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00:21:48

오우랑 메단 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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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가능성들4. 허구의 사건설5. 대중매체의 묘사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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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 Ourang Medan Mystery

1. 개요

I die.
나는 죽는다.
1947년 6월에 말라카 해협을 지나던 오우랑 메단[1] 호 사건을 최초로 보도한 인도네시아 언론사 《De Locomotief》 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섬뜩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살짝 각색하여 묘사하자면 대충 아래와 같다.

2. 상세

여느 날과 같이 많은 상선들과 선박들이 바쁘게 오가던 말라카 해협에 마침 수마트라 인근을 지나던 시티 오브 볼티모어(SS City of Baltimore) 호와 실버 스타(SS Silver Star) 호를 비롯한 네덜란드, 영국, 미국의 여러 선박들은 갑작스레 요란하게 들려오는 모스 신호를 접했다. 그나마 SOS는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나머지는 도무지 해독이 불가능한, 알아들을 수 없는 신호뿐이었다.

드디어 해독할 수 있는 부분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메시지를 접한 항해사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S.O.S. 오우랑 메단 호에서 발송. (해독 불가능한 모스 부호)
S.O.S. from Ourang Medan

... 우리는 표류하고 있다. 선장을 포함한 모든 항해사들이 해도실 및 선교에서 죽었다. 분명 모든 부원들이 죽었을 것이다. ... (해독 불가능한 모스 부호)
... We float. All officers including the captain, dead in chartroom and on the bridge. Probably whole of crew dead. ...

... 나는 죽는다.
... I die.
가히 폭발하며 쏟아지듯 하는 모스 신호의 형태로 들어오던 이 긴박한 메시지는 최후의 짤막한 두 단어만을 남기고 완전히 끊겼으며 이후 침묵이 흘렀다. 놀란 인근의 선박들은 곧장 메시지가 발송된 오우랑 메단 호를 구조하기 위하여 현장으로 향했다. 같은 메시지를 송신한 선박들은 삼각측량을 통해서 발신지를 확인하고 그리로 배를 몰아갔다.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선박은 실버 스타 호였다. 언뜻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오우랑 메단 호를 발견한 항해사들은 곧장 호루라기를 불어 대고 손을 흔들어 보았으나 아무런 반응도 없는 걸 보고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겉에서 보기에 선체에는 아무런 물리적 피해로 의심될 만한 흔적이 없었다.

마침내 이들은 문제의 배에 올랐는데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도무지 그 정황을 가늠할 수조차 없는 비극의 순간이었다. 사방에 시체들이 있었다.

시체들은 딱히 상처는 없었지만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눈을 뜨고 입을 벌리고 있었으며 기괴한 모습으로 허공을 향해 두 팔을 내뻗고 있었다. 갑판, 조타실, 선교에 시선이 닿는 곳마다 시체들이 그득했고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수색팀은 마침내 문제의 무전을 날린 인물을 찾아냈는데 이 사람은 모스 송신기에 손가락을 올린 채로 죽어 있었다. 시체 중에는 심지어 배에서 기르던 듯한 개도 있었다.

놀랍게도 선체의 하부로 내려가자 수색팀은 뜻밖의 한기를 느꼈는데 이는 이 일대 기후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이 즈음에 이 해역의 낮 기온은 섭씨 43도에 근접하곤 했기 때문이다. 실버 스타 호의 선장은 이 선박을 가까운 항구로 예인하여 더 자세한 조사를 하기로 결정했고 항해사들은 곧 예인작업에 착수했다.

이상하게도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갑판 아래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실버 스타 호의 선장은 즉시 예인을 포기하고 오우랑 메단 호에서 전원 퇴거할 것을 명령했다. 예인줄을 끊고 항해사들이 실버 스타 호로 간신히 되돌아온 순간 오우랑 메단 호는 갑작스럽게 큰 폭발을 일으켰다. 사상자는 없었지만 오우랑 메단 호는 빠르게 가라앉았고 사건의 전말은 바닷속에 잠겨 버리고 말았다.

이 사건은 De Locomotief 와 같은 해인 1948년에 미국의 언론사 《Albany Times》 에서 보도한 자료, 그리고 1952년에 미국 해안경비대(US Coast Guard)가 출판한 문헌을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3. 가능성들

일차적으로 제기된 것은 이들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는 보일러 기관의 문제로 인해 누출된 가스를 항해사들이 들이마셨다는 그럴싸한 시나리오로 연결되지만 그런 논리라면 어째서 신선한 바닷바람을 마시는 갑판의 선원들까지 똑같이 죽었느냐는 점을 설명하지 못해서 그냥 묻혀 버렸다.

다음으로 이들이 사실은 군수물자를 비밀리에 수송하던 선박이었고 선박의 이름을 포함한 일체의 정보를 은폐한 채 작전하다가 사고를 겪은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구체적으로 이들이 수송하던 화물 중에는 위험한 신경 작용제 계열의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것이 항해 중에 해수가 유입되든 어쩌든 해서 가스의 형태로 누출되어 이런 참사를 빚었다는 것이었다. 역시 몹시 그럴싸하지만 뒤늦게 일어난 폭발까지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메탄 거품이 선원들을 질식시킨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지만 이것만으로는 의문의 폭발을 설명할 수 없었다. 사건이 미궁에 빠지자 어떤 이들은 한술 더 떠서 이게 전부 다 UFO의 짓이라는 등의 주장을 펼치기도 했는데 외계인들이 어떤 이유에서든 선원들을 공격했다는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유령의 짓이라고 주장했는데 실제로 수색팀이 배의 하층에서 뜻밖의 냉기를 경험했다는 점 때문에 심령현상으로 설명하는 것도 꽤 인기를 끌었다.

4. 허구의 사건설

애초에 이런 사건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만들어진 거짓 이야기라며 사건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일단 De Locomotief에서 이야기의 진실성을 보증한다고 했던 사람은 실비오 셰를리(Silvio Sherli)라는 사람인데 다른 것도 아니고 선박과 선원들이 잔뜩 사라진 대형 사건임에도 이 사람 이외에 같은 증언을 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 상기한 그 오우랑 메단에 탑승했다는 실버스타의 선원이 한두명이 아닐 텐데도 말이다. 당사자인 선원들의 증언이나 기록이 전혀 없는데 완전히 제3자인 실비오는 어떻게 내막을 그렇게도 자세히 아는가? 흥미로운 것은 실비오라는 양반은 1940년에도 《Yorkshire Evening Post》 와 《The Daily Mirror》 에 비슷한 해상 사건 사고에 대한 증언을 한 적이 있다는 점이다. 실비오가 앞서 증언한 그 사건들은 여러 측면들에서 오우랑 메단 사건에 대한 이야기와 공통점이 존재한다. 단지 오우랑 메단 호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사건 발생 장소도 상당히 통행량이 적은 공해상이었고 시신들의 공포에 질린 모습, 오싹한 한기, 갑작스런 폭발 등의 초자연적인 이야기들이 섞여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더욱 의심스러운 건 대형 사건임에도 교차검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종 옛 기록들과 데이터베이스를 아무리 뒤져 봐도 SS Ourang Medan이라는 선박은 정체불명이다. 사람이나 선박의 신원 보증이 전혀 안 되어 있던 과거와는 달리 1947년쯤 되면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람의 신원과 선박의 국적에 대해 관리를 잘 하고 있을 것이며 특히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각 국가들이 총력전 태세에 돌입하며 국가의 자원에 대해서 면밀하고 기록하고 조사했을 것이다. 특히 선박은 특수하게 취급되는 귀중한 자원이었으므로 더더욱. 선박은 언제든 군용으로 징발되어 사용되기도 했던 자원이다. 말인즉 오우랑 메단이라는 이름의 선박이 실제로 사고를 당했다면 분명 전에 그 선박과 선원들이 소속되어있던 회사가 존재했을 것이며 그 회사에 소속된 선박이 사고를 당한 사실은 회사 입장에선 엄청난 손실이기 때문에 회사가 입은 물적 손실과 인적 손실이 분명히 기록되어야 마땅한데 세계 어디에서도 오우랑 메단이나 그 선원과 관련된 사건 사고 기록을 지닌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소형 어선이나 통통배라면 어떻게 누락되거나 아예 법 테두리에서 벗어난 형태로 만들어지고 운용되었을 수도 있지만 SS Ourang Medan은 어떻게 봐도 상당한 규모와 시설을 갖춘 배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실제로 1653년에 선박 난파로 조선에 표류했다 도망쳐서 본국 네덜란드로 돌아온 네덜란드 선원 헨드릭 하멜이 자신의 회사를 상대로 조선에서 표류하느라 그동안 밀린 임금을 받아내려는 법정 싸움을 위해 자신이 조선에서 겪은 '고초'[2]를 증거로서 제시하고자 작성한 하멜 표류기 같은 사례를 보아도 이미 1600년대부터 선박과 선원에 대한 법적인 관리가 철저했다. 하물며 1947년에 선박 사고가 터졌는데 관련된 기록이나 증언이 하나도 없다면 실존 여부가 굉장히 의심스러워진다.[3] 하다 못해 그 오우랑 메단 호의 선원들을 우연히 전부 천애고아로 꾸렸다면 모를까 분명히 선원들 개개인에게는 가족이 어딘가에 있었을 테니 사고가 발생했다면 가족들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던 진상규명을 요구하건 뭔가 움직이고 관련 기록이나 신문 기사도 분명히 남았을 것인데 그런 기록조차 없다.

일부는 종종 제2차 세계 대전 중이라 민간선박의 사고가 묻혔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2차대전은 이미 1945년에 끝났다. 1945년에 원흉인 나치 독일은 진즉에 패망하고 없었고 마지막까지 발악하던 일본 제국8월 15일항복 선언을 해서 전쟁이 종결되었다. 1945년에 끝난 전쟁 때문에 1947년에 일어난 선박사고가 묻힐 이유는 없다. 한편 상기한 당시의 뉴스 기사를 근거로 내세우는 사람들도 있고 실제로 뉴스 기사가 존재했던 건 사실이지만 뉴스에 실린다고 다 진실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유사과학이나 거짓 정보를 이용한 황색언론이 쏟아내는 가짜 뉴스들이 판을 친다. 무엇보다 이 사건을 보도한 언론들은 하나같이 메이저가 아니었으며 그 기사들도 상기했듯 실비오의 증언 하나만 근거로 들었을 뿐이다. 만약 또 다른 언론이 실비오가 아닌 다른 인물, 예컨데 실버스타의 선원의 증언이나 근거를 토대로 기사를 작성했다면 신빙성이 올라갔겠지만 그런 보도는 없었다.

한마디로 사건을 증언했다는 실비오 한 사람이 유일한 출처이고 이 사람에게 동종전과가 존재하는 점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 오우랑 메단과 관련된 제3자의 기록이 전혀 없으므로 허구의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관련 자료가 쏟아져 나오는 메리 셀러스트호 사건과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5. 대중매체의 묘사

  •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 시리즈 첫 번째 작품 '맨 오브 메단(Man of Medan)'은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하였다. 작품의 세계관에서 오우랑 메단 호는 실존한 배였으나 미국이 극비리에 개발한 독가스를 수송하던 배였으니만큼 군사기밀과 관여된 함선이다 보니 미군에 의하여 사건과 관련된 정보들이 의도적으로 묻혀서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며 배가 폭삭 망해 버린 원인도 바로 그 독가스 때문이었다. 문제의 무전도 보내기는 보냈는데 수신자가 좌표를 요구하자 때마침 함선의 전기가 끊기고 무전을 보내던 통신병이 독가스 때문에 죽어서 제대로 끝맺음하지 못하여 생겨난 것으로 표현했다.

6. 관련 문서



[1] 오랑우탄마인어로 '숲의 사람(Orang + hutan = orangutan)'인 것처럼 ourang은 사람, 메단 시는 수마트라 섬의 도시로 의미는 "메단 사람"이다. 오늘날 인도네시아에선 ourang을 orang으로 표기한다. 메단에서 온 사람(Man from Medan)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는데 메단에서 온 사람은 Ourang dari(~에서) Medan이다.[2] 실제 하멜이 조선 조정에게서 받은 대우는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으나 하멜 표류기는 하멜 자신이 고초를 겪었음을 어필해서 밀린 임금을 받아내려는 목적으로 저술했기 때문에 조선에서 겪은 일들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부풀린 것들이 굉장히 많다. 정작 현대의 한국에서는 하멜 표류기의 '조선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비하하는' 내용엔 아무도 관심 없고 그저 이 책 하나 덕분에 우리나라가 유럽에도 알려졌다며 하멜을 마르코 폴로마냥 대단한 탐험가로 보며 특히 그가 최초로 표류했던 제주도에 동상까지 세우는 등 그를 영웅화하고 있다.[3] 후술할 메리 셀러스트호 사건도 1872년에 발생하자마자 보험회사에서 고의사고 여부가 있는지 철저하게 조사했다. 즉 선박 사고 하나 터지면 선박의 소속 회사와 보험 회사, 정부, 유가족 등등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70년이나 더 지난 후에 터졌다는 이 사건에 대한 증인이나 기록은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