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1-17 06:06:09

설관협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초명 설관준(薛寬俊)
이명 설진관(薛鎭寬)
자 / 호 공보(恭甫) / 오파(梧坡)
본관 순창 설씨[1]
출생 1883년[2] 4월 7일
함경도 갑산도호부 진동사 남대동
(현 량강도 갑산군 동점노동자구)
사망 1935년 10월 20일
만주
묘소 량강도 김정숙군 장항리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설관성은 그의 남동생이다.

2. 생애

설관협은 1883년 4월 7일 함경도 갑산도호부 진동사 남대동(현 량강도 갑산군 동점노동자구)에서 아버지 설군봉(薛君奉, 1853. 12. 13 ~ 1925. 7. 28)과 어머니 한양 조씨(1854. 9. 3 ~ ?) 조방엽(趙芳葉)의 딸 사이의 4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만주로 망명하여 중화민국 봉천성 장백현 십팔도구(十八道溝)[3] 대서가리(大徐哥里)에 소재한 협신학교(協新學校)를 졸업한 후, 1906년부터 1907년까지 같은 학교에서 교편을 잡아 한인자제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노력했다.

1919년 국내에서 일어난 3.1 운동간도 지역으로 파급되자, 그는 이창운(李昌雲)·유일우(劉一優)·김병윤(金秉潤) 등과 함께 동포들을 결속시켜 4월 10일 장백현 18도구(道溝)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했다. 이어 1919년 10월 장백현에서 일우(劉一優)를 단장으로 하는 독립지단(獨立支團)이 설치되고 군자금 1만원(圓) 모집 계획이 추진되었을 때, 그는 100원의 군자금 헌납하고 동지를 모집하는 등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1919년 11월에는 장백현 17도구에서 이한평(李漢平)·김동준(金東俊)·김찬(金燦) 등과 함께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 장백현지단(長白縣支團)을 조직하고 국내진공작전을 계획하며 항일활동을 벌였다. 이후 1921년 6월에는 무송현 18도구 명천덕리에서 대종교 인물들을 중심으로 흥업단(興業團)이 조직되자, 제1지부의 경호부장(警護部長)으로 피임되어 30여명의 경호원을 인솔하며 한인사회의 질서 유지와 민족의식 고취에 주력했다. 또한 1928년에 정몽학교 후원을 위한 후원회 회장을 맡아 그해 2월 17일에 개최된 제1회 정치총재를 주재했다. 1935년 10월 20일 만주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설관협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참의공파 60세 관(寬) 항렬.[2] 경주순창설씨대동보 권5 1581쪽에는 1886년생으로 등재되어 있다.[3]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바이산시 장백 조선족 자치현 스바다오거우촌(十八道溝村).