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0 07:25:48

알프잉에 홀란드

알프잉에 홀란드의 역임직책
{{{#!folding ▼ 맨체스터 시티 FC 주장
앤디 모리슨
(1999~2000)
알프잉에 홀란드
(2000~2001)
스튜어트 피어스
(2001~2002)
}}} ||
노르웨이의 前 축구 선수
파일:f_img.kooora.comistoreimagesgoalzzaklam-nacer_0_gettyimages-1234758266.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알프잉에 홀란드
Alf-Inge Håland
본명 알프잉에 라스달 "알피" 홀란
Alf-Inge Rasdal "Alfie" Håland
출생 1972년 11월 23일 ([age(1972-11-23)]세)
노르웨이 로갈란주 스타방에르
국적
[[노르웨이|]][[틀:국기|]][[틀:국기|]]
신체 186cm / 체중 82kg
직업 축구선수 (수비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행정가
소속 선수 브뤼네 FK (1990~1993)
노팅엄 포레스트 FC (1993~1997)
리즈 유나이티드 FC (1997~2000)
맨체스터 시티 FC (2000~2003)
로젤란드 BK (2011~2012)
가족 배우자 아니타 스트롬스볼드[1]
장남 아스토르 홀란드(1995년 5월 12일생)
장녀 가브리엘 홀란드(1997년 1월 9일생)
차남 엘링 홀란드(2000년 7월 21일생)
차녀(2012년생)
삼녀(2014년생)[2]
국가대표 파일:노르웨이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34경기 (노르웨이 / 1994~2001)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논란 및 사건사고
4.1. 레알 마드리드 홈 팬과의 충돌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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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르웨이의 前 축구 선수.

현재는 축구행정가로 활동 중이며 세계적인 축구 스타 엘링 홀란드의 아버지로도 유명하다.

2. 클럽 경력

브뤼네에서 자랐으며 지역 축구클럽인 브뤼네 FK에서 뛰다가 1993년 당시 잉글랜드 2부 리그 소속인 노팅엄 포레스트 FC로 이적했다.

2.1. 리즈 유나이티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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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 조지 그레이엄 감독이 이끄는 리즈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했다. 그리고 그 해 8월 8일, 아스날 FC를 상대로 데뷔했다.

3년간 리즈 소속으로 활약하면서 미드필더와 수비를 오가며 멀티 플레이어로 뛰었으며, 1999-00 시즌에는 UEFA 컵 4강 진출을 기여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이 시절에 차남 엘링 홀란드를 낳았다.

2.2. 맨체스터 시티 FC

파일:EySKAVqXAAQkdvN.jpg

2000년, 감독 조 로일에 의해 프리미어 리그맨체스터 시티 FC에 합류했다. 첫 시즌부터 레귤러로 활약하며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으나 2001년 4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더비전에서 로이 킨에 의해 무릎을 가격당하며 8개월간 재활에 매달려야 했다.[3][4] 그리고 결국 무릎 부상으로 2003년에 은퇴를 선언한다.

이후 8년만에 은퇴를 번복하고 로젤란드 BK란 팀에 입단해 1년간 뛰다 다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경력

그는 1994년, 코스타리카와의 경기를 통해 A대표팀에 데뷔했으며, 그 해 미국에서 개최된 FIFA 월드컵에 참가해 멕시코이탈리아와의 조별 라운드 경기에 출전하였다.

그리고 2001년 불가리아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으며, 총 34경기를 뛰었다.

4. 논란 및 사건사고

4.1. 레알 마드리드 홈 팬과의 충돌


2023년 5월 10일, 레알 마드리드 CF의 홈인 베르나베우에서 개최된 챔피언스 리그 4강 1차전에 출전한 자신의 아들인 엘링 홀란드를 보러 경기장에 갔다가 케빈 더 브라위너의 동점골 직후 레알 팬들과 시비가 붙어 충돌했고[5] 결국 경기장 안전요원들에 의해 VIP 박스 실내로 복귀했다. 경기장 밖으로 쫓겨났다는 것은 오보이다. ##

5. 여담

파일:soccer-fa-carling-premiership-leeds-united-v-manchester-united-6-390x285.jpg 파일:SillyGlamorousEwe-size_restricted.gif

* 과거 현역 시절 로이 킨과의 일화로 유명하다.[6]
  • 아들인 엘링 홀란드도 축구선수로 뛰고 있는데, 아들 엘링이 세계구급 유망주로 불리다가 점차 월드클래스로 성장하면서 아버지인 알피도 덩달아 관심에 오르는 일이 늘어났다. 2022년 공개된 엘링의 단독 다큐 '홀란의 위대한 결정'에서는 "이게 좋은건지 나쁜건지 이제 아들이 아빠보다 유명하잖아요"라며 농담 섞인 푸념을 늘어놔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 아들이 2019-20 시즌 FC 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 크게 활약하며 일약 스타로 발돋움했고, 이 활약을 바탕으로 2019년 겨울 이적시장에서 맨유 이적설이 급물살을 타기도 했다. 로이 킨이 다름 아닌 맨유의 레전드이기 때문에 상당히 묘한 감정을 느꼈을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엘링은 결국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했다.
  • 도르트문트 이적 후에도 아들의 맨유 이적설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는데, 이에 대한 질문에 "맨유도르트문트처럼 자랑할만한 클럽이다." 라는 발언을 했다. 일견 맨유를 높이는 발언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곱씹어 생각해보면 "맨유도르트문트보다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없다"는 표현으로, 맨유로의 이적이 발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도르트문트에 잔류하는 것이 낫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 이후 아들이 레알 마드리드맨시티를 중심으로 이적설이 났는데, 이 시기 맨시티 팬들은 맨시티에서 활약한 경력이 있는 아버지 알피 홀란드를 마지막 희망[7]이라고 부르며 아버지가 아들을 설득하길 바라기도 했다.
  • 결국 아들 엘링 홀란드가 정말로 맨시티로 이적하는 것이 확정된 상황인데, 레알 마드리드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홀란드가 맨시티로 끝내 선회하게 된 것에 아버지의 영향도 꽤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1대 아버지 알프잉에 홀란드가 맨시티와 계약한지 햇수로는 22년, 일수로는 8035일이 지나서 2대 아들 엘링 홀란드가 대를 이어 맨시티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 아들의 맨시티 이적 인터뷰 촬영 직후 아들과 TV 스크린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TV 스크린에 어린 시절의 홀란드가 'DAD'라고 적힌 맨시티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진이 나온 직후 아들에게 'SON' 마킹이 된 유니폼을 선물받았다. 이때 누군가가 떠올랐는지 통쾌하게 웃으며 아들에게 "하지만 이 선수는 맨시티에서 뛰지 않잖아?" 라고 드립을 날렸다.
  • 아들의 엄청난 활약으로 한국에서는 홀웅정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1] 전 배우자는 그라이 마리타 브레우트로 장남 아스토르, 장녀 가브리엘, 차남 엘링의 어머니이다.[2] 차녀와 삼녀는 現 배우자와 재혼 후 낳은 자녀들이다.[3] 다만 저때 당시 알피 홀란드가 로이 킨의 태클로 당한 부상은 경미한 타박상이었으며 홀란드는 경기를 끝까지 소화했고, 며칠 뒤엔 국가대표 경기에도 출전했다. 재활에 매달리게 된 건 로이 킨의 태클이 주 원인까지는 아니었고 저때 당시부터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시달려와서 그런 것이다.[4] 아들인 엘링 홀란드의 맨체스터 시티 응원가에도 로이 킨 관련 내용이 나온다.[5] 레알 홈 팬들에게 땅콩을 투척하고 욕설을 했다는 것이 레알 팬들의 주장이고, 본인은 음식을 던졌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했다.[6] 알프잉에 홀란드는 시간이 흘러서 로이 킨에 대한 악감정은 이젠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다 잊었다고 한다.[7] 이 즈음 치키 베히리스타인을 비롯한 맨시티 보드진이 공격수 영입에 굉장히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비판 여론이 거세졌기에 이러한 분위기가 더욱 강했다. 해리 케인에 대한 비드가 다니엘 레비의 강력한 거부로 날아간게 이 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