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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Attu Island미국 알래스카에 위치한 섬으로 본초 자오선을 기준으로 한 지구의 동서 구분에서 서반구의 가장 서쪽에 있는 지역이다. 알류트어로는 아탄(Atan)이라고 한다. 동경 173도에 위치한 섬으로 넓이는 900km²가 조금 안 된다. 미국 영토라서 이곳은 국제 날짜 변경선에서 예외로 취급된다.
과거에는 알류트 원주민들 수십 명이 거주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군에 의해 모두 포로로 잡혀갔고, 종전 이후에는 미국 해안경비대 20여 명이 주둔했었지만 2010년 모두 철수하며 무인도가 되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이 건설한 활주로와 해안경비대 주둔 당시 건설된 기타 시설들이 섬의 남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현재는 방치되어 있다.
알류샨 열도에 있는 섬답게 산이 많으며 험악하기까지 하다. 당장 위의 사진에서도 눈이 쌓인 곳이 다 산이라고 생각하면 딱이다. 그리고 평지에는 각종 개천과 함께 늪 지대와 툰드라 지형이 있어서 일단 길을 벗어나면 무한궤도가 달린 차량이라도 늪에 빠지는 등의 이유로 인해 사실상 주행이 어렵다. 게다가 길 자체도 거의 마을과 마을을 잇는 오솔길 수준인 데다가 섬의 서쪽 절반은 아예 도로란 것이 없다. 따라서 트럭 등 차량을 운용하기 힘들어서 주요진지를 건설하고 물자를 운반하는 데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
2. 역사
본래 수십명의 알류트 원주민들이 거주 중이었며, 외부인들과의 접촉이 전무했던 고립된 섬이었다. 18세기 들어 러시아인들이 해달을 사냥하기 위해 섬에 상륙하며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때 러시아인들이 알류트인들의 식량이었던 해달을 남획하여 마찰이 벌어지기도 했다. 러시아인들은 섬에 몇년 동안 머물다가 다시 러시아로 돌아갔으며, 그 뒤로 러시아 제국이 알래스카를 점령하여 러시아령 아메리카의 일부가 되었다가 알래스카 조약으로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이때 미국 측은 애투섬에 기상 관측소를 설치해 자국의 민간인과 그의 아내를 파견했는데, 이에 대한 내용은 후술되어 있다.이후 20세기 들어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배한 일본군이 원래 작전 계획이었던 양동 작전을 확대해 소련에 대한 견제와 미 본토를 공격하기 위한 활주로 건설을 목적으로 1942년 6월 7일에 알류샨 열도를 점령하며 이 섬도 점령당했다. 다른 알류샨 열도의 원주민들은 미군이 알래스카 본토로 대피시켰으나 당시 애투섬의 동쪽 마을에 거주하던 42명의 원주민들은 미처 대피하지 못했고, 배치된 미군 병력도 없었기에 일본군들에게 포로로 잡혀버렸다. 섬에 상륙한 일본군들은 이 섬의 명칭을 음차해서 앗쯔섬(熱田島, アッツ島)이라고 이름 붙였다.
포로로 잡힌 원주민 42명은 일본 홋카이도 오타루의 수용소로 끌려갔다가 식량 부족과 전염병 창궐 등 열악한 환경으로 16명이 사망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 후 미군은 1943년 5월 알류샨 열도에 상륙작전을 개시했고, 열도의 모든 섬을 탈환했다. 특히 애투섬은 주둔 중이던 2000명이 넘는 일본군 수비대가 미군에 의해 모두 궤멸당했다. 이 전투는 미국 영토 내에서 벌어진 유일한 지상전인데, 극한 지역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까닭에 격전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일본이 패전하면서 수용소에 있던 원주민들은 간신히 살아 돌아왔다. 이들은 고향이었던 애투섬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원했으나, 미국 측은 허가해 주지 않았고 결국 알류샨 열도의 다른 섬으로 이주했다.
전술한 기상 관측소에서 일하던 미국인은 2차 세계 대전 도중 유일하게 일본군에게 살해당한 미국 국적의 민간인 찰스 포스터 존스(Charles Foster Jones)다. 찰스 포스터 존스는 1879년생으로 오하이오주 출생이다. 그는 골드 러시에 동참하기 위하여 알래스카로 이주하여 광산 및 채굴업에 종사했다가, 교사 겸 간호사로 일하던 에타 존스라는 여인과 결혼해 애투 섬으로 파견되었다. 찰스는 기상 관측소에서 일하며 기상 상황을 애투섬에서 본토로 보고하는 일을 하는 중이었는데, 1942년 6월 7일 일본군이 상륙하자 '일본군이 왔다'는 보고를 보내고 라디오를 스스로 파괴하였다. 일본군은 찰스와 그의 아내를 러시아인 스파이로 오인하여, 인근 암치카 섬에 대한 정보를 물었지만 이들은 민간인이었기에 당연히 모른다고 답했다. 이후 찰스는 파괴된 라디오를 고치라는 일본군의 명령을 거부했다가 사살당했고, 시체는 그대로 섬에 방치되었다. 그의 아내 에타는 원주민들과 함께 홋카이도의 수용소로 보내졌다.
찰스의 유해는 섬을 탈환한 미군이 수습하여 앵커리지에 위치한 포트 리처드슨 국립묘지에 안장하였다. 한편 포로로 일본에 끌려간 존스의 아내 에타는 전후 미국으로 돌아가 플로리다에서 1965년 8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여담으로 일본군의 전시 보급 상황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