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25 16:43:10

실체

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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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substance
서양 철학에서 '세상의 근원'이나 '궁극적인 본질'을 의미한다. 보통은 '현상 이면에 작동하는 본질'을 뜻한다.

2. 상세

세상이 근원이 과연 무엇이냐에 따라서 실체는 다양하게 말해진다. 탈레스 같은 경우에는 세상의 실체를 '물'로 보았던 것처럼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연에서 그 실체를 찾았다. 하지만 플라톤은 실체를 이데아라고 보았고 현실세상은 실체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의 개별자 각각에 들어 있는 형상을 실체라고 보았다. 형상은 그 자체 내부에서 잠재태에서 현실태로 변화하는 실체[1] 그 자체라는 것이다. 플로티누스는 세상 전체를 포괄하는 일자(The one)가 실체라고 보았다. 일자가 넉넉해지면 그 일부가 흘러나와(유출) 세상 동식물들의 정신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중세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실체를 기독교의 신(God)으로 보았다. 세상은 신을 통해 창조된다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실체를 신으로 보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아 실체인 보편자가 비슷한 '종(種)'과 '류(類)'로서 유비를 통해 개별자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에크하르트에게도 실체는 각각의 개별자에 있지만 그것은 인간의 욕망을 모두 던져버렸을 때 신과 하나됨을 통해서 드러난다고 보았다.

르네 데카르트는 실체를 정신과 물질로 나누었다. 이를 신심이원론이라고 한다. 물질은 단순한 공간으로 환원되어 '연장(extension)'으로 여겨져 좌표평면에서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정신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코기토(자아)'로서 실체가 되어, 기존 신이 실체였던 세계를 뒤집어 엎었다. 신을 기준으로 생각했던 모든 것을, 인간 기준으로 다시 재검토하게 되었던 것이다. 즉 인간의 이성이 주체가 되어 신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다.

존 로크에게 있어서 실체는 감각과 반성이라는 후천적 경험을 통해서 얻어지는 관념이다. 이는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계승한 것이면서도, 로크는 데카르트와는 달리 정신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다던 본유관념은 사실 없고, 모든 관념은 백지 상태[2]의 의식에 경험이 어떻게 쓰여지느냐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이러한 이원론을 극복하고자, 모든 실체는 실체의 기본단위인 모나드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개별 실체인 모나드는 원자와 비슷한 기본단위로서의 개념이지만 비물질적 실체이다. 각각의 모나드는 거울처럼 이미지를 드러내는데, 이러한 모나드의 작용을 '표상'이라고 한다. 이들 모나드는 각기 독립되어 있고 상호간에 인과관계를 가지지 않지만, 각각 독립적으로 행하는 표상간에 조화와 통일이 있는 것은 신이 미리 정한 법칙에 따라 모나드의 작용이 생기기 때문이라는 예정조화설을 주장했다.

데이비드 흄은 경험주의를 이어받아 관념은 단지 감각이 주는 인상(impression)들의 묶음에 불과하기 때문에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실체란 사실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은 이후 수많은 철학자들에게 실체를 부정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임마누엘 칸트에게 있어서 실체에 해당하는 '물자체'는, 우리의 의식으로는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적어도 '무언가는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경험을 통한 의식의 변증법적 진보를 통해서, 실체를 '정신'이 진보해온 과정으로서의 '절대지'로 파악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에게 있어서 눈에 보이는 것은 표상, 그 표상 이면에 작동하는 실체를 '의지'로 보았다. 더 정확히는 '살려는 의지'를 말한다. 이런 의지의 목표하는 바가 충족되지 못하면 괴로움에 빠지고, 충족되면 권태에 빠지기 때문에 인간의 삶은 필연적으로 허무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프리드리히 니체는 '살려는 의지'보다 '힘에의 의지'를 추구해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은 단지 살려는 데서 만족하지 않으며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힘에의 의지란 기존의 가치를 따르지 않고 자신이 정하고 판단한 가치에 따라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려는 창조적 의지를 말한다. 이러한 창조적이고 낭비적인 의지가 있어서 사람은 허무를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니체는 주장했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존재를 실체로 본 기존 형이상학을 비판하였다.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존재'는 그가 속한 세계에서 매번 다르게 드러나는 현상을 매번 다른 해석으로 파악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존재에 어떤 실체가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1] 작용인을 통해 어떤 정해진 '목적'으로 나아간다.[2] tabula rāsa(타불라라사): 아무것도 써 있지 않은 흰 종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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