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