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3 07:54:54

우리는 가이어의 흑색 창병대

Wir Sind Des Geyers Schwarzer Haufen(독일어)

1. 개요2. 음원3. 가사4. 관련 문서

1. 개요

  • 작사: 하인리히 폰 레더(Heinrich von Reder)
  • 작곡: 프리츠 소트케(Fritz Sotke)
  • 연도: 1920

독일의 전통 민요를 군가로 사용한 것 중 하나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권력을 잡기전에 반 가톨릭 세력을 통합하기 위해 반교권주의를 주장했는데 과거 독일 농민전쟁에서 끝까지 농민들 편에 서서 싸운 귀족인 '플로리안 가이어 폰 기벨슈타트(Florian Geyer von Giebelstadt)'에 대한 민요를 당가로 채택했다. 히틀러는 권력을 잡은 후 이 음악을 히틀러 유겐트제8SS기병사단의 단가, 군가로 사용하도록 지시했다.

과거 종교 개혁시기 독일 슈바벤 지역에서 루터파 개신교를 지지하고 로마 가톨릭권위주의를 반대하기위해 농민운동이 일어났는데 자신들이 지지했던 개신교 세력[1]과 반대했던 가톨릭 세력에게 공격을 받고서 분노한 농민들은 귀족과 교회를 몰아내기 위해 대규모 농민 반란으로 확장되어 독일 최초의 혁명으로 평가받는 '독일 농민전쟁'이 일어났다.[2]농민들은 농업용 낫과 포크로 밖에 무장하지 못했고 총기와 대포 갑옷으로 잘 무장된 개신교,가톨릭의 귀족들과 상대가 되지 못 했다. 그러던 중 '플로리안 가이어'[3]라는 귀족이 기사를 모으고 농민들을 훈련시켜 '흑군or흑색 창병대' (Black Company)[4]를 창설해 진압군인 '제국 기사단'과 '개신교 기사단'을 무찔러 민중 영웅이 된다. 하지만 프랑켄 하우젠 전투에서 개신교 세력인 헤센과 브라운슈바이크, 가톨릭 세력이던 작센 연합군에 의해 농민군측 지도자이던 '토마스 뮌처'가 이끄는 농민군이 대패하면서[5] '흑군'은 마지막 남은 농민군이 되어 버렸고 '플로리안 가이어'와 '흑군'은 바이에른의 한 숲에서 숨어 지내고 있었다. 숨어 지내는 도중 '플로리안 가이어'는 우호적으로 접근한 '제국 기사단'소속의 '빌헬름 폰 그룸바흐'[6]라는 여행자에게 반란을 다시 일으키자는 제의를 받지만 접선장소인 숲속에서 그의 종자 2명에 의해 그림샤츠 숲속[7]에서 살해된다. 그가 죽고나서 그가 지휘했던 '흑군'은 해산되고 이후 그를 기리는 시가 음유시인들에게 퍼져나가고 민요가 된다.[8]

아돌프 히틀러는 '플로리안 가이어'의 이름을 따 자신의 친위대 부대에게 붙여주는데 그것이 '제8 SS기병사단 플로리안 가이어' 이다.

전후에도 이 노래를 군가로 사용한 군대가 있었는데, 바로 동독의 국가 인민군이었다. 마르크스의 절친이자 후원자인 프리드리히 엥겔스부터가 독일 농민전쟁을 "독일인들이 벌인 가장 정당한 전쟁"이라며 일종의 혁명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국가 인민군 집회에서 연주되는 가이어의 흑색 창병대(10분 2초).

2. 음원


Heino가 부른 버전




3. 가사

1절

Wir sind des Geyers schwarzer Haufen
비어 진트 데스 가이어스 슈바어처 하우펜,
우리는 가이어의 흑색창병대,

Heia ho ho!
하이아 호 호!

Und wollen mit Tyrannen raufen,
운트 볼렌 밋 틔란넨 라우펜.
우리가 이 폭정을 끝내 버리리라.

Heia ho ho!
하이아 호 호!

Spieß voran, Drauf und dran,
슈피쓰 포란, 드라우프 운트 드란,
창병대 전진, 진군하고 싸워라,

Setzt aufs Klosterdach den roten Hahn!
셋츠 아우프스 클로스터다흐 덴 로텐 한!
성탑 위에 농병의 깃발을 꽂아라!

Spieß voran, Drauf und dran,
슈피쓰 포란, 드라우프 운트 드란,
창병대 전진, 진군하고 싸워라,

Setzt aufs Klosterdach den roten Hahn!
셋츠 아우프스 클로스터다흐 덴 로텐 한!
성탑 위에 농병의 깃발을 꽂아라!

2절

Als Adam grub und Eva spann,
알즈 아담 그룹 운트 이바 슈판
아담이 밭을 갈고 이브가 농사 지을때,

kyrieleis!
큐리에라이스!
오 나의 주여!

Wo war denn da der Edelmann?
보 바 덴 다 데어 에델만?
우리 높으신 분들은 어디에 계셨지?

kyrieleis!
큐리에라이스!
오 나의 주여!

Spieß voran, Drauf und dran,
슈피쓰 포란, 드라우프 운트 드란,
창병대 전진, 진군하고 싸워라,

Setzt aufs Klosterdach den roten Hahn!
셋츠 아우프스 클로스터다흐 덴 로텐 한!
성탑 위에 농병의 깃발을 꽂아라!

Spieß voran, Drauf und dran,
슈피쓰 포란, 드라우프 운트 드란,
창병대 전진, 진군하고 싸워라,

Setzt aufs Klosterdach den roten Hahn!
셋츠 아우프스 클로스터다흐 덴 로텐 한!
성탑 위에 농병의 깃발을 꽂아라!

3절

Uns führt der Florian Geyer an,Trotz acht und bann!
운스 퓌흘트 디 플로리안 가이어 안, 트로츠 아흐트 운트 반!
플로리안 가이어가 우리를 이끄네, 8번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Den Bundschuh fuhrt er in der Fahn, Hat helm und harnisch an!
덴 분드치허 플트 아 인 디 판, 핱 헬름 운트 한니스크 안!
투구와 갑옷을 입고서, 분트슈[9]로 깃발을 들고서!

Spieß voran, Drauf und dran,
슈피쓰 포란, 드라우프 운트 드란,
창병대 전진, 진군하고 싸워라

Setzt aufs Klosterdach den roten Hahn!
셋츠 아우프스 클로스터다흐 덴 로텐 한!
성탑 위에 농병의 깃발을 꽂아라!

Spieß voran, Drauf und dran,
슈피쓰 포란, 드라우프 운트 드란,
창병대 전진, 진군하고 싸워라,

Setzt aufs Klosterdach den roten Hahn!
셋츠 아우프스 클로스터다흐 덴 로텐 한!
성탑 위에 농병의 깃발을 꽂아라!

4절

Bei Weinsberg setzt' es Brand und Stank,
바이 바인즈베르크 셋츠 에스 브란트 운트 슈탕크,
바인스베르크[10]에 악취가 진동하네,

Heia ho ho!
하이하 호 호!

Gar mancher uber die Klinge sprang,
가아 만셔 우버 디 클링에 슈프랑
칼날을 닳게 할 준비가 되어있다

Heia ho ho!
하이하 호 호!

Spieß voran, Drauf und dran,
슈피쓰 포란 드라우프 운트 드란
창병대 전진, 진군하고 싸워라

Setzt aufs Klosterdach den roten Hahn!
셋츠 아우프스 클로스터다흐 덴 로텐 한
성탑 위에 농병의 깃발을 꽂아라!

Spieß voran, Drauf und dran,
슈피쓰 포란 드라우프 운트 드란
창병대 전진, 진군하고 싸워라

Setzt aufs Klosterdach den roten Hahn!
셋츠 아우프스 클로스터다흐 덴 로텐 한
성탑 위에 농병의 깃발을 꽂아라!

5절

Geschlagen ziehen wir nach Haus,
게슐라겐 치헨 비어 나흐 하우스
우리가 패배해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Heia ho ho !
하이아 호 호!

Unsre Enkel fechten's besser aus,
운저레 엥켈 페흐텐스 베써 아우스.
우리의 후손들이 다시 일으키리라.

Heia ho ho!
하이아 호 호!

Spieß voran, Drauf und dran,
슈피쓰 포란 드라우프 운트 드란
창병대 전진, 진군하고 싸워라,

Setzt aufs Klosterdach den roten Hahn!
셋츠 아우프스 클로스터다흐 덴 로텐 한
성탑 위에 농병의 깃발을 꽂아라!

Spieß voran, Drauf und dran,
슈피쓰 포란 드라우프 운트 드란
창병대 전진, 진군하고 싸워라

Setzt aufs Klosterdach den roten Hahn!
셋츠 아우프스 클로스터다흐 덴 로텐 한
성탑 위에 농병의 깃발을 꽂아라!

4. 관련 문서


[1] 정작 당대 종교개혁의 거두였던 마르틴 루터는 이들 반란 세력을 비난했다. 비판 대상은 어디까지나 로마 카톨릭이었을 뿐, 봉건제도 자체에는 그렇지 못했다. 애초에 루터가 파문 이후 그를 지지하는 선제후들의 비호로 신변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당연한 결과. 한편 그가 아내를 만나게 된 과정도 이 반란과 관련이 있는데, 수녀였던 그의 아내가 반란군을 피해 청어 보관통에 숨어서 수녀원을 탈출했다가 루터와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2] 엥겔스와 같은 후대에 나온 공산주의자들은 독일 최초의 계급투쟁이라고 할 정도로 이 사건을 중요하게 봤으며 아예 책으로 농민전쟁의 이야기를 쓰기도 하였다.[3] 정식 이름은 플로리안 가이어 폰 '기벨슈타트'. 옛날부터 롤라드파의 영향을 받았었고 비덴부르크에서 루터와 만나 본격적으로 종교개혁에 뛰어들었다.[4] 헝가리의 흑군과는 다른 조직이다.[5] 이때 가이어는 승리했다라는 오보를 받았고 이후 그들을 만나러갔다가 프랑켄하우젠에서 기습을 당해 와해되어 버렸다.[6] 가이어와 처남매부지간이다.[7] 뷔르츠부르크 근교에 있는 숲. 원래 가이어는 그룸바흐와 뷔르크부르크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8] 여담이지만 이들 농민전쟁 이전 이미 농민들이 일어나서 혁명을 일으켰던 디트마르센과 같은 공화국이 있었고 이들은 농민전쟁 당시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있던 농노들의 해방을 위해서 같이 뛰어들었다가 농민들과 같이 홀슈타인-슐레스비히 연합군과의 싸움 이후 장렬히 멸망하였다.[9] Bundschuh-Bewegung. 분트슈 운동, 분트슈 투쟁 등으로 불리는 1493~1517년 사이 독일 남서부에서 일어났던 독일 농민들의 투쟁. Joß Fritz가 이끌었으며 농노제 그 자체를 깨부시기 위해 일어났고 농노제의 혁파, 생산수단의 공유화, 부패한 교회 재산의 분배, 교황, 황제등의 군주제, 신정제 폐지등을 내세웠다. 봉기는 진압되었으나 향후 있을 독일 농민혁명의 기초를 닦았다.[10] Weinsberger Bluttat 혹은 Weinsberger Blut-Ostern라고도 알려진 사건으로 1525년 4월 17일 부활절에 농민 혁명군들이 바인스베르크 성문 밖에서 Ludwig V. von Helfenstein-Wiesensteig를 비롯한 바인스베르크 귀족들을 죽인 사건. 당시 백작은 성으로 다가오는 농민들에게 지금 너희들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너희를 모두 불태워 죽이버리겠다고 협박했으나 농민들은 이를 거부하고 역으로 항복을 하면 살려는 주겠다고 하나 이를 거부하자 바인스베르크로 진격하였고 농민들은 '농민들이여, 지금 성문을 열어라! 농민들은 모두 살려주겠지만, 귀족과 그의 사형집행인들은 죽어야 한다!'라고 말하며 농민들의 협조 아래 성을 함락시켰고 성의 귀족들은 농민들에 의해 Spießrutenlaufen형을 받아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