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3개월 전,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찍힌 사진 |
La prise d'otages du vol 8969 Air France
(AF 8969, AFR 8969)
الخطوط الجوية الفرنسية الرحلة 8969
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 |
발생일 | 1994년 12월 24일 |
유형 | 하이재킹 |
발생 위치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마르세유 프로방스 국제공항 |
탑승인원 | 승객: 220명 |
승무원: 12명 | |
사망자 | 승객: 3명 |
부상자 | 승객: 13명 |
승무원: 3명 | |
GIGN: 9명 | |
생존자 | 승객: 217명 |
승무원: 12명 | |
기종 | Airbus A300B2-1C |
항공사 | 에어 프랑스 |
기체 등록번호 | F-GBEC |
출발지 | [[알제리| ]][[틀:국기| ]][[틀:국기| ]] 알제 우아리 부메디엔 국제공항 |
도착지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파리 샤를 드골 공항 |
회항지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마르세유 프로방스 국제공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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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4년 12월 24일 알제리 알제공항에서 이슬람 무장단체 GIA[1]가 에어 프랑스 AF8969편을 납치해 프랑스 파리 에펠탑에 충돌시키려고 했으나 도중에 급유를 위해 착륙한 마르세유 공항에서 프랑스의 대테러부대 GIGN에 의해 모두 제압당한 사건. 테러리스트들이 앞서 살해한 3명의 인질들을 제외하면 GIGN의 진압 과정에서 죽은 사람은 없다.
2. 전개
2.1. 알제리에서의 인질극
사건 당시 알제리는 내전 중이었다. 운항 도중 대공 사격에 피격될 위험도 있어서 에어 프랑스가 운영하는 프랑스-알제리 노선은 오직 지원자만 받아서 운항하고 있었다.1994년 12월 24일 알제리 알제공항에서 에어 프랑스 AF8969편[2]이 알제리에서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으로 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4명의 보안 요원들이[3] 기내로 들이닥쳐 여권을 보면서 승객들의 신원 확인을 하기 시작했다.[4] 그들은 여권을 보면서 승객들의 인적 사항을 파악했다.
그러는 동안 8969편의 출발은 계속 늦어지고 있었고 이를 수상하게 여긴 알제리 측이 8969편을 에워싸자 보안 요원들은 본색을 드러내 자신들이 이슬람 무장 단체임을 알리며 승객들을 AK-47 소총과 UZI 기관단총, 권총, 폭약 등으로 위협해 인질로 잡았다.
대치 상황이 지속되자 프랑스 정부는 알제리에 상황을 해결하라고 닦달했다. 테러리스트들의 리더인 압둘 압달라 야히야(Abdul Abdallah Yahiya عبد العبد الله يحيى )는 이대로 프랑스로 향해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했으나 알제리 정부는 군용 차량으로 활주로를 틀어막고 이륙을 허가해 주지 않았다.
요구를 안 들어주면 8969편을 폭파하겠다는 협박이 먹히지 않자 테러리스트들은 여권을 통해 신원을 알아낸 알제리 경찰을 끌어내 탑승문 밖에서 살해했다.[5] 이들은 여자와 어린이는 보내 줬지만 나머지 인질들은 계속해서 잡고 있었다. 또한 계속해서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베트남 외교관[6]을 한 명 더 살해했다.
프랑스 정부는 자국군을 알제리로 보내 인질극을 해결하려고 했으나 알제리 정부가 거절했다.
다음 날인 12월 25일 테러리스트들은 63명의 인질들을 풀어줬다. 이때 알제리 정부는 아히야의 어머니를 끌고 와 설득했지만 아히야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어머니! 저는 알라를 더 사랑해요! 당신들도 들었나? 놈들이 어머니를 팔아먹었다! 어떻게 어머니를!" 아히야의 화만 더 돋구고 말아서 그는 오후 9시 30분까지 이륙을 허가해 주지 않으면 30분마다 인질을 죽이겠다고 위협했고 결국 프랑스 대사관 소속 요리사가 살해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프랑스 정부에서는 이전까지의 소극적인 태도를 벗어나서 프랑스군과 GIGN를 투입시켜서 테러리스트들을 진압할 계획을 세웠다.
같은 날 자정 전 알제리 정부는 프랑스 대사관 요리사가 살해당한 직후 프랑스 정부의 협박[7]에 가까운 요청에 결국 활주로를 막았던 군용차들을 치우고 8969편의 이륙을 허가했다. 승객들은 이제 상황이 잘 풀려갈 것이라고 의심치 않았다.
2.2. 재급유와 기자회견
비행기는 지상에 있는 동안 냉방과 전기를 공급받으려면 GPU에서 전력을 공급받아 에어컨을 돌리거나 외부 에어컨을 에어컨 단자에 연결해 바람을 불어줘야 한다. 그러나 8969편은 원래 지상에 오래 머물 예정이 없었기 때문에 GPU나 외부 에어컨 둘 다 연결하지 않은 채 APU로 발전하고 에어컨을 켜고 있어야 했다. 이 때문에 8969편은 납치된 이후 지상에 있는 동안 APU를 계속 켜 놓아 파리까지 돌아갈 연료가 없었다. 기장은 이를 아히야에게 연료가 부족해 바로 파리로 갈 수는 없어 다른공항에 먼저 중간기착을 해야한다며 알렸고 아히야도 그 부분은 수긍했다.연료를 재급유하기 위해[8] 지중해를 가로질러 오전 3시에 프랑스 마르세유 프로방스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기 위해 8969편은 재급유를 요청했는데 당시 파리까지 가는 데 필요한 연료는 9톤이었지만 테러리스트들이 요구한 연료는 27톤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테러리스트가 8969편에 항공유를 더 많이 실어 충돌 시 피해를 더 크게 하기 위한 수작[9]임을 눈치채고 테러리스트들의 발도 묶어둘 겸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급유 차량을 보내지 않았다.[10] 이에 화가 난 테러리스트들은 오전 9시까지 급유를 해주지 않으면 인질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으나 프랑스 정부는 급유 담당 직원이 겁을 먹어 비행기에 접근하지 않겠다고 하는 중이라는 둥의 핑계를 대면서 계속 시간을 끌었다.한편, 기장은 굳이 파리까지 가서 기자회견을 할 필요가 없고 공항에 CNN이나 BBC 등 유명 언론사들이 이미 와 있다며 아히야를 낚았는데 이에 자신들의 생각보다도 길어진 납치로 인해 피곤이 겹쳐 기장의 제안이 솔깃했던 아히야는 기자들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질질 끌면서 시간을 벌었는데 이 과정에서 인질 2명이 풀려났다. 이때도 처형이 이뤄질 뻔했는데 다음 희생자를 고르던 아히야는 "나도 내키지 않는다."며 머뭇거리다가 결국 처형을 포기했다.
그러나 당초 요구했던 오전 9시는 커녕 오후 5시가 되도록 이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최후통첩시간이 다가오자 마침내 당시 마르세유 공항에 대기 중이던 GIGN의 지휘관이었던 파비에 소령은 GIGN 대원들을 여객기에 투입하기로 결정[11]했다.
2.3. GIGN의 무력 진압과 피해
마르세유 공항에서 8969편 기내로 진입하는 GIGN 대원들[12] |
GIGN이 테러리스트들과 총격전을 벌이는 중에 콕핏 창으로 뛰어내리는 부조종사[13] |
GIGN은 30여명의 대원들을 탑승 계단 차량(스텝카) 3대에 나누어 탑승시킨 채로 8969편에 접근해 탑승구를 열고 진압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비행기 출입문이 스텝카의 계단보다 약간 낮은 위치에 있었고 문이 앞으로 튀어나와 옆으로 열리는 여객기 문의 특성상 그대로 문을 열려고 하면 스텝카의 계단에 걸린다는 문제가 있었다. 때문에 스텝카 운전자가 차량을 비행기에서 조금 떨어뜨린 상태에서 문을 열어야 했는데 이때 1번 탑승구 쪽 선두에 섰던 대원이 문을 열자 육중한 출입문의 무게 때문에[14] 덩달아 끌려가면서 계단에서 떨어질 뻔하는 위기 상황이 벌어졌다. 다행히 해당 대원은 다리 한 쪽을 스텝카에 걸친 채 버텼고 뒤에 있던 동료들이 진입한 직후에 스텝카가 다시 간격을 좁혀주어 자세를 회복할 수 있었고 이후 마지막 순서로 진입했다.
기내에서의 혼란이 가중되는 동안 부조종사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조종석 창을 열고 뛰어내렸다. 부조종사가 뛰어내려 시야가 확보되자 GIGN 저격수가 콕핏에 있던 리더 야히야를 사살했고[15] 격렬한 총격전 끝에 혼란에 빠진 마지막 테러리스트까지 제거하며 마침내 8969편의 인질극은 막을 내렸다.
GIGN 9명과 승객 13명이 부상당했지만 사망자는 앞서 살해당한 3명을 제외하면 없으며 테러리스트 4명은 모두 사살당했다.
이른바 방탄권총으로 불리며 총이 총탄을 막아줘 생존한 희귀한 사례도 나왔다. 테러리스트의 탄이 GIGN 대원의 SIG P228 권총의 총신 아랫부분에 맞아 방아쇠 부분을 뚫고 나왔다. 해당 GIGN 대원은 스텝카 아래로 굴러떨어져서 부상을 당했지만 권총이 총알을 막아 준 덕택에 목숨을 건졌다.
조종석을 포함한 기내에서 섬광탄이 여러 번 터졌고 400여 발의 소총탄이 사용된 총격전의 여파로 손상된 해당 기체는 결국 스크랩 처리되었다.
3. 사건 이후
이후 알제리 무장 단체는 이 사건을 보복하기 위해 가톨릭 성직자 4명을 납치해 살해했다.이 사건을 계기로 GIGN 대원들과 승무원들은 국가적 주목을 받으면서 영광을 얻었다. 당시 인질 구출 작전을 지휘한 드니 파비에(Denis Favier) 헌병대 소령은 이후 올랑드 정권에서 헌병 대장으로 진급해 프랑스 헌병대 사령관까지 지냈다.
GIGN의 상징과도 같은 총기인 마뉘랭 MR 73도 당연히 이 작전에 쓰였는데, 최소한 2~3명의 테러리스트가 MR 73로 사살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명세가 더 높아졌다. 지금도 MR 73를 소개하는 글이나 영상에서는 이 사건이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이후 테러리스트들이 8969편을 파리 에펠탑에 충돌시키려던 것이 확인되면서 프랑스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 사건 이후 테러리스트들은 하이재킹의 결말은 결국 대테러부대에 의해 진압당하는 것임을 인식하고 잡히기 전에 자폭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폭파해 버리는 쪽으로 테러의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 7년 후 미국 뉴욕에서 이를 실천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전 세계가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사건을 토대로 한 영화 어썰트가 2011년 3월 9일 프랑스에서 개봉되었고 대한민국에서는 2012년 5월 10일에 개봉했다.
항공 사고 수사대 시즌 2에서 '하이재킹(The Killing Machine)'라는 제목으로 해당 사건을 다루었는데 당시 프랑스 총리였던 에두아르 발라뒤르, GIGN 파비에 대장과 기장, 부기장, 객실 승무원들도 인터뷰에 응했으나 파비에 대장은 GIGN 보안규정상, 기장은 보복을 피하기 위한 보안조치로[16] 얼굴을 가린 채로 출연했다. 동시에 본 방송은 프랑스 보안 전문가들과 당시 기체에서 대응했던 에어프랑스 승무원들은 증언을 통해 7년 후인 9.11 테러 당시 미국 항공사들과 미국 정부가 저지른 치명적 실수들을 통렬히 비판했다.[17]
4. 관련 문서
[1] الجماعة الإسلامية المسلحة Le Groupe islamique armé, 말 그대로 무장 이슬람 단체다.[2] 기종은 에어버스 사의 A300B2-1C이다. 현재 이 포지션은 AF7395편이 물려받았다.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오전 11시 15분에 알제리 출발 예정이었으며 AF7395편은 오전 11시 30분 출발이므로 이것이 물려받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오를리 공항으로 가지 않고 샤를 드 골 공항으로 간다.[3] 경찰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4] 이러한 일은 자주 있었기 때문에 승무원들은 의심 없이 허락했다. 사건 이후에도 알제리 소재 공항 국제선 출국 시 보안 및 신원 확인은 2중, 3중으로 이루어지고 이는 항공기 지연 출발의 주요 원인이 된다.[5] 영화 어썰트에서 묘사된 바로는 테러리스트가 현지 경찰을 사살하기 전에 '압바시 마다니와 알리 벤하지를 즉시 석방하라!'는 말을 했다. 당시 내전 중이었던 알제리의 상대국인 FSI의 지휘관 이름이다.[6] 영화 어썰트에서 "너는 자존심도 없냐"하고 쏴 죽였다.[7] 에두아르 발라뒤르 전 총리는 항공 사고 수사대에서의 회고 중 "알제리가 8969편을 이륙시켜 발생한 모든 책임은 프랑스가 모두 부담하겠지만 만약 그러지 않아 발생하는 모든 일은 알제리 정부가 지게 될 것이다." 라는 내용이 있었다고 밝혔다.[8] 프랑스 측에서 조종사에게 마르세유로 이동하라고 은밀하게 지시했는데 만약 비행기가 파리로 가서 자폭 테러를 한다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테니 비교적 한적하고 안전한 마르세유로 가라고 한 것이었다.[9] 이슬람권 국가로 도피하기 위한 수작이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프랑스 정부 측은 에펠탑 충돌을 테러리스트의 목적이라고 판단했다.[10] 영화 어썰트에서는 특수 차량이라 아무나 몰 수가 없어 프랑스 정부 측에서 급유하겠다고 묘사했다.[11] 이미 당일 오전 내무부 장관이 항공기는 마르세유 공항을 떠날 수 없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해결방안은 평화해결 or 무력진압 둘 중 하나로 압축된 상태였다. 따라서 프랑스 정부는 GIGN에게 작전권을 넘겼고 이에 따라 작전 개시 시각을 당시 GIGN의 현장 지휘관인 파비에 소령이 결정한 것이다.[12] 사진을 보면 한쪽 다리만 스텝카에 걸친 GIGN 대원이 보인다. 만약 저 때 떨어졌다면 부기장처럼 다리가 부러졌을지도 모른다.[13] 이 부조종사는 추락으로 인해 다리가 부러지긴 했지만 뛰어내린 덕분에 저격수가 제대로 된 시야를 확보하여 저격 지원을 할 수 있게 되었다.[14] 항공기 출입문은 순항 고도에서 10톤에 가까운 여압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무겁다.[15] 부기장은 이때 분명히 야히야가 자신을 총으로 쏠 시간이 충분히 있었고 눈까지 마주쳤음에도 어째서인지 쏘지 않았다고 했다. 이는 조종석의 인질들이 기내에 진입한 GIGN 대원들의 사선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GIGN이 인질을 구하기 위해 같은 조종실의 자신들을 쉽사리 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였을 가능성이 높다.[16] 부기장은 상술했듯 콕핏 창으로 뛰어내릴 때 카메라에 잡히는 바람에 이때 얼굴을 가려봤자 소용이 없었다.[17] 예를 들면 조종석 문을 아무나 열 수 있었던 것, 승무원들과 미국의 항공당국과 군 기관들이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 대응하는 방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다는 점 등이었다.[18] 1976년에 AF8969편과 같은 항공사 소속 및 동일 기종이었던 AF139편이 납치당한 사건. 아울러 둘 다 대테러, 인질구출 특공작전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라는 공통점이 있다.[19] 항공기를 한 국가의 랜드마크에 부딪치게 하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