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16:04:25

시련 재판

시죄법에서 넘어옴
1. 개요2. 방법
2.1. 기타 전근대 수사 기법
3. 배경4. 관련 문서

1. 개요

試鍊裁判, Trial by ordeal

중세근세 유럽에서 죄인 혹은 위증자를 가려내기 위해 사용했던 일련의 여러가지 방법들. 시죄법이라고도 한다. 재판의 결과는 신만이 알 수 있다고하여 신명 재판이라고도 한다.

유럽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사법체계가 발달하지 않았거나 과학적인 수사방법이 부족하거나 사회적인 후진성이 심각한다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일례로 아랍권의 일부 시골에서는 간통한 여성의 무죄여부를 시죄법으로 판결하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소개된 것이 달군 쇠공을 혀로 핥아 상처가 없으면 무죄로 치는 것이었다.

2. 방법

  1. 끓는 물에 손을 담그거나 달군 쇠막대기를 집는다.[1] 하루나 이틀 정도 시간을 준 뒤에 손이 멀쩡하면 무죄, 화상의 흔적이 나온다면 유죄.
    만일 그 사람이 결백하다면 신이 상처를 치유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온 것이다. 일부 성인들의 기록에서 이와 같은 기적을 통해 이교도들을 개종시킨 사례가 존재한다고 한다. 후대에 마녀사냥 시기에는 그런 거 없고 그냥 전부 마녀라고 잡아넣었다. 나았으면 뭔가 마술을 사용했을 테니까.[2]
  2. 물에 사람을 집어던진다. 가라앉으면 무죄, 떠오르면 유죄.
    대표적인 마녀 판결법. 가장 악질적인 시죄법 중 하나이다. 떠오르면 마녀니까 사형, 가라앉으면 그냥 죽음. 초기에는 다른 시죄법과 마찬가지로 반대로 떠오르면 무죄, 가라앉으면 유죄로 판결했다고 한다. 그러나 후대로 가면서 마녀는 하늘을 날려면 가벼워야 하니까 물에 뜬다는 생각으로 이런 판결을 내리게 되었다. 몬티 파이튼의 성배에서 패러디해 용의자가 물에 뜨는 오리와 무게가 같으면 마녀일 것이라는 논리적(?)인 결론에 따라 오리와 저울에 매달아 보았는데, 용의자가 진짜 마녀였고 그대로 화형당한다.
  3. 끓는 기름에 물건을 넣어 둔 후, 손으로 꺼낸다. 화상을 입거나 물건에 이상이 있으면 유죄, 아무런 부상도 화상도 없으면 무죄.
  4. 알칼로이드 계열의 독이 함유된 칼라바르 콩(Physostigma berenosum) 추출액을 먹여서 살아남으면 무죄, 이상이 생기면 유죄.
  5. 결투 재판
  6. 조각 하나를 삼켜서 목구멍에 걸리면 유죄, 안 걸리고 그대로 뱃속으로 들어가면 무죄.

2.1. 기타 전근대 수사 기법

시죄법이 아니더라도 전근대라는 시대적 한계상 괴악한 방법이 사용된 경우는 많았다. 대표적으로 중국에서 생쌀을 씹은 뒤 뱉어보고 그 결과로 위증 여부를 가리는 기법인데, 위증을 하면서 속이 타들어가는 사람은 입에 침이 고이지 않으므로 생쌀을 씹었다가 뱉었을 때 티가 난다는 논리의 전근대 방식의 거짓말 탐지기 기법이다. 물론 거짓말을 하면 심리적으로 속이 타서 침을 자주 삼키게될 수도 있지만, 그저 분위기에 긴장해서 속이 타들어간다거나 하는 등 침이 마르는 원인은 정말 수없이 많다. 구강건조증 환자는 유죄확정 비슷한 방식으로 달군 쇠를 핥게 하는 것도 있었는데, 긴장하면 침이 말라 혀가 탔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전근대 조선에서 친자식을 가려내는 방법으로 부모와 자식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둘의 피를 섞어서 피가 엉기면 친자식이 아니고 피가 엉기지 않을 경우 친자식으로 판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피가 엉기지 않으려면 서로간 혈액형이 일치해야하는데, 유전 법칙에 따르면 부모 자식간 혈액형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름 과학적인 근거가 있기는 하지만 정확한 방법은 아니었다.

또한 궁녀를 뽑을 때는 궁녀는 오로지 처녀로만 뽑히기에 처녀성 검사를 위해서 궁녀 후보들의 팔목에 앵무새 를 묻혔고 묻히면 처녀니까 통과로 쳤다.

3. 배경

중세 유럽은 범죄는 빈번했던 반면 그것을 해결할 만한 사법체계나 행정능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중세도 생각만큼 막장은 아니라서 확실한 증거가 존재하거나 증인이 나타난다면 그에 따라 판결을 내리려고 했으나, 살인과 같은 중범죄는 무죄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고 설령 증거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또 받아들여질지는 알 수 없었다. 결국 비교적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종교적 권위를 빌어서 이를 해결하려 했다. 그 결과가 위와 같은 막장인 게 문제지만. 중세 이후 관료체계와 사법제도가 발달하면서 법학적인 관점에서의 시죄법은 사라졌지만 도리어 종교갈등이 심화되면서 마녀사냥에서 쓰이게 되었으니 아이러니.

다만 극단적인 시죄법을 단순히 의심가는 사람에게 마구잡이로 적용한 것은 아니다. 함무라비 법전에 보면 유무죄의 판결 자체를 시죄법으로 하는 조항이 2개가 있던데 (2조, 132조) 대부분의 시죄법[3]은 심증이 매우 뚜렷한데 물증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경우, 혹은 정치적인 의도가 명확해서 고의적으로 처벌하려는 경우(마녀나 이교도)가 아니면 적용되지 않았다. 시죄법 자체가 진실을 가리기 위해서 쓰인 우매한 미신적 법이 아니라, "아무리 봐도 너 유죄인데 명백한 물증이 없네? 만의 하나 네 말대로 정말 무죄면 신께서 구해주시겠지?" or "네가 구원받을 만한 사람이면 신께서 구해주시겠지?"하고 시행한 법이다. 즉, 시죄법을 적용하는 케이스는 "사실상 유죄"를 의미했으며, 당대인들도 시죄법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마녀나 이교도에게 적용한 것도 마찬가지. 시죄법이 적용되는 것 자체가 "너 마녀, 너 이교도, 고로 사형"을 의미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시죄법은 애초부터 죽으라고 하는 법이었다.

시죄법의 경우 도시나 농촌 가릴 것 없이 일어나는 편이었고 영주들도 영지의 소유권 같은 것을 놓고 다툴 때 많이 애용했다.[4] 오늘날로 이야기하자면 민사에서나 형사에서나 가리지 않고 사용한 셈. 그런데 사제들의 경우는 "신께 맹세코 나는 결백하고 진실만을 이야기했습니다."란 식으로 퉁치고 넘어갈 수 있는 제도가 있어서 사제들이 면피용으로 자주 사용하기도 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봐도 매우 꼬왔기 불공평했기 때문에 역시 사라졌다.

가톨릭 교리에서는 신명기 6장 16절의 "주 너희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는 구절을 근거로 시죄법을 단죄해왔다.
그러므로 본인은 그대가 교회법적인 처벌 규정에 근거한 법이 아닌 시민법, 곧 끓는 물이나 얼음같이 차가운 물 그리고 달군 쇠를 만지거나 또는 백성들이 착안한 어떠한 것들을(이것들은 전적으로 증오가 만들어 낸 산물이므로) 사용하거나 어떠한 방법으로도 요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게다가 본인은 사도적인 권위에 따라 그것을 강력히 금합니다.
교황 알렉산데르 2세가 코모 주교 라이날두스에게 보낸 서한 『Super causas』, 1073년 4월 21일, DS 695
세속의 재판관들이 차가운 물, 달구어진 쇠, 또는 결투와 같이 대중적인 판결을 내렸다 해도 교회는 그와 같은 판결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율법에 이렇게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신명 6,16;마태 4,7)
교황 인노첸시오 3세가 스트라스부르크의 주교 앙리에게 보낸 서한 "Licet apud" 1212년 1월 9일, DS799
유혈이 낭자한 육신의 죽음을 부르는 혐오스러운 결투의 풍습은 악마의 선동에 의해 도입된 것으로서 그리스도교 세계에서는 완전히 금지되어야 한다. 자신의 영토에 그리스도인들이 결투를 할 수 있도록 일정 장소를 제공하는 황제, 왕들, 공작들, 영주들, 후작들, 백작들 그리고 세속의 모든 제후들은 그 자체로 즉시 파문을 받은 것이며, 교회로부터 부여받은 도시나 성 혹은 어느 장소에 결투를 용인했다면 그곳의 소유권과 재치권을 완전히 박탈당한다. 만일 그곳이 영주 소유의 재산이라면 즉시 직속 상관이 이를 취득한다. 결투자들과 소위 참관인이라 불리는 자들에게는 전 재산에 대한 김치산형과 영원한 오명과 함께 파문 제재가 가해질 것이다. 또한 거룩한 교회법에 의해 살인범으로 취급받아 처벌될 것이다. 만일 결투 중에 사망하면 교회 묘지 사용이 영원히 금지될 것이다. 결투에 관한 사안에 법적 혹은 실천적 조언을 한 자들이나 어떤 이를 결투하도록 설득한 자들, 그리고 관람한 자들은 파문과 영원한 저주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 어떤 특전이나 악마적 관습도, 설령 그것이 그 기원을 알 수 없을 만큼 오래된 것이라 할지라도 이를 거스르지 못한다.
트리엔트 공의회 25회기, <전반적인 개혁에 관한 교령> 제19장, '결투금지' 1563년 12월 3일, DS 1830

한국의 전래동화에서 도둑을 잡기 위해 항아리 안에 두꺼비를 넣어두고 손을 넣게 한 이야기가 있다. 이것도 일종의 시죄법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5]

4. 관련 문서


[1] 불 붙은 숯 위를 걷는다는 이야기도 있다.[2] 혹은 '마녀는 섭리에 반하는 존재이니 자연물이 피해간다'라는 논리가 됐다. 아래 나올 물의 심판도 동일.[3] 위에서 언급된 극단적 케이스의.[4] 다만 자잘한 분쟁상황에서의 시죄법은 위와 같이 극단적인 케이스들이 아니라, 닭이 누구 모이를 먼저 먹느냐는 식의 꽤 온건한 형태였다.[5] 사실은 두꺼비가 아니라 물감을 넣어두고 손을 집어넣지 않은 사람을 찾아낸 것이지만. 도둑이 제발 저린다는 심리적 요인을 적절하게 활용한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