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28 23:23:05

오스카르 베르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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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공화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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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공화국 제46대 대통령
오스카르 베르헤르
Óscar Berger
파일:오스카르 베르헤르.jpg
<colbgcolor=#4997d0><colcolor=#fff> 본명 오스카르 호세 라파엘 베르헤르 페르도모
Óscar José Rafael Berger Perdomo
출생 1946년 8월 11일
과테말라 과테말라시티
재임기간 제46대 대통령
2004년 1월 14일 ~ 2008년 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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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997d0><colcolor=#fff> 배우자 웬디 데 베르헤르
자녀 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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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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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대통령 재임기
3. 퇴임 후4. 기타5. 둘러보기

1. 개요

과테말라사업가이자 제46대 대통령(2004~2008)이다.

2. 생애

1946년 8월 11일 과테말라시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벨기에인 이민자의 후손으로 광대한 사탕수수와 커피 플랜테이션을 소유한 상류층 지주였다. 예수회 계열의 사립 라파엘 란디바르 대학교(Universidad Rafael Landívar)[1] 법학부를 졸업하고 1967년 마찬가지로 상류층 지주가문의 여식인 웬디 위드만(Wendy Widman)과 결혼했다. 1985년 동갑내기 동창이자 당 동지인 알바로 아르수의 과테말라시티 시장 선거 당선에 기여했고, 1991년 1월부터 1999년 6월까지 과테말라시티 시장으로 재임했다.

1999년 과테말라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전진당(Partido de Avanzada Nacional) 후보로 출마했으나 우익 성향의 과테말라 공화주의전선(Frente Republicano Guatemalteco) 후보 알폰소 포르티요에게 패배했다. 베르헤르는 선거 패배를 두고 아르수와 책임 공방을 이어가다 결국 결별했다. 베르헤르는 2003년 과테말라 대통령 선거에서 여러 보수정당들이 결성한 선거연합인 대국민동맹(Gran Alianza Nacional)의 후보로 출마, 대기업가와 대지주들[2]의 후원에 힘입어 당선되었다.

2.1. 대통령 재임기

베르헤르는 2004년 1월 14일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취임식에서 그는 정부 기능 및 법치 강화, 부패 척결과 강력범죄 엄단을 약속했다. 베르헤르는 취임 초 전임 포르티요 행정부의 각료들을 부패 혐의로 기소하여 부패 척결에 대한 국민적인 기대를 높였고, 2006년 12월 12일 국제연합 산하 '과테말라 반(反)면책 국제위원회(Comisión Internacional contra la Impunidad en Guatemala, 약칭 CICIG)'를 설립하는 협정에 조인했다. 동 협정에 따라 임기 말 2008년 CICIG가 설립되었다.[3] 베르헤르는 군대 개혁을 추진하고 과테말라 내전 당시 전쟁범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으며, 마야인 인권운동가 리고베르타 멘추를 대통령 친선대사로 임명했다.

그러나 포르티요 행정부 각료들에 대한 수사가 흐지부지되면서 되려 지지율이 요동치는 일이 벌어졌고, 더욱이 대기업가와 대지주로 구성된 베르헤르 행정부의 각료 일부가 포르티요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권력형 부패스캔들과 비리 혐의에 연루되었다. 멘추를 대통령 친선대사에 임명한 것과 상반되게 농민운동은 가혹히 진압하여 2004년 8월에는 누에바린다(Nueva Linda)에서 경찰이 농민 9명을 살해하는 일이 터졌다.

베르헤르는 전자거버넌스(e-governance)를 구현하여 공공부문을 현대화하는데에 관심이 있었다. 임기 초기인 2004년 11월 4일에는 2004년 346호 정부명령(Acuerdo Gubernativo No. 346-2004)으로 기존 정부개혁대통령위원회(COPRE)[4]에 과테말라의 전자정부 구현을 주도하는 임무를 부여했다. 이에 따르면 COPRE는 전자정부를 통해 국민 중심 국가를 가능하게 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의 기회에 대한 평등한 접근을 보장하고, 인프라와 경비, 공공투자의 활용을 극대화하고, 시험, 검사 및 인증 산업(TIC)을 발전의 기회로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COPRE는 2006년 과테말라의 전자거버넌스의 진행 상황과 전망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고, 2007년 디지털 어젠다를 발표했다. 어젠다는 역할, 임무, 비전, 원칙, 우선순위, 전략적 축(strategic axis)을 다루며, 특히 전자거버넌스 프로그램의 전략적 축을 크게 4개(전자서비스(e-Services), 전자교육(e-Education), 전자계획(e-Planning), 전자개발(e-Development))로 설정했다.#[5]

경제는 2005년 주요 수출품인 섬유제품에 대한 미국의 쿼터 해제와 중국 및 베트남산 저가 의류의 미국 진출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국제 경기, 개혁 프로그램과 인프라 투자, 무역 확대로 인해 전반적으로 호황이었다. 베르헤르 재임기(2004~2007) 과테말라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4.5%로 역내에서 높은 편은 아니지만 베르헤르 전후의 행정부보다는 나았다.[6] 세부적으로는 건설, 유통, 통신, 금융 등 주로 서비스업 위주로 호황을 누렸는데 베르헤르 재임기 다수와 고속도로 건설과 라아우로라 국제공항의 개축이 승인되었고, 2005년 닥친 허리케인 스탠(Stan)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대규모 주택건설 프로젝트가 2008년 초에 거의 마무리되었다. 2006년 말에는 지하철을 대신한 지상버스 전용차도인 Transmetro가 개통되었고, 해외교포의 국내 송금 증가 및 금융권의 신용공여 확대로 민간부문의 주택 수요가 증가하여 주택 건축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금융업은 1980년대 말 자유화를 시작한 이래 베르헤르 재임기에도 외형적인 성장을 거듭했으나 2006년 10월 재계 4위 규모의 방코델카페(Banco del Café) 은행이 부실채권과 뱅크런 사태로 도산하고 이듬해 1월에도 상업은행이 도산하는 등 은행의 부실화로 인한 피해가 심각했다. 통신은 이동통신 위주로 급격히 성장하여 단말기 이용자 수가 2003년 2,034,777명에서 2007년 9,222,748명으로 4배 넘게 급팽창했다. 제조업 중 섬유산업은 이전 포르티요 행정부 시절부터 이어져온 급격한 임금상승의 여파로 임금 경쟁력이 악화된 상태에서 중국과 베트남의 미국 의류시장 진출로 과테말라산 섬유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악화되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베르헤르는 중미의 경제적 통합 또한 추진했다. 2006년 3월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을 비준했고, 같은 해 6월 베르헤르는 중미 4개국 자유이동협정(Convenio Centroamericano de libre movilidad, 약칭 CA-4)에 조인하여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간 시민의 자유로운 이동을 승인했다.

3. 퇴임 후

2008년 1월 14일 퇴임했다. 2003년 대선에서 그와 경쟁했던 알바로 콜롬이 뒤를 이었다.

4. 기타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이름과 실제 발음에 좀 괴리가 있다. 외래어 표기법은 스페인어 i와 e 앞의 g를 'ㅎ'로 옮기게 하므로, 표기법을 따르면 성인 Berger는 분명 '베르헤르'로 옮기는게 맞다. 그러나 실제 발음은 베르셰(βeɾˈʃe)에 가까운데 이것은 오스카르 베르헤르가 19세기 라파엘 카레라 집권기에 정착한 왈롱인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Berger는 프랑스어로 베르제(bɛʁ.ʒe)로 읽는데 IPA에서 볼 수 있듯이 베르헤르보단 베르셰에 가깝다.[7] 주과테말라 대한민국 대사관도 Berger를 베르셰에 가까운 '베르쉐'로 옮긴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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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미로 데 레온 카르피오, 알바로 아르수 대통령이 동문이다.[2] 오늘날 과테말라 정재계는 22대 가문에 장악된 상태인데 그 중에서도 특히 6대 가문의 권세가 대단하여 이들을 비판할 경우 신변에 위협이 가해질 정도이다.[3] CICIG는 2019년까지 70개 이상의 범죄 조직을 적발하여 기소하고, 고위 공무원, 기업인, 정치인들을 재판에 넘겼다. 해당 위원회는 지미 모랄레스 대통령 재임기 2019년 9월에 임무를 종료했다.[4] 정식 명칭은 과테말라 정부 및 분권화된 정부 기관의 개혁, 현대화 및 강화를 위한 대통령 직속 위원회(Comisión Presidencial para la Reforma, Modernización y Fortalecimiento del Estado y de sus Entidades Descentralizadas de Guatemala, 약칭 COPRE)이다.[5] COPRE는 후임 콜롬에 의해 2008년 4월 해체되고 관련 업무는 공공행정청(Instituto Nacional de Administración Pública, 약칭 INAP)이 대신 맡게 했다. 콜롬의 후임 오토 페레스 몰리나 행정부가 2012년 전자정부 및 투명성을 위한 대통령 직속 위원회(Comisión Presidencial de Transparencia y Gobierno Electrónico, 약칭 COPRET)라는 명칭으로 다시 부활시켰다.[6] 아르수 행정부(1996~1999)는 4.0%, 포르티요 행정부(2000~2003)는 3.1%, 콜롬 행정부(2008~2011)는 2.7%, 페레스 행정부(2012~2015)는 3.8%였다. 콜롬은 2008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것을 감안하기는 해야 한다.[7] 구 스페인령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스페인인 이주민뿐만 아니라 현지 원주민과 세계 각지의 이주민도 거주하므로 상당히 많은 비(非)스페인계 고유명사를 원래 언어의 발음에 가깝게 읽는다. 예시)Giammattei(이탈리아계): 히아마테이(X) 자마테이(ɟʝamaˈtej). Chalbaud(프랑스계): 찰바우드(X) 샬보(ʃal'bo). Jeanine(프랑스계): 헤아니네(X) 제니네(ɟʝeˈnine). Pinochet(프랑스계): 피노체트(X) 피노셰(pinoˈʃe) or 피노셰트(pinoˈʃet). Quetzal(나와틀계): 케트살(X) 케찰(keˈtsal).[8] "2005년에는 베르쉐 정부출범 3년차를 맞아 다양한 정부개혁프로그램이 결실을 맺고 미-중미 자유무역협정(CAFTA)발효로 외국인 직접투자가 증가할 것이라는 가정하에 경제가 정상궤도로 진입, 2.9% 성장하였으며 2006년 미-중미 FTA발효로 인한 기대감 등으로 2006년은 3.2~3.4%의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주과테말라대사관, 최근 경제현황 및 전망, 2006.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