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666><colcolor=#fff> 앙투안 앙리 조미니 Antoine-Henri Jomini[1] | |
출생 | 1779년 3월 6일 |
스위스 보주 파예른 | |
사망 | 1869년 3월 22일 (향년 90세) |
프랑스 일드프랑스 파리 | |
직업 | 군인, 군사사상가 |
복무 | 헬베티아 공화국군 (1798 ~ 1801) 프랑스 제국군 (1805 ~ 1813) 러시아 제국군 (1813 ~ 18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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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폴레옹 전쟁 시기 군인.《전쟁술》의 저자이다.2. 생애
스위스의 명가에서 태어난 조미니는 군인을 희망했지만 부모의 반대로 바젤에서 은행업에 종사했다. 1796년 파리로 건너가 은행 업무에 종사하다 1798년에 헬베티아 공화국에 참모로 자원했다.1801년 헬베티아 공화국이 해체된 후 군사에 관련된 저술을 작성했다. 1804년에 조미니는 그의 프리드리히 2세의 군사작전에 관한 논문을 읽었던 나폴레옹에 의해 발탁되어 프랑스군 대령으로 임명되었다. 예나 전투, 아일라우 전투에 종군하며 능력을 인정받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러나 1813년에 상관인 루이알렉상드르 베르티에로부터 시기와 모함을 받은 조미니는 그해 8월에 프랑스를 떠나 러시아로 향했다.
알렉산드르 1세의 군사 참모이자 황태자의 군사 분야 가정교사로 활동하게 되었다. 오래지 않아서 그는 러시아군 중장으로 승진했고,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때에는 러시아군 장군으로 참전해 뤼첸 전투, 바우첸 전투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 맞서기도 했다.
1829년 러시아 제국군을 예편했고 러시아를 떠나 여러 나라를 옮겨 다녔다. 크림 전쟁 때에는 잠시 모스크바에 머물면서 전쟁과 관련해 니콜라이 1세의 조언자로 활동했다.《전쟁술》을 쓰며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자 했던 조미니는 1869년에 90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전쟁술(The Art of War, 원제:Précis de l'Art de la Guerre)을 비롯하여 다양한 종류의 군사 저술을 남겼으며, 프리드리히 2세 시절부터 나폴레옹 전쟁까지 전반에 걸쳐 여러 전훈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어느 시대에나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군사적전의 원리를 탐구하였다.
[1] 외래어 표기법을 원칙대로 적용하면 '앙투안앙리 조미니'로 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