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숄라 아메오비/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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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숄라 아메오비의 클럽 경력을 정리한 문서.

1.1.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나이지리아 출신이지만 아버지가 영국으로 유학을 오던 중 나이지리아 내전을 피해서 가족을 전부 이민시켜 뉴캐슬에서 자랐다. 1995년 뉴캐슬 유나이티드 유스팀에 입성한 이후 꾸준히 성장하며 주목을 받았고, 2000년 9월 9일에 첼시를 상대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같은해 주전 스트라이커 앨런 시어러칼 코트의 부상으로 19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려 22경기나 출장했다. 둘이 부상에서 복귀한 이후에도 꾸준히 출전하며 공격진의 확실한 서브 옵션으로 자리매김한다.

2002-03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캄프 누 원정에서 동점골을 뽑아내기도 했으며(경기는 3-1 패배), 전 시즌 준우승 팀 바이어 레버쿠젠전에서는 2골을 넣으며 팀의 3-1 승리를 견인하는 등 '포스트 시어러'로 각광받던 공격 자원이었다.

국가대표 무대에서도 잉글랜드의 21세 이하 대표팀으로 활약하여 20경기에서 7골을 기록했고, 잉글랜드나이지리아의 축구협회가 그의 국적을 둘러싸고 분쟁을 벌이는 등 촉망받는 유망주였다.[1]

결국 고민하던 아메오비는 당시 뉴캐슬 감독이었던 바비 롭슨의 강력한 권유에 따라 잉글랜드 국적을 택했고, 2003년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의 대표팀 스쿼드에 합류가 거의 확실시되고 있었으나 가벼운 부상으로 마지막 순간에 낙마했다. 그런데 이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애초에 아메오비는 체격이 좋고(188cm) 동시에 준수한 테크닉을 가져서 주목받고 있는데 어중이떠중이 하는 사이에 체격이 훨씬 더 좋고 동일한 수준의 테크닉을 가진 피터 크라우치나 그냥 모든면에서 넘사벽웨인 루니가 급부상해 버렸고 이로 인해 어느새 대표팀에서는 한없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촉망받는 유망주였던 시절에는 봐줄만 했던 사소한 실수들이 시간이 지나도 고쳐지지 않았다. 또한 전설적인 막장 감독 그레이엄 수네스는 아메오비를 크레익 벨라미와 더불어 양쪽 윙으로 기용하며 성장하는 유망주의 전술 개념을 흔들어 놓았다.

자꾸만 발목을 잡는 고질적인 부상[2]도 문제였다.

결국 아메오비는 대표팀은커녕 뉴캐슬에서도 후보에 방출 위기까지 내몰린다. 실제로 2008-09 시즌 시작 직전에 풋볼 리그 챔피언쉽입스위치 타운으로의 이적이 계약서에 싸인만 남긴 상태였으나 갑자기 또 부상당해서 메디컬 테스트에서 낙마,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09-10 시즌 팀이 챔피언십으로 내려가면서 마이클 오언 같은 선수는 어떻게든 뉴캐슬과 연을 끊고자 필사적이었지만, 아메오비는 당연하다는 듯 팀에 잔류했고, 막장으로 치닫는 팀을 묵묵히 다잡았다.[3]

얇아진 선수층으로 인해 다시 주전으로 올라선 아메오비는 레딩을 상대로 생애 최초의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챔피언십 8월의 선수'로 선정되는 등 활약하며 팀의 승격에 공헌한다. 그러나 역시 부상이 잦아 많은 경기를 꾸준히 뛰지는 못했다. 챔피언십에서의 성적은 18경기 10골.

1.1.1. 2010-11 시즌

10-11 시즌 현재 부상이 잦기는 하지만 일단은 앤디 캐롤과 짝을 이뤄 주전 공격수 자리를 꿰차고 있다. 현재 16경기 4골 정도로 스탯은 평범하지만 상대 수비수를 캐롤에게서 떨어트리는 미끼 또는 캐롤에게 집중 마크가 붙었을 때 튀어나와서 집어넣는 함정카드 역할을 비교적 쓸만하게 수행하였다.

풋볼 리그 컵에서 90분 기록한 결승 골을 포함 두 골을 넣으며 첼시 원정을 승리하는 파란을 일으켰고, 더비 라이벌 선덜랜드를 5-1로 개발살낼 때 멋진 태권도 슛을 포함한 두 골을 넣으며 활약한 것이 그 예.

이적시장 마지막날 캐롤이 리버풀로 깜짝 이적하면서 어느새 뉴캐슬의 주력 공격수는 또 다시 아메오비가 되어 버렸다. 이번에야말로 정신을 차리고 팀을 위기에서 구원할 것인가 싶었으나 이적시장 종료 후 첫 경기인 풀럽전에 출전하여 광대뼈 함몰이라는 심각한 부상을 당해 버렸고[4], 시즌 아웃이 예상되었지만...

시즌 후반기인 2월 후순에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제작한 특별 맞춤 마스크를 쓰고서 훈련에 복귀했다! 이를 지켜본 일부 뉴캐슬 팬들은, 떡대 건장한 흑형이 특별 제작된 플라스틱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에, 아메리칸 코믹스의 슈퍼 히어로를 들먹이며 뉴캐슬을 강등에서 구원해 줄 슈퍼 히어로가 돌아왔다고 설레발을 떨기도 하였다. 하지만 활약은 히어로라기 보다는 일반 서민에 불과했다. 어쨌든 팀은 강등에서는 벗어났고, 본인은 리그 6골, 컵 대회 3골로 총 9골로 시즌 종료.

1.1.2. 2011-12 시즌

11-12 시즌에 와서는 뎀바 바의 합류로 인해 교체 출장의 빈도가 잦아졌다. 잦은 엉덩이 부상으로 인한 기동력 저하가 눈에 띄며(특히 선발 출장 경기에서 후반 중반 이후), 활동량 역시 눈에 띄게 줄어든 탓에 때이른 노쇠화가 찾아 오는 것이 아닌지 우려를 사고 있다.

다만 이전에 비해 웨이트를 보강해[5] 수비와 경합하는 포스트 플레이에서는 뎀바 바보다 우위에 있다는 평. 보다 타겟형 스트라이커에 가까운 롤을 수행하고 있다.

리그에서 단 두 골만을 기록하고 있지만 골의 임팩트가 실로 강한데, 한 골은 토트넘 핫스퍼와의 홈 경기에서 1-2로 끌려다니던 후반 86분 기록한 절묘한 왼발 터닝슛이며, 다른 한 골은 선덜랜드와의 타인-위어 더비의 후반 인저리 타임 동점 골이어서 팬들은 '미우나 고우나 역시 툰의 아들'이라며 칭송하는 분위기.[6]

토트넘전 골은 많은 뉴캐슬 팬들에게 '뉴캐슬 올해의 골' 중 하나로 여겨질 만큼 멋진 슈팅이었다.[7]

결국 단 두 골만을 기록한 채로 2011-12 시즌을 마쳤지만, 앨런 파듀 감독은 축소된 역할을 부여받았음에도 팀에 충성한 그의 공을 인정했는지, 시즌 후 BBC 뉴캐슬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올해의 선수'로 아메오비를 뽑았다.

1.1.3. 2012-13 시즌

12-13 시즌에 들어오면서 영 좋지 않은 호흡을 보여 주는 뎀바 바와 파피스 시세의 투톱에 비해 이타적인 타겟 플레이로 보다 나은 공격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포워드 선수층이 얇아진 데다 유럽 대항전까지 진출한 팀의 사정상 11월 현재에는 선발이든 교체든 거의 모든 경기에 출장하고 있다.

절정의 득점 감각을 보여 주는 뎀바 바와 투톱으로 나설 때가 많다. 또한 파브리시오 콜로치니호나스 구티에레스를 잇는 팀내 3순위 주장으로, 이 두 선수가 결장한 UEFA 유로파 리그 지롱댕 보르도와의 홈 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나와 선제 결승 골을 성공(3-0 승리)시키는 감격도 누렸다.

뉴캐슬의 마지막 유럽 무대에서 앨런 시어러가 주장으로 뛰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올드 팬들은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법한 장면. 클럽 브뤼헤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동생 새미 아메오비와 처음으로 동반 선발출장하여 동생의 어시스트를 받아 동점골을 터뜨렸다(2-2 무승부). 리그에서는 골 없이 어시스트 2개만을 기록중이다가, 팀이 강등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대 QPR전 결승골을 뽑아내어 마수걸이 득점을 기록.

한편 나이지리아 축구협회가 2013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을 대비해 아메오비를 나이지리아 국가대표로 선발하며 31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조국을 대표하는 감격을 누리게 되었다. 부상만 조심한다면 이래저래 보람찬 시즌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1월 14일 베네수엘라와의 친선전에서 예전 팀동료 오바페미 마르틴스와 교체되어 들어온 아메오비는 경기 종료 직전 오게니 오나지의 골을 돕는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국가대표 데뷔전을 마친다. 그러나 30여년을 기다려 왔던 국가대항전 무대였건만, 강등 위기에 몰린 데다 뎀바 바의 이탈이 예상되자, 아메오비는 네이션스 컵 출전을 포기하고 소속 팀에 전념하기로 한다.

나이지리아 감독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나이 한국 나이로 33세, 다음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 그 충성심에 뉴캐슬 팬들은 그저 눈물이..

1.1.4. 2013-14 시즌

프리 시즌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나 고질적 부상과 임대선수 로익 레미의 맹활약으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레미의 활약과는 별개로 뉴캐슬은 4-2-3-1 전술이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고전중이었는데, 원톱 자리의 파피스 시세의 폼이 어떻게 손을 쓰기 힘들 정도로 추락한 것이 큰 원인이었다.

이에 앨런 파듀 감독은 죽음의 일정을 앞두고 모험적인 전술 변화를 시도하기 시작하는데, 리버풀전에서는 아템 벤 아르파를 축으로 한 제로톱 전술을 선보였고, 첼시전에서는 마침내 4-4-2로 회귀하며 아메오비-레미의 파트너쉽을 가동했다. 그리고 뉴캐슬은 첼시 - 토트넘 핫스퍼 - 노리치 시티 - WBA를 모두 잡아내며 2위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아메오비는 후방에서부터의 압박, 연계, 키핑, 제공권 다툼 등 하드 워커에게 필요한 모든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5년여 동안 시도하던 스타일 개조가 완성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골이 아직 없다는 건데, 꼭 득점이 필요하다 여겨지지 않을 정도의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특히 아메오비가 A부터 Z까지 모두 만들어낸 골이라 해도 다름이 없는 노리치전 두 번째 골은 뉴캐슬 팬들의 심장을 뛰게 하기 충분한 멋진 플레이였다.[8]

평소 앨런 시어러는 경기장 앞에 동상을 세우고, 아메오비는 박제(...)해서 세워 두고 싶다던 뉴캐슬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감개무량할 만한 활약상.

한편 나이지리아가 월드컵 진출에 성공했기 때문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월드컵에 얼굴을 비출 확률이 높아졌다. 놀랍게도 월드컵 진출 이후 가진 이탈리아와의 평가전에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이번에야말로 터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팀의 핵심 요앙 카바예의 겨울 이적과 앨런 파듀 감독의 박치기 퇴장 등 악재가 꼬리를 물며 팀의 폼이 바닥까지 떨어졌고, 아메오비 역시 팀과 함께 폼이 떨어져 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팀의 지옥같던 6연패 기간 동안 팀의 유일한(...) 골을 기록한 것도 아메오비였고, 그 6연패를 끊어낸 카디프 시티전의 결승골을 넣으며 팀의 실낱같은 자존심을 지키려 분투한 것도 아메오비였다.

선수와 팀 모두 재계약이 없을 것이라 천명한 상황에서, 시즌 최종전이었던 리버풀전은 숄라 아메오비의 뉴캐슬에서의 14년 헌신의 종지부를 찍는 경기였다. 전반전을 앞서며 마쳤지만 리버풀의 오프사이드성 골이 연이어 터지며 순식간에 역전당한 상황, 이에 항의하던 아메오비는 경고를 받았고, 이후에도 계속 입을 털던 필 다우드 주심에게 "왜, 퇴장이라도 주려고?"라 했다가 그대로 퇴장당해 버렸다. 대개 욕설이 나오는 정도가 아니면 퇴장을 시키지 않기에 아메오비에게는 가혹한 판정이었다. 그리고 허망한 마지막이었다.

1.2. 뉴캐슬을 떠난 이후

자유계약 선수가 된 아메오비는 2014년 8월 11일 터키 2부 리그 소속의 가지안테프 뷔윅셰히르 벨레디예스포르로 이적하였다. 계약기간은 1년간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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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상호 계약을 해지하여 다시 자유계약 신분이 되었고, 이듬해 1월 은사 앨런 파듀 감독의 부름을 받아 크리스탈 팰리스와 시즌말까지 단기 계약을 체결하였다.

2015년 10월 23일 볼턴 원더러스와 계약하였다.

2016년 1월, 재정 악화로 인해 선수 정리를 해야했던 볼턴을 떠나게 되었다.

2월 중순, 3부 리그의 플릿우드 타운과 이번 시즌 종료시까지 단기 계약을 맺고 입단했다. 시즌 후 노츠 카운티와 단기 계약을 맺었다.


[1] 심지어 당시 나이지리아 대표팀 감독 조 본프레레는 그가 나이지리아 국적을 택할 경우 2002 월드컵 무대에서 선발 출장시키겠다는 무리수까지 던질 정도였으니 그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 알 수 있다. 아니면 그냥 본프레레라서 그럴지도[2] 엉덩이 부분의 부상이 고질적이어서 수술도 받았다. 스피드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 부상이어서 결국 아메오비는 기동성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체중을 불려 타겟맨으로 전향한다.[3] 이때 구단은 구단주의 매각이 번번히 실패하며 말그대로 표류하고 있었다. 그러나 니키 버트, 스티브 하퍼, 그리고 아메오비 등의 중견급 선수가 두말없이 챔피언쉽에 잔류하면서 팀은 서서히 안정되었고, 이윽고 1위를 독주하며 승격에 성공하기에 이른다.[4] 아메오비의 부상 덕택에 한국 축구 팬들은 안방에서 가장 빠른 득점 루트 축구 그 자체의 활약상을 감상할 수 있었다.[5] 77kg 정도의 비교적 날씬한 몸매였는데, 현재는 95kg 정도로 불렸다. 하단의 동생과 함께 한 사진을 보면 상체 운동이 상당히 잘 되어 있음이 보일 것이다.[6] 이 골로 아메오비는 대 선덜랜드전 통산 7호골을 기록, 현역 축구 선수 가운데는 로비 킨 다음으로 선덜랜드에 많은 골을 퍼부은 선수가 되었다. 7골이 모두 리그 골인 덕분에 프리미어 리그 골로는 현역 선수 중 최다.[7] 물론 미학적인 면에서는 라이언 테일러의 독수리 슛과 아템 벤 아르파의 60m 드리블 골, 무엇보다도 파피스 시세의 물리법칙을 거부하는 슛에는 미치지 못하지만(이 세 골들은 모두 BBC가 선정한 이 달의 골들이다.) 11-12 시즌의 뉴캐슬은 역전 승이 거의 없는 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메오비의 골들의 드라마틱함을 감안하지 않을 순 없다. 참고로 큰 의미는 없지만 시세의 '그 골'도 아메오비의 어시스트로 기록되었다.[8] 후방에서 터닝으로 공을 빼내고 우측 빈공간으로 사비 알론소 빙의 패스, 우측에서 크로스가 올라오기 전 페널티 박스에 따라온 구프랑에게 "내가 파 포스트로 갈 테니 넌 니어 포스트에서 주워먹어라" 지시, 아메오비의 계획대로 파 포스트에서 아메오비가 헤딩 슛을 날리고, 키퍼가 막아낸 공을 구프랑이 주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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