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국유철도 (브리티쉬 레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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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부터 1966년까지 쓰였던 로고.[1] | }}}}}}}}} | ||
<colbgcolor=#ba2525><colcolor=#fff> 창립 | 1948년 1월 1일 | ||
해산 | 1997년 11월 20일 | ||
CEO | 알라스테어 모튼 | ||
본사 | 잉글랜드 런던 | ||
전신 | 런던 노스 이스턴 철도 런던 미들랜드 스코틀랜드 철도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 남부 철도 | ||
후신 | 내셔널 레일 | ||
자회사 | 자회사 문서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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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47년에 세워져 1997년까지 영업한 영국의 국유철도.2. 역사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들어선 노동당 정부는, 기존의 4대 사철 체제(SR, LMS, GWR, LNER)등과 함께 기반물류시설인 철도의 국유화를 추친하고 1947년에 철도법을 개정하여 정부의 교통위원회가 4대 사철의 자산과 노선, 고용 일체를 승계하며 그 이름도 찬란한 영국 국유철도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전후 경제 재건에 필수적인 철도의 국유화를 통해 빠른 경제개발과 철도 근대화를 수행할 수 있었다. 증기 기관차의 퇴역과 주요 간선의 전철화, 디젤 기관차와 전기 기관차의 대량 도입, 사고만 났다 하면 종잇장처럼 구겨지던 그룹화 시절 객차를 표준형 객차 Mk1으로 대체, 그리고 내구성 개선을 통한 Mk2, Mk3 도입 등은 국철의 순기능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철이 실책도 많이 저질렀다는 게 문제다.
가장 가관인 것은 수익이 나지 않는 중복노선을 폐선하면서 수익성이 애매한 각지의 지선과 소규모 역들도 무자비하게 폐선, 폐역한 것. 이는 국철 출범 이후부터 계속되던 것이었지만 리처드 비칭의 철도 개혁 보고서의 포스가 너무나 강력했고 주요 간선의 폐선을 주장하는 헛소리까지 지껄여서 Beeching Axe라고도 한다.[2] 이 Beeching Axe로 당시 영국국철 철도 총연장의 3분의 1이 날아갔다.[3][4] 지선의 철도운행을 버스로 대체하자 도로가 미어 터지기 시작했고 불편하게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고 다니느니 다들 차를 사기 시작하면서 안 그래도 미어 터지던 도로가 결국 터져나가기 시작했다.[5]
여기에 항공교통의 발달, 자동차의 보급 등이 겹치면서 철도의 수송분담률은 국철 출범 이후로 계속 떨어졌고, 유일하게 고속철도[6]인 InterCity 125[7]만이 선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렇게 장사가 안 되다 보니까 운임을 올리고, 정부에서는 지원을 줄이고, 그러니까 운임을 또 올리는 악순환을 반복하다가 대처 시대인 1980년대 들어서 경영 정상화 방안으로 섹터화를 시작한다. 일본국유철도식의 지역별 섹터화가 아니라 사업 분야별 섹터화로, 다분히 민영화를 염두에 둔 작업이었다. 말년의 영국 국철은 장거리 여객, 단거리 여객, 화물 등을 모두 별도의 사업분야로 운영했으며,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정부는 각 분야별로 다시 지역분할 등을 해서 민간에 매각했다.
3. 분할 이후
그리고 온갖 실책과 사고를 뒤로한 채 1997년 모든 국유철도 노선의 프랜차이징과 상하분리를 완료하고 영국의 여객철도는 내셔널 레일 체제로 들어섰다. 비슷한 영국 국유화와 그 실책 사례로 자동차 제조업체인 브리티시 레일랜드와 영국의 국영 버스업체인 내셔널 버스가 있다.4. 국유화부터 민영화 까지
기재된 항목으로 분야당 세분화, 지역별 세분화를 거친 다음 또 몇몇은 노선별로 갈리져서 우리가 아는 현재의 영국철도 까지 이르게 되었다.4.1. 지방 1948-1992
<colbgcolor=#000><colcolor=#fff> 남부 지방 | 1948년 1월 1일-1992년 11월 30일 |
서부 지방 | |
런던 미들랜드 지방 | |
동부 지방 | |
북동부 지방 | 1948년 1월 1일-1966년 11월 30일 |
스코틀랜드 지방 | 1948년 1월 1일-1992년 11월 30일 |
4.2. 섹터 1982-1994,97
인터시티 | ||||
사업부 | 1966년 1월 1일-1994년 11월 30일 | |||
슬리퍼 | 풀먼 | 개트윅 익스프레스 | 모터레일 | |
네트워크 사우스이스트 | ||||
1986년 6월 1일-1994년 4월 1일 | ||||
지방철도 | ||||
사업부 | 1982년-1997년 | |||
알파라인 | 스코트레일 | 트랜스페나인 |
4.3. 지역별 세분화 1994-1997
4.3.1. 인터시티
지역별 세분화 | |||
인터시티 이스트 코스트 | 인터시티 웨스트 코스트 | 그레이트 이스턴 | 그레이트 웨스턴 |
이스트 미들랜즈 | 크로스컨트리 | 개트워 익스프레스 | 캘리도니언 슬리퍼 |
4.3.2. 네트워크 사우스이스트
지역별 세분화 | |||
칠턴 | 그레이트 이스턴 | 그레이트 노던 | 아일랜드 라인 |
켄트 링크 | 켄트 코스트 | 런던, 틸버리 앤 사우스엔드 | 노스 다운스 |
노스 런던 라인 | 솔런트 앤 웨식스 | 사우스 런던 라인 | 사우스 웨스턴 라인 |
노스 런던 라인 | 솔런트 앤 웨식스 | 사우스 런던 라인 | 사우스 웨스턴 라인 |
서식스 코스트 | 템즈 | 템즈링크 | 워털루 앤 시티 |
웨스트 앵글리아 | 웨스트 오브 잉글랜드 |
4.4. 민영화 1997-
4.4.1. 인터시티
프랜차이징 | 철도 기관 |
인터시티 이스트 코스트 | Great North Eastern Railway |
인터시티 웨스트 코스트 | Virgin Trains West Coast |
그레이트 이스턴 | Anglia Railways |
그레이트 웨스턴 | Great Western Trains |
이스트 미들랜즈 | Midland Mainline |
크로스컨트리 | Virgin CrossCountry |
개트워 익스프레스 | Gatwick Express |
캘리도니언 슬리퍼 | ScotRail |
4.4.2. 네트워크 사우스이스트
프랜차이징 | 철도 기관 |
LTS 레일 | LTS Rail |
칠턴 라인 | Chiltern Railways |
그레이트 이스턴 | First Great Eastern |
템즈 트레인 | Thames Trains |
아일랜드 라인 | Island Line |
노어 런던 철도 | North London Railways |
사우스 이스턴 | Connex South Eastern |
네트워크 사우스센트럴 | Connex South Central |
템즈링크 | Thameslink |
웨스트 앵글리아 그레이트 노던 | West Anglia Great Northern |
사우스 웨스턴 철도 | South West Trains |
4.4.3. 지방철도
- Central Trains
- First North Western
- Midland Mainline
- Arriva Trains Merseyside
- Wales & West
- Valley Lines
5. 자회사
<colcolor=#fff>Sealink (씨링크) | <colcolor=#fff> 1970년-1984년 |
Seaspeed (씨스피드) | 1965년-1981년 |
Red Star Parcels (레드 스타 우편) | 1963년 4월 1일-1999년 1월 1일 |
<colbgcolor=#ba2525>British Transport Hotels (영국 교통 호텔) | <colbgcolor=#ba2525> 1948년-1984년 |
British Rail Research Division (영국 철도 연구부) | 1964년-1996년 |
British Rail Engineering Limited (영국 철도 엔지니어 리미티드) | 1970년 1월 1일-1992년 9월 1일 |
6. 광고
7. 슬로건
8. 여담
여담으로, 한국, 일본, 미국, 중국의 열차들과 사용하는 연결기가 다르다는 점이 있다. 나사식 연결기인데, 완충장치에 아주 서서히 충돌해 접촉시킨 뒤, 사람이 직접 고리를 거는 방식이다.[8]9. 관련 문서
[1]
객차, 동차에는 이렇게 적용.[2] 물론 주요 간선들은 당연하게도 살아남았다. 이때 폐선된 노선 중 다수는 민영화 과정에서 부활한 것도 있다.[3] 영국은 철도 초창기 철도 버블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철도회사가 난립하여 중복노선, 과소노선의 폐해가 심각하긴 했다. 너도나도 철도회사를 세워서 주식을 팔아서 돈을 벌었고, 심지어 해당 지역의 영주가 "와 기차 짱 멋있는 듯? 나도 하나 깔아야지ㅋ"해서 부설된 노선도 있다. 심지어 자기 돈으로 노선을 부설하고, 빅토리아 여왕이 자기 영지에 놀러온다고 하자 직접 기관차를 운전해서 집앞 역까지 모시고 온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4] 영국의 수많은 중복노선은 (마치 국가단위 주 간선이 일본의 대도시 사철 시스템처럼 작동하는 것 같이) 사철간 경쟁체제를 상정하고 만들어진 것이었기에 정부 주도의 통합된 시스템 하에서는 비효율적인 부분이 존재하였다. 거기에 더해 5,60년대는 철도가 자동차, 비행기에 밀리는 사양산업이라는 오판이 널리 받아들여지던 시절이라 더욱 폐선이 과도하게 진행된 점도 존재하고.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도 (콘레일로 병합된 북중부 지역과 민간 소유가 유지된 타 지역을 막론하고) 비슷한 현상이 목격된다.[5] 결국 민영화 이후 폐역이 부활하고 폐선이 재개통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운임이 그렇게 올랐어도 차 몰고 다니는 것보다 기차 정기권이 싸서 오히려 사람들이 몰리는 경우도 있다.[6] 말이 고속철도지 최고속도가 200km/h였던 준고속철도였다.[7] 토마스와 친구들의 원작인 철도 시리즈에서는 이 기차가 핍과 엠마라는 이름들이 붙여져서 모습 그대로 삽화가 그려져서 등장했다. 또한 속도 설정도 125mph로 똑같이 나왔다.(Gordon the High Speed Engine)[8] 이는 LNER, GWR과 기타 영국 철도들 까지 똑같다.
객차, 동차에는 이렇게 적용.[2] 물론 주요 간선들은 당연하게도 살아남았다. 이때 폐선된 노선 중 다수는 민영화 과정에서 부활한 것도 있다.[3] 영국은 철도 초창기 철도 버블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철도회사가 난립하여 중복노선, 과소노선의 폐해가 심각하긴 했다. 너도나도 철도회사를 세워서 주식을 팔아서 돈을 벌었고, 심지어 해당 지역의 영주가 "와 기차 짱 멋있는 듯? 나도 하나 깔아야지ㅋ"해서 부설된 노선도 있다. 심지어 자기 돈으로 노선을 부설하고, 빅토리아 여왕이 자기 영지에 놀러온다고 하자 직접 기관차를 운전해서 집앞 역까지 모시고 온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4] 영국의 수많은 중복노선은 (마치 국가단위 주 간선이 일본의 대도시 사철 시스템처럼 작동하는 것 같이) 사철간 경쟁체제를 상정하고 만들어진 것이었기에 정부 주도의 통합된 시스템 하에서는 비효율적인 부분이 존재하였다. 거기에 더해 5,60년대는 철도가 자동차, 비행기에 밀리는 사양산업이라는 오판이 널리 받아들여지던 시절이라 더욱 폐선이 과도하게 진행된 점도 존재하고.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도 (콘레일로 병합된 북중부 지역과 민간 소유가 유지된 타 지역을 막론하고) 비슷한 현상이 목격된다.[5] 결국 민영화 이후 폐역이 부활하고 폐선이 재개통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운임이 그렇게 올랐어도 차 몰고 다니는 것보다 기차 정기권이 싸서 오히려 사람들이 몰리는 경우도 있다.[6] 말이 고속철도지 최고속도가 200km/h였던 준고속철도였다.[7] 토마스와 친구들의 원작인 철도 시리즈에서는 이 기차가 핍과 엠마라는 이름들이 붙여져서 모습 그대로 삽화가 그려져서 등장했다. 또한 속도 설정도 125mph로 똑같이 나왔다.(Gordon the High Speed Engine)[8] 이는 LNER, GWR과 기타 영국 철도들 까지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