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
집 앞에 버려져 있던 것을 거둬 기른 아이. 태어난 자식을 키울 형편이 안 되고 정식으로 입양을 보내기도 어려운 상태의 부모가 아이를 맡아 길러줄 수 있을 만한 집 앞에 버리고 가서 생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집뿐만 아니라 각종 종교 시설, 고아원 등에 아이를 맡기고 눈물을 흘리며 사라져 간 부모의 수는 셀 수 없이 많다.갑자기 아이가 떠넘겨진 집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같은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 부모의 육아 능력과 경제 사정 등 나름대로 검증된 면담 등을 통하여 알아보고 과연 이 아이가 이 가정에서 행복할 수 있겠는지 실험하는 입양과는 달리 부모 검증을 거치지 않는다.[1] 아이를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집에 보내졌다면 축복이 될 수도 있겠으나, 이미 식구가 포화 상태인 집에 보내졌다면 그야말로 애물단지. 아이의 입장에서도 잘 되면 양자 취급을 받으며 양부모로부터 사랑받으며 살 수 있겠지만, 일이 잘 풀리지 못하면 피안섞인 집에서 천덕꾸러기 군식구로 살아가거나 도로 버려져야 했고 과거에는 노예나 기생으로 전락하기 십상이었다.
과거에는 업둥이를 내치는 일은 적었는데, 업둥이를 들이면 집안에 복이 오지만 내치면 복이 나간다는 속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미신을 믿었다기 보다는 버려진 아이를 또다시 버려 죽게 놔두것보단 기르는 것이 아이 및 아이의 부모와 집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더 좋으니 인정과 해당 가정에 축복을 기원하며 생긴 것에 가깝다. 과거에는 업둥이는 주로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나 떳떳하게 키우기 어려운 미혼모가 낳은 사생아들이 많았고 주로 좀 살만한 양반이나 부잣집, 사원 앞에 업둥이를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고아원 등 따로 시설이 있던 것도 아니라서 웬만하면 데려다 키우는 것이 미덕이었다. 1960년대 까지만 해도 시골 마을에 그런 업둥이로 큰 어른들이 있었다.
현대로 들어오면서 이런 아기들을 남의 집 앞이 아니라 시설에 맡기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제 때 구조되면 다행이지만, 버려진 아기가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못하고 장시간 바깥에 방치되는 경우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 [2] 거기다가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하고 아이를 영아살해하는 끔찍한 일들 역시 부쩍 늘어나고 있는데 이를 보다 못한 관악구의 한 목사는 베이비 박스라는 것을 만들어 차라리 그 버려지는 아이들을 조용히 놓고 갈 수 있도록 하였다. 물론 관과 여론에서는 영아 유기를 조장할 수 있다고 태클이 들어왔다.[3] 생명의 존엄함과 존엄함이 맞부딪히는 가운데 2014년경에도 베이비 박스는 운영 중이며 시사 프로그램 등에도 언급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현재 2호가 생겼다고 한다.
옆나라 일본에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한 아기를 한번 길에 버려 업둥이를 만든 후 다시 데려다 키우면 건강하게 자란다는 속설이 있었다. 이는 아기가 부모가 짊어진 업을 대신 받아 병약하게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한번 부모에게서 버려지는 고난을 당하는 것으로 그 업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진짜로 아이를 버렸다가 잘못되면 큰일이므로 이런 경우 미리 믿을만한 사람과 의논을 해서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고 실행했다. 친부모가 아이를 놓아두고 자리를 떠나는 순간 미리 약속한 사람(주로 친부모 집안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신뢰받는 고용인)이
영어로는 Foundling이라 한다. -ling은 '작고 어린 것'을 뜻하는 접미사이고[5] 여기에 found(찾아지다)가 붙어 '(밖에서)찾아진 아이', 즉 주워온 아이(업둥이)가 되는 것. 다만 업둥이와 마찬가지로 다소 구어적인 어감이 있어서 일상적으로 잘 쓰이진 않는다.
입양과 마찬가지로 출생의 비밀 클리셰의 좋은 얘기 거리다. 가끔가다 불륜으로 낳은 아이를 업둥이라고 데려오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사실, 이런 경우에는 정확하게는 '덤받이'라고 해야 맞다. 재혼 등으로 데려오는 경우도 마찬가지.[6]
1.1. 정도전(드라마)의 등장 인물 양지(良知)
양지(정도전) 참고. 극 중에서 본래 업둥이라고 불렸지만 정도전이 양지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참고로 역사상 실존 인물이 아니라 가상의 인물이다.1.2. 스포츠계의 풍습
뛰어난 학생을 받기 위해 자기 기량으로는 그 대학에 갈 수 없는 그 학생의 친구들도 대학에 받아주는 것이다. 현재는 사라졌지만 과거에는 암암리에 자행됐다.미국 대학에 있는 가족이 동문일 시 가산점을 줘서 쉽게 입학시키는 기여입학 제도와 조금 비슷하다. 실제로 한국 스포츠계에서도 친구들이 아닌 형, 동생을 받아주거나 받아주겠다고 제시한 사례도 있었다.
2. 애완동물
말 그대로 길고양이 등을 길들여 데려와 키우는 것.[7] 내지는 박스[8]에 담아서 남의 집 앞에 버려진 새끼 강아지, 고양이, 떨어진 새 등을 키우는 것. 은혼의 사다하루나 짱구는 못말려의 흰둥이가 좋은 예. 여기서 새끼 동물들이 아닌 길들인 동물들을 위주로 서술한다.때론 드물게 길 고양이나 유기견이 알아서 들어와 한 식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 싫어하여 내쫓기도 하지만, 그냥 얌전히 내보내도 계속 오면서 애원하여 어쩔 수 없이 같이 사는 경우도 있다... 정말 드물게 길거리 동물이 알아서 들어오기도 한다. 심지어는 비둘기가 집에 들어오더니 애완동물이 된 경우도 있다.(...)
당연히 밖에서 구르던 놈들이므로 어느 정도 야성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대단하다. 꾸준한 시간과 열린 마음을 가지고 대하여야 한다. 업어오는 데 성공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마음을 열었다는 증거. 물론 버려진 놈들은 애완동물이었을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오히려 나에게 먹을 것을 주는 안전한 존재로 인식하고 달라붙는 경우도 있다. 처음 데려왔을 때는 당연히 병균 덩어리라고 인식을 하고 수의사에게 데려가서 철저한 검진을 받도록 하자.
기존에 키우던 애완동물들과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동물을 들일 때와 비슷하다. 다만 검역을 좀 더 철저히 해두어 불상사에 대비하자. 사람에게는 감춘 야성을 텃세를 부리는 터줏대감에게 부려서 피 바람을 일으키는 것도 감수해야 할 사항.
길들여진 업둥이들의 경우엔 그나마 계획된 입양의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새끼 동물들의 경우에는 행운을 빈다.
3. 관련 문서
[1] 따라서 이 부모들은 가능하면 고래등만한 기와집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2] 특히 한겨울과 한여름철에 대단히 위험이 크다.[3] 정말 아이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베이비 박스가 아니라 낙태를 했을 것이다. 베이비박스를 운영중인 이종락 목사 또한 베이비박스를 찾아오는 미혼모는 아이를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제주도 등의 전국에서 서울까지 찾아오는 엄마들이고, 미혼모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라고 언급한 바 있다.[4] 히데요리의 아명 역시 주워온 아이란 뜻의 히로이마루(拾丸)다.[5] 보통은 동물 새끼를 가리킬 때 쓰인다. 해츨링, 저글링 등이 예.[6] 국어사전에 따르면 여자가 데려오는 아이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다.[7] 길고양이 등을 데려와 키우는 경우는 업등이란 표현 보다는 냥줍이란 말로 많이 불린다.[8] 일본에서는 귤 박스에 들어있는 것이 클리셰다. "xx입니다. 귀여워 해주세요"오홋홋홋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