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86년 8월 31일 소련 흑해 연안에서 일어난 여객선 침몰 사고.2. SS 아드미랄 나히모프
여객선은 원래는 1925년 3월 19일에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만든 배로, 원래 이름은 SS 베를린이었다. 첫 항해는 1925년 9월 17일에 했다. 최대 1,101명의 승객과 승무원 330명이 탑승 가능했다. 전장은 약 174m, 갑판 4개에, 엔진은 최대 12000마력의 힘을 냈고, 최대 16노트의 속도로 항해할 수 있었다.처음엔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뉴욕까지 항해했다. 1928년 11월 11일엔 베스트리스 호#가 침몰할때 와서 승객들을 구조하기도 했다.
그러다 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고, 1939년 SS 베를린은 정부에서 징집해 병원선으로 바꾸었다. 베를린호는 병원선이 되고 노르웨이 해역에서 운용됐다. 1945년, 기뢰와 부딪히는 사고가 일어나 운항이 힘들어지자 독일은 챙길 수 있는 물건만 챙기고 배는 버리고 갔다. 수심이 낮은 구간이라 아예 가라앉지는 않고 바닥에 닿은 상태로 방피되다가 소련에서 발견 후 노획하기로 했다.
독일군이 폭탄을 설치하고 떠나 노획 작업은 1년 넘게 진행됐다. 안에 들어찬 물을 빼낸 후 구멍을 때워 배를 다시 띄웠다. 그리고 배를 여객선으로 개조하면서 극장과 바, 수영장, 레스토랑 등이 더해졌다. 이름은 러시아 제국의 장군 파벨 나히모프의 이름에서 따와 "아드미랄 나히모프호" 가 됐다. 여객선으로 탈바꿈한 뒤 주로 운항에서 운행했다.
3. 사고 내용
사고 당일 오후 10시, 흑해 연안의 노보로시스크에서 아드미랄 나히모프호가 소치를 향해 출항했다. 여객선엔 승객 888명, 승조원 346명이 탑승했었다. 승객들은 주로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동유럽, 그리고 아시아 출신이었다. 선장은 바딤 마르코프(Vadim Markov)였다.여객선은 출항 도중 18,000톤 급 화물선 표토르 바세프호와 항로가 겹쳤다. 여객선 선장은 화물선 측에 항로를 바꿔달라 여러번 부탁했고, 화물선 선장 빅토르 트카첸코(Viktor Tkachenko)는 피해가겠다 대답했다. 하지만 화물선은 항로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직진했다. 이대로면 부딪힐 상황에서 바딤 선장은 엔진을 역추진시켜 배를 돌려보려했으나 이미 늦었다.
오후 11시 12분, 두 배는 충돌했다. 충돌로 여객선에 큰 구멍이 생겨 물이 들어오는 가운데, 격벽이 없어 배는 순식간에 물로 가득찼다. 엔진실에 물이 차올라 엔진이 고장났고, 배 내에 불이 꺼지면서 혼란이 커졌다. 발전기는 아직까진 멀쩡해 불을 다시 킬 수 있었으나, 이내 발전기도 물에 잠기면서 불은 2분만 켜졌다가 다시 꺼졌다. 배는 충돌 7분만에 항구에서 8마일 가량 떨어진 지점에 가라앉았다. 너무 빨리 가라앉아 사람들은 대피할 틈도 없었다.
신고를 받고 구조대가 10분만에 도착했다. 구조선 64대와 헬기 20대를 동원해 800명이 넘는 승객을 구조를 했으나 안타깝게도 승객과 승무원 423명이 사망했다. 승무원 64명, 승객 359명이 사망했다. 하필이면 한밤중에 승객 대다수가 잘때 일어난데다, 침몰 속도가 너무 빨라 피해가 커졌다.
4. 사고 이후
한때 에어포켓이 남아있을 수 있다는 설이 있었으나, 다이버들의 확인 결과 에어포켓은 없었다. 나히모프호 조사 도중 다이버 2명이 사망했다.두 배의 선장은 징역 15년 형을 받았다. 하지만 형기를 다 마치진 않았고 1992년 가을에 둘다 풀려났다.
표토르 바세프호는 큰 피해가 없어 사고 이후에도 2012년 까지 계속 운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