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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군트-아우스트라시아의 왕 Sigebert II | 시게베르 2세 | ||
제호 | 한국어 | 시게베르 2세 |
프랑스어 | Sigebert II | |
생몰 년도 | 601년 ~ 613년 | |
재위 기간 | 부르군트-아우스트라시아의 왕 | |
61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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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르군트-아우스트라시아 프랑크 왕국의 왕.2. 행적
부르군트-아우스트라시아 왕 테우데리크 2세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정부의 사생아다. 형제로 킬데베르, 코르부스, 메로베가 있었다. 바비오의 요나가 저술한 <성 콜룸바누스와 제자들의 삶>에 따르면, 브룬힐트는 교회를 지을 땅과 돈을 줄 것을 요청하는 콜룸바누스 주교에게 테우데리크 2세가 낳은 네 명의 아이들을 축복해주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콜룸바누스는 그들이 사생아이니 축복을 내려줄 수 없다며 거부해 브룬힐트의 진노를 사 핍박받았다고 한다.613년 8월 23일, 형 테우데베르 2세를 꺾고 부르군트-아우스트라시아의 왕이 되었던 테우데리크 2세가 사망했다. 두 손자가 잇따라 죽자, 브룬힐트는 테우데리크 2세의 장남 시게베르 2세를 아우스트라시아와 부르군트의 왕으로 선포했다. 그러나 아르눌프, 피핀 1세 등 아우스트라시아의 다른 귀족들은 클로타르 2세를 왕으로 초빙했다. 클로타르 2세가 안더나흐에 도착했을 때, 테우데리크 2세의 아이들과 함께 보름스에 있던 브룬힐트는 그에게 테우데리크에게 정당한 후계자가 있으니 아우스트라시아 왕위를 포기히라고 요구하는 사절을 보냈다. 이에 클로타르 2세는 특별히 소집된 프랑크 민회에서 왕위 계승자를 결정할 것이라고 답했다.
브룬힐트는 클로타르에 맞서기 위해 알보인, 바나차르 및 지지자들을 규합한 뒤 시게베르를 튀링겐으로 보냈다. 이때 그녀는 알보인에게 비밀 편지를 보내 바나차르 등이 클로타르에 합류하려 할 경우 그들을 죽이라고 지시했다. 알보인은 편지를 읽은 뒤 갈기갈기 찢어서 땅에 던졌지만, 바나차르의 부하 한 명이 이를 발견하고 밀랍판에 붙인 후 주군에게 보였다. 바나차르는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걸 깨닫고 다른 귀족들에게 이 사실을 털어놨다. 그들은 서고트 왕국 출신인 이민족 여자이고, 절대권력을 휘두르며 귀족들을 모조리 숙청한 그녀에게 두려움과 혐오를 동시에 느꼈고, 이참에 테오데리크의 아이들 중 한 명도 탈출하지 못하도록 한 뒤 브룬힐트와 함께 모조리 죽이고 왕국을 클로타르에게 넘기기로 결의했다.
얼마 후, 부르군트와 아우스트라시아 연합군이 브룬힐트의 지휘하에 클로타르와 맞서러 진군했다. 샹파뉴의 아시네 강에 이르러 네우스트리아군과 마주쳤을 때, 바나차르를 비롯한 수많은 귀족들이 곧바로 귀순했다. 브룬힐트의 원정에 동행했던 시게베르, 코르부스, 메로베는 곧바로 체포되었고, 킬데베르는 가까스로 빠져나온 후 종적을 감췄다. 브룬힐트는 도주를 시도했으나 끝내 딸 테오데린다와 함께 체포되어 클로타르 앞으로 끌려갔다.
클로타르 2세는 메로베의 대부를 맡은 바 있었기에 그를 살려줬지만 시게베르 2세와 코르부스는 죽였다. 이후 브룬힐트에게 40여년 간 프랑크 왕국을 혼란과 고통에 빠뜨리고 여러 왕을 파멸로 몰고 간 책임을 물었다. 이에 모든 프랑크인과 부르군트인이 한 목소리로 "저 악녀에게 참혹한 죽음을 내려라!"라고 외쳤다. 브룬힐트는 3일 동안 온갖 고문을 받은 뒤 낙타에 태워진 후 조리돌림 당했다. 그 후 발가벗겨진 채 머리카락과 양 팔, 양 다리가 두 마리의 야생마의 발에 묶인 뒤 두 말이 채찍질을 받고 앞으로 내달리면서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졌다. 이리하여 프랑크 왕국으로 시집온 이래 40여 년간 나라를 좌지우지하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고트족 여인은 참혹한 최후를 맞이했고, 프랑크 왕국은 클로타르 2세에 의해 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